모든 문화의 집산지요, 왜 샌프란 하면 늘 째즈가 생각 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성 소수자들의 극심한 운동이 존재하고, 

금문교가 밤이면 아름다운 샌프란을 거치며, 이곳서 아침 

커피를 마시고 쉬고 있는 중.


자주 와 본 문화 도시인지라 낯설지 않은 한 익숙한 도시이다.

낭만과 문화, 멋과 날씨가 예쁜 한 도시.


이제 이런 서구의 도시들의 특유의 정취들을 이렇듯 즐기고,

여유를 보이는 삶은 다시는 내게는 아마 없을 것이다.



터미널을 긴 긴 거리를 따라 걷는데, 나이가 정말 더 많이 들면,

여행 하기도 힘들겠다 싶다.

그 긴 트랙을 나이 들어 힘들면 어떻게 다 관리하고, 여행을 

즐길수 있겠는가?


그래 나는 커피도, 아침 식사도, 한껏 즐기면서, 마지막 서구

세계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의 편지들을 다시 한번 보내 보고,

그들을 다시 그리워들도 해 보고, 내가 그들에게서 이젠 

멀어져 왔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한다. 


난 내 고향, 내 조국으로 가까워져 가고, 그들은 그들의 땅에

그렇게 남아 살아 가겠구나! 하는 때 늦은 이별의 실감들인 

것이다.



31년 간의 이 이방 땅들에서의 교제들과 코이노니아들을 

인해서 감사하고, 그 많고도 많은 아름다웠던 이들을 인해서

감사를 그 분께 올려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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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사건 이후 모든 비행기는 검문 검색이 더욱 더 강화 되어,

두 시간 전 Check In 도 부족해, 3 시간전 공항 도착이여야 

한다는 이 망할 놈의 정책들 때문, 


6시 비행기를 위한 새벽 3시 이곳 도착은 집에서 적어도 2시에 

출발 해야 하는 고충상,


저녁 9시 집을 나와 이곳 10시 도착해 지금 새벽 1시 40분.




어디를 간들 이 직업 의식을 어딘들 도망할수 있으리요.


한 난데 없는 마추 피추 페루 여자가 실연에 가슴 아픈 하소연을 

나에게 풀기 시작해, 사전 찿아 가며 그 하소연에, 푸념에 그 버벅 

거리는 영어 들으며, 상담 하느라 나 그냥 돌아 가시는줄 알았다.


이런 버벅 거리는 영어로 하는 상담은 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 많이 슬프니? 하니 눈물을 뚝뚝.



독점적이고 학대성이 강한 구두쇠 미국인 남자를 홀로 더 많이

사랑해 다치고, 마음이 상한 아픈 이야기였다.


4 시간을 그렇게 이야기 하다 지금 옆에서 지쳐 잠이 들어 있다.


그 버벅 거리는 영어여도, 원칙들을 밝히 이야기 해 주면,

눈이 반짝 반짝, 어떻게 넌 그렇게도 모든 걸 다 잘 아니? 하고선

야단 법석이 늘 난다.


내 평생 직업이 그건데 왜 그걸 모르겠니? 싶지만, 여러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아 패수.



3시간여의 감정을 다 흘려 내 보낸 그 여자는 가방을 주섬 주섬

뒤지더니, 페루 자그마한 동전 지갑을 하나 꺼내, 나에게 정성

스럽게 선물해 준다.


정의감도, 카리스마도, 리더쉽도, 온정도 많은 여자가 흔히 

빠지는 행위 중독의 된 코에 걸려든 케이스로 마음이 아팠다.

남미의 그 그 들네 짐승 야마처럼 순진 무구함은, 이런 미주의 

중독성 강한 Hardcore 남자 얘들을 감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것.


경계선에 대해 이야기 해 줄 때, 그 여자는 그야말로 완전히 

무너진 나의 한 클라이언트 였다.



이제 2시간여만 지나면 체크 인으로 짐을 맡기고, 아침 커피

라도 한 잔 어디 마시러 움직여 봐야 겠다.

이 우라질 원시성의 이 공항은 자판기 하나 근처에 없어,

뜨거운 커피가 몹씨 고픈데도, 지금 이렇게 쫄쫄 굶고 있다.   


내가 지금 미국에 있는게 아니라, 마치 어느 아프리카 부쉬에 

있는 듯한 원시성.



그나마 마침 공항 Wi-Fi 가 대학원 기숙사 인터넷 보다는

잘 터져, 이 글질이나마 할수 있어 요행이고 다행.


무뤂도 아프고,시리고, 자고 싶고, 그나마 아주 따스한 Fleece

반 코트를 잘 입고 나와 춥지는 않고, 아주 따뜻해 좋다.


한국은 초 여름 고온이라는데, 이곳은 난데 없는 보슬비가

이틀째 연이어 오고 있다.


그래서 밤은 아주 춥다.


한 떼의 젊은 여행객들 얘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들을 아름답게

부르는 한 낭만적인 공항의 밤.


그거 괜찮네.

여행 하는 기분 푹팍 나서.


이렇게 늘 어딘가로 떠남은 늘 신나고 괜찮은 그런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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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고국 가는 비행기를 타러 나가기 전, 차분한 하루를 아주 잘 보내고

있다. 어제 저녘까지 그다지도 애를 먹이던 차 문제는 그냥 나에게

많은 도움을 이래 저래 준 한 사람에게 이양.


너무 좋아 춤을 출듯 웃음이 벙실 벙실 그 사람은 내 차를 몰고

사라지고, 나의 뒷 골 땡기던 혈압은 급기야는 내려 갔다.



그리고 오늘은 차분히, 조근 조근, 온 집을 광 마지막으로 내고,

향기 좋은 방향제 뿌려 집을 왼통 반짝 반짝 정리하고, 은행 가

쓸 마지막 경비들을 쓸어 담아 오고.



난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가?

북미에서는 14년, 이 미국에서는 12년을 어언 살았다.


난 거의 지금 아무 감정이 없이 아주 무덤덤한 상태다.

난 이제 어떤 대륙을 떠나 어딘가로 옮긴다는 것에 대해, 

그 아무런 감정들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돌아 다니며 산 삶에 나는 지쳐 있는 것 같다.

이제 저녁 나를 공항으로 데려 갈 신혼 부부 제자를 기다리면서,


나는 아주 오랫만 4층까지 올라온 크나큰 고목 나무들이 장관으로

우거진 내 별장 같은 팬시하고 멋진 내 로프트에서 아주 정말 오랫만

그 싱그러운 봄의 초록 잎새들을 아주 오래 오래 지켜 보며, 마지막

으로 켈리의 봄을 만끽 했다.


왜 이 아름다움들이 지난 몇 달, 몇 년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을까? 도 나는 생각해 보았다.


생존의 험난한 싸움들의 연속이 그 이유들인 것 같다.



다시 돌아 오고 싶냐?고 많은 이들이 지나가듯 가볍게 자주들

묻는다.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늘 절레 절레 양 좌우로 심하게

흔들어 대는 날 아주 아프게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는 곳.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고 힘든 도전이었던 것이다.

생존의 도전은 이젠 아주 지겨워서.


그래 난 오늘 저녁 공항을 나가, 내일 새벽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홀가분하고, 날을것 같은 자유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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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친구들

산다는 것 : 2014.03.25 09:10



어제 일어난 두 세 사건을 나는 글로 적어 놓아야 할 필요성을

지금 마음 안 많이 느낀다.

 

주일 이른 아침이어서, 요즘 정말 꾸역 꾸역 많이도, 너무 많이도 

나오는 쓰레기들을, 카트에 가득 산더미처럼 싣고, 지하 주차장

쓰레기 대형 통으로 끌고 내려 가는데, 누가 자지러지게 크게

반가움으로 뒤에서 날 부른다.

 

우리는 늘 만나면 엄청난 재미난 일들을 만들어, 박물관, 자연 속,

공연들 속, 사건들 속, 늘 같이 많이 놀러 다니던 한 친구였다.

 

내가 한국, 그것도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그 자리서

들은 친구의 충격은 그야말로 엄청 컸다.

 


내가 늘 대학원생들에게 안부를 물어도, 그 누구도 모르더니, 이미

1년전 이 대학원서 직원들 감원을 하는 때에, 그 처음 리스트에 올라

감원 대상으로 지금은, 

 

다른 신학 대학원들에서 파트 타임으로 그야말로, 마음 참으로 

착찹하고 버거울 지난 1년을 나와 다름 없이 보낸 하소연들, 푸념

들의 수다로 우린 한참을 그렇게 지하 주차장서, 

 

세상사 얼마나 허망하고, 그 앞 날들을 알수 없음들을 그곳서 그렇게

한탄하고 서 있었다. 필리핀에서 20년이 넘게 전문직 요원으로 잘

일하다, 

 

이 미국의 초청을 받아, 모든 걸 다 끌고 이곳에 온 한 친구인데, 

대학원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직원 감축 케이스에 재수 없이

걸린 한 경우다.

 


상당히 저렇게 웃고 있지만, 내면에 스트레스 팍팍 받겠다 싶어,

내 텃밭 한번 분양 받아 이어서 지으면서,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를

좀 풀어 볼래? 했더니, 너무 좋아 춤을 출 지경이다.

 

그래 쓰레기 비우러 내려 갔다, 그 친구의 차를 타고, 쇠 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텃밭으로 가, 미나리, 치커리, 파등 초록 나물 해 먹을 거리

들을 둘 다 바구니 바구니 따 들쳐 메고 집에 돌아 왔다.

 

미국 메니저 할머니에게 나의 귀국을 알리고, 그렇게 그 친구는

내 텃밭을 이제 물려 받아, 웃음 꽃이 그야말로 벙실 벙실, 거의

그 깊은 기쁨으로 돌아 가실 지경이다.

 


텃밭 처음 2년은 누구나 이렇듯 좀 중독성이 있다.

 

누워도 밭만 눈에 떠 오르고, 난 대학원 노 석학 교수들이 앞에서

강의 할 때, 늘 우리 노석학 교수들의 머리칼들이, 내 초록이들로

보여, 슬며시 웃음 짓곤 했었다. 아주 중요한 강의들에, 공부는

안 하고선 그딴 생각들이나 하고 앉아 있곤 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친구가 그 판이 났다.

 

동양인이 되건 서양인이 되건, 땅이 주는 치유는 굉장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친구가 저녁을 먹이러 나에게 와 나가 저녁을 먹고,

집에 데리고 와, 볼트 수가 달라 한국에 가져 가지 못하는, 전체 전기 

기구와, 내가 이뻐서 꽁쳐 놓은, 아주 제일 예쁜 아이케아 가구들을

두 차로 실어 나르며, 다 지네 집으로 가져 가게 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지라, 마지막으로 작별을 하고 가는데, 나도 제일 

처음 경우로 눈물이 그야말로 펑펑펑 쏟아져, 우리 둘다 지하 주차장서

서로 배웅 하면서, 어엄청 울었다. 목이 메이도록.

 

세상엔 이런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내 일생에 세 명의 가장 신실 했던 친구 셋을 손에 꼽으라면, 

이 친구가 나중 그렇게 그 순위에 꼽히는, 나를 무지 무지 무지 

사랑해 주던 한 친구이다.

 

그런 친구와 정말 이젠 영원히 다시는 못 볼 한 이별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도깨비 할아버지가 차를 보러 왔다.

왜 그 할배가 도깨빈고니, 내가 분명 우리 옛날 조교에게 차를

내 놓았는데, 내 이 메일을 정말 어엉뚱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받고 차를 보겠다고 온 것.

 

어느 강의에서 너무 교수를 괴롭혀 내가 진짜 미워 했던 그

나의 삶 안에 절대 들이지도, 이 메일을 내 메일함에 간직 하지도

전혀 않을 그 도깨비 할배가 난데없이 그렇게 차를 보러 온 것.

 

도깨비에 완전 홀린 기분의 그런 날.

어떻게 그런 불상사가 일어 났는지, 난 아직도 그 대답을 못

찿고, 오리 무중.

 


그리고 5월의 신부가 되는 제자가 예비 신랑과 내 공항 Ride를 

기꺼히 자청하고 나서, 그 들은 정말 행복해 한다.

 

오늘은 그 가장 마지막 찰나에 부랴 부랴 벼락치기로 팔아 대야 

하는 나의 차 문제로, 그야말로 하루 종일 이 메일을 붙잡고

소통과,

 

또 남은 잔여 물건들을 중고 가구 가게에서 가져 가게, 소통하는

그 수속들을, 아침 내내 뒷 골 땡겨 빠개져 나가는 듯한 고통 속들

해결하고 지금까지 이렇듯 앉아 있다.

 

나에게 두 번 다시 이런 이사를 하라면, 난 그 놈의 세상을 다시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한번 신중히 다시 생각해 볼것만

같은 그런 스트레스와 압력의 상황들이다.  

 


이런 얘들을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상쾌하고 젊게 삶을 보는 이 청년처럼.

 


"전 필요한 것은 모두 가졌어요.

제가 숨 쉴 공기와 그림 그릴 종이도 있어요.

 

더 행복한 것은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이며,

누굴 만날지도 모르고, 어딜 갈지도 모른다는 거죠.

어젯밤에는 배 밑에서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배에서 여러분과 샴페인을 들고 있잖아요.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지 말아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요.

순간을 소중히!"

 

- 영화 <타이타닉>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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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삿짐을 다 보내고 나니, 당장 처음 이 곳 왔을 때, 한 달을 

카펫트 위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자던, 그 원점의 형태로 다시

돌아 와, 그렇게 바닥에서 자자니 온 몸이 다 고이고, 아파

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해운으로 짐이 도착 할래면 한 달 반이 시골이라 더 오래 꼬박

걸린다는데, 침대 없이 딱딱한 방에서 잘 걸 생각하니, 참 한심

하기 그지 없다. 



한국에 도착하면 요단을 쇼핑해야 하겠지만, 이젠 요단도 난 

딱딱해 잘 못 잘 것 같다. 침대가 있어야지 이젠 잠이 오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니. 천하에 조선 여인인 내가 다.


아침 일어 나면 머리가 쑥대밭이 되어, 봄 종다리가 거기 집을

지어도 되겠다 싶게 어지러져 있고, 얼굴은 그야말로 호박처럼

퉁퉁 부어, 내가 얼마나 밤새 잠을 설치며, 힘들게, 괴롭게 잠을

이루었는지를 이미 알수 있다.



오늘도 새벽 4시 일어나 커피 마시고, 이른 아침 밥 해 먹고,

샤워에 아마 다닥 다닥 붙은 이 가옥 구조에서, 이웃집들이

아마 돌기 직전의 시끄러움이리라 생각 하니, 고양이 발 걸음에

수도를 트는 것도 늘상 조심스럽고, 죄송하고, 미안한.



몇 일만 더 기다려라.


이젠 소음을 얼마든지 흩뿌려도, 마늘 냄새를 온 공기 속 그득

하니 요리를 해도, 전혀 정죄감 없는, 나는 자유스러운 땅 집에서

살게 된다.


이 지겨운 다닥 다닥 붙어 늘 소음도, 냄새도 조심스러운 이 지겨운

도심의 스트레스를, 난 만방에 한 주먹감으로 이젠 나의 삶 안에서

삼천리 밖으로 쳐 날려 불어 흐트려 버릴테다.


그것의 상상은 자유고, 가뿐이고, 날을것 같은 기분 좋음이다.



이젠 청국장도 마음대로 퍽팍 끓여 바글 바글 계속 조려 보고,

마늘은 이미 대학원 마친 뒤, 후론 엄청 먹으며, 나의 항암과

면역 기능을 증강 시킨지 이미 오래지만,복도로 삐져 나갈 그

썩는듯한 악취의 청국장은 차마 외국에서는 못 먹은.


영국 케임브리지 집이 땅 집일때, 청국장을 난 약 2년여를

줄창 자유하게 잘 끓여 먹으며, 너무 기쁘고, 자유 했던 좋고,

아름다운 한 기억이 있다.



이제 내 고향 옛 내 집에 돌아 가면 꼭 그렇게 먼저 할 것이다.

마당에 엄청난 양의 꽃들을 심고, 텃밭에 왼갖 푸성귀들을

잔뜩 심고, 청국장을 띄우고, 젓갈을 담고, 


그리고 제일 먼저는 난 지금 아부라기 볶음이 너무 자주 먹고

싶고, 먹고 싶고, 또 먹고 싶다.




시베리아에서 파송 교회가 있던 영국 런던을 나오면, 늘 사람들은 

나에게 산해 진미를 대접 했었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에서 문명으로 

나온 나의 가장 늘 먹고 싶었던 건, 그런 산해 진미가 결코 아니었다.


난 그때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버거킹의 워퍼와 피자 헛의

피자 한 판이 늘 제일 그리웠었다.




그래 그런 부자 부자 왕 부자들인 고루 거각 장로님들 집,

권사님들 집들을 조용히 늘 빠져 나와, 나는 혼자 KFC 와

버거킹의 워퍼를 조용히, 그렇게 늘 쇼핑 후 즐겼다.





이번은 부산 어묵으로 풋고추 꽈리 고추, 꿀, 마늘, 멸치 

넣어 반질 반질 볶아낸, 그런 남도의 아주 서민적이고, 

촌스런 그 아부라기 볶음을 어서 가 한국에서 해 먹어야겠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심리가 참 이상한 건, 외국에서는 이렇듯

우리 한국의 몇 특정 음식들을, 그렇게들 뼈가 사무치게 그리

다가도, 정작 한국에 가면 이런 것들 전혀 먹고 싶지도 않고,

절대 다시는 찿지도 않는다.


그리곤 울화통 터지게도 난데없이 미국 코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먹던 그 햄버거가, 한국 한 복판에서 갑자기

늘 먹고 싶다는 , 그 울화통 터지게 하고, 사람 홧병 나게 

하는, 이 뒤틀린 심보들과 인간의 간사한 욕구여.



사람이 무엇이든 가질수 없고, 누릴수 없다는 사실 앞에,

그 욕구와 갈망들이 더 간절해지는 묘한 한 우리 심리인 

것이다.


늘 많은 고립된 장소들에서 우리들에겐 '금면' 이라고 불리던

라면을, 4개월-6개월 씩을 한국에 있는데, 단 한개도 안 먹는

나를 나는 심히 증오하고 저주 했었다.



이 땅에 가 있으면, 저 땅이 그립고, 저 땅에 가 있으면, 또 이

땅이 그리운 우리 심사와 그것은 매 한 가지다.


난 유럽이라는 대륙을 약 20년 후 떠나 북미로 옮겨짐을 당할때,

유럽 대륙에 대한 정을 떼려, 한 달을 노력하고 또 노력 했다.

그래서 북미에 와, 유럽을 그렇게 많이 전혀 그리워 하지 않을수

있었다.


이제 북미를 나는 철저히 내 마음 안에서 온전히 내려 놓으려

노력한다.



어제, 그제, 그 그제, 그리고 더 수 많은 날들을 많은 사람들이

나의 떠남을 아쉬워들 하며 가면서, 눈물들을 많이 흘리고들

집으로 돌아들 갔다.


그러나 나는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단 어느 누구 하나, 한 사람에게도.


이토록 나는 이제 정 떼기, 이별에 익숙해져 있고, 강해져 있고,

무덤덤해져 있는 것이다.


울어야 할 그 아무런 이유들도 거의 난 못 발견하게, 그들은 나를

정말 그 수 많은 상담 셋션들로 괴롭히고, 힘들게 할만큼 했고,

또 괴롭히고도 또 괴롭혀 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떠남이 너무 홀가분하고, 가뿐하고, 경쾌하고, 

자유롭다. 그 지겨운 문제들 투성이의, 잇슈들 투성이의 사람들 좀

당분간은 좀 안 봐도 되닌까.


그리고 자연과 벗하고, 산과 들과 꽃들과 맑은 공기들과 봄 아지랭이와

종다리들 소리를 44년만 다시 처음처럼 들을수 있는 들판에 서게 될

테닌까.


그래서 다시 이 아침, 내게 인생은 다시 아름답다.

 


양 희은의 '들 길 따라서' 가 내 마음에 있는 아침.


들 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 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내가 가기 전 우리 한국 산야의 창 꽃이 제발 지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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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주말인지라 나의 옛 내담자들, 제자들이 무수히 작별 인사들을 하러

다녀들 갔다. 아무 장비도 없는 곳에서, 밥해 내기도 참 쉽지 않다는 

걸, 철 없는 어린얘들은 잘 모른다.


그리고 길 떠나는 자들이 얼마나한 시간당, 분 당 쪼개 써야 하는

분주함들 속, 그 들을 맞는지도 몰라, 한 나절씩들을 죽치고 앉아

진을 치는 무리들도 많다.



스트레스가 이렇듯 많이 쌓이다 보니, 문득 영화가 많이 고픈데,

나에게 이런 문화적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 주는 기재들 마저도,

지금은 고갈인 허걱스런 상황들.



내면의 회복을 위해 온 내담자들은, 참으로 성숙한 실한 사람들도

많지만, 걔중에는 문제와 잇슈 투성이의 채 성숙하지 못한, 사고의

영역들이 그 수준을 전혀 따라 오지 못해, 


대화를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더 이상 이들의 소통의 세계와 나의 

소통의 세계는 엇갈려 빗나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자아 내는, 

나의 클리닠 옛 내담자들도 자주 있다.


사람이 이야기 하는 수준이나 급이 딴 세상을 서로 엇갈려 배회

하는 것 만큼 안타깝고, 민망스러운 상황도 또 참 많지 않다.


그런 대화의 수준의 다름과 격들 때문, 조금은 마음이 아픈 하루였다.

난 언제나 그런 이들의 삶의 근경을 내려가, 전혀 이질감 없이 어울릴수

있는 삶의 여유들이 잘 생겨 날까?


그 중 두 여성 내담자들의 대화는 참으로 한심해, 내 마음과 생각이

완전히 딴 곳을 배회하며, 방황하고 있는 걸 발견하곤, 난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이들의 한 공통 관심사는 늘 남자요, 결혼, 시댁등 그야말로 나에게

진정으로 하품을 유발 시키는 그런 무료하고, 의미 없는 대화의 소재

들 뿐이다.



이런 것들을 듣고, 그 방법들을 제시해 주자고, 이 비싼 학비 들여,

이런 학문을 한 것도 아니고, 난 참으로 망연 자실 해 지는 것이다.


사람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고, 어느 영역을 주로 배회하며, 사고 하고,

정선하고, 목소리들로, 의견들로 잘 정리해 내는가는, 나에겐 참으로

중요한 한 요소이다. 


그게 무슨 영역이 되든 나에게는, 질(Quality)이라는 것이 아주 중요한 

한 가치 요소인 것 처럼 말이다.


이렇게 시간을 몽땅 많이 쓰고 나면, 나는 웬지 억울해진다.

내 삶을 너무 많이 별 쓸모 없는 일에 소모해 버린 것 같아 지면서 오는,

한 허무한 그런 감정이고, 느낌이다.


생각을, 사고를 잘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살아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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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어렵고 지쳤다면

잠시 내려두고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요?


                                                                                                        Planet Dream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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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곳에서 나를 보내는 이들, 내 고향 남도에서 나를 맞는 

이들 다들 제각기들의 자신들의 모습들로 그야말로 야단

들이다. 지금은.


내 부모님 고향은 고흥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자라고,

이 삶의 기반을 가장 강하게 놓아준, 나의 제 2의 고향 

광주나 서울은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에서, 하와이 대학

에서 일 할때, 


그렇게 전 세계들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 이름을, 명성을

휘날릴때, 많은 이들이, '우리 남도가 낳은 인물'로 이름들을 

자신들이 혼자서 지어 놓고, 아주 즐거워들 하셨다. 

수 십년간을.



그런데 이번 그들에게 그 어떤 언질도 없이, 이렇게 조용히

철수하는 나에 대해, 그야말로 슬픔들이 가득들 하시다.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연락해, 금의 환향 하길 원하셨는

가들 싶은 모양새.


한 아주 높으신 직위의 어르신으로부터, 조금은 의아하고

놀란, 장문의 편지를 비롯해, 수 많은 곳들서, 다양한 반응

들이 속속히들 지금 도착들을 하고 있다.



난 이제 그만.

영웅도 싫고, 인물도 싫고, 금의 환향 접대도 다 귀찮고, 

다 싫은 나다. 지금 당장은.


그래 이렇게 조용히, 내 44년전 부모님 고향 고흥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들어가 버리는 내가, 그 들은 지금 몹시도

섭섭하고, 화가 나서들 야단들이다.


뒤늦게서야 어디서들 알아들 내시고는.


난?

난 무 감각 !!


난 요즘 이런 저런 어려운 결정들과 뒷 수습들로, 날마다

혈압만이 고도로 올라, 뒷 목이 뻣뻣히 잡아 당기고, 아픈 속,

날마다 진통제 복용해 가며, 견디고 있는 중.


이곳에서도 배웅 환송 인사 하겠다고 날마다 연일 줄들을 

서는, 스케쥴 인사 치레 겉치레 챙기기만도, 난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 요즘, 세상 만사 다 귀찮이즘이다.



그런 와중 내가 지금 당신들의 그 사치스런 하소연들과 푸념들이 

지금 내게 들릴리 만무. 

우선 난 지금 내가 살아 나야 겠다는 생존 욕구 밖엔 안 남은 한 

사람이오.


봉사고, 섬김이고, 지랄이고, 다 뒷 전 나머지 일.

지금의 나에겐.


나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당신들 다 어디들 있었는데?

하는 아픈 질문들만이 마음을 오가고.


그리곤 numb.


세상사

참 엠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는 요즘이다.



그 들의 불만들은 대략 이렇다.


하나님이 내 삶에 그렇게도 많은 것들을 평생을 투자 하셨는데,

왜 서울에서 클리닠을 열어 사람들을 회복 시키지 않느냐? 는 

것이고,


너무 복잡한 서울이 싫다면, 왜 광주에라도 조금 더 도심권에

자리를 잡고, 계속해서 우리 민족들에게도, 줄곧 연이어 봉사 

하지 않느냐? 는 것이다.



나?

난 내 고향에서 그래도 필요가 있어, 스스로들 찿아 오는

이들이 있으면, 그냥 거기서 보겠다고.


상담 안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 일 전체 다 끊어 버리겠다는 말이 아니고,


어디에 두셔도, 거기 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꼭 있다면,

그 분이 보내실 거라고, 이야기 하고, 설득해 보내 드렸건만,


이해들을 하셨는지, 못 하셨는지들은, 그건 이젠 더 이상

내 책임이 아니다. 



그 들이 스스로 알아서, 스스로 해석들 하고, 

스스로들 결정들 할 일.


난 이젠 모르는 바요. 

모르쇠다.


당신들의 반응들에 대해서 난 엉뚱한 책임이라는 덤탱이들을

이젠 더 이상은 뒤집어들 쓰지 않겠소!! 인 것이다.


제길헐!!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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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뢰는, 나의 뒤틀린(twisted) 육의 아버지의

상으로부터 거의 대개는 많이 온다. 


특히 공급과 보호에 대한 인식은, 십중 팔구 우리 아버지의 

자식들에게 공급해 주지 못한 나중 생의 과실들과,

새 엄마와 의붓 남매가 태어 나면서, 우리 4 남매를 처절히 버린

그 아픔과 상처에 크게 기인한다.



이 이사 과정을 통해 나는 나의 많은 감정들을 프로세스 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행기 표며, 빚, 한국에서 필요한 가장 최소한의 경비들이며

등이 나를 정말 그야말로 팔딱 귀신 들린 자처럼, 오도 깨방정을

떨어 대며, 


난 하나님께 섭섭하고, 무능하게 보이고, 자식을 전혀 돌보지 

않는 '버림의 영(Spirit of Abandonment)' 


그리고 '고아의 영(Spirit of Orphanage) 등으로 너무나도

크게, 크게 지난 한 달여가 넘는 시간대를 시달리고, 아프고,

괴롭고, 섭섭하고, 괘씸하고, 배신감 느끼며, 


그렇게 난 하나님과 씨름을 해 댄 것 같다.



그런데 바로 코 앞까지 닥쳐서 제공하는 하나님도 야속하고,

이렇게 피를 말리는 고통으로 최후 마지막 까지의 그 믿음들을

왜 꼭 보시겠다는 건지, 


지난 그 긴 35년간의 그 믿음의 삶도, 나를 테스트 하시기에는 

충분치 않았는가 하는 야속함, 괘씸함, 섭섭함 그런 감정들이 

지금 까지도, 


내 마음을 하루에도 100번씩은 자주 오가면서, 나를 심히도 

괴롭히고 또 괴롭힌다.



$500.-의 편도 비행기 표에 내가 이렇게 무너져야 하고,

갚아야 하는 빚들 $2,200.-에 이렇게 난 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고통을 날이면 날마다 겪어야 하고,


밀린 기숙사비 $ 4,000.-은 기어이 이렇게 빚으로 한국으로

안고 가 일년을 넘게 갚아야 하게, 내 평생을 드려 한, 이 하나님의

일이, 


이렇게 밖에는 보상 받을수 없게, 난 이다지도 처절히 비참해져야 

하는 건지 등이, 난 그 분께 묻고 싶은, 그런 마음 안의 아픈 아우성

들이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약함 앞에도, 나머지 일 초, 일 순간에 그 피를

말리던 재정들은 어떻게든 또 이렇게 채워져 들어 온다는 것이, 

어쩔땐 그 분의 임재를 보는 것 같아, 난 또 더 서럽고, 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감정들은 대개는 고맙고 감사한 감정보다는 더 크고, 아프고, 

힘센 고통스러운 감정들이다.



그렇게 난 그 분과 싸우고, 미워 하고, 증오하고 그러고 야단 촐삭을 

지금 떨면서 그러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나의 경함에, 그는 너무 묵직하고, 중하고, 신실 하다는

것도 나는 어쩔땐 약이 오른다.


"그래 잘 났어요!!" 하구선 막 야유해 주고 싶을 정도로.


"난 경하고, 가볍고,

당신은 진중하고, 묵직하고, 신실 하시네요"


"증오스러울 정도로 질기고, 나를 힘들게 하지만,

진중하고, 신실한 건 사실이구려 그래!!" 하는 나는 

야유 아닌 야유를 요즘 그에게 자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난 그 분을 내 마음 안 가장 깊은 곳에서는

정말 많이 사랑하고 있긴 있는 것 같다.


죽으나 사나 오로지 한 분 남는 건,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결국은 결코 아닌, 그 분 한 분이시라는 걸, 이 이사 과정을 통해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한테 욕을 자주 먹어도, 내가 진정으로 내 마음 안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가장 진정으로 사랑하는 유일하신 

한 분, 


그 분은 바로 다름 아닌, 나의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이렇게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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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제 몇 일째 복용하며 싼 이삿짐의 길고도,

긴 고행.

 

내일 이른 아침 이삿짐이 한국으로 나갈수 있게

해운 회사에서 가지러 온다.

 

이곳 서부는 교민들이 많아, 이런 회사들 시스템들이

정말 잘 되어 있고, 가격도 다른 대륙들과 나라들의

이사 하던 기억을 떠 올려 볼 때, 너무 너무 너무 저렴하다.

 

내 완벽 주의 깔끔이 성격은 그야말로 반들 반들 예쁘고

모양새 있게 전체를 싸, 온 집에 정말 가지런히 잘 정리해

놓았다.

 

견적 내러 왔던 해운 회사 직원이 까암놀 했다.

 

포장을 하기 전 이렇게 차분하고, 정갈하게 이미 다

정리해, 한결 같은 봉투에 이렇게 잘 담아 놓은 집은

자기 일 하는 경험상 제일 처음이라고.

 


얼마전 뚱뚱이들은 우리 회사 상품 타켓 클라이언트

들이 아니고, 헐리웃 남자 배우들 같은 30대 청년들

이라고, 입 방정, 깨 방정 잘 못 놀렸다,

 

그야말로 미국 전역에서 쏟아진 비난의 면 티 셔츠 회사 

아베 크롬비에서 한 미국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거기는 아니나 다를까 알바생들도, 마이애미 비치에서

나들 놈직한, 훤칠한 그런 준수 꽃미남들만을 채용한다.


그 친구가 바로 딱 그렇게 생긴.

 

내가 이사 간다는 것 알고, 아베 크롬비 포장 튼튼한 봉투

들을, 한 100개는 가져 온 것. 

아베 크롬비 봉투만큼 튼실 하고, 검은 색상으로 팬시한게 

없다.

 

인쇄인지 뭔지가 어디 하자가 있어, 다 버리는 튼튼하고

멋진 종이백들을.

 

거기에 네모 반듯 다 정리해, 전체 살림을 다 그렇게

다 싸 포장해 놓고, 집안을 깔끔미가 자르르륵 흐르게

정리해 놓고,

 

견적 내는 이를 그렇게 기다렸더니, 놀란 그 직원이

한 말이다.

 

요놈의 죽일 놈의 영원히 회복 되지 않는 완벽 주의와

일 중독.

 

칭찬 받고, 깔끔 떤 건 좋았는데, 몸살 나, 온 삭신이

다 아파 돌아 가시는 줄 알았다.

 

그렇게 땀을 벌벌, 진통제 먹어 가며, 먹어 가며 싼

이삿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 이전, 난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먹고 떠나라.

 

얼굴이 주먹만 해 지게 야위었다.

이 힘든, 땀 뻘뻘 흘려 가며, 혼자 싼 이삿짐의

중 노동 때문.

 

그야말로 살이 좍좍 빠질 정도로 힘들게 일한 것.

 

허기지고, 배고프고, 그 자리들에 그냥 그대로 의지

하나 줄 놓아 버리면, 퍽석! 주저 앉아 버릴 것만 같은

고통과 힘듦 속,

 

급기야는 다 그렇게 윤기가 자르륵, 잡지 모델

집 모양으로 나가도 손색 없을 만큼 그렇게 100%

내 마음에 맞아 떨어지게 다 포장 하고, 치우고,

청소 한 후,

 


고기를 좀 먹어 주어야 되겠다 싶어, 포테이토 웻지와

비프 스테이크 준비.

 

황후의 식사를 준비해 거나히 먹고 난 후, 온 건

내 사전에 결코 흔치 않는 낮잠.



  텃밭용 고급 가든 장화를 가지러 텃밭에 다녀 오다.

나 지난 4개월간 더 이상 텃밭지기의 자격에서 미달

내지는 상실.

 

밭에 가 보니 미나리가 정말 아름답게 한 마지기는

혼자 그렇게 부드럽고, 파랗게 잘 자라 올라 오고,

코스모스, 해바라기, 싱싱한 연 초록의 치커리가 무성.

 

텃밭을 계속 보고 있으면, 더 이상 못 떠날 것 같아,

물 먹은 하마처럼 물만 잔뜩 빵빵 부어 먹여 주고,

부리 나케 집으로 줄 행랑.   

 

그리고 그 거나한 성찬을 차려, 요리해 먹고,

골골 갤갤 난 전쟁터의 총 맞은 병사처럼 그렇게

낮잠이 들었다.

 

그렇게 남가주 나의 나성 근경 도시에서의 유명 명문

학교의 대학원 학위 취득과 사역을 위한 삶은 종결을

급기야는 맞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오로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당신의 꿈과 이상, 낭만이 있는 곳으로.


감사를 한껏 올려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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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내가 이 이사 준비로 내 사랑 우리 민율이를 오래 오래 못 본 사이,

우리 민율이가 약간 악동이 된 것처럼, 그 또렷 또렷 똑똑함이

이젠 지나치다 못해, 아직도 그 그냥 꽉! 앙! 깨물어 주고 싶은

예쁨은 늘 여전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민율.

내가 한국 가면 꼭 본방 사수해 너 꼭 봐 줄테니.



커피 전문점에 커피 사러 간 우리 민율이 보고 귀여워 정말

돌아 가시는 줄 알았다.

가게에서 라면 사 뺑소니 치려는 그 돈 없는, 우리 민율이도

정말 대박.


이제 정말 많이 커서, 자기 의견이 너무 분명하고, 의사 표현은

여전히 아주 깨끗할 정도로 확실.

엄마의 야무지고 당찬 성격을 많이 닮은 것 같다.



이건 구닥다리 낡은 오래 지난 걸 이곳 미국 방송은 보여 주지만,

그 유명하신 민율 '오빠' 가 더 나이 어린 여자 아이를 심히 염려하고

걱정 한다는 뉴스 듣고, 난 그만 제대로 빵! 터진.


아!

우리 민율이 보고 싶어서라도, 한국 빨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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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 내 고향으로 내가 언젠간 돌아 가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아는 친구는, 그러나 늘 그 가슴이 잘 따라 

주질 않는가 보다.


가기 전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가지고, 함께 하고 싶어, 자주 자주 

자주, 자꾸 찿아 오는 친구를 지켜 봄은, 그리 마음이 쉽지를 늘 않다.



점심 함께 먹고, 여느때처럼 다시 스타 벅스 가서 얼음 갈아 만든

맛있는 커피  함께 마시고, 조경이 아름답게 된 장소를 함께 걷고,

그래도 늘 아쉬움은 여전하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이 이다지도 늘 가슴 저미는 아픔

이라면, 난 다시는 이런 친구들을 내 삶에 다시 만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의, 그런 감정들의 한 소모들이다.


심리학 박사들도 그 어찌 못 하는, 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사랑보다 더 슬픈 정.


망할 감정.




택배 회사에서 빠른 회신의 연락이 왔고, 이제 이삿짐 포장이 

바야흐로, 이번 주 이루어지긴 이루어 질래나 보다.


가구를 가져 가는 걸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침대와 큰 IKEA

Arm Chair 하나, 두 개의 가장 기본적인 Coffee Table 정도는

우송이 그리 비싸지 않을것 같은 그런 예감이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견적을 내 주러, 이삿짐 센터의 직원들이

집을 방문 하고, 난 바로 가서 그 폐가 같은 방치된 집에서, 도배와

벽지를 깨끗히 아직 수리 못한 상황에서, 


방 바닥에 잘 일이 큰 일 처럼 늘 마음 안 버겁고, 부담스러웠는데, 

내 침대와 의자등이 간다면, 나중 한 달 뒤 오겠지만, 너무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내가 좋아하던 아이케아의 등나무 의자들을 다 팔아 버린 뒤,

이 정보를 알게 되어, 너무 유감. 

내담자들 오면, 상담실에서 쓰기는 그 아이케아 등나무 의자 

만큼 정갈 스럽고, 단아 한 건 또 다시 없는데.


유감 천만이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닐 운명이었나 보지 뭐.

포기 할건 또 상황 재깍 빨리 봐서,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것도,

내 성격중 또 하나.


난 그렇게 내가 가장 사랑하던 나의 아이케아 가구들을 쉽게

미련을 버리고들, 포기해 버렸다.


연말에 우리 나라에 아이케아 매장이 들어 선다니, 그때 한번

아이케아 Trip을 한번 감행할 요량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그런 꿈도 야무진 당찬 계획.




아!

어딘가를 대륙을 가로 질러 움직인 다는 것이 이토록 스트레스

팍팍 쌓이고, 특히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그 이별의 감정의

소모들이 너무 시리고 가슴 아프다.


젠장!

사랑에 빠지지 말자

하는 노 사연의 대학 시절 노래가 다 다시 생각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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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삶들.

산다는 것 : 2014.03.17 09:57



아침 또 침대가 크게 출렁일 정도로 큰 지진이 모든 사람들을 다

깨워 냈다. 이럴때면 나의 조국은 늘 나에게서 멀기만 하다.

미국 뉴스 밖에는 여진이며 그 정황을 들려 줄 그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방송들에서는 야단들로 뉴스들을 보내고,

또 내 보내고들 야단들이다.


일어나 늘 우리 이방인들은 여권을 챙기고, 이곳 가주가 귀가

닳도록 여러 곳들서 교육 시키는 것들을 서서히 조목 조목 챙겨

한 켠에 두면서,


뉴스를 계속 지켜 보면서, 커피를 타고, 그리고 마시면서, 다음 

준비들로 분주 하는 중, 새하얗게 그렇게들 아침을 맞는다.



하와이며 가주등서, 늘 이렇듯 흔들리는 삶의 위협을 느끼며 사는 

삶이 어쩌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근 왕 짜증, 급 짜증!!


인간의 심리라는게 한번에 왁! 어떤 위협이나 공격을 받는 것보다도,

이렇게 늘 질금 질금, 길게 사람을 위협하고, 힘들고, 짜증 나게

하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에, 


우리는 훨 더 민감하고, 예민해져들 있으며, 더 큰 스트레스들에 

우리는 노출이 되어 있고, 그 압력들을 더 많이 받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



그래서 스토커들이나, 질금 질금 따라 다니면서, 사람 조잘 재잘 

죽여 대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분이 쌓이고, 혈기가 쌓이면, 양같이

양순하던 사람들이, 


골프채로 머리통을 뻑! 소리가 나게, 깨어져 나갈 정도로 후려 갈겨 

버려, 크나큰 상해를 입히는 그런 경우들도 우리는 상담들을 하면서 

가끔들 본다.


불의 고리 미국 서부와 칠레, 대만등을 잇는 선에서 동시에 흔들린,

'지구야 너 왜 자꾸 이러니?' 하는, 빅뱅에 대한 도래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고, 느끼게 하는, 아주 잦은 흔들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아침 방송 뉴스 앵커들의 스튜디오들에서의 반응들이

사뭇 흥미롭다.


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앵커의 빠르고도, 신속한 책상 밑으로 

새앙쥐처럼 잽싸게 뽀로롱 숨는 모습은, 생존에 늘 노출 되어

살아 나온 이들의, 생존 본능의 약삭 빠름과, 현실적인, 진솔한

심리들을 거기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네 명의 백인 앵커들이 나란히 앉아, 뉴스 진행을 

하던 한 방송국은, 마치 우리 나라 선비들이 절대 급해도, 달리지

않던 허세와 거드름처럼들, 무섭고 당황한 건 둘 다 똑 같이

역력한데,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 가지들을 않고, 서로들의 눈치를 보면서,

스튜디오 안의 모든 장비들과 기자재들이 심히 흔들리고, 출렁이는 

사실을, 두려움과 애써 아닌 것 같은 허세들과 거드름으로 그렇게 

때꾸고 앉아들 있다.



계급 사회 유럽 후손들의 가식들 보다는, 노예 되어 팔려 와 

그 생존을 이어 온,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나 우리 평민들, 무수리

계급들이 생존에는 훨 더 진솔하고들, 현실적임을, 보여 주는 한

흥미로운 심리와 행동 반응의 한 지켜봄 이었다.  



이런 큰 일을 한번씩 겪을 때마다, 과학과 자연 현상, 그런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런 흘러감들에 대한 해석은 어떤

조화와 정도를 잘 맟추면서, 이런 상황들을 해석 해야만 하는지를

난 가끔 생각들을 해 본다.




폼페이 최후의 날의 역사적, 양식적 상황들, 소돔과 고모라의 윤리

상황들, 현금의 이 미국이라는 괴물의 성 소수자들을 대한 위헌등의 

그 어떤 단세포적 해석들이나 그런 것으로 반응하고, 대응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의 수준 다른 반응들을 제껴 한 편에 놓고

라도, 우리는 이 역사들 안에서의 일어 나는 현상들, 징조들에 대한

건강하고, 진리에 입각한 바른 해석들을, 


우리 주님 앞 앉으며, 듣고,묻는 그런 성찰의 기회들은, 믿는 이들 

각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부여된 한 숙제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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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제 이번 주 한 주는 정말 무지 무지 바쁠 것 같다.

아직 짐 소포들도 못 쌌고, 못 보내고 그대로 널어져 있고,

또 나머지 갚아야 할 재정들을 일으켜야 하고, 가구들 마지막

최종 정리며, 


이번 한 주는 그야말로 마음만 이렇듯 바쁠게 아니라, 발 바닥에 

불이 나케, 여러 일들로 그야말로 분주히, 부지런히 뛰어야 하는 

한 주다.


수첩에 해결 해야 한 리스트를 작성 하니, 17개 항목 까지들이

정리 되었으니.



하와이에서 이곳으로 건너 올 때도 거의 이랬다.

약 1-2 개월을 이렇듯 분주히 뛰다 바다를 건넜는데,

하물며 멀고도 먼 대륙을 넘는 이 작업은 결코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유럽 대륙에서 캐나다로 이사 할때, 또 소련에서 영국으로

귀가 했을 때도, 늘 이사란 이렇듯, 늘 분주하고, 정신이 통

하나도 없게 늘 바쁘다.



가장 간단 했던 때는 그래도, 한국에서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 때. 난 아무 것도 모르게 용감히 가방 몇 개만 챙겨 훌훌

그렇게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이 이사라는 것이 경륜이 깊어져 가면 갈수록, 쌓인

짐들이며 뭐등 뭐가 그렇게 더들 그렇게나들 복잡한지, 참

인간이 산다는게 도대체 뭐인지를 늘 생각해 보게 된다.



짐을 최소한 간소화 하려 해도, 나는 내 생활권 요소 요소들에

필요한 것들은, 최소 두 세 군데 정도는, 같은 아이템들을 벌려 

놓아야 생활이 영위될 정도로, 내 나름대로의 이상한 원칙들이 

너무나도 늘 많다.


효자 손도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요 두 세 군데에 거기 

늘 갗추어져 있어야, 일이 제대로 손에 잡혀 잘 돌아 가고,


학용품 문구들도 그렇게 두 세군데 정도는 안정히 진을 치고

배치되어 있어야, 공부가 잘 되는 까다로운 학사이니, 삶이 

늘 이렇게 짐들이며, 모든 것들이 다 복잡하고, 많을 수 밖에.



그 와중에 마지막 인사들 하겠다고, 장사진을 친 방문 약속자들

리스트가, 그야말로 시간마다 틈틈히 빼곡히들 스케쥴들 안에

채워져 써 있고들.


난 그 이상한 그림으로 포효하는 한 미술가의 그림을 다시 

한번 내 머리에 그려 본다. 그 화가도, 작품 이름도 모르지만,

그 그림 형상은 내 마음에 너무 선연한, 한 해골 모양의 사람이

머리를 쥐어 잡고, 포효하는 듯한 그림 말이다.


지금 내 마음이 꼭 그런 형국이다.




찿아 보니 노르웨이 표현 주의 화가 에드워드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


"친구 둘과 함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해질녘이었고 나는 약간의 

우울함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멈춰선 나는 죽을 것만같은 피로감으로 난간에 기댔다. 


그리고 핏빛 하늘에 걸친 불타는 듯한 구름과 암청색 도시와 

피오르드에 걸린 칼을 보았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그치지 않는 커다란 비명 소리를 들었다." 


뭉크가 1892년 1월에 남긴 글로 매우 유명하며,화자의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나타낸 작품이라 한다.



난 뭐 그런 절망이나 절규까진 아닐지라도, 정말 스트레스 팍팍 

쌓이는 마지막 한 주임에는 거짓이 없는.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오슬로 국립 박물관을 두 번을 털어간 도둑이, 

"이 허술한 경비를 인해 감사하오' 하는 쪽지를 남기고,

가지고 유유히 사라진 작품으로도 유명 하다 한다.


쯧쯧.

두 번 다 무사히 찿아 왔고.



이번 주엔 택배 회사와 소통이 되어야만 한다.

범양 택배가 가장 저렴 하다는 어제 정보를 한 가구 구매자

에게서 얻고.


난 사실 드림백이라고 하는 큰 이민 가방 형태의 무슨 해운

화물을 사야 하나 했는데, 그게 범양 보다 훨 비싸다고 한다.


이래 병과 고민은 늘 나누어야 약을 발견하는 법인가 보다.


오늘 가주는 88도 까지 올라 가 무지 막지하게 지금 덥고,

난 홧병이 도질 지경이다. 너무 더워서.



한지 창호지를 한 백 장은 사야 할 것 같다.


집이 거의 사람 살지 못 할 폐가 수준이라니.

벽 도배와 바닥 장판 수리를 도착해 시작해야 할 판.



한지 창호지로 벽지 도배를 하면 운치 있을거 같아,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거고, 바닥 장판은 콩물 먹인 노오란 종이 장판으로

아주 한국식으로 우리집을 다시 살려 낼 요량이다.



우리집을 산 나중 주인들이 세운, 한우를 기르던 추한 축사 위로는,

하얀 박꽃을 키워 바가지 박을 길러 내고, 쑤세미를 심어, 노란 꽃의

꿀벌들을 지켜 볼 요량이다.


많은 꽃들을 수 천 송이 정원에 심고, 토방 밑엔 꼭 온갖 색의

휘황찬란한 채송화들로 꽃 밭을 만들고,


흰 봉숭화도 심고, 또 형형 색색의 백일홍도, 과꽃도 심고,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샤스타 데이지도,백 장미도, 해바라기도 

심을 것이다. 


흰 코스모스도, 흰 분꽃도, 흰 나팔꽃도, 난 흰 색 꽃들을

이 세상서 제일 사랑한다.



가는데로 흰 백구 진돗개 강아지와 황구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

나의 식구로 시작을 하고, 닭을 10여 마리 넘게 구입해, 날마다

달걀을 바구니에 담아 내려 한다.


밭 한 마지기와 논 한마지기를 빌려 내 모든 것들을 씨를 뿌리고,

종자들을 심고, 할 일이 약 1년은 끊임 없이 쏟아질 것만 같다.





어릴 적 나는 일본 만화 '캔디'를 보면, 울면은 바보다! 고,

웃어라 캔디야! 하던 그 틀린 매스 미디어의 교육을 잘 이해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아마 많이 울 것이다. 그것이 더 건강 하다는 걸

나는 이젠 잘 익히 알기 때문이다.



오늘 삼춘에게서, 사람이 살지 못 할 거의 폐가 수준이여서,

너무 염려가 된다 하신 편지를 읽고, 오후, 난 부엌에서 문득

밥을 하다, 막 울고 싶은 감정이 밀려 올라옴을 느꼈다.


우리 할머니의 집이 그렇게 버려져 방치 되어 있다는 것도

슬펐고, 우리 집안의 그 소설 같은 가세의 기움도 서러워서

였다.



에드워드 뭉크의 절규는 그래서 내 머릿속을 그다지도 

휑휑 거리며 팽이처럼 돌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이 마당에, 이 시국에, 누굴 원망 한다고 해서, 뭔가가 해결될

일도 아니고, 나에게 남은 일은 용감히, 기쁘게, 힘을 내서 

다시 살아 나 보는, 그 강한 Resilience 만이 강하게 요구 되는

한 시간대이다. 내 삶 안에 있어서.



그 누가 내 삶을 대신 살아 줄 일도 절대 아니며,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들 일에 바쁘고, 그 들은 남은 곧 쉽게, 쉬히 잊어 버린다.


너는 너의 자신의 행동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다.

(You are responsible for your own action)


망할 놈의 세상.

참 살기 쉽질 않다.


그러나 한지 창호지 벽지처럼 그렇게 고아 하니 

한번 살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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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나의 글방은 그 이름을 'Calilife' 에서 

'Calilife....그리고 귀향 그 이후' 로 그 이름표를 바꿔 달게 

될 것이다.


캘리에서의 삶을 마치고 귀향하고선 새롭게 그 곳 생활을 

더 얹어 적어갈 것이기 때문.



내가 왜 이 글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몇 년전 일이 아니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왜 난 이리도 희미한 것일까?


아마도 책 출판을 자꾸 부추기던 몇 출판사들과 교회들의

성화의 독촉들에 못 이겨 아마 쓰기 시작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늘 방에 갖혀 공부 하면서,너무 외로웁고, 격리 되어서

누군가와, 어딘가와 소통하지 않으면, 말들을 토해 내지 않으면,

내가 미치든지, 돌든지 어느 둘 중 하나는 하겠다 싶은, 위기 의식

에서 였기도 했던 것 같다.


아니면 둘 다 가 더 맞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난 그 누군가에게로의 이 세상 이들에게 나의 삶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나의 생각들을 나누어 전해 주면서,

그 위로와 격려들을 마음 안 받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온다.


저마다의 삶이,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다 고유하다 보니,

성실한 몇 인들이 늘 그 글방을 찿아 들어 와, 내가 끄적 거려

놓은 나의 생각들과 삶의 이야기들을 신실히 읽고 나갔고,


난 그들의 참여들에서 인간 사는 온기를 그렇게 느끼면서,

외롭고도, 힘들게 공부해 이 학위들을 따 내고 마치기까지

견딜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방은 나에게 참 큰 한 위로 였고, 격려였고,

많은 기쁨이였고, 치유요, 회복이였다.


인간은 누군가와 소통 한다는 것에서 많은 위로와 격려들을 

그렇게 얻는 것인 것 같다.



나의 삶에는 나에게 모든 걸 가져다 퍼 붓는 말하는 사람들은

수 천, 수 만이다. 그러나 조용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이들은

거의 많지 않다. 


우리 심리 상담사들의 한 외로움이고, 고통이 바로 그것이다. 




늘 남을 평생을 전적으로 들어 주어야만 하는데, 나는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이 세상 그 어느 누구 하나도 결국은 없다는 

그 고적함과 외로움들.


그래서 나는 이 글방이 말 할수 없이 좋은게, 조용히 그렇게 

나의 생각들과 글들을 읽고, 듣고, 나가면서, 고개 끄덕이는 

이들이 그렇게 많이 산재하는 방이기 때문에, 난 언제나 큰 

안정을 여기서 얻는다.



내가 이 세상서 제일 싫어 하는 남성들이 말 많이 하는 남성이듯,

나는 그렇게 조용히 좀 들어 주는 사람들이 배고프고, 못마른 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 글방의 이야기들은 계속 되어질 것이고,

이제 시골 나의 삶에서의 많은 일어 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나는 많이 기대하고 흥분한다.


그건 이 서구 사회에서의 생활관 영 딴판인 한 삶의 방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삶의 장들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에 엄청난 꿈과 소망이

깃들어져 있는 한 사람이다. 지금.



그래서 인생은 또 다시 한번 더 아름다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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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으로 떠나기 꼭 10일 남았다.

많은 수 많은 감정들이 마음 안을 복잡히 오 가고,

오늘 친척 당숙에게서 최종의 편지를 받았다.


한국에 내가 살 내 어릴 적 할머니집 집 상황이며, 

형국이며등 아주 자세한 내용들을.

우리 당숙 내 삼춘은 내 동갑의 국민 학교 동창 삼춘이다.




어릴 적엔 많은 친척들과 별로 교통함이 없이 사시던 할머니

성격상, 너무 차이 나게 잘 사는 우리집 형편상, 더 가난 했던

우리 많은 친척들은 고작 설 명절이나, 그 밖의 집안 대소사

일들 이외엔,


늘 저 분들이 우리 아주 가까운 친척들이라는 사항들만 그냥

알고 지낸 것 같은데, 하긴 내가 그 때 우리 일가 친척들을 다

찿아 다니며 교제하고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들이기도 했지만.




내 친척 삼춘 당숙은 하여튼 아주 조용하고 양순 하던, 얼굴이

그 형이 사관 학교를 갔을 정도로, 면모가 참 반듯한 잘 생긴

얼굴을 가지셨던 동갑내기 삼춘이셨다.


난 우리 부모가 너무 이른 나이 대학생때 결혼을 하시는 통에

너무 일찍 태어나 내 학렬이 아주 낮다.


다 중자 정도 쓰는데 나는 석자인 학렬이니, 동갑내기나 나이 

한참 더 어린 삼춘 당숙들이나 고모들이 내 주면엔 늘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그런 삼춘이 내 걱정을 많이 하시면서, 참으로 마음을 아파 

하시면서 쓰신 것 같은, 편지를 한참을 고심한 흔적이 번연히

보이는 그런 편지를 보내 오셨다.


내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살고, 또 나에 대한 모든 기억은

그 수 백석의 부잣집 외동 딸로 귀하게 금지 옥엽 자라던 그 모습

들만을 기억 하시고들 계실 것이니 이해 할 만하다.



아주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시골에서도 그런 모습으로, 나중

대 도시들을 나와서는 모든 길 가는 사람들이 다 한번쯤은

뒤돌아 보던 고루 거각 우리 집엔, 이 하나 뿐인 딸을 위해,


아버지는 하늘 끝에서 땅까지 짜개지 않는 외국산 통 유리로

이 딸의 방을 가장 크고, 예쁘게 지어, 아들들 셋은 몰라도,

딸만큼은 공주처럼 해서 키워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늘 

가지시고 나를 건사 하셨기, 



우리 일가 친척 모든 분들은 늘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죽고

나서도, 늘 '법 없이도 사는 저 좋은 성품의 우리 아이를 

불쌍해서 어떡 하냐?'고, 


늘 내 셋 남동생들 보다는, 나를 그렇게 많이들 좋아 하시고, 

걱정들을 많이 하시면서, 눈물 바람들을 많이들 해 내셨다.  



그런 나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우리 일가 친척

몇 분들 중에, 우리 재 너머 같은 마을에 사시던 작은 집중에

하나인 우리 증조 할아버지의 형제이신 작은 집의 당숙 삼춘

이시다.




어릴 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의 조카이었지만, 그래도

이 동갑 내기 어린 시절 같은 국민 학교 친구란 사실은 늘 우리를

그 어느 누구 친척보다 더 끈끈히 우리를 이어 주는 그런 우정이

우리들 사이엔 늘 존재하기 더 사랑 스러운 그런 당숙 삼춘이다.



염려를 많이 하시며, 마음 아파해 오셔서, 내가 마사이 부족

소똥 집에서도 오랜 세월 살았고, 시베리아 눈 구덩이 속에서도

아주 잘 개척해 야무지고 당차게 잘 산 사람이라고, 염려를

제발 놓으시라고 답장을 써 보내 드렸다.




이제 다시 나의 그 평생을 한 다른 형태의 한 개척의 삶이

그렇게 내 눈 앞에 당장 놓인 것이다.


아자 아자 힘을 내서, 야무지고 당차게 잘 살아 내,

내 동갑 내기 우리 당숙, 우리 삼춘을 놀라키게 해 드려야지.




수 많은 대륙들과 나라들에 난 언제나 내가 먼저 들어 가

개척해, 수 많은 사람들을 나라들마다에서 들어 오게 하던,


그 수 많은 나라들의, 대륙들의 장소들에 새 길을 내어

닦아, 그 나머지 따라 들어 오는 이들이 들어 와 일 할수 

있게 장소들을 마련한, 그리고 그 길을 낸, 난 개척의

선구자요, 대가가 아니던가?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히 강하게 부어 놓으신 한 은사이고 

달란트 중 하나인, 이 개척이라는 가슴 뛰는 상황들이, 다시

내 삶 앞에 이렇게 다시 전개된 것이다.




많은 지난 세월 수 많은 민족들과 나라들이, 지인들이 나의

이 야무진 개척 정신을 통해, 그 속에서 우리 주님의 강함과

역량을 늘 여실히 엿보고, 그 내 삶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잘 보고, 그 분께 영광과 찬송을 그렇게 늘 돌려 드렸듯이.





그렇게 난 아주 잘 살 것이고, 야무지고 당차게 주의 딸로서

그 분의 능력과 나의 삶에 대한 신뢰를 잘 이루어 드리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또 다시 한번 개척해 낼 것이다.


삶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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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이른 나이 일찌기 타계하신 한 수녀님을 자주 생각한다.

그 분은 어느 날 나에게 이야기 했다.


 아주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수녀복을 입고 가 앉아 있는데,

참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 분위기 더라는, 한 들으며 마음 아팠던

코멘트였다. 그 당시엔.


그리고 그 분은 우리 주님을 뵈러, 아주 이른 나이에 그렇게 

병으로 타계 하시면서, 그 수도원을 영원히 떠나셨다.

영원히 돌아 오시지 못 할 아주 먼 길을 그렇게. 



나도 평생을 얘들을 가르치고, 상담들을 해 주고 하다 보니,

늘 결혼 초대가 잦다.


오래 나에게 상담을 받은, 아주 가슴과 마음이 따스히 살아 있는,

참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제자 하나가, 어느 겨울 철, 남자 친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 소개 해, 많이 축복해 주고, 격려해 주었었다.


이번 5월 걔들이 결혼을 하는데, 나를 자신의 엄마처럼 여긴다는

그 제자는, 이 나의 이른 귀향으로 그 결혼식의 불참이 너무나도

지금 슬프고도 또 슬프다.


6월엔 평소 정말 친 자녀처럼 따르던 아이의 6월 대학원 석사

학위 졸업도 있어, 이대로 다 그 필요들을 만나 주려면, 난 영원히

내 고향에 돌아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혼식 참석은 특히 그 수녀의 고백처럼, 나도 참 애매 모호하고

맹숭 맹숭한 한 참석이다. 결혼 안 한 나이든 스승이, 어린 제자들

결혼식에 가 어울리기가, 영 늘 나는 별 마음 편하지가 않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나라의 그 특이한 내가 평생 가야 절대 잘 이해가

어려울, 노래방이라는 것의 존재나 그런 것과 나에겐 마찬 가지로,

이질감 크게 느껴지고, 생소한 그런 한 장들이다.


그 우리 나라의 뒤틀리고, 부풀려진 술 문화나, 나에겐 그런 영원히

나와는 화해 못 할, 몇 장들이 한국에는 상당히들 있다.



술에, 담배에, 계집질들에 그런 곳에 노출된 남성들이 나는 천길

만길 저 낭떠러지 밖의, 나의 생활권 안에 영원히 못 들어 올

그런 남성관들이듯, 


우리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나라의 많은 영역의 문화

들에 영원한 외계인이다. 별에서 온 그대가 바로 나.


내 후배들은 늘 웃으며들 그렇게 농지꺼리들을 해 댄다.

우리 언니의 남성은 이 땅엔 절대, 전혀 존재 하지 못 하고, 

저 하늘에만 영원히 계시고 존재 하실수 있는 그 어떤 분이

시라고.


술 냄새에 우수수, 담배 냄새에 우수수, 성 중독들에 우수수,

그렇게 나의 많은 남성들은, 추풍 낙엽식으로 우수수들 그 자격

들에서 미달로 떨어져, 이 세상, 이 땅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대들인 것이다.



거기에다 더 한 술 더 떠, 그 들은 지도력의 카리스마가 있어,

날 잘 리드해 주어야 하는, 영적 성숙이 절대 없으면 안되고,

그 영적 성숙은 절대 나보다 더 위여야 하고, 그 들은 온유하고

유해야 하는,

 

그런 별에서나 옴듯한 나를 비웃는 우리 후배들의 농지꺼리

들인 것이다.


그래 우쩌라고 나한테.

난 그런 별 기준도 못 가지냐?

그게 어느 위성 별 그대 수준이면, 그 별에 가서 만나면 되지 뭐.



그런데 그런 남성들이 세상엔 종종들 있다.


그래서 내가 늘 먼저 사랑에 빠지곤 했는데, 나중 정체를 드러내

보면, 그 사람들은 거의 다 카사 노바 아니면 바람둥이들.


여자들을 여기 저기서들 크게 조용히, 은밀하게 작살들을 내는

우라질 망한들이였다. 늘.


그래 더 이상은 기대도, 뭐도 없는.

내가 좋아 하면 다 위험 하더라는 자포 자기에 난 이르른 

한 이상한 별에서 온 그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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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은 지금 학기말 기간.

지나는 학생들마다의 얼굴색들이 다 노랗게 들 떠 있는 기간.


상담하면 미국이고, 미국의 할리우드처럼 부자들이 다 모여 사는

켈리는 문제가 많고도 많아, 동부보다 상담이 훨 더 발달한게 

이 서부의 한 특이한 특색이다.



그러다 보니 하바드나, 서울대의 일반과들은 끼워 주지도 않는

의대나 법대들의 위상 만큼이나, 이 유명 심리 대학원의 자고함은

그 하늘을 찌르고, 학생들은 그 위상 때문 죽어 나가게 정말

공부들 많이 해야 한다.


얼굴들이 누렇게들 저리도 뜨도록, 그 들은 법전 크기 같은 전공

서적들을 몇 주, 몇 달을 밤을 새워 섭렵해내 가야 좋은 페이퍼들을

잘 써 내, 이 유명하다는 자고한 학교의 학위를 그때서야 받아 낼수

있는 것.



이 미국의 몇 학교들의 3개월 Quarter 제 학제는, 6개월 Semester

제 학제보다 훨 더 대학원생들을 죽여 주는 정말 괴물 같은 학제.


3개월 그 하늘을 찌르는 비싸고도 비싼, 무시 무시한 양의 학비 막

갚고, 또 돌아 서면 또 새 다른 학기가 다가 와 돈을 갈취들을 해

가고, 질 높고, 수준 있는 논문들을 요구해 댄다.



심리 상담도 이젠 독일의 내 대학 교수가, 두고 봐라 곧 학문도

전부 다 이제 돈이 있는 미국으로 넘어 가게 될 것이다 라고 30년

전 통탄 하시며 말씀 하셨듯이, 


이젠 이 심리 상담은 30년 전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 북미를 

유럽의 학문들은 따라 오지들을 못한다.


그런데 그런 질들이 따르기 까지에는, 정말 공부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그런 학제들이다.  



학기말에는 늘 우린 머리가 백짓장처럼들 새하얘져서들 캠퍼스며,

강의실들을 휘영청 거리고들 돌아 다닌다.


새하얗게 밤을 새기가 일쑤고, 철학 박사 학위(Ph.D) 하나 

따 내기 위해서는, 우린 늘 Ph.D 는 'Permanent Head Damage' 

라고 그 쓸쓸함 속들 농담들을 하게, 


정말 우리 머리들은 그야말로 훼손을 입을 정도로들 늘 공부들을 

해 내 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고하고, 어지간한 수준이나 질들은 별 고개들을

돌려 쳐다 보지도 않을만큼들, 그렇게 심리 상담이나 테라피 치료

임상 분야들에 있어서는, 코들을 뻑! 높게 세우고들 다닌다는.


이번 주, 다음 학기가 지나 가면 이제 그 머리칼 쥐어 뜯던 광란의

두 주를 보낸 후, 손톱 메니큐어 칠 하기등, 스트레스 해소 셋션들이

벽들에 자욱히 붙고, 



우린 그렇게 저렇게 그 긴 세월의 학위 취득들을 이루어 나가, 

결국은 이 세계적으로 유명 하다는, 이 대학원 출신의 심리 치료 

박사들이 결국은 다들 그렇게들 된다.


무엇을 위한 그 희생들이고, 무엇을 위한 결국은 그 노력들인가를

나는 늘 이 대학원의 학기말 기간 한참씩을 유리창을 내다 보며

그렇게 한참들을 생각들을 해 본다.




이제 6월이면 졸업 철이고, 지금은 졸업 논문들이 여기 저기서들

그동안 그 수 많은 학기들 동안 집약된 모든 지식들을 총 망라해

정리들 되어, 나의 목소리들이 각기들 고유하게 정리들 되고 있는

한 철이다.


이 세상의 많은 영역들에 대해, 많은 책임이 따르는, 그런 부과들이

그 들을 기다리고 있는 한 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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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일본인들이 무슨 작은 가마 같은 것 안에, 신주 단진지 뭔지를

담아, 이고 메고, 한 마을 언덕들을 오르고, 내리고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 어린 시절 고등 학교 때 카톨릭 학교에서 5월이면 

늘 행하던 성모 성월이라고 이름 했던 그 행사가 생각이 

나네.

 


그 한달 전 우리는 늘 영적 꽃다발이라는 묵상하고, 피정하고

하는, 주님의 임재 안 조용히 앉는, 우리 개신교가 최근에 많이

잊어 버린 그런 영성의 시간을 자주 가졌었다.

 

그리고 한달 뒤 벌어지는 그 성모 성월이라는 행사는 참

어린 나였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 그런 행사였다.

어쩌면 내가 유서 깊은 개신교 기독 정신이 역사를 거듭해

아주 빛나던 중학교를 졸업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운동장 가운데 늘 서 있던 그 마리아 상을 끄집어

내려 들쳐 메고, 전교생이 촛불을 들고 둘러 서 있고,

성모송등 많은,

 

 ..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등의 나중 신학을 공부해

보니, 라틴 키리에 알리에의 긍휼 암구등에서 파생된 그런

말들의 반복을,

 

밑도 끝도 없이 수 없이 해 가며, 학교 마당 운동장을 돌던

그 의식은 내 비위에 짱! 맞지 않았다.

 


서로 더 예쁜 미사보 레이스 무늬를 뒤집어 쓰려 잘 고르던

미사 참석등은, 그래도 그냥 어린 소녀들 감성으로 잘 맞아

떨어 졌지만, 나의 내면엔 개신교의 정신과 믿음들이 더

그때도 충만 했던 것 같다.

 

이것이 은행알 뺑뺑이 돌려, 우리의 의지완 상관 없이,

유명 학군 모조리 말살 시키고, 폐지해 평준화를 이 땅에

뿌리 박겠다는 기치 아래 자행된, 우리 7080 세대들의

교육의 피해자된 모냥새들이였다.

 


내가 다닐 때는 교장 수녀님이 아니셨던, 제일 교포 출신의

수녀님이 나중, 이태리 밀라노에서 오신 나이 드신 교장 수녀님이

돌아 가신 후, 결국 후임 교장이 되셨다, 나중 우연히 아프리카에서

구교와 개신교의 제자와 스승이 케냐 나이로비에서 만났다.

 

수 많은 영화에나 나옴직한 각양 각색 다른 나라 수녀들이

내가 자신들이 하는 같은 일을 개신교 신자로 하는 걸, 듣고,

보고는,

 

그 수 많은 봉고 차 안에 꽉 찼던 수녀들 무더기 덩어리들은

할렐루야!를 외치고, 경이로운 많은 함성들로 왁자 지껄 했지만,

내가 알아 들을수 있던 유일한 한 단어는, 그 할렐루야!! 밖이었다.

 

그래 난,

아! 이 많은 영화에나 나옴직한 우스운 이 신 문물 안에서의,

희귀한 수녀 군집들이,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걸, 하나님께

찬양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알아 채고선, 그래도

기분 삼삼 짱! 이었다.

 

그 아프리카 하고도 나이로비 한 중앙에서, 난데 없이도.

 


그 후 그 교장 수녀님이 수도회에 우리 학생 제자 하나가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개신교 신자로 우리 같은 일을 하고

있더라! 하는 보고를 하셨는지,

 

정말 한국말 억양에 일본인 억양이 늘 그득하던 음악 수녀님이

청동 오리 인형 한 쌍을 우편물에 보내시면서, 많은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셨다.

 

왜 아주 작은 청동 오리 나무 목각 인형 한 쌍을 보냈는지는,

나도 몰라요! 고 너도 몰라요! 인데, 그리고 단 한번도 잘 생각

안 해 봤는데 오늘날까지,

 


아마 늘 우리 학교 무더기 수녀님들은 자신들이 예수와 결혼한

신부들이라고, 어린 우리들에게 소개해, 그리고 그 결혼 반지들도

늘 의기 양양히 보여 주셔서들,

 

늘 아주 어린 우리들을 참으로 의아케 했고, 우린 큰 두 눈들을

말똥 말똥히들 뜨고, 깜빡이면서, 이해 못 해들 했는데,


정말 우리가 어리긴 무척 어렸던게, 난 한때 우리 주님이 그럼

일부 다처제 주의자? 하는 불경스런 의문도 서슴치 않고, 어느

순간은 했음은, 


내가 다 나온 그 학교들 교목들이나 신부님이 그 교리를 잘 

정확히 가르쳐 주지 않은 잘못도.

 

그 재일 교포  음악 수녀님은 아마도 나도 그 싱글로 섬기는 

우리 주님과 청동 오리 원앙 같이 사이 좋게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그렇게 보내 오신 것 아닌가 싶네.

 

지금 생각 하니.



나는 또 이런 원앙은 결혼을 상징하는 것이기, 혹 우리 

수녀님이 기도해 보시니, 내가 그때 결혼할 것 같은 영적

예감이 드셔서 보내 오셨나 싶어, 내심 그런 엉뚱한 기대도

안했다면 거짓말이고, 뻥일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 사람이라고 생긴 것의 자취는, 내 곁에 얼씬 

방귀도 단 한 녀석도 그렇게 안 하고, 무심한 세월은 하 수상

하게 그렇게 무심히 흘러만 가고, 또 흘러만 가고 말았으니.

 


하긴 감사 하게도 나는 그땐 우리 수녀님의 기대처럼, 우리

주님과 많이 티격 태격 다투지 않고, 늘 정말 그 청동 오리들

처럼 아주 사이 좋고, 행복하게 잘 살았던 것 같다.

 

그 수녀님들의 사고 대로라면, 남편도 없이, 그 전신주

바람 쒱쒱 갈라지는 소리가 9개월 눈구덩이 속,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내 가슴을 함께 가르던, 그 외로움과 고립들 속,

 

뭔 주님과 싸울 구실이라도 어디 있었겠는가?

 

그 수녀님의 기대처럼, 난 금술 좋은 한 쌍의 청동 오리처럼,

우리 주님을 나의 남편처럼, 온통 완전히 기댈수 밖에 없는,

그런 낭군 같은 존재로 그렇게 모시고 살았던 것 같다.

 

너무 무서우닌까,

너무 외로우닌까.

 


그런데 정작 더 편한 문명 세계에 나와서는, 우리 주님과

난 많이 싸우고, 다투고, 미워하고, 그러고 자주 살았던 것

같다.

 

가장 큰 한 이유는, 이 세상 사는 부부들처럼 정말, 늘 생계가

위협 받는, 생존의 Survival Game들을 날이면 날마다,

수 십년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을 때, 난 주님이 제일 밉고,

늘 힘들었다.

 

그리고 자주 무능력하고, 우습게 보였다.

그래서 주님은 나한테 많은 무시들을 아주 자주

당하셔야만 했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자주 우리 주님께 미안하고, 늘 마음이

많이 아프다.

많이 잘 해 드리지 못 해서, 너무 늘 못되게들 그 분 앞에서

자주 굴어서.

그래 회개하고, 용서를 그 분께 자주 구한다.

 


우리 수녀님의 청동 오리 목각 인형은 이제 하와이 짐 속에

쑤셔 박혀져 내 모습 앞에서, 그 형색을 잃은지 아주도 아주

오래,

 

난 문득 이렇게 우리 주님께 잘 해야 겠다는, 새로운 각오

들을 요즘 자주 해 보는 것이다.

 

탕자(The Prodigal Son)가 확실히 집으로 돌아 가는

( Home-Coming) 과정은 과정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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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위구르 족의 독립 요구를 위한 칼 부림과 테러 행위

들이 두 번째로 자행 되는 요즘, 이 민족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아,


중보해 줄 수도 없는 난, 요즘 우리 주변의 몇 나라들을 혼자

공부해 본다. 중앙 아시아 투르크계 민족인 위구르인들에 

대해서도.

 

독일에서 공부 할 때 많은 투르크족 계의 청년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가 늘 있었다.


이들은 정말 그 정신력들이 무지 강한 한 민족이다.


그 수 많은 나라들의 압박과 핍박 속에서도, 그 투쟁

정신으로 집시들처럼 온 땅에 편만히 퍼진 종족이다.


그리고 그 들은 자신들이 그렇게도 질기고 강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투르크계라면 늘 많은 실크 로드 비단길의 상인 자손들이 

그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는, 마치 북 아프리카 사막의 

카멜 낙타를 타고, 상권을 휘어 잡던 한 종족인, 



손님들을 아주 잘 환대하는 전통을 가진, 베두인 족들과 

그 질김과 강함, 투쟁력들이 아주 유사하다.


투르크인들은 그렇게 터키에서 중국에 이르는 긴 길을

역사 안 거치며 산다. 내가 시베리아에서 섬긴 야쿠트 

소수 인종도 이들 투르크 족들의 후예들에 속한다.


지속적인 국가 체제나 정치적 실체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투르크계 종족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런 장구한 

역사와 국경들을 길고도 길게 넘나든 투르크 족이니만큼, 


그러다 보니, 상처가 엄청 많은 그런 민족이다.



터키와 우즈벡, 카쟉으로 그 인구수가 분류 되어지는 

투르크족은, 작게는 시베리아 야쿠트 족으로 분류 되기까지 

정말 방대한 영역에 걸쳐 펼쳐져 있는 한 인종의 집합군이다.


위구르족은 중국 신장 지역부터, 중앙 아시아 지역에 펼쳐

현금에는 퍼져 있는 한 민족이다.



독일에서 투르크계 한 청년의 그 아픔들을 고스란히 다 듣는

한 강의 셋션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강하게 여운으로, 내 귓전에

돌고 있으니. 


중앙 아시아인들처럼 가무 잡잡 작은 체구의 외양부터, 독일에서

내가 만난 청년처럼 흰 백인 피부에, 새까만 검은 머릿결을 가진

모습등, 그 역사의 긴 지형학적인 공간을 움직이며 산 것만큼,

외양도 아주 다양하다.




그 들의 생리는 거의 어쩌면 전 세계를 떠돌며, 그 힘을 전 세계에

널리 펼친 집시들과도 아주 흡사하다. 유목민들의 한 문화 유산

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집시들과는 다르게 아주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종족인 것 

같아 보이지만, 유목민 자손들은 그리 모질고, 악하지 않는게 늘 

종족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종교의 가르침들은, 그들의 타고난 천성들을 뛰어 넘어 

버리는 모순이 늘 거기들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살던 근경 호수 바이칼과 그 아래 이슬람 지국들인 알타이

에서 유래된 부족이지만, 나중 투르크 족에 함락 되어, 이 강하고

용맹하고, 도전적인 투르크 족 문화가 더 강해지게 그 들의 문화 

안 정착되는.


마니교에서 라마교로 전환되는 와중에도, 이들은 서쪽 투르크

족들과 같이 이슬람에 영입되지 않는 긴 역사를 보낸다.


겨울 수도와 여름 수도를 두고, 몽골의 징키스칸에게 소속 되는 

세월도 보내고, 나중 불교 국가로 그 위용을 떨치기도 한다.

후에 술탄에 의해 이슬람 국가로 개종 되고, 학문과 문학의 큰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한 때는,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이라크의 바그다드, 인도의 델리, 시리아, 앙고라의 오스만 

투르크를 정복 하기도 한다.




그 역사의 장구한 세월만큼이나 근경 국가들과 문화나 종교,

역사도 너무 많이 섞여 있어, 진정한 위구르인들의 특성을

딱히 꼬집어 내기에는, 이다지도 복잡하고도 다단한, 

한 문화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이슬람 국가들의 모슬렘인들의 문화 특성

으로 나타나, 외부인들에게 보여 지는 그런 형국이다.


나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 어떤 나라나 민족들을 대해서도,

그 들의 문화와 그 들의 정체성들을 주 안에서 편견 없이 늘 보며, 

그 들을 잘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이 늘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한 없이 멀어진 무슬림 문화는, 늘 나에겐 많이 공부하고,

그 들을 잘 이해 하려는 노력을 더 힘 써야 하는 한 멀고도,

버거운 한 족속들이다. 요즘은.




소련 근처에 잡혀 있던 많은 위성 국가들이 독립한 마당 들어간

소련에서, 수 많은 위성 작은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우린 만나면서,

우리 기관은, 그 들의 70년 공산 치하에서 형성된 그릇된 세계관

들과 가치관들을, 


그 나라들의 CEO 들을 먼저, 기독적 사고와 가치관들로 훈련 

시키는데 많은 처음의 일들, 몇 년을 그렇게 소비 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요즘은 일본에 대해서도 많이 홀로 열심히 공부해 본다.

책 서적, 매스 미디어, 모든 가능한 재료들을 다 동원해 

공부해 보는 과정.


요즘 생활이, 거의 백번 그물질 해 한 마리가 잡히면 아주 큰 

수확이라는 한 선배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이 상황들이.

 

기약 없이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사람들을 마냥 왼 종일 나의 삶을 열어 놓고,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삶에 대한 지침과 많은 소란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내 내면을 달음박질들을 해 대면서, 나를 괴롭히고,

성가시게들 한다.

 

그러다 문득 난데없는 시간과 장소들에서 그 기별들을

전해 올라치면, 나는 또 다시 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지겨운 요즘을 

그렇게 그냥 살고 있다.

 

모든게 다 성가시고, 귀찮고, 모든게 다 시들하고,

모든 이들이 다 별로인 요즘 같은 마음이고, 감정들

이라면


나는 아예 이젠 세상을 마주 대하고 싶지 않는 그런 

구역질들이 내 마음 안서 자주 고여들 올라 온다.

 


나는 요즘 우리 주변서 심술 부리고, 어거지 잘 쓰는

일본 이라는 한 나라의, 그런 행위들이 나오기까지의,

그 들의 문화등을 지켜 보면서,

 

어디가 아프고 다친, 상한 아이들일까를 한번 유심히

지켜 보며, 고려해 보려는, 한 심리학적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켜 보고 있다.

 


NHK 국제 방송등을 보노라면 그 들이 열심히들

그 들의 문화의 한 대표적인 것들인, 회 치는 법,

칼이나 도시락 문화, 사꾸라 벛찌꽃들이 만발한

풍경의 관광 산업들과, 온천등을 세계로 소개 할 때,

 

우리 한국은 우리만의 요즘 기름 부으신 은사들인,

한류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예술들로 세계로

그 독창성과 고유성등을 서로들 다르게들 자랑해

내 보내고들 있다.

 


그 들의 한 문제는 개인들의 유일성을 집단이라는

무더기로 늘 묶고, 획일화 시켜 버리려는, 개인 주체성의 

말살의 괴변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나는 생각해 본다.

 

자기 자신의 귀함과 고유성을, 집단을 향해 일찌기 포기하고 

내려 놔 버린 이들은, 개인들 하나 하나로 보면, 건강한 정체성

들이 무지 결여 되어들 있다.

 

수치로 내면들이 얼룩져져들 있는 이 민족은,

그 들이 함께 뭉쳐 군중일 때만, 그 존재의 힘과

의미들을 그렇게 찿아 내는 한 민족인 것 같다.

 

혼자 튀면 많이 정죄 되는 이들은, 전체의 안녕들을

위해, 내 자신들 안의 꿈과 소망들을 그렇게 내리

누르면서, 목소리 없는 자들로,

 

거짓 쎈 척 하는 그 밖의 그림들 안에는, 내면이 무서워

떠는 자들로, 그렇게 그 들의 삶을 괴리로, 모순으로들

살아 나가는 것들 같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푸석하고, 건조해 질대로 건조해 지고,

남성들은 그런 외식에, 여성들은 닥수구레하니 고개 숙이고들

있지만, 내면엔 독함이 소용 돌이 치는, 그런 나라가 바로,

이 일본 인 것 같다.

 

지진과 해일, 방사능의 방류를 딛고, 그 상황을 다시 이번 악으로

버티면서, 그 들은 이번 엄청난 경상 수지 적자로, 그들의 경제를 

다시 끌어 올리고 있다.

 

아랍의 상권들의 모삭 같은 그런 상인들의 모사가 강하게

흐르는 장사치들 멘탈리티 문화가, 바로 이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무사들이며, 갱들 등의 겉의 용맹을 애써 위장해 보고 싶은 

이들은, 자기 최면들에 걸린 자들이다.

 

내면의 약함을 겉의 강한 척으로 애써 위장하고 덮어 보려는

오기들이고, 간교함들이다.

 

그 들은 장사치들에 더 가깝지, 결코 용맹이나 바름의 무사

들과는 아주 더 거리가 먼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으면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한 내면이 많이 무너진,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진 한 민족.

 

속이 떨고 무서운만큼, 밖으론 더 강한 척 온갖 오기며

강짜들을 퍼 부어 대는, 역기능 문화 안의 한 어거지

나약한 강짜 부리는 소년의 모습들을 그 들은 하고,

 

그렇게 오늘도 역사 안, 그런 모습으로들 오만과 어거지

로들 서 있는 것이다.

 



 위구르며 유크레인, 일본, 중국, 북한, 네팔, 중동등 함께

기도 하면서, 주님이 열방을 지으실 때 가지신, 그 기본 

모토가 잘 정립 될수 있기를, 중보하는 마음이다.


위구르에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끼치시는 평화가, 그 나라를 덮기를, 기도해 

보는 아침이다.


폭력과 섹스는 모든 이슬람 교리의 그 기저에 늘 크게 깔려

있다. 그 정사와 권세를 대해 서서도 우리는 기도하고, 중보

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견고히

하고, 굳건히 해 보면서.


열방들과 잃어 버린 영혼들을 향해, 민망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려 우신, 우리 주님의 그 열방을 향한 마음을, 

잊지 말고 잘  간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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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땐 이렇게 문득 글발이 사무 치는 때가 있다.

무언가를 막 써야 내 감정 게이지가 그 때야 정상으로 돌아 가는

듯한 어떤 시간들.


이제 두 동생에게 최종 나의 귀국을 알려 줄 수 있는 기쁜 시간이

이렇게 되었고, 나는 우리 두 남은 남 동생들의 마음 안 편안함을

위해 우리 주님께 기도해 준다.


누나가 31년만 돌아 오는데, 아무 것도 못 해 주어서, 마음이 아플

내 동생들에 대한, 마음 안의 불편함이 없는 상태의 부탁을 우리 

주님께.


많은 필요들이 난무하는 사람들이 어언 벌써 그렇게들, 나의 삶들을

기웃 거려 대고, 나는 애써 그런 필요들의 만나줌들을 자제하고,

천천히 느리게 느끼고, 걸으면서, 그렇게 나의 삶의 정리들을 단호히

하고 있는 한 철인 것 같다.



우리 믿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은, 케세라 세라가 아닌,

맡기는 삶이고, 그 분께 던지는 삶임을 나는 안다.


그래 나는 나의 삶의 끝자락은 그렇게 나의 삶을 더 지극히 그 분께

맡기고, 던지는 삶을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아주 실속 있고, 알갱이 있게, 진정으로

그 분께 한번 전적으로 이젠 의지해 보는 삶.



그동안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수한 나를 지난 35년간 보호하고,키운

큰 조직과 기구가 나의 삶 안 늘 버티고 앉아, 나를 안심들을 시켰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과 믿음의 권속들의 온정들과 가슴들, 마음

들이, 나를 무척이나 풍요롭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늘 사랑들을 해

주었었다.


유명하고, 귀하고, 믿음직스러운 주의 사람으로 그렇게 이름 불러 

주고, 늘 띄워 주면서, 나를 격려 시키고, 위로 하면서, 그렇게 키워

준 것.



그러나 그런 것들이 너무 내 삶 주변 안 많다 보니, 나는 많은 상황

들 속, 늘 우리 주님을 많이 그 들보다, 더 뒤 그늘에 많이 세워 두고,

팽개쳐 두었었던 것 같다.


외롭게 해 드리고, 아프게 해 드린 우리 주님께 대한 난데 없는

한 효도의 삶은 결국은, 그 분께 나를 온전히 다시 맡기고, 나를

드리고, 던지고, 거기에 빠지는 그 동행이고, 함께 감의 진정한 

한 그림의 삶일 것이라는 철이 이젠 서서히 들어 오는 것이다.



조직도, 기구도,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아닌, 그 분과의 관계

(Relationship), 그리고 그 안에서의 동행과 함께 함.

나의 그 분께 100% 폭 빠졌던 처음 사랑으로 다시 회복해

들어 가는 길은, 나의 영적 귀향의 삶이다.


나는 그렇게 너덜 너덜 누더기를 걸친, 삐딱선을 타도 너무 많이 

탄, 한 방황하는 탕자의 모습으로, 남루한 누더기를 걸치고, 그런

아버지께로 다시 돌아 오는 작업을 이제 다시 해 본다.



내가 그동안 그래서 하나님 일을 안 했냐?

아니.


그 어느 누구 보다도 더 많이 잘 했고, 그 어느 누구 보다도

그 들이 영웅을 만들고, 전설들을 만들어 낼 정도로, 난 전 세계를

다 누비면서, 대륙마다들, 나라마다들, 


젊은 청년 지도자들을 키워 냈고, 소위 성공하고 또 성공한, 세상이 

말하는 무시 무시한 그런 일들을 다 쳐 낸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더 무섭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이나,

이 세상 모든 믿음의 권속들의 기대에 맞아 떨어진, 그런 실적들

이나 프로젝트의 성공들의 이야기들 속, 현실의 속들에는, 


많은 경우들은, 우리 주님은 그 뒷전에서 나의 따뜻한 가슴과 

사랑이 별 없이, 거기 춥게 떨고 뒤에 서 계셨음을, 나는 나 혼자만 

처절히 아는 한 사항으로 잘 알고, 진단하고들 있다.



우리는 이렇듯 하나님 일들을 번듯히 잘 해 내도, 거기 많은

경우들에는 하나님이 빠지실 수도 있는 것이, 이 하나님 일하는 

사역이라는 것을, 


나는 그 알량 하다는 세계적인 명성의, 이름의 나의 조직과 

기구를 통해, 그리고 그 일원인 나의 삶과 사역을 통해,적나라

하니 경험하고, 느끼고, 보았다.



그래 이제 그 조직과 기구를 떠나서, 순수히 이름 없이 우리 

주님과만 한번 교제해 보면서, 나의 처음 사랑을 그렇게 되 

찿아,

 

그 분의 마음을 춥지 않게, 훈훈하게 해 드리는 진정한 삶을

이젠 그 분께 좀 안겨 드리고 싶은 욕심이, 나는 이렇게 나의

삶의 한 끝 자락, 그렇게 들어 오는 것이다.



나의 불평과 불만, 욕, 저주, 원망, 무 능력하고 무 책임한

나의 영의 아빠에 대한 나의 반항을, 못 됨을, 심통들을 이젠 

좀 거두고, 


처음 사랑의 때처럼, 함께 이야기 하고, 들려 드리고, 기쁘게

꺄르륵 웃고, 뛰어 노는, 그의 딸로, 나는 다시 돌아 가고 싶은

것이다.



그 아버지는 낭루에 올라 가, 그렇게 하나님 일이라는 것을

하다가 ,누더기를 걸치고 돌아 오는 한 탕자의 귀환을, 그렇게

멀리 서 지켜 보시다가,


너무 반가워 맨발로 뛰쳐 달려 나오시는, 나의 아버지이신 

것이다. 자색 옷을 준비 하시고, 어린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여시는, 그 좋은 아빠로, 나의 삶을 준비 하시는, 



그 아버지의 용서 앞에 나는 그냥 거기 있는 존재만으로 많이 

빛나는.


일이 아닌, 무언가를 해 드려서 가 아닌,


그 분과 그냥 그렇게 놀고, 교제하고, 동행하는 삶의 이야기가 

거기 그렇게 기다리는 그런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름답고, 궁극의 한 되어 져야 할,

한 아름다운 삶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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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초 저녘 잠이 많아 진다고 어릴 적 들은 것 같다.


어제 나를 많은 사람들이 찿아 왔는데, 그 중 중국에서 15년을

일하다 돌아온 한 후배를, 깊이 위로해 줄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많은 눈물을 흘리고, 이 빛 좋은 개 살구 같은 나의 인생의

경륜은, 늘 그런 어린 얘들을 감격 시키는지,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우스운 꼴도 걔는 고백 

했다.


그러면서 듣게 된 아주 기~이분 좋은 말! 사랑해 !!가 아니고,

나를 40살쯤으로 봤다며, 내가 58년 개띠 56살이라고 하자,

놀라 뒤로 지지러졌다.


서양인들이야 우리를 보통 10살 아래로 늘 보지만, 한국인이

이젠 이렇게 보니 참 신기했다. 젊은 얘들과만 평생을 캠퍼스

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그렇듯 철 없이 나를 잊은 삶들만을 평생을 영위 하다 보니, 

옷 입는 것이나, 모든 외모들은 그렇게 어리게들 늘 본다.



어느 기관에서 시베리아로 파송된 한 여자 얘를 베테랑인

나에게 좀 호스팅 해 주라고 어느 기관에서 부탁을 해 와, 

공항을 나갔는데, 


그 쪼끄만 여자 계집얘가 나를 못 찿고 너무 오래 걸려, 

맹 추위 눈 구덩이 속, 바들 바들 떨며 한 저녘을 그렇게 

허송 세월 기다렸다.


나중 한 말.


전 아주 나이 많으신 아주 늙으신 분만을 찿고 있었는데, 

이렇게 젊으실 줄 전혀 100% 꿈에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Well....!!


울화통이 치미는 속, 그래도 그게 좀 위로가 되었던지, 아니었던지,

나의 기억은 더 이상 그때의 나의 감정을 다시 찿아 내지를 못한다.



늘 평생 10살은, 20살은 더 족히 어리게 보는 세상 사람들의

띄워줌들 속, 난 늘 내가 그처럼 어리고, 젊은 것으로 늘 착각

들을 하고는 사는 것 같다.


좋게 평하면 그렇고, 쪼아 말하면, 철이 아직 안 든 것일 게지.



한 고마운 어린 얘가 지의 어려운 형편을 마다하고, 어제 내

귀향 비행기표를 사 주었다.

그래 난 정말 이달 27일 이곳을 이젠 바야흐로 정말 떠나게

된다.


어젯밤 그런 흥분 속, 나이 들어 초 저녘에 이르게 자는, 그 싫고

부정하고 싶은 한 세월의 자취는, 늘 그렇게 떨어 내지를 못하고, 

늦은 초 저녘 잠이 들어 자다, 이른 새벽 문득 잠이 깨어, 여러 

시간을 커피를 마시며 앉아, 여러 상념에 잠겼다.


그러다 잠이 늦은 아침 깨도록, 큰 산들이 양 편에서 무너져 내리고,

인간들은 그 양 편 산들을 피해, 모내기 해 놓은 논 중앙을 달리는

꿈을, 밤 중 내내 그렇게 쫓기며 달리다, 난 늦은 아침 지쳐서 잠이

깨었다.


그 꿈에서도 나는 엄청 젊었던게, 내가 그 지진과 산 사태를 피해,

정말 엄청도 잘 빠르게 달렸으니.


잠이 깨니, 어찌나 많이, 오래, 빠르게 달렸더니, 생시에도 아직

기진 맥진이다. 


우라질 꿈! 개 꿈! 

생시에도 요즘은 무참히 거절, 거부해 버리는 운동을 나에게 

이렇게 많이 시키다니!! 하구선 욕을 한번 바지게로 해 주구선.



중학 시절 배운 '4월의 노래'가 문득 휘리릭 기억 속 떠 오르면서,

그 4월의 노래를 막 감격에 젖어 혼자 불러 보던, 꿈 많던 어린 

외동 딸을, 늘 조용히 웃으며 지켜 보던 엄마가, 갑자기 그 이른

아침 문득 떠 올랐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이 '4월의 노래'의 가사들을 읖조리다

보면, 감격하고, 또 감격한다.


노랫말들이 그야말로 한 편의 시인, 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전개가 거기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나는 비행기 표를 어제 급기야는

끊었고, 나는 그렇게 올 4월을 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그렇게

노래하는 한 사람인 것이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텔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 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 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엄마가 3월 말 간 4월은, 그렇게 나에겐 늘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 이었다.


하나 있는 딸이, 엄마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생각에,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죽고, 아는 지인들 앞에서 아빠가 술을 

마시며 늘 가장 눈물 짓던 이유는, 


어린 세 남동생들은 남자얘들이닌까 괜찮다고 늘 하시면서, 

가장 가슴이 무너져 내리게, 아리고 아픈 건, 그 어린 하나 

있는 딸이라고,


아빠는 늘 눈물 바람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나는 우연히 나중 

아버지의 지인들에게서 듣게 되었다.


그런 아빠는 내가 대학을 들어 갈 때, 사회에서의 성인의

정체성들을 이젠 원하셨는지, 어느 날 문득 코끼리 상아 뿔 

도장을 파 가져 와, 내 손에 안기면서, 무척이나도 행복해 

하시고, 흐뭇해 하셨던 기억이 오늘 아침 문득 떠 오른다.


작고도, 너무나도 앙증 맞고 예쁜 목에 거는 목거리 시계는

모두가 다 한번쯤은 돌아 보던, 난 그런 아름답고, 예쁜 시계

목거리를 우리 아버지의 선물 이 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 어느나라들에서도.


호박 반지에, 반 바지 일제 옷 상 하위에, 대만에서 구해 오신 

수 백 마리의 수제 나비를 수 놓은 그런 아주 아주 비싼 수제 

비단 이불을 아버진 나의 미래의 가정을 위해 사 오시기도 했었다.


오늘 아침, 문득 그 사월의 노래와 함께, 그 아버지의 상아

도장, 호박 반지, 시계 목거리, 나비 수제 비단 이불등이 

다 와르르 내 기억 속으로 쏟아져들 내려 오고.


이래서 돌아 오는 4월은 아름답고, 선한 기억들의 한 장이다.

나에겐 늘.  



그러나 그렇게 떠난 4월 초의 독일 유학은 나에게는, 

그 4월의 노래의 낭만과 설움과 외로움과 슬픔이, 그런가 하면 

그 동전의 flip 사이드에는, 


늘 꿈과 소망, 이상, 기쁨과 경이가, 목련과 보리 피리와, 

베르테르의 편지와 함께 늘  그렇게 있던,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많고, 아름다운 감정들과 정서들이 거기 다 그렇게 

한데 어울려 존재하는, 그런 한 철이기도 했었다.



4월.


그렇게 난 이제 나의 아주 아주 어린 시절, 나의 상 땅 꼬마

시절, 엄마가 한 달을 공그려 손으로 예쁘게 지은 색동 때때옷을 

입었던, 


나의 어린 시절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는 , 

그 나의 아주 어린 시절 고향으로 돌아 간다.


그 고향 땅에서의, 나의 이런 4월의 노래의 향연은, 나를 그렇게

기다리는 그런 철로, 지금 나를 기다리고, 맞고 있는 것이다.


어쨌건, 저쨌건,

인생은 그래서 무척이나도 한 아름다운 것이다.

결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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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문득 엄마가 자연으로 가던

그 상여 밑 자욱히 피어 있던, 그 작은 푸른

3월의 봄 꽃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진다.

 

죄인이라 입어야 한다던 성긴 노란 삼베 상복에,

머리에는 굵은 새끼줄을 두르고, 오열로 걷던

우리 4 남매의 그 3월말의 봄 날들을 이렇게

문득 떠 올려 보는 것이다.

 

엄마가 가장 남기고 감이 서럽고, 시리던

우리 막둥이는 그 엄마를 따라서 그렇게 갔고,

우리 남은 3 남매는 이 삶의 마지막 장들을 혼란

스러워 하면서, 이토록 헤메고들 있다.

 


강산이 세 번을 변한다는 30년은 우리의 극빈을

바꿔내지 못 했고, 이 강산이 세 번 변하는 긴 시간

뒤에, 그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맨 몸으로

서로 마주 대하는 우리 3 남매는, 지금 삶에 대해

당황스러워들 하고들 있다.

 

그러나 그게 거의 모든 이들의 삶의 모습인 것을

또한 우리는 겸허히 그렇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조금 더 누린 자도, 더 가진 자도, 그 내면은 늘

그렇게 텅텅 비어 덜커덕 거렸음을, 우리는 우리의

가지고, 누렸던, 부한 조상들에게서 이전 적나라하니

보지 않았었니?

 


누나인 나는 이렇게 우리 두 남동생들을 위로

시키고 싶다.

 

괜찮다

너무나들 잘 했다

나는 너희 둘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 할 수 없는,

이 세상서 가장 소중한 나의 두 남 동생들이라고.

이 누나가 내 땅, 내 조국으로 이렇게 새삼스럽게 돌아 가는,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너희 둘 때문이라고.

 

이미 늦어 버린 우리 막둥이에게 못 베풀어 준 그 사랑을,

엄마가 일찍 가면서, 못 다 베풀어 주고 간 그 사랑을,

이젠 이 누나가 다 베풀어 주고 싶다


그렇게 날마다 이야기 해 주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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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어느 학교를 하나 맡아 대학에서 학교장으로 인도할 

때, 9.11 사건이 뉴욕에서 터져, 학생들 사역 실습을 강의 학기 후,

뉴욕 그 현장들로 내 보낸 적이 있다.


나이 많은 노년의 장로들의 지혜들로부터, 어린 20대까지가 혼합된

세대를 망라한 그 팀의 지혜는 뉴욕 그 참사 속에서 아주 정말 기가 

막힌 아름다운 사역을 해 내었고, 


믿음으로 간 그 팀을 처음, '대책 없는 사람들' 운운하며 냉대하던,

십 수년을 뉴욕 근경에 들어가 살면서 사역해도, 사역자 그들

자신의 독선들과 오만, 편견등으로 몇 십년이 걸려도 평생 풀리지

않던 사역의 막힘들이, 한 엄청난 열매들로, 


이 우리 그냥 우리 주님만 의지 하고 간 작고, 겸허한, 그러나 

영혼 하나 하나들을 위해, 들을 귀가, 섬길 손 발이, 안아 줄수 있는

가슴이 준비 되어 무장 되어 나간, 우리 작고, 겸손한 우리 형제들에

의해, 


사고 현장들에서 그야말로 그 옹고집 미국인들, 한국인들, 남미인들

사역자들이 수 없이 많이 다 변화되고,

나중엔 극찬과 완전히 의지하고, 신뢰 하면서, 모든 사역을

우리 그 작은 팀 형제들에게 다 맡기는, 


그런 선하고 아름다운 열매들을 풍성히 거두어, 우리 주님께 

감사의 제물로, 올려 드린 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하와이는 물에 익숙치 않는 많은 외부인들이, 자연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고, 겁없이, 지식 없이 함부로 덤볐다가 늘

자주 탈이 나는 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익사 사고를 많이 당한 경우들이, 우리 한국 학생들이다.

우리 나라의 유수한 한 명문 기독 대학에서 그곳에 섬기러 온 한

청년이 익사해, 그 청년과 함께 한 전체 학교 학생들에게,

 

Post Traumatic Stress Dosorder(P.T.S.D) 라는, 장애를 앞으로

겪을수 있는, 재난을 막 겪고 난 사람들에게 들어 가, 그 재난 안

에서의 트라우마들을 프로세스 시키고, 그 들의 응급한 상황의 

감정들과 말들을 흘러 내 보내게 하는 훈련에, 


우리 상담 대학의 잘 훈련 받아, 그 PTSD 상담 자격증이 미국 

정부로부터 지급된 우리 간사들을 데리고, 상담 대학 전체 책임자

로서 들어 가, 그 재난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이 재난 상담은 그야말로 그 감정의 폭발들이 어마 어마들 하다.

그 현장에 그 큰 무서운 재난을 본 그대로, 울고, 소리 지르고,

부들 부들 떨면서, 그 많은 감정과 모든 것들을 다 쏱아들 놓는다.





그런 장소들에서 사실  우리 심리 상담사들이 해 주는 건 아주 

많지 않다.


"당신은 지금 아주 정상 입니다. 그렇게 느끼는게 너무 당연 합니다.

많이 우시고 싶으시면 우세요. 소리 지르고 싶으시면 지르시고,

이렇게 할 힘도 없어 누워 자고 싶으면 주무십시요" 등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 감정들이 그 짧은 시간 다 흘러 가게 내 버려 두어

준다.


이 짧은 시간의 이 감정의 흘러 내 보냄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들리고, 여겨 질지도 모르지만, 그 들의 그 회복의 효과와 속도는,

이런 재난 상담을 거친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회복의 차이는,

그야말로 천차 만별의 큰 차이임을, 우린 늘 나중 그 결과들로 

속히 알고 보게 된다.



이런 재난 상담은 그런 사건 사고가 바로 일어난 그 시간 바로 

직후 들어 가는게 가장 효과가 있다.


우리 학생들이 전 세계로 나가 일을 하고 돌아 오면, 그 선한 

일들을 하다, 마음이 다치고 상한 상흔들은 그야말로 어마 어마들

하다.


그런 경우들의 PTSD 상담도, 바로 메고 돌아 온 베낭을 벗어 

놓은 그날이나 2-3일 내, 그 감정 처리들을 해 주어야, 가장 

건강히 그들은 늘 조속히 회복된다.



이런 PTSD 등을 함께 다루는 재난 상담은, 베트남 전, 이라크 

전이나 군대의 전투 등에서 돌아온 군인 베테랑들의 정신적, 

내면의 스트레스들과 트라우마 들을 치료 시키고, 회복 시켜 

가는데 쓰던 한 도구로 시작 했으나,


현금에는 여러 영역에서들 정말 많이 필요한 치유 회복의 

한 도구이다. 



트라우마는 인간의 고통이나 고난이 절대 상대적일수 없고,

주관적인 것이듯, 어떤이에게는 그렇게 큰 상처가 되지 않는

사건도, 어떤 이에게는 평생을 가는 아픔과 상흔으로 남는

경우들이 더 많다.


인간 관계의 깨어짐등의 상흔이, 한 사람의 평생을 끌고 가는

아픔의 기억으로 영원히 회복 되지 않고 거기 그렇게 남아

그 증후군들이 나올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이 살아 딛고 일어 나는 Resilience (복귀 능력)이 

훨씬 더 빠를 수도 있다.


이번 또 뉴욕 맨하탄의 건물 폭파 붕괴 사고가 나고, 지난 미국서

참으로 유명한 마라톤 경기 거리 폭발 사고, 그리고 이번 말레이 

항공 사고 같은, 뒤에 남겨진 유가족들을 위한, 이런 예기치 못 했던 

많은 재난과 사고들에, 


우리 나라도 이젠 이런 전문 상담 요원들이 사고가 난 바로 직후 

금방 금방 투입 되어, 그 사람들의 치유와 회복을 속히 할수 있게 

돕는 인력들의 공급이 이젠 필요한 시국이다.


우리 빛 고을 광주 민주 항쟁이나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경우들은, 

수 많은 심리 상담 인력들이 수 년을 대거 투입 되어, 그들의

내면을 잘 만져 주고, 사역해 주었어야 하는 한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살다 보면 그런 사고는 나기도 하는가 보다 하고, 그냥 먹고 

살기에 바빠 무심코 스치고 지나간, 관리 잘 안된 부분들이 너무 

많은 한 대표적인 내면 관리 잘 안 시켜 주는, 한 열악한 나라의 

대표급이다.


지금 중동이나 북한의 내면 무너짐들에 버금 가는 그런 질고와 

고난들 앞, 우리의 상태도 결코 거기에서 별 멀지 않는 그런 상태로

그냥 그렇게들 쭈욱 살아들 온 것이다. 



사람이 사람 답게 사는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 복지등은 이런 

우리 인간의 깊은 내면의 것들의 필요들을 신속하고, 조속히 만나, 

그 상흔을 안고 너무 오래 고통 받지 않게, 


그 관심들을 기울여 주는 나라가 진정한 복지 국가들이지, 

다른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걸 난 오랜 서방 세계 복지 국가들

에서 보고, 경험 했고, 그리고 또 그렇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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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모르게 제자들의 입의 입들을 통해 전해진 나의

귀향 소식이, 나의 근경 거의 모든 이들에게는 요즘

너무나도 큰 화제여서, 나는 지금 심히 마음이 복잡하고

번거롭다.

 

찿아 와 인사를 하겠다는 이들이 날이면 날마다

너무 많은 양으로 늘어 가고, 난 귀찮아 그냥 돌아

가실 지경이다.

 


그냥 조용히 좀 고향으로 돌아 가고 싶었던

나의 그 작고 소박한 소망은, 절대로 내 삶 안

그냥 그렇게 주어 지지를 않는 것이다.

 

이름 없이, 시골 촌부로 그렇게 삶을 마감해 보고

싶은, 나의 그림은 완성 되지 못 할 한 허상으로

그렇게 거기 흐트러지고, 나는 막 아우성 치고

싶어진다.

 

날 좀 제발 가만히 내 버려 둬 주라고.

 

나도 이젠 공인이 아닌, 내 자신의 삶을 그렇게

조용히 좀 살아 보고 싶다고.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나에게 관대하지들을 절대

않다. 자신들이 이미 지들의 만족들을 위해 만들어

놓고, 그려 놓은 한 영웅의 전설은, 늘 그 들 손아귀들

안에 그렇게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책임져 주지도 못 하는, 무책임한 한 전설이고

영웅인 나는, 그저 내 마음이 그러면 그럴수록

더 차가워지고, 싸늘히 냉철해져 가고 있고.

 

그렇게 나의 의지는 이미 거기 비양댐과 뒤틀림,

조소와 무시들로 이미 마음의 문들을 거기 완전히

빗장을 내리 질러 걷어 닫아 버린지 이미 오래.

 


내 삶들에서 너희들 이젠 제발 좀 내려 줘.

나의 삶을 더 이상 가지고 놀지 말아 줘.

제발들.

 

난 너희들의 그 너희들 자신들의 필요들을 위한

전설 만들기와 영웅의 대 서사시에서 나와

이젠 너희들을 무시하고, 비웃는 한 사람.

 

영웅도, 전설도 이제는 다시는 절대 되기 싫은.

 


전쟁에 나간 전사의 용어를 빌어, 이것을 사람들은

Honourable Wound(명예로운 상처) 라 이름하고

부르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

 

영적 전쟁에 나가 싸우다, 사람들과 함께 하다,

다치고, 상한 상처라는 아름다운 명명이다.

 




뭐가 되었던 아프고, 다친 이들에게는, 늘 조용히

reflect 하고, 울기도 하고, 들길을 미친듯이 혼자

걸어도 보고, 여러 날을 집에 혼자 앉아 있어도 보고,

 

공감하며, 조용히 앞에 앉아 내 이야기를 아무런

비판 없이, 그냥 그렇게 좀 들어 주는, 나에게 나불

거리는 조언과 충고의 입이 아닌, 


조용히 들어 주는 조신한 귀를 가진 인간도 필요하다.


하나님,

저의 마음을 치유 하시고, 회복 시키소서.

 

이 세상의 저 사람들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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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염려가 사실은 조금 서서히 드리워질 때쯤,

이 재용이 결국 2주만 돌아 와, 아주 반가웠다.


역시 낯 익고 익숙해진다는 것은, 참 마음 편하고,

안정이 되는 한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이 재용이 부장이 되어 고위직으로 승급 되고,

이 애송이 청년 사회자가 영구직으로 들어 온 줄 잘못

알고 참 노심 초사 했다.



이것이 지도자들의 한 직업적인 병들일수 있다.


한 프로젝트나 자리를 신예들에게 맡기려면, 그 안정이

흔들릴까봐, 신뢰 못 하고, 늘 노심 초사 하는, 한 행위 

중독에 가까운, 


오도 깨방정 걱정, 근심, 염려, 그리곤 아주 교묘하게 

아닌척들 하면서 뒤에서 슬슬 조종(Control) 해 대는 

병 등등등.

 


아무리 상황이나 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에 눈치가 별로

없다 하더라도, 혜정 마님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계속

먹기만 하지,

 

멘트 없는, 눈치 많지 않는, 그 청년 일꾼에, 왼통 전체

분위기가 이젠 염려의 분위기로 치닫는 그런 상황 안,

이 재용이 다시 돌아 와 우린 모두 함께 휴!  한 것 같다.

 

사람들이 무언가가 너무 상대의 행동에, 그 맟추어야 할

보조에서 너무 벗어나 오래 방황하면, 그 갭을 어떻게든

메꾸어 주거나, 다 느끼고, 알면서도,

 

그걸 덮어 주려는 감정의 조종(Control)에 강한 우리들은,

그 메꾸어 주려는 아량과 배려가 나중엔 짜증남으로

전환 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우리 조종에 강한 우리 현대인들의 한 남의 삶을

대신 살아 주고, 대신 그 짧음과 한계들을 덮고, 무마 시켜

주려는 한 발버둥들로,

 

그렇게 우리는 우리 심리의 깊은 늪 안에서, 그런 용트림들을

계속해서 번복 하고들 그렇게 사는 것이다.

 


내가 그 상대를 바꿀수 없다는, 더더구나 내가 그들의 구멍을

메꾸어 주려 조종하고, 채워 주려는 착각은, 일찌기 못한다는

고백으로 선포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 상담에서 다루어 주는, 특히 행위 중독 증후군이

강한 자들에게 가르치는, 빅북 중독 지침서의 원칙이 가르쳐

주는 한 교훈이다.

 

우리는 절대 상대를 변화 시키고, 바꾸지 못 한다.

그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이면서, 적당한 경계선

(Boundary)을 잘 지켜 주면서, 조종(Control)하려는

그 질기고도, 강하고도, 악한 뿌리를 근절 시켜야 하는,

우리 행위 중독(Behavioral Addiction) 증후군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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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래 너무 좋아 하기도 하는 나이지만, 요즘은 그래

상담 사역도 많이 없겠다, 뭐 딱히 이렇다 하게 논문 페이퍼

들 작성해 내, 지도 교수님께 마감날까지 가져다 바쳐야 하는, 


초조함과 불안으로 머리칼 잡아 뜯어 낼 이유들도 없겠다,

무료함을 어떻게든 잠 재워 주고, 달래 보기 위해, 티비를 

자주 보게 된다.


이 극을 보면서 분명히 작가가 여성일 것이라 생각 했다.

여자들의 글은 여자가 제일 먼저 알아 본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여자 작가이다.

 


명품 배우라고 하는 문 소리가 연기를 참 깨끗하게 소화해 내고,

노래 부르는 이, 비를 많이 닮은 한 신예 남자 배우의 미 소년에서

청년으로 가는 그 미가 사람 가슴을 자꾸 켕기게 하는,


첫 사랑 소설책과, 우리 엄마가 어릴 적 늘 바르던, 그 아름다운

통의 무늬도 내 기억 안 생생한, 코티 분의 낭만이, 거기 고이 

고여 흐르더라.

 

어른이 되지 못한 소녀와 소년에게 침을 뱉는 딸의 기억의 묻음과

함께인, 전쟁이 왜곡 시킨 순애보를 참 잘 그려낸 아름다운, 기품

있는 한 작품이었다.

 

!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운, 잘 매끄럽고, 고아하게 처리된

한 작품이었다. 이런 수준의, 질의 작품이 이 프로그램에 소개

되는 지경까지 성장하고 있다는게, 너무 행복한 그런 극이였다.

 

내면으로 내면으로 고이 간직된 저 여성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안다. 그 준수함과 맑음 속에서 흘러 나오는 심성을 향한

마음의 내달음질들을, 우린 어쩌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달려감의 길에는 어디에선가, 나타난 우리의 기억속의

사람들이 거기 그렇게 우뚝 와 선다. 세월을 마다한 존재들로.

닿을래야 닿을수 없는 머나먼 저 끝의 갈림들로.

 


자칫 천박해질수 있는 소재나 주제를 아주 단정함과 깨끗함으로

잘 이끌어 낸, 한 수준 있고, 질 있는 작품이었다.

 

이런 드라마 페스티벌 같은 신예 배우들이나, 신선한 소재들을

아주 짤막 하면서도, 강하게, 여운 있게 다루는 작품들이 좀 많이

생겨서,

 

예술의 진미를 시청자들도 좀 함께 누리면서, 이렇듯 지금 나에게

남아 맴도는 그 아름다운 예술의 향기처럼, 우리의 삶을 좀 풍요롭게

하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좀 나와 주었으면 하는 큰 바램이다.

 


최근의 기황후별 그대 그런 대작들, 이런 좋은 예술

작품들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깊숙히 파고 들어 와 머무는

그런 아름답고 귀한 정서가 거기 늘 존재 하게 하는,

 

그 어떤 힘이나 권위(Authority)들이 늘 거기 있음을 우린

이렇게 보면서, 대작들의 그 위력을 아는 것이다.

 

돈 많이 들이고, 규모를 늘려, 대작으로 만들수 있는게 아니고,

그 대작이 된 이유들은, 그 안에 우리 가슴을 녹이는 아름다운

정서와 감정들, 생각해 보게 하는 깊이 있는 사고의 영역들이

거기 있어,

 

보는 우리들이 그 들과 함께 공감하고, 어느덧 그 들과 함께

응원하면서, 그 성장들을 지켜 보고 있는 걸 보기 때문에,

그 들은 대작으로 불려들 지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켜 보아, 그 때려 죽일 현금의 시청율

이라는 그 저질급이 부상 하더라도, 그 드라마나 극을 보면서,

저런 쓰레기를 봤나? 저 작가의 저 정신병적인 병적 증후군을,

 

저걸 어떻게 방송 매체를 통해, 똥을 뒤집어 쓰는 저런 추태로,

작태로 내 보내는, 저 드러운 방송국의 그 고위직 쓰레기들한테

저 오물 저걸 다 뒤집어 씌워 엎어 버리고 싶다는 분노가 일게

하는 한 막장이, 얼마전 사회 물의를 일으키며 방영 되다,

 

결국은 시민들의 재판대 위애서 무자비하게 칼질 당하고,

화형식을 거행한, 그 사건의, 그 장면을 나는 너무나도 통쾌히

지켜 보면서,

 

우리 국민들의 그 바른 것들과 병든 것들을 잘 정선해 내는

그 건강한 시민 의식에, 박수와 찬사를 보낸 한 사람이다. 

 


이 하늘재 단편을 보는 내내,

, 그 작품 정말 정교하고, 깨끗하고, 고아하고, 아름답게

잘 만들어 냈다. 저런 감독, 작가들 한번 누군지 만나 보고

싶다라는 생각과 감탄을 계속 연발 하면서, 이 단회성 짧은

단편을 정말 감명 깊게 지켜 보았다.

 

이런 우리 심리 저변을 아주 정교히 다루어 내는 예술 작품

다운 작품들을 보고 나면, 우리 인생이 참 아름답다는 그런

생각들 까지도 해 보는 것이다.

 


수 년전 서편제 를 보면서 보았던, 느꼈던, 그런 우리 건강

하고, 아름답고도, 아련한 정서가 상당히, 하늘재…’에도,

드러나 나타내 비쳐지는, 그런 아름다운 한 예술 작품이었다.

 

짧지만 강하고, 간소 하지만, 영향력 있게 어필하는,

이런 귀한, 작품 다운 작품들이 좀 많이 나와 주었으면

싶다.

 

오랫만에 한 예술 작품으로 인한 갈증과 목마름을 촉촉히

새벽 이슬처럼 다가 와 적셔 준, 그런 아름답고, 귀한 한

예술 작품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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