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4.03.27 금문교의 샌프란을 지나면서. (1) by 텃밭지기와 상담
  2. 2013.11.26 땡긴 추수 감사 잔치 by 텃밭지기와 상담
  3. 2013.08.04 손목 건초염 by 텃밭지기와 상담
  4. 2013.07.07 해나 by 텃밭지기와 상담
  5. 2013.06.25 낙하산을 챙겨준 사람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6. 2012.10.09 시험, 그 놈 참! by 텃밭지기와 상담
  7. 2012.08.23 마무리 잘 하는 삶을 살아 드리는 지혜 by 텃밭지기와 상담
  8. 2012.08.22 가난과 무지는 원님도 못 막는다고 한 우리 할머니 말씀 by 텃밭지기와 상담
  9. 2012.08.22 죽음과도 같은 꿈 속....감사, 찬양 by 텃밭지기와 상담
  10. 2012.05.13 작년 농사는 대 풍년이였습니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모든 문화의 집산지요, 왜 샌프란 하면 늘 째즈가 생각 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성 소수자들의 극심한 운동이 존재하고, 

금문교가 밤이면 아름다운 샌프란을 거치며, 이곳서 아침 

커피를 마시고 쉬고 있는 중.


자주 와 본 문화 도시인지라 낯설지 않은 한 익숙한 도시이다.

낭만과 문화, 멋과 날씨가 예쁜 한 도시.


이제 이런 서구의 도시들의 특유의 정취들을 이렇듯 즐기고,

여유를 보이는 삶은 다시는 내게는 아마 없을 것이다.



터미널을 긴 긴 거리를 따라 걷는데, 나이가 정말 더 많이 들면,

여행 하기도 힘들겠다 싶다.

그 긴 트랙을 나이 들어 힘들면 어떻게 다 관리하고, 여행을 

즐길수 있겠는가?


그래 나는 커피도, 아침 식사도, 한껏 즐기면서, 마지막 서구

세계의 정취를 즐기고 있다.



고마운 이들에게 감사의 편지들을 다시 한번 보내 보고,

그들을 다시 그리워들도 해 보고, 내가 그들에게서 이젠 

멀어져 왔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한다. 


난 내 고향, 내 조국으로 가까워져 가고, 그들은 그들의 땅에

그렇게 남아 살아 가겠구나! 하는 때 늦은 이별의 실감들인 

것이다.



31년 간의 이 이방 땅들에서의 교제들과 코이노니아들을 

인해서 감사하고, 그 많고도 많은 아름다웠던 이들을 인해서

감사를 그 분께 올려 드리면서.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추수 감사절 이틀전 미리 추수 감사절을 축하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기 위해 이 사역의 패밀리 테라피를 전 가족이 거치고,

지금 건강한 회복으로 가고 있는 가족 전체가 집을 방문해 

오셨다.


바리 바리 음식들을 장만해 들고서 오셨다.

알맞게 익은 각종 김치들 여러 통, 잡채, 은행 넣은 찰밥,

과일, 녹두 빈대떡, 등등 등등 다 셀 수도 없는 종류의 음식

들을 바리 바리 요리해 준비해 오셨다.


내가 아주 사랑하는 서울대 물리학과 수석 졸업하고 동부에서

박사 학위 후 이곳 내 대학원서 또 다시 공부하는 여자 전도사

님도 난데 없이 조금 후 방문.


이 서울 대학 동문들이 함께 이 상담을 수 개월간 함께 거쳐간

적이 있다. 내가 정말로 아주 예뻐하는 익은 벼의 형상처럼,

최고급 인텔리 지식인이면서도, 한 없이 온유하고 겸손한 가정

이고, 그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도 마찬 가지다. 


역시 사역은 그 사람 됨됨이의, 인격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음을 보여 주는 좋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한 사역자 부부.


자르륵 윤기 나는 맛있는 찰밥에 잡채, 기가 막히게 맛있게 익은

김치들에 우린 정말 맛있게 이렇게 이른 추수 감사절을 미리

보냈다. 


그날 당일에는 다 그 많은 이 사역을 거쳐간 자들을 다 호스팅 

할수가 없는 것들을 알고들 이렇게 미리들 온 것. 


감사들을 표현 하고들 싶으셔서 들이다.


나도 그 분들 모두들에게 감사한다.


가장 크게는 우리 주님께고.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손목 건초염

아니면 말고 : 2013.08.04 16:51



어느 날 옹색하고 작은 불편한 가위를 들고, 하루 종일 무언가를 

자르는 작업을 하고 났더니, 정확히 이 사진의 같은 부분이 아주

아프기 시작해, 지금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더 심해져 아프다.


이 손목 통증의 원인이 손목 건초염이란다.


그동안 압박 붕대도 감고 다니고, 파스도 붙였으나 차도가 없다.


하와이 살 때, 동생 죽고 한국에서 내 몸에 수술을 한 후, 

수 간호사 였던 동생 아내, 올케가 내 팔에 주사를 잘못된 자리에 놔, 

염증이 생겨, 정말 죽도록 아파, 눈물을 발발 흘리다, 카이저 보험 

회사 병원에 치료를 위해 다닌 적이 있다.


쌧뼝아리 돌팔이급 초보 의사들이,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아무런 치료와 해결책을 못 찿고 오랜 시간 헤메다, 결국은 자신들의

가장 보스 의사에게로 나를 이송 시켰다.


그 중년의 은혜로운 얼굴을 한 여 의사가 손목에 뭔지 주사를 놓고,

나를 재활 센터에 보내, 고무 찰흙 같은 것들도 계속 주물러 팔에

힘이 생기게 하고, 정말 보험으로 되는 거의 공짜의 치료였지만,

"햐! 미국은 정말 이런 치료들 성심 성의껏들 정말 잘들 해 주는

구나!"하고 감탄하고 나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땐 그게 다행히 왼손이어서 견딜만 했는데, 이번엔

오른손이라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기능을 못하고 오래이다 보니 더 힘이 없어지고, 굳어 가는 것만

같기도 해, 붕대를 풀고 가끔 문질러 주고, 맛사지를 아주 가끔 해

보기도 하지만, 전혀 나을 기세를 보이질 않고 있다.


그동안 소염제 진통제도 먹어 보았고, 휴식도 겸해 보았으나,

나을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을 이러다 영영 못 쓰게 퇴화시켜 버릴까 봐, 심히

걱정이다.


지금은 이렇게 독학으로, 치료법들을 한번 찿아 보고 있다.


오른손이 이렇듯 아프다 보니, 젓가락질도 안되어 숫가락으로

밥을 먹고 하면서, 그 동안 이 손 하나만도, 평생을 아무 탈 없이

그렇게 썼다는게,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인지를 실감

하고 새삼 내 삶을 다시 돌아 보며, 이렇게 큰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해나

Role Model : 2013.07.07 10:22



나가 35개월의 기나긴 투병 생활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갔다는

슬픈 소식을 오늘 아침 접하다. 3년 짧다면 짧은 생이라고 말할수 

있었겠지만, 튜브로 연명하며 수고하고 생존의 강한 욕구로 늘

그렇게 씩씩히 서던 우리 해나에게는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염 문제등 수술 후기 많은 넘어야 할 산들을 끝까지 잘 싸우던

귀한 아이였는데.... 수술 후기 2차 감염의 문제였는지 무엇인지

아직은 알 길 없는 그 한 턱의 길목을 채 못 넘지 않았나 싶은.


해나 어머니는 "이제 주사도 검사도 수술도 튜브도 썩션도 없는 

곳에서 마음껏 숨 쉬며 자유로이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 밝혔다.

이어 "35개월이란 짧은 시간을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아름답게 

살아온 사랑스러운 우리 딸.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사랑을 알게 해

준 작은 천사 해나. 고마워. 이렇게 고마운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나게 해줘서. 


더 많이 사랑해 주고 더 많이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 

함께 하지 못한 게 너무 많아 가슴에 사무치지만 우리 집만은 

꼭 데려갈게. 

나의 작은 천사. 해나. 고맙고 사랑해. 영원히"라고 적었다. 


해나는 생존을 위해 잘 이겨내 온 우리 아이라는 신뢰 속에 

회복을 굳게 믿던 엄마의 다짐과 각오가 눈에 선한데, 

엄마, 아빠의 그 가슴이,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를

생각하면, 우리 인간의 말로서는 그 아픔과 슬픔의 양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이 튜브 빼고 싶니?" 하니 그 어린 아이가 그렇게도

고개를 힘있게 흔들면서, 소망을 이야기 하던 아이인데.


수술에, 주사에, 미국 새 병원에 말도 못 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

뜨리며, 아프다고, 하지 말라고 손 사래들을 치면서, 미국 새 병원 

또 들어 가기 싫다고, 한국 병원 구급차를 타기 싫다고 소리도 못 

내며 그 고통과 아픔, 두려움들을 홀로 홀로 처절히 싸워 내고 

이겨 내던 너무 어렸던 우리 아이가 생각 나 가슴이 미어지고 

스러진다.

 

앞에 드레스들을 늘어 놓고 미국 갈 시 어떤 드레스를 입을까를

고르라니, 그 작은 손가락을 머리 한편 대고 고심하던, 우리 

예쁘고, 귀엽고, 총명하던 해나가 이 세상에 많은 아름답고도

선한 교훈들과 멧세지들을 산 자들에게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삶은 살아 보려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

병상에서도 삶을, 소망을, 꿈을, 미소를 이 세상에 줄 수 

있다는 귀하고 강한 멧세지등을 이 세상에 남겨 주고, 

우리 해나는 그렇게 갔다.


엄마, 아빠, 언니의 자켓 쟉크를 늘 올려 주며 안녕을, 마지막을

떼 쓰지 않고, 순순히 예쁜 빠이를 늘 그렇게 밝게 하며 보내 주던

우리 해나를, 이젠 식구들이 그렇게 순순히 보내 주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린....




스웨덴애서 와 준 그 고마운 의사 분 파울로, 캐나다에서 모금해 

준 수많은 동민 주민들, 한국 병원에서 우리 해나를 자식처럼 

밤 낮으로 사랑으로 키워준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 사랑의

감사를 우리 해나 대신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부모님에게도 깊은 영역의 치유가 어서 빨리 찿아 깃들길

기도 하면서, 자식은 가슴에다 고히 묻는다는데.....

우리 해나를 잠깐 만난 나의 가슴도 이렇게 함께 스러지고 

무너진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미국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찰스 플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당시 75회의 전투 임무를 수행한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였지요. 


그런데 76회 출격 때 그만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가까스로 전투기에서 탈출하여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목숨을 

건졌지만, 적에게 생포되어 6년 동안 베트남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현재 미국 전역을 다니며 그때의 경험을 강연하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강연을 성황리에 끝내고 잠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아는 체를 했습니다.


“아, 플럼씨 맞죠? 


항공모함 키티호크에서 전투기를 조종했던 그 날 출격한 

다섯 대의 전투기가 모두 추락하고 말았죠. 

당신만 살아남았어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요?”


“내가 바로 당신의 낙하산을 수리하여 비행기에 실었던 

사병입니다. 낙하산은 잘 펴지던가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항공모함에는 낙하산을 수리하거나 전투기에 기름을 칠하는 등

 
비행기를 정비하는 계급이 낮은 병사들이 있습니다. 


계급이 높은 전투기 조종사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때론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플럼은 결국 자기가 무시했던 그 사병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 뒤로 플럼의 강연은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낙하산’을 챙겨준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감시하고 

고마워하는 내용으로 확 바뀌었답니다.

우리들의 삶에는 분명 여러 종류의 낙하산이 필요합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가져다 주는 낙하산 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내가 그 낙하산을 챙겨준 사람들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낙하산을 챙겨 주었는데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감사를 드리면서 살고 있나요?



- 날마다 행복해지는 책 (조 명연, 정음) 중에서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시험, 그 놈 참!

박사 : 2012.10.09 21:00



Mid-Term Exam. 을 잘 보고 왔는데도, 돌아 오는데 웬지 울고 싶었다.

이상하다 늘. 시험을 보고 나면 항상 이렇게 곧 울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그 진액을 화하는 강력한 날마다의 공부에, 스트레스에 그런 

것들이 왼통 다 풀어지면서 그러는 것 같다.


정말 팔만 대장경만한 크기의 방석만한 책들을 이 잡듯이 낱낱히

파 헤쳐 외우고 익혀, 본 시험이니 물론 잘 보았는데, 이렇듯 그

오랜 동안 긴장한 시험들을 다 끝내고 돌아 오노라면 늘 허전하고

마음이 이렇듯 아프면서 허무하다. 


지네 나라 말로 해도 미국얘들은 공부를 그렇게 안하니 정말 

그야말로 낑낑 거리고 인상들을 쥘락 펼락하며 고통스러워 하며 

몸들을 비틀고 앉아 있는데, 너무 일찍 써 내고 나오는데 내가 

뭔가 잘못한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난데없이 밀려 오고.


허리, 등 꼬리뼈가 휘도록 날마다 하루 종일 도서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외우고 파고 한 시험 공부 였으니.....

내 나라 내 말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보다 몇 십배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서는 이런 심리학 높은 수준의 전공 서적들을

공략하고 정복 할 수가 없으니, 난 정말 니네들 패댕 패댕 

놀 때 죽을 욕을 보며 공부 했다 요것들아! 하구선 팽! 그냥 

강의실을 뒤로 박차고 나와 버렸다.


왜 이렇게도 남의 말로 이런 고단위의 학문을 하기가 어렵고도 

힘든지 아마 그래서 나오며 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20불 책 값 절약 할려고 2주를 날마다 두 시간씩 가져다 주고 

다시 빌려 오는 기가 막힌 공부를 이번 해야 하면서, 내가 시험을 

잘 쓰고 도서관으로 들어 오니 온 리셉션 아르바이트 대학원생

들이 다 들 한결같은 인사다. 


" 시험 잘 봤군! 너 얼굴 보니!...."

"한 방에 날려 줬지.....음하하하 !!"



이제 좀 놀고 쉬고, 

또 하루 휴식 후 공부 시작하자.

삶도 이렇듯 신실히, 꾸준히 가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주신 기회, 부탁 하신 일들, 그 분앞 신실히 해 드림은 

나를 향한 그 분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나의 한 보답이고 

감사인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지난 해 여름부터 9월 졸업 논문을 쓰기 시작 하기까지 슬럼프에 

빠진 내 내면 상태를 해결 하느라 한국 연속극들을 지난 30년 못 본 

것 집에서 다 보고 그 드라마 시청의 막은 올해 봄으로 완전히 그 

막을 내렸다. 


다 섭렵하고 내가 보편화 시킨 타당성은 난 한국 사람들을 많이 

상담하기 때문에 내가 떨어져 있던 지난 30년의 세월을 상회 

할려면 한국을 다시 돌아 가지는 못하지만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우리 한국인들 마음을 잘 이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말 난 시시비비한 그런 저런 일상사들의 이야기며 들을

보면서 잊고 지낸 우리 한국 문화를 다시 새로 들여다 보며, 많이 

울고, 웃고, 공감하고 그리워하고 하며 우리 민족과 나라, 그리고 

사람들의 그 나와 너무나 비슷하고 같은 정서들을 보며 참 좋았다.


그리고 1월초부터 본격적으로 졸업 논문 쓰기에 들어 가면서 4월초

쯤엔 글이 써지지 않는데도 다리가 퉁퉁 붓도록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논문을 써 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며  그렇게 방에 

6개월을 고스란히 갇혀 지냈다.  


창살 뒤 격리된 한 58년 개띠의 한 반려견같은 초상화 속, 살아

남아야 겠다는 외부로의 소통의 방법이 어느날 문득 Facebook

이었다. 


올 한해 초반 약 3개월이 지났을 때 난 그 외부와의 소통의 위기

의식을 절대적으로 체험하고 나누지 않으면, 토해 내지 않으면 

안되는 이 절대적인 외로움과 고적함을 FB와 Blog를 통해 해소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글 잘 쓰는 사람들, 삶에 멋과 미를 가지고 초연히

사는 멋진 사람들을 목말라 하며 여기 저기 찿아 소통하고 싶어

했고, 그들의 글들을 통해 그 사고 속에 흐르는 것들을 친구들로

공유하고 싶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많이 시달렸던 것 같다.


그 수 많은 사람들의 전반적인 공통점들은 시골, 산야, 깊은 골

등에 박혀 사는 사람들이란 걸 알고 깨달은 건 그것도 한참 뒤의 

일이였다.


그리고 난 약 3-4명의 그런 좋은 나의 정서를 적셔 줄수 있는 마음

편해지는 귀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며 내 가슴 속 뭉친 내 조국

에의 향수와 인간이 인간과 나누고 싶은 정서적인 교감을 축이고

적실수 있었다. 



그리고 6월 나는 논문을 잘 마쳤고, 졸업에 참석해 정말 큰 선한

도전과 충격을 받으면서, 미국 유명 대학의 졸업 광경에 감탄해

마지 않았고, 정말 인상 깊게 미국의 학제와 경영들을 마음 안 높은

평가를 더해 주며 즐기고 존경했다.


우리 상담에서는 내가 얼마만큼 회복되고 성장 하느냐 하는만큼 

나의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수준도 깊이 들어가 보면 다 그 정도 

수준들이다. 이성을 만나 교제해도 그렇고 사회 생활 안 인간 관계

가 흥미롭고 매력을 느끼는 것도 잘 믿기지 않겠지만 거의 같은 

수준들이다.


특히 FB를 통해 난 나의 삶 주위 근경 아주 제한된 내 지적인 욕구

들을 거의 거기서 채워 주지 못하는 사람의 그룹들을 보며 좌절했다.

그리고 사회의 요소 요소 생각을, 정서를 참 풍성하고 부요하게 

가지고 느끼며 그 삶들을 풍요롭게 꾸며 가는 참 많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음을 Blog들을 보면서 크게 요즘 도전 받는다.



나의 삶을 좀 업 그레이드 시켜야 한다는 한 도전인 것이다.

정말 누구의 말처럼 사람이 가장 변화되지 않고 성장하지 못

하는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나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종결 시키는

이 장들 앞에서 이 신뢰함으로 맡겨 주신 삶을 잘 살아 드려야

겠다는 크나큰 도전을 날마다 받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잘 살아 드리는 것인지에 대한 윤곽과 지혜가 

나올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이 나는 너무나도 좋고 감사하다. 

그렇게 고뇌하고 진통을 겪으며 고민하고 살았더니 이제 그

대답들이 보인다는 사실은 참으로 상쾌하고 감사한 일들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축복 하셨다는 한 큰 증거이고 자랑이다. 



‎"When we give God our worry, He gives us His peace. When we give Him our cares and concerns, He gives us His protection, stability and joy." Joyce Meyer



그래서 이 이른 아침 나는 학교에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 

포스트의 글을 새벽 일찍 정리해 보고 나의 삶을 훓어 내려

정리하고 생각해 보면서 때 아닌 듬뿍의 감사가 우리 주님 

안  이 이른 아침 있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오늘 아침 부엌에서 텃밭에서 거둬 온 푸성귀 남새들을 갈무리 

면서 이 우리 할머니 시대의 코멘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기숙사비 독촉 고지서가 켜켜히 쌓여서 밀리고, 전기세를 몇 달을

못 내어 급기야는 어제 텃밭에 다녀 오니 전기가 끊겼다. 


칠흙같은 어둠 속을 난생 처음 이 시대 안에서 살아 보며 참 망연

자실히 앉아 있다 많은 생각없이 그냥 눕기로 작정하고 자는데

내면이 많이 상하고 아팠었나 보다.


정말 가난과 무지는 그 어느 누구도 막아 내지 못할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지는 것인가?  이 신 시대를 사는 나의 대답은 단연코 

No !! 이다. 


가난과 무지는 원님은 못 막아 냈어도 현대에는 막아 낼수 있는

힘이 있는 시대이여야 한다. 나를 가르치시고 돌봐 오신 한 

교수님은 이젠 절대 그런 자원 봉사 기관에서 일하지 말라고

권고에 권고시다. 평생을 그 고생을 하고도 이게 무슨 짓이냐는

것이다. 이 말년에 이렇게 시리도록 고달프고 외로움이.....

특히 이 재정적 빈곤을 그 분은 아주 가슴 아파 하신다.


모든 행위에는 그 선택의 책임이 따르듯 나는 그 자원 봉사 

기관을 나의 일의 터전으로 이른 나이 일찌기 내가 스스로 

선택했고, 신 세대 지도자들이 부상해 밀려 오는 지금 이 

시국에는 결국은 이런 상황에 놓일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종국이었다. 결국은. 


그런데도 어쩔때는 이 세상 그 누구들인가가 자꾸 원망

스러워짐은 어쩔 수가 없는 인간 본연의 심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주의는 그렇다. 하나님 일을 하는데 재정이, 돈이

너무 사역자들을 비참하게 하는 큰 권위를 가져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조종은 그 상대편에 그 권위를 줘 버릴때 결국은 

그 힘을 가지게 되고 나의 삶을 좌지 우지 조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 폭염을 지나게 하시고 Fan 없는 어제밤은 너무나도 선선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천군 천사를 불러다 쓰라는 그 말씀처럼

자연을 선선하게 명하신 우리 주님의 임재가 내 방 안 함께

들어 오신 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불을 다 휘둘러 돌려 놓고 뒤집어 놓을 정도로 고통스런 밤 잠을

지샜나 보다. 꿈 속 정말 그 시린 아픔이 가슴을 할퀴는데 감사,찬양의

단어가 온 뇌리와 전 존재를 지배하며 꿈 속 그 두 단어를 아픔이

쏴아하게 파도처럼 밀려 올 때마다 그 단어를 부르짖다 일어나 앉아

시계를 건너다 보니 또 그 귀신처럼 정확한 아침 일곱시이다. 

늦게 자든 일찍 자든 내가 날마다 규칙적으로 깨는 그 일정한 시간.



그 두 단어를 다시  조용히 입안 읖조려본다. 내면이 많이 상하고

마음이 많이 알게 모르게 아팠나 보다. 어제 그 일들을 겪어 내면서.



이 상황들을 이겨 낼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은 이 두 단어의 

신비 속에 있는 전략들 밖에는 결국은 없을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난 그리운 한국의 TV나 뉴스를 자주 보며, 단 한번도 농부들과 

어부들이, 또 상인들이 늘 단 한번도 대풍이어서.....,풍어여서.... 

대박이여서..... 너무나  감사하고 좋다는 표현이나 고백에  늘 

너무 인색하고  박함이 조금은 자주 의아하고 짜증 나는 한 사람

이다. 생계가 달리면 하긴 전혀 쉬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싶으

면서도.



상추가 늘 제일 잘 큰다. 벌레가 먹으면 아파 죽는 성분이 들어 있

댄다. 그래서 벌레들은 상추를 먹지 못한다. 쌤통.....!!



                            내가 가장 좋아 하는 아삭이 상추.....

          다 내가 내 한국식으로 내 정서로 새로 지어낸 이름들.

               다 단정히 정리된 미국의 텃밭들이 별 정이 안 가듯

         이 푸성귀들의 미국 이름도 나에게는 나의 정서에 전혀

        와 감흥을 일으키는 정서를 못 유발 시키고 있는 이름들 

                           이기에......



                  작년 뒤집어 쓰도록 추수해 먹은 방울 토마토들.

             나중엔 주체 곤란......너무 많았다. 지겨워질 정도로.

           뭐든 적당해야 귀하다는 진리를 또 얘들을 통해 배운......


내가 길러본 악어 대가리 호박.

덤불을 들여다 보다 허걱! 하고 뒤로 거의 나자빠질뻔한 악어 

가리 같은게 거기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게 호박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은 이름.

다시 물리도록 먹고, 말리고, 나물 하고......에고.....정말 

지겨울 정도로 많았다.


그 외 수 십종의 야채들.....


작년은 거의 풍년이었다. 경마장서 운반되어져 온 이웃집 

데일 아저씨가 나에게 선심 써 한 수레 준 말 똥이 그 빛을 

온전히 발휘한 한 해. 


올핸 거름을 풀들을 썩여 내가 손수 만든 퇴비만을 사용.

뭐가 너무 많이나도 다 처치 곤란이어서....


지금은 .......


온 밭 미나리가 무서운 기세들로 온통 밭을 다 뒤덮고 있다. 

지난 30년간 우리 야채 못 먹은 나의 원한을 다 풀어 주려는

듯이..... 기특한 효자 녀석 같으니라구......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