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4.03.23 아지랑이와 봄 종다리가 있는 들판. by 텃밭지기와 상담
  2. 2012.09.06 어디까지 터지지 않고 견딜수 있겠는가?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삿짐을 다 보내고 나니, 당장 처음 이 곳 왔을 때, 한 달을 

카펫트 위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자던, 그 원점의 형태로 다시

돌아 와, 그렇게 바닥에서 자자니 온 몸이 다 고이고, 아파

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해운으로 짐이 도착 할래면 한 달 반이 시골이라 더 오래 꼬박

걸린다는데, 침대 없이 딱딱한 방에서 잘 걸 생각하니, 참 한심

하기 그지 없다. 



한국에 도착하면 요단을 쇼핑해야 하겠지만, 이젠 요단도 난 

딱딱해 잘 못 잘 것 같다. 침대가 있어야지 이젠 잠이 오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니. 천하에 조선 여인인 내가 다.


아침 일어 나면 머리가 쑥대밭이 되어, 봄 종다리가 거기 집을

지어도 되겠다 싶게 어지러져 있고, 얼굴은 그야말로 호박처럼

퉁퉁 부어, 내가 얼마나 밤새 잠을 설치며, 힘들게, 괴롭게 잠을

이루었는지를 이미 알수 있다.



오늘도 새벽 4시 일어나 커피 마시고, 이른 아침 밥 해 먹고,

샤워에 아마 다닥 다닥 붙은 이 가옥 구조에서, 이웃집들이

아마 돌기 직전의 시끄러움이리라 생각 하니, 고양이 발 걸음에

수도를 트는 것도 늘상 조심스럽고, 죄송하고, 미안한.



몇 일만 더 기다려라.


이젠 소음을 얼마든지 흩뿌려도, 마늘 냄새를 온 공기 속 그득

하니 요리를 해도, 전혀 정죄감 없는, 나는 자유스러운 땅 집에서

살게 된다.


이 지겨운 다닥 다닥 붙어 늘 소음도, 냄새도 조심스러운 이 지겨운

도심의 스트레스를, 난 만방에 한 주먹감으로 이젠 나의 삶 안에서

삼천리 밖으로 쳐 날려 불어 흐트려 버릴테다.


그것의 상상은 자유고, 가뿐이고, 날을것 같은 기분 좋음이다.



이젠 청국장도 마음대로 퍽팍 끓여 바글 바글 계속 조려 보고,

마늘은 이미 대학원 마친 뒤, 후론 엄청 먹으며, 나의 항암과

면역 기능을 증강 시킨지 이미 오래지만,복도로 삐져 나갈 그

썩는듯한 악취의 청국장은 차마 외국에서는 못 먹은.


영국 케임브리지 집이 땅 집일때, 청국장을 난 약 2년여를

줄창 자유하게 잘 끓여 먹으며, 너무 기쁘고, 자유 했던 좋고,

아름다운 한 기억이 있다.



이제 내 고향 옛 내 집에 돌아 가면 꼭 그렇게 먼저 할 것이다.

마당에 엄청난 양의 꽃들을 심고, 텃밭에 왼갖 푸성귀들을

잔뜩 심고, 청국장을 띄우고, 젓갈을 담고, 


그리고 제일 먼저는 난 지금 아부라기 볶음이 너무 자주 먹고

싶고, 먹고 싶고, 또 먹고 싶다.




시베리아에서 파송 교회가 있던 영국 런던을 나오면, 늘 사람들은 

나에게 산해 진미를 대접 했었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에서 문명으로 

나온 나의 가장 늘 먹고 싶었던 건, 그런 산해 진미가 결코 아니었다.


난 그때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버거킹의 워퍼와 피자 헛의

피자 한 판이 늘 제일 그리웠었다.




그래 그런 부자 부자 왕 부자들인 고루 거각 장로님들 집,

권사님들 집들을 조용히 늘 빠져 나와, 나는 혼자 KFC 와

버거킹의 워퍼를 조용히, 그렇게 늘 쇼핑 후 즐겼다.





이번은 부산 어묵으로 풋고추 꽈리 고추, 꿀, 마늘, 멸치 

넣어 반질 반질 볶아낸, 그런 남도의 아주 서민적이고, 

촌스런 그 아부라기 볶음을 어서 가 한국에서 해 먹어야겠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심리가 참 이상한 건, 외국에서는 이렇듯

우리 한국의 몇 특정 음식들을, 그렇게들 뼈가 사무치게 그리

다가도, 정작 한국에 가면 이런 것들 전혀 먹고 싶지도 않고,

절대 다시는 찿지도 않는다.


그리곤 울화통 터지게도 난데없이 미국 코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먹던 그 햄버거가, 한국 한 복판에서 갑자기

늘 먹고 싶다는 , 그 울화통 터지게 하고, 사람 홧병 나게 

하는, 이 뒤틀린 심보들과 인간의 간사한 욕구여.



사람이 무엇이든 가질수 없고, 누릴수 없다는 사실 앞에,

그 욕구와 갈망들이 더 간절해지는 묘한 한 우리 심리인 

것이다.


늘 많은 고립된 장소들에서 우리들에겐 '금면' 이라고 불리던

라면을, 4개월-6개월 씩을 한국에 있는데, 단 한개도 안 먹는

나를 나는 심히 증오하고 저주 했었다.



이 땅에 가 있으면, 저 땅이 그립고, 저 땅에 가 있으면, 또 이

땅이 그리운 우리 심사와 그것은 매 한 가지다.


난 유럽이라는 대륙을 약 20년 후 떠나 북미로 옮겨짐을 당할때,

유럽 대륙에 대한 정을 떼려, 한 달을 노력하고 또 노력 했다.

그래서 북미에 와, 유럽을 그렇게 많이 전혀 그리워 하지 않을수

있었다.


이제 북미를 나는 철저히 내 마음 안에서 온전히 내려 놓으려

노력한다.



어제, 그제, 그 그제, 그리고 더 수 많은 날들을 많은 사람들이

나의 떠남을 아쉬워들 하며 가면서, 눈물들을 많이 흘리고들

집으로 돌아들 갔다.


그러나 나는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단 어느 누구 하나, 한 사람에게도.


이토록 나는 이제 정 떼기, 이별에 익숙해져 있고, 강해져 있고,

무덤덤해져 있는 것이다.


울어야 할 그 아무런 이유들도 거의 난 못 발견하게, 그들은 나를

정말 그 수 많은 상담 셋션들로 괴롭히고, 힘들게 할만큼 했고,

또 괴롭히고도 또 괴롭혀 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떠남이 너무 홀가분하고, 가뿐하고, 경쾌하고, 

자유롭다. 그 지겨운 문제들 투성이의, 잇슈들 투성이의 사람들 좀

당분간은 좀 안 봐도 되닌까.


그리고 자연과 벗하고, 산과 들과 꽃들과 맑은 공기들과 봄 아지랭이와

종다리들 소리를 44년만 다시 처음처럼 들을수 있는 들판에 서게 될

테닌까.


그래서 다시 이 아침, 내게 인생은 다시 아름답다.

 


양 희은의 '들 길 따라서' 가 내 마음에 있는 아침.


들 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 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내가 가기 전 우리 한국 산야의 창 꽃이 제발 지지 

않았으면 싶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울화통이 터져 홧병이 도질려고 하고 스트레스로 뒷 목이 다 뻣뻣해

지는 판, 분지인 이 곳은 정말 더워 집에 가면 이 힘듦이 지뢰처럼

폭발해 버릴것 같은 판국.


그 역겨운 냄새를 또 풍기며 여지없이 그 짐승의 소리 같은 이젠 

무서움증이 다 와락 들어 오는 존재가 등장함이 등 뒤로 느껴지고

뭔가가 내 의자를 치는 걸 느끼며 무슨 물건을 떨어 뜨리나 했다.


그리고 앞으로 와 굴러온 공을 주워 달랜다.   

이 마음의 힘듦 과정 속에서도 이젠 싫어 해야 할 기력도 안 남아

있는데도 낙신 두들겨 패 주고 싶을 만큼의 싫고도 지겨움이여.


그 지저분한 냄새는 이 근경을 다 지금 진동을 하고 있다.

나는 이런 사회 안 문제아들을 사랑하지 못 한다. 

그 지겹고 싫음이 기독 양식과 지금 엇갈리며 날 지금 더 힘들고

어렵고 혼란스럽게 한다.


어디까지 용납하고 어디까지 참아 주어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그냥 기본적인 것들은 했다고 말할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런 것들로 시달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 와중, 이 판국에.


코를 비틀어 짜 막으며 몇 시간을 견뎠다.

내 안의 모든 시궁창이 다 뒤집어 올라 오는듯한 부아와 화가

서서히 괴여 오르기 시작 했을 그 때 난 결국 자리를 옮겼다.

2층에서 3층으로.


너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니?

울고 싶은데 정작 눈물은 안 나오고 속으로부터 악이, 부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어쩌란 말이냐?

그 썩은 악취나마 안 나니 이젠 좀 숨을 들이 쉬어 쉴수 있을것 같다.

아!  이 인생의 고달픔이여 !

다 마치고 끝내고 싶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