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섬머 타임 시간 변화가 시작 되는 날.
한 시간을 바늘을 앞 당겨 다 자리 맟춤해 놓는다.
'Day Light Saving Time'으로도 불리는 이 섬머 타임은,
내가 대학 시절 좋아하던 '면도날'의 작가 서머셋 모옴도
웬지 다시 생각 나게 하고,
'썸머 타임' 하면 웬지 낭만적인 분위기와 뉘앙스가
확! 내리 붓듯 느껴져 옴은, 나만의 해괴하고 기이한
한 느낌일까?
Anyway......!!

똑똑한 랩톱을 제외 하고는, 다 나의 손길을 넔 놓고,
멍하니들 기다리는 아주 능동적인 시계들 뿐이다.
이렇게 손으로 바꾸는 시간의 시계들이 집안에
시간을 바꾸다 보니 무려 5개나 된다.
영국 어느 전통 가게에서 산, 내가 평생 들고 다니는
내 모든 시계들의 가장 중심인, 작고 중후한 브라운
나무 시계.
마이크로 웨이브의 시계, 오븐의 시계, 손목 시계,
화장실 시계등등.

이 섬머 타임과 윈터 타임을 하면, 그만큼 전기등이
절약 된다니, 군 소리 없이 우리는 늘 따르지만,
참으로 웃지 못 할 많은 이야기들이 늘 형성 되는
철이 바로, 이 철 시계의 변화 시기 철들이기도 하다.
완벽 주의 늘 빈틈 자주 없는 나는 그런 에피소드를
내 삶 안 거의 만들어 내지를 않아, 이렇다 할 기억도,
이야기들도 없지만서두.

우리 한국의 의료진들의 파업 소식과 함께, 아이러닠
하게도, 2011년 3월에 일어나 그렇게 부르는지 혼자
추정해 보는, 일본 대 지진 3.11 추모 행사가 함께 방송
되면서,
그 수나미 사고 속, 환자들을 잘 지켜낸 일본의 한
의사와 간호 인력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들이 지금
같은 시간 함께 진행 되고 있어, 보면서 그 대조에
마음이 웬지 씁쓰레하다.

의료 보험등의 전 국가 적인 제도로, 거의 택시 운전사
수준만도 스스로들 안 여기는 유럽의 의료진들은, 환자
들을 받아 치료하는 거며, 진료 속도가 거의 ‘사람 잡는’
수준이라고들 하며 늘 웃는다.
영국도, 또 내가 나중 가 산 캐나다도 모두 다 그
‘사람 잡는다’는 의료 인력들이다.
자신의 시술 일자를 무한정으로 기다리다 그냥 죽어
가는 사람이 허다한, 그 의료 시스템을 비꼬아 부르는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 살 때는 ‘아이고, 나 금방 죽네’ 하고
곧 죽을듯 말듯한 엄살을 부려야, 마을 작은
병원
의사들이 진료를 서둘러 준다고 해,
정말 내 성질에 조금도 맞지 않는 그 짓거리를
정말 너무 많이 아파 그 엄살에, 수다를 곧
죽어
가는듯, 전화로 야단 방귀를 뀌어 댔더니,
어라?
아니나 다를까?
그 어느 때에도 그렇게 빠르게 주지 않던 약속 시간을
그냥 그 날 바로 주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 엄살 시험을
다시는 결코 쓰지 않았다.
양 치는 소년 이야기처럼, 자꾸 그러다, 더 급한
이들이 혹 그렇게 마냥 뒤로 밀려 나서 기다리다,
혹시 죽어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내 마음 안에 훅! 들어 왔기 때문이다.
느려도, 우리 한국같이 너무 빨리 빨라도 늘 문제인
것 같다.
시간을 느긋히 우리가 조정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번은 캐나다에서 아주 이른 새벽인데, 전화가
한국서 걸려 왔다.
의붓 고모의 딸의 딸이 왜소증(난쟁이 병)으로 태어난
것 같은데,10여년만 한국을 처음 가니, 그 아이를
데리고 고모와 그 동생이 데리고 나왔다.
우리 집안에는 역대로 그런 희귀 유전자가 전혀
없는 것으로 기억 하는데, 아마도 남편, 그 얘의
아버지 집 안으로 그런 병력이 있는건지,
워낙 우리 나라에도 흔하지 않는 경우라, 참 내
마음 안에도 만감이 교차하고, 마음이 시끄럽고,
부담스러웠던 건 한 사실이다.
그러나 왜소증은, 치유 시켜야 하는 경우 보다는,
대비해 주는 정신 세계를 더 신중히 고려 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어,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도 아마 나의 그런 주의 집중(Attention)을
마음 안 원하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들긴 든다.
서방 세계에 나와 치유 받아 보라는 그런 권유 같은
기대들을.
내가 외국에 사니,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아이를
치유 했으면 하는 전화였다.
너무 꼭두 새벽 한 밤중 잠 결에 난데없이 받은 전화
이기도 했지만, 상황 그대로 정직히 이야기 했다.
“우리 한국이 북미며, 유럽 의료
제도를 다 양 편에서
받아 들이고, 그 학문의 영역을 더 잘 발달 시켜,
한국 의료진들이 훨 낫다”고
이곳이나 영국은 ‘사람 잡는 의료진들’로 불릴 정도로,
엉망이고 진창이니, 잘 생각해 보고, 한국에서 그냥
치료를 받는게 더 낫지 않겠니? 하는 충고였다.
섭섭 했는지, 그 뒤 단 한번도 연락이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왜소증이라는 병명이 치료해야 하는 병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정체성을 바로 마음 안에 잘 잡고,
건강하게 살아 나가야 하는가를,
더 잘 돌보고
가르쳐야 하는 경우인 것을, 나는 어쩌면
너무나도 더 냉철히, 현실적으로 생각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들은 좀 치료 받아 보고 싶고, 혹시나 하고
많은 기대와 소원들을 품어 보는게, 그게 부모이고
가족
이겠지. 하긴. 지금 와 돌아 생각해 보면.

이번 이 의료진들의 의료 행위 중단 시위등의 보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나는 개인적으로 든다.
무슨 이유들로 그런 파업들을 하고 야단들인지, 나는 그 내막을
잘 모르고, 또 별로 알고 싶지도 않는 한 사람이다.
티비를 보다 보니 뭐 영리 의료 반대등등 현수막에 적힌,
내 이 31년 외국 삶에 그런 외래어 한 문자 사자 성어등이나
그런건 난 이젠 빠른 해석이 한참 어렵기도 해, 영문을 더
모르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이나 노조, 촛불등 우리 나라에 너무 깔린 그 시위
들에 나는 이젠 너무 피곤하고 지치기도 해, 그 해석을 구태여
일부러 찿아 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나라 의료인들은, 전 세계 그 어느 나라 보다도
그래도 아직은 대접 받고, 특수 계급인 의료진들로서, 무슨
이유가 됐건 좀 더 양보하고,
유럽처럼 되기 전에, 참된 의료인들의 바른 양식을, 마음 안들
좀 가질 일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의 의료진들은 아직은 잘 누리고, 잘 쓰는
한국의 한 특수 계급들 아닌가?
못 누리고, 못 가진 힘든 사람들에 비하면.
의과 대학 다닐 때 더 길게 공부 했다고?
더 학비도 많이 줬다고?
잠 못 자고 허덕이며, 어렵게 고생하며 공부 했다고?
수술에, 응급실 인턴, 레지던트에의 그 불안과 두려움의
긴 세월을 너가 아느냐고?
그래 나도 다 해 보았는데,
그리고 우리 아버진 종합 병원 이사장이었는데,
그래도 우리 의료진들은 아직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 한국에선 특수 계급.
대접 받고, 인정 받고, 안정 되고, 누리고, 가지고 등.
조금 불편하고, 조금 짧아도, 그런 것쯤은 이 사회의
못 누리는 층들에게로 좀 돌리고, 양보 할수
있는,
가지고, 누리는 자로서의 양식과 양심들쯤은 좀
있어야 하는거 아니니?
의료진들은 배 부른 돼지들이 되는 것보다도,
섬기고, 양보하고, 나눌
줄 아는, 흘러 내 보내는 걸
먼저 배워야 하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해
보는 것이다.

하긴 우리 아버지와 새 엄마는 그런 도덕과 양식을
갗추지 못한, 의료인의 바르고, 귀한 정신을
채 갗추지
못하고, 종합 병원을 통해, 돈만 벌려다,
날마다의 노조의 병원 앞 농성과 데모와, 할아버지가 평생을
모은 전 재산 토지, 산등을 다 말아 잡수시고, 거지가 되어
파산해 쫓겨 났었다.
의료인들은 적어도 양식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또 본다.
그래 세상에 덕을 베풀지 못 하고, 너무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데에만 급급해 미쳐 날뛰던, 우리 아버지와 새 엄마의 병원의
흥함을 위해,
나는 단 한번도 내 입에 그 병원이 흥하라고,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 하는 누와 죄를 범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의료인들은 귀한 한 영혼 영혼들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하고도,신성한, 신뢰 받은, 한 성직과도 같은, 아름다워야
하는 직업이라고 나는 믿고, 또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의료 정신과, 나이팅게일의 돌봄과
섬김의 정신이 참으로 아쉬운 한 시대이고, 시간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