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4.03.27 Reflection. by 텃밭지기와 상담
  2. 2013.11.27 꿈,희망이 있다면 다시 살 수 있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3. 2013.09.03 물이 가진 덕과 함께...오늘은 행복으로 by 텃밭지기와 상담
  4. 2013.07.20 뭐래? 나 5학년 by 텃밭지기와 상담
  5. 2013.06.30 이 끊임 없는 도전 정신 by 텃밭지기와 상담
  6. 2012.08.22 바닥을 쳐 버리면 이젠 위로 올라 가는 길 밖엔 없게 된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7. 2012.06.21 8 개국을 내 생애 돌아 살면서 가장 먹기 힘들었던 음식 두 가지 by 텃밭지기와 상담


고국 가는 비행기를 타러 나가기 전, 차분한 하루를 아주 잘 보내고

있다. 어제 저녘까지 그다지도 애를 먹이던 차 문제는 그냥 나에게

많은 도움을 이래 저래 준 한 사람에게 이양.


너무 좋아 춤을 출듯 웃음이 벙실 벙실 그 사람은 내 차를 몰고

사라지고, 나의 뒷 골 땡기던 혈압은 급기야는 내려 갔다.



그리고 오늘은 차분히, 조근 조근, 온 집을 광 마지막으로 내고,

향기 좋은 방향제 뿌려 집을 왼통 반짝 반짝 정리하고, 은행 가

쓸 마지막 경비들을 쓸어 담아 오고.



난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가?

북미에서는 14년, 이 미국에서는 12년을 어언 살았다.


난 거의 지금 아무 감정이 없이 아주 무덤덤한 상태다.

난 이제 어떤 대륙을 떠나 어딘가로 옮긴다는 것에 대해, 

그 아무런 감정들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돌아 다니며 산 삶에 나는 지쳐 있는 것 같다.

이제 저녁 나를 공항으로 데려 갈 신혼 부부 제자를 기다리면서,


나는 아주 오랫만 4층까지 올라온 크나큰 고목 나무들이 장관으로

우거진 내 별장 같은 팬시하고 멋진 내 로프트에서 아주 정말 오랫만

그 싱그러운 봄의 초록 잎새들을 아주 오래 오래 지켜 보며, 마지막

으로 켈리의 봄을 만끽 했다.


왜 이 아름다움들이 지난 몇 달, 몇 년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을까? 도 나는 생각해 보았다.


생존의 험난한 싸움들의 연속이 그 이유들인 것 같다.



다시 돌아 오고 싶냐?고 많은 이들이 지나가듯 가볍게 자주들

묻는다.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늘 절레 절레 양 좌우로 심하게

흔들어 대는 날 아주 아프게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는 곳.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고 힘든 도전이었던 것이다.

생존의 도전은 이젠 아주 지겨워서.


그래 난 오늘 저녁 공항을 나가, 내일 새벽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홀가분하고, 날을것 같은 자유로움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희망이 있다면 언제든 삶은 다시 시작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명문 예일대를 졸업한 '마이클 게이츠 길',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

JWT(J. Walter Thompson)에서

수석이사까지 승진한 그에게

자신이 발굴해 내 성장시킨 후배로부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해고통지서가 날아든다.

 

28년간 가정도 뒤로한 채

온 인생을 맡겼던 회사에서 쫓겨난 그는

이후 사업실패와 불륜, 이혼, 가족해체라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10년간 경험한다.

 

그동안 쌓아온 인맥에 의지해

마지막까지 부활을 꿈꿔보지만, 끝내 월세를

걱정하는 무일푼 노인네 신세가 되고 만다.

 

더 이상 희망을 찾지 못한 그는

마지막 호사라고 생각하며 잔돈을 털어

어린 시절 살았던 맨해튼 부유한 동네의

스타벅스에서 라테를 마신다.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하나?

 

어릴 적 부모와 살던 저택을 바라보며

화려했던 과거와 암울한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그를 불쌍하게 본 것일까?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고작 28세의 흑인

여성 매니저 '크리스털 톰슨'이 던진 한 마디,

혹시, 여기서 일할 생각 있어요?

 

그때부터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청각신경종양이라는 희귀병까지 앓고 있던

그는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다는

그녀의 말에 들뜬 목소리로 일하겠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연락이 없어

힘없는 늙은 백인을 누가 쉽게 채용하겠는가?

라며 낙담하던 그에게 마침내 연락이 온다.

 

그러나 막상 출근이 결정되자

낯선 세계의 노동일에 뛰어들어야하는

두려움과 참담함, 창피함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일자리를 구하기에 너무 늙어버린 지금 내가

맞닥뜨린 현실은 자기 몸 하나 부양할 능력도 없고,

그 어떤 회사도 반겨주지 않는 노인들이 처한 잔인한

현실 바로 그것이었다. 불안하고 암담하고 창피하다.

 

하지만 그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더 큰 절망에 몸서리친다.

 

문 앞까지 길게 늘어선 손님,

펄펄 뛰어다니는 젊은 종업원들,

초를 다투는 주문과 계산들.

과연 사무실에 앉아 남에게 지시만 하던

늙은 내가 이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라는 절망감에 빠진다.

 

출근길 전철을 놓쳐 지각할까봐

불편한 몸을 이끌고 뛰어야하고,

혹시라도 상사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의 처지를 안 옛 친구들이 경원시하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린다.

 

과거는 짧게, 미래는 길게

스스로 주문을 외워가며 화장실청소,

주문받기, 계산하기, 개점준비, 영업마감,

커피마스터, 에스프레소 바에서 커피 만들기 등

단계별로 새로운 도전을 이겨나간다.

 

겸손과 인내를 배우며 하나하나

어려움을 극복해낸 64세의 한 노인은

마침내 성취의 기쁨을 맞보며 바리스타가 된다.

 

이곳에서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됐다.

 

미심쩍어 하던 동료들의 신망을 얻어내고

자녀들과도 화해하는 마이클은 늦었지만

가슴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깨달으며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스타벅스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그 곳에서 그가 배운 많은 것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 하지 "않았던"

소중한 것들을 보게 해주고 그에게 되돌려 준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고, 새롭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모든 것들은 그를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마이클 게이츠 길'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소설 How Starbucks Saved My Life

현재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지난 30년이 넘는 세월을 주님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들여 섬긴 

한 선배 언니 가족이 집 무어게이지를 못 내 끝내 집에서 일주일

notice로, 온 식구가 집을 나와, 결국 캠퍼스 기숙 시설로 옮긴 

이야기가 FB 에 올라 와 있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시렸을 언니의 많은 주님을 찬양하는

수 많은 문구들이 거기 애처러히들 적혀져들 있고.


이 선배 언니나 나처럼 같은 시기 이 전임 사역을 시작한 한

캐나다인 친구도, 캐나다 동부 한 반도 지방 체류를 수 십년만 

이제 이별하고, 콜롬비아로 이사 가는 내용들이 거기 빼곡히들 

적혀져들 있다. 남자로 이 선배 언니와 나이가 거의 비슷.


인생의 3분의 2를 산 사람들의 한 아주 비슷한 한 모습들이다.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고, 우리는 이 헌신의 삶의 길들을

아마도 나선 자들일게다.  


우리 주님이 단 한번도 제자들에게 그들의 삶들이 안정적이고

편안할 것이라고 약속 하시지 않으셨던, 그 같은 부르심들의 

모습 들인 것이다.


나도 위의 이 두 사람과 지금 같은 처지에 놓인 자로서,

참 많은 생각들이 내 마음 속들을 지금 분주히 오가고들 있다.




                                                              윈스턴 처칠


                                                              자료; Planet Dream 발췌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물이 갖는 일곱 가지 덕이 이런 거라 한다.


첫째,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

둘째,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셋째, 구정물까지 받아주는 "포용력"

넷째,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다섯째, 바위도 뚫는 "인내와 끈기"

여섯째,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

일곱째,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


이유들이 다 아름답고 좋네. 

마음에 들고.


근데 그 모든 것보다도 이렇게 더워도 너무 더운 2주째의 

폭염에 어디를 가서 돌아 다니면서도, 우리 아프리카 사람

들을 다시 많이 생각한다.


그 물 없고 무덥던 우리 아프리카.

그런 곳서도 수 년을 살았는데 이 더운 켈리 2-3주 살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그리고 사람, 사람, 늘 사람들이 걱정이다,


이 더위에 노인들이 이 켈리의 이 폭염을 무사히 견뎌낼수

있을까? 등.



요즘은 소통에 대해 많은 도전들을 자주 받는다.

목소리들이 거기 있는데 들려지지 않는 현장들.


그 곳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러나 우린 들어 주어야 할 책임들과 의무가 있는 사람들인 것을. 

나라도 잊지 않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들을 

개인적으로 많이 도전 받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디즈니물의 한 만화 주인공의 말처럼,


"사랑해서 함께 하는게 아니야.

더 사랑하기 위해 함께 하는 거야"


"사랑의 스펠링이 뭐야

그건 스펠링이 아닌 느끼는 거야"


 "스치면 인연, 

스며 들면 사랑"


"내 기분은 내가 정해

오늘은 행복으로 할래"


"오늘의 특별한 순간들은 내일의 추억들이 될 거야"


아프리카나나 시베리아는 그렇게 살아 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나의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를,

이 더위 속서 사람들을 생각해 보며, 늘 깊이 요즘 멍! 하니 혼자 

앉는다.


시리아의 죽어간 3천명들의 화학 살생들과 미국 의회의 투표에

호소하는 한 지도자의 함성을 조용히 지켜 보면서.


 

Anyone can handle one problem at a time, 

but to be a LEADER you must learn to handle 

multiple attacks at once without giving up.


누구나 한번에 하나씩의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지도자란, 

많고 다양한 공격들을 한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포기 하지 않고, 

배워 내야 하는 자들이다.


그래 물의 덕으로,

오늘은 행복의 선택으로,

한번에 하나가 아닌, 

많은 도전들을 한번에 해결해 내는 방법을,

포기 하지 않고, 

이 상황에서 배워 내야 하는, 

나는 한 리더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뭐래? 나 5학년

박사 : 2013.07.20 04:50


재정의 압박 때문 학업에도 지장이 오고,

엥간히 학비가 비싸야지 계속 해 보지 !!

너무 지치고 힘드닌깐 이젠 그만 두고 싶고.....


이 비싼 학교서 석사 학위 하나 마치는 거도, 

거의 사경을 헤메며, 그야말로 내 죽을 욕을 봤다. 


오래간만 학교 가서 

제출해야 되는 몇 Thesis Paper들 때문

노 교수 담당 박사님을 만나 뵙다.


나의 지금 사정과 상황을 너무 잘 아시는 그 분,

어떻게든 나를 다시 재능 있는 제자로 살려 내 보고 싶은 

소망.


한국과 미국을 연계 시키는 프로젝트며 

그 설득들이 장황.



뭐래?

나 5 학년 !!


하구선 마음 속 팔짱을 끼고, 먼 산 쳐다 봐 버리며, 

그 모든 원대하고 그로테스크한 비젼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살려 내 키워 보고 싶은 제자를,

심리학 박사 인지라 귀신같이 포착.


그리곤 그만 거기서 그치셨다. 



공부는, 학문은, 학위는 이제 그만,

내 삶에서 끝!!


집에 돌아 오며 생각 했다.


우라질 !!

제길헐 !!

이 망할 놈의 세상 !!


왜?

돈은 이렇게 늘

내 편을 안 들어 주는 걸까? 

하구선.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하고 싶은 일이라고 무작정 뛰어들지 마세요.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살던 집 팔고,
 
여기저기 돈 빌려서 

새 사업 하는 사람 수두룩 봤어요. 

그때마다 너무 무모하다 싶어요.
 
지금 하는 걸 유지한 상태에서 

해 보고 싶은 걸 시험 해보세요. 

그런 다음 확신이 드는 쪽으로
 
옮겨 가도 늦지 않아요.”


29세에 파일럿이 되기로 결심,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 항공학교로 떠나

바닥부터 공부,

35세에 중국에서
 
최초의 한국인 여성 파일럿이 된 그녀.


그녀의 꿈이 어릴 적부터
파일럿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방이 산과 들, 논밭으로 둘러싸인
 
경기도 이천 산촌리에서 자란 그녀는

6남매 늦둥이로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10살 꼬마 조은정의 장래희망은
 
미술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은정이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는 

언니의 반복되는 말에 반항심이 생겨
 
교사의 꿈을 버렸다.


그리고 미술 실력을 살려
 
산업디자인 전공으로 한양대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문구디자인을 하겠다는 꿈이 전부였고,
 

졸업이 다가오던 해에
 
건축디자이너에 호기심이 생겨 

일본으로 무작정 유학을 떠났다.
 

구두쇠 아버지가 유학비를
 
지원해줄 리는 없었고
 
기내식을 만드는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 자금을 마련했다.
 

비행기와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녀는 자연스레 항공사에 관심이 생겼고

최종 목표를 스튜디어스로 변경했다. 


하지만 항공사 입사시험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 
연거푸 입사시험에 낙방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 있었던 

영어, 일본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직업 

‘호텔리어’가 되기로 결심하고
 
힐튼호텔에 입사한다.


서울 힐튼호텔에서 3년 째 일하던 어느 날,

체크인 업무를 보다가 

50대로 보이는 여성 기장이 

두 명의 남성 부기장을 뒤에 거느리고
 
호텔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을 본 순간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충격과 설렘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 나이가 됐을 때 그녀처럼 

누군가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여성 기장이 체크인을 하는 

짧은 순간을 놓칠세라 

어떻게 파일럿이 됐느냐고 물었다. 

미 공군 부대 안에 있는 

에어로클럽에서 비행을 배웠다고 답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파일럿들을
 
체크인, 체크아웃 시킬 때마다
 
한 명씩 붙잡고 

어떤 학교를 가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물어봤다. 

그렇게 물어본 파일럿이 100명은 넘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친구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둘씩 낳기 시작했던 때였다.


“기집애가 무슨 파일럿이냐?

착실히 돈 모아 시집이나 가거라!”

파일럿이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아버지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지인들도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어이없어했다.


서른을 코앞에 둔 여성을 받아줄
 
조종학교도 국내에 없었다.

그녀는 멈추지 않고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경기 오산 미군기지에서
 
경비행기 자격증을 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토머스 허버드 대사 부부의 비서로 일하면서
 
기지 출입증을 얻었다. 


1년간 경비행기 조종을 배웠고,
 
2004년에는 미 델타항공 비행교육원으로 유학을 가
 
전문 파일럿 교육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교관자격도 땄다. 


마침 항공 산업이 급팽창하고 있던 중국은 

교관이 항상 부족했다.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네이멍구 바오터우에서 교관으로 

중국인들을 가르쳤다.
 

오전과 오후로 교대 근무를 하는 자리였는데 

그녀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했다.
 

그저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으면 

조금이라도 비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실제로 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그녀의 성실함이 빛을 발해

2007년 해당 학교의 고문이 

그녀를 신생 항공사인 지샹항공에 추천한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파일럿이 되었다.


서른아홉에 첫 비행을 한 그녀가

집안이 넉넉해서 그 나이에도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린고비였던 아버지는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생활비를 전혀 주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꼼꼼함’을 들었다.

새 직장이 정해져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던 그녀는

미국에 유학을 갈 때도 

후보 학교 세 군데를 꼽은 뒤 

교수와 재학생을 인터뷰했다.


“제대로 모험을 하려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해요.

그리고 지금 당장에 뚜렷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자신의 꿈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일들을
 
여러 방향에서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 
꿈을 향한 작은 시도부터 시작한다면 

언젠가 그 꿈에 닿아 있을 거예요.


한 단계씩 가는 게 중요해요.

한 번에 곧장 가는 길 말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일들을 

하나씩 해봤으면 좋겠어요.”

- Planet Dream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글 아주 잘 써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한 글쓰는 이가 써 놓은 글에 

참 공감하고 감명 깊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자립을 못하면 

정신적으로도 자립 하기가 어렵다고.

교수님이라나? 지인 선배라나? 가 이야기 해 준 거라는데.


요즘 그런 생각을 늘 자주 많이 한다. 

부르심이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 왔기 동역 하면서 이 재정의 

부분을 믿음으로 그렇게 늘 의지하고 신뢰 하면서 그렇게 

지속적으로 산다는 것.


상황들이 바닥을 , 땅을 칠때 우리의 이 믿음과 신뢰들은 늘 많이

우리 내면들을 혼란케 한다.

오늘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바닥을 치니 소망이, 고집이, 오기가 나와 권위를 취해야 겠다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다.

포기 하기 말기를 당부하는 글들을 여러 사람에게 보냈다.


세상으로부터 이토록 고립되고 단절된 것 같은 처절한 외로움 속 

서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대는지도 모른다.


참 두 번째 황당하고 도전이 되는 삶의 경험이다.


바닥을 쳐 버리면 위로 올라 가는 길 밖에는 이젠 없는건가?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내 평생 이래야 길게 오래 살지도 않았지만, 8개국들을 단기도 아닌 

장기로 일 때문에 그 곳들 살았어야만 했었다. 어디에서도 인간이 

먹을수 있는 것들은 군소리 없이 먹어야만 하는 일을 했기 때문 

음식을 감상하고 음미하고 자실 여유도 권리도 늘 허락 되어지지 

않았던 삶이었다. 그저 생계와 허기를 떼꾸기 위해 먹어야만 

했었던.


그 수를 셀수 없는 8개국에서의 다양한 음식들 중 나에게 가장 도전 

이었던 가장 먹기가 힘들었던 음식은 아프리카의 소피 우유 

사로이와 시베리아의 돼지 기름 덩어리를 소금에 절여 찰떡처럼 

썰어 보드카 안주로 먹는 쌀라였다.  


많은 문화들이 그들 음식을 먹으면 그들을 용납하고 받아 들이며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들이기 먹어야 했는데 이 두 음식은 

먹기 조금 도전이었다.


이 세상 어느 음식이나 거의 구글 이미지 난을 찿으면 사진이 거기

실려들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없어 못 올리겠다.


다시 사진으로 보고 싶지도 않을만큼 별로였기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