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사는 이야기들'에 해당되는 글 86건

  1. 2014.03.27 공항의 밤. by 텃밭지기와 상담
  2. 2014.03.10 섬머 타임 시간을 바꾸면서, 생각해 본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3. 2014.03.09 여객기가 추락 할 때마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4. 2014.03.07 구글 지도로 찿아간 옛 집, 그리고 묵을 숙소 알아 보기. by 텃밭지기와 상담
  5. 2014.03.06 '여왕의 남자' 표현 듣고 제대로 빵! 터진. by 텃밭지기와 상담
  6. 2014.03.03 조용히, 느리게, 천천히 사는 법. by 텃밭지기와 상담
  7. 2014.02.27 접는 캠핑 의자에 대한 낭만. by 텃밭지기와 상담
  8. 2014.02.27 아름다운 봄비가 소록히 왔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9. 2014.02.26 저의 마음을 정케 하사. by 텃밭지기와 상담
  10. 2014.02.25 Nagging. by 텃밭지기와 상담
  11. 2014.02.25 암 투병. by 텃밭지기와 상담
  12. 2014.02.15 모르는 척 하는게 상책. by 텃밭지기와 상담
  13. 2014.02.13 깍뚜기 같은 삶. by 텃밭지기와 상담
  14. 2014.02.06 Baseball T-shirts....상실감(Sense of Loss)...우리의 작은 필요들을 만나 준다는 것. by 텃밭지기와 상담
  15. 2014.01.23 이사 준비로 폭탄 맞은 방. by 텃밭지기와 상담
  16. 2014.01.17 가던 발길을 문득 멈추고 쉬어야 할 때. by 텃밭지기와 상담
  17. 2014.01.13 득량만에 깃들다. 고흥 반도. by 텃밭지기와 상담
  18. 2014.01.07 추위 막아 내기 거위털 코트 마련. by 텃밭지기와 상담
  19. 2014.01.06 호랑이 사냥꾼으로부터 온 시베리아의 카나리아 새. by 텃밭지기와 상담
  20. 2014.01.01 부상 당한 패잔병처럼. by 텃밭지기와 상담
  21. 2013.12.30 가난과 빈곤. by 텃밭지기와 상담
  22. 2013.12.20 자연인으로 돌아 가 살 것 by 텃밭지기와 상담
  23. 2013.12.16 세상, 그대여! 안녕들 하신가요? by 텃밭지기와 상담
  24. 2013.12.09 사랑의 교제들이 주는 행복....그리고 한 다른 이면들의 아프고, 슬픈 이야기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25. 2013.12.06 한파가 밀려와 쨍! 하니 추운 겨울. by 텃밭지기와 상담
  26. 2013.12.03 치유(Healing) by 텃밭지기와 상담
  27. 2013.12.02 북미 인디언들의 보석 채굴. by 텃밭지기와 상담
  28. 2013.11.28 폭풍 세일 Black Friday by 텃밭지기와 상담
  29. 2013.11.27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by 텃밭지기와 상담
  30. 2013.11.23 추수 감사절(Thanksgiving Day)이 다가 온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9.11 사건 이후 모든 비행기는 검문 검색이 더욱 더 강화 되어,

두 시간 전 Check In 도 부족해, 3 시간전 공항 도착이여야 

한다는 이 망할 놈의 정책들 때문, 


6시 비행기를 위한 새벽 3시 이곳 도착은 집에서 적어도 2시에 

출발 해야 하는 고충상,


저녁 9시 집을 나와 이곳 10시 도착해 지금 새벽 1시 40분.




어디를 간들 이 직업 의식을 어딘들 도망할수 있으리요.


한 난데 없는 마추 피추 페루 여자가 실연에 가슴 아픈 하소연을 

나에게 풀기 시작해, 사전 찿아 가며 그 하소연에, 푸념에 그 버벅 

거리는 영어 들으며, 상담 하느라 나 그냥 돌아 가시는줄 알았다.


이런 버벅 거리는 영어로 하는 상담은 더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래서 많이 슬프니? 하니 눈물을 뚝뚝.



독점적이고 학대성이 강한 구두쇠 미국인 남자를 홀로 더 많이

사랑해 다치고, 마음이 상한 아픈 이야기였다.


4 시간을 그렇게 이야기 하다 지금 옆에서 지쳐 잠이 들어 있다.


그 버벅 거리는 영어여도, 원칙들을 밝히 이야기 해 주면,

눈이 반짝 반짝, 어떻게 넌 그렇게도 모든 걸 다 잘 아니? 하고선

야단 법석이 늘 난다.


내 평생 직업이 그건데 왜 그걸 모르겠니? 싶지만, 여러 말을 더

섞고 싶지 않아 패수.



3시간여의 감정을 다 흘려 내 보낸 그 여자는 가방을 주섬 주섬

뒤지더니, 페루 자그마한 동전 지갑을 하나 꺼내, 나에게 정성

스럽게 선물해 준다.


정의감도, 카리스마도, 리더쉽도, 온정도 많은 여자가 흔히 

빠지는 행위 중독의 된 코에 걸려든 케이스로 마음이 아팠다.

남미의 그 그 들네 짐승 야마처럼 순진 무구함은, 이런 미주의 

중독성 강한 Hardcore 남자 얘들을 감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것.


경계선에 대해 이야기 해 줄 때, 그 여자는 그야말로 완전히 

무너진 나의 한 클라이언트 였다.



이제 2시간여만 지나면 체크 인으로 짐을 맡기고, 아침 커피

라도 한 잔 어디 마시러 움직여 봐야 겠다.

이 우라질 원시성의 이 공항은 자판기 하나 근처에 없어,

뜨거운 커피가 몹씨 고픈데도, 지금 이렇게 쫄쫄 굶고 있다.   


내가 지금 미국에 있는게 아니라, 마치 어느 아프리카 부쉬에 

있는 듯한 원시성.



그나마 마침 공항 Wi-Fi 가 대학원 기숙사 인터넷 보다는

잘 터져, 이 글질이나마 할수 있어 요행이고 다행.


무뤂도 아프고,시리고, 자고 싶고, 그나마 아주 따스한 Fleece

반 코트를 잘 입고 나와 춥지는 않고, 아주 따뜻해 좋다.


한국은 초 여름 고온이라는데, 이곳은 난데 없는 보슬비가

이틀째 연이어 오고 있다.


그래서 밤은 아주 춥다.


한 떼의 젊은 여행객들 얘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들을 아름답게

부르는 한 낭만적인 공항의 밤.


그거 괜찮네.

여행 하는 기분 푹팍 나서.


이렇게 늘 어딘가로 떠남은 늘 신나고 괜찮은 그런 기분.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미국의 섬머 타임 시간 변화가 시작 되는 날.

한 시간을 바늘을 앞 당겨 다 자리 맟춤해 놓는다.


'Day Light Saving Time'으로도 불리는 이 섬머 타임은,

내가 대학 시절 좋아하던 '면도날'의 작가 서머셋 모옴도 

웬지 다시 생각 나게 하고,


'썸머 타임' 하면 웬지 낭만적인 분위기와 뉘앙스가 

확! 내리 붓듯 느껴져 옴은, 나만의 해괴하고 기이한

한 느낌일까?

 

Anyway......!!



똑똑한 랩톱을 제외 하고는, 다 나의 손길을 넔 놓고,

멍하니들 기다리는 아주 능동적인 시계들 뿐이다.

 

이렇게 손으로 바꾸는 시간의 시계들이 집안에

시간을 바꾸다 보니 무려 5개나 된다.

 

영국 어느 전통 가게에서 산, 내가 평생 들고 다니는

내 모든 시계들의 가장 중심인, 작고 중후한 브라운

나무 시계.

 

마이크로 웨이브의 시계, 오븐의 시계, 손목 시계,

화장실 시계등등.

 


이 섬머 타임과 윈터 타임을 하면, 그만큼 전기등이

절약 된다니, 군 소리 없이 우리는 늘 따르지만,

참으로 웃지 못 할 많은 이야기들이 늘 형성 되는

철이 바로, 이 철 시계의 변화 시기 철들이기도 하다.

 

완벽 주의 늘 빈틈 자주 없는 나는 그런 에피소드를

내 삶 안 거의 만들어 내지를 않아, 이렇다 할 기억도,

이야기들도 없지만서두.

 


우리 한국의 의료진들의 파업 소식과 함께, 아이러닠

하게도, 2011 3월에 일어나 그렇게 부르는지 혼자

추정해 보는, 일본 대 지진 3.11 추모 행사가 함께 방송

되면서,

 

그 수나미 사고 속, 환자들을 잘 지켜낸 일본의 한

의사와 간호 인력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들이 지금

같은 시간 함께 진행 되고 있어, 보면서 그 대조에

마음이 웬지 씁쓰레하다.

 


의료 보험등의 전 국가 적인 제도로, 거의 택시 운전사

수준만도 스스로들 안 여기는 유럽의 의료진들은, 환자

들을 받아 치료하는 거며, 진료 속도가 거의 사람 잡는

수준이라고들 하며 늘 웃는다.

 

영국도, 또 내가 나중 가 산 캐나다도 모두 다 그

사람 잡는다는 의료 인력들이다.

 

자신의 시술 일자를 무한정으로 기다리다 그냥 죽어

가는 사람이 허다한, 그 의료 시스템을 비꼬아 부르는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에 살 때는 아이고, 나 금방 죽네 하고

곧 죽을듯 말듯한 엄살을 부려야, 마을 작은 병원

의사들이 진료를 서둘러 준다고 해,

 

정말 내 성질에 조금도 맞지 않는 그 짓거리를

정말 너무 많이 아파 그 엄살에, 수다를 곧 죽어

가는듯, 전화로 야단 방귀를 뀌어 댔더니,

 

어라?

아니나 다를까?

 

그 어느 때에도 그렇게 빠르게 주지 않던 약속 시간을

그냥 그 날 바로 주었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 엄살 시험을

다시는 결코 쓰지 않았다.

 

양 치는 소년 이야기처럼, 자꾸 그러다, 더 급한

이들이 혹 그렇게 마냥 뒤로 밀려 나서 기다리다,

혹시 죽어 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어느 날,

내 마음 안에 훅! 들어 왔기 때문이다.

 

느려도, 우리 한국같이 너무 빨리 빨라도 늘 문제인

것 같다.

 

시간을 느긋히 우리가 조정 하면서 여유롭게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번은 캐나다에서 아주 이른 새벽인데, 전화가

한국서 걸려 왔다.

 

의붓 고모의 딸의 딸이 왜소증(난쟁이 병)으로 태어난

것 같은데,10여년만 한국을 처음 가니, 그 아이를

데리고 고모와 그 동생이 데리고 나왔다.

 

우리 집안에는 역대로 그런 희귀 유전자가 전혀

없는 것으로 기억 하는데, 아마도 남편, 그 얘의

아버지 집 안으로 그런 병력이 있는건지,

 

워낙 우리 나라에도 흔하지 않는 경우라, 참 내

마음 안에도 만감이 교차하고, 마음이 시끄럽고,

부담스러웠던 건 한 사실이다.

 

그러나 왜소증은, 치유 시켜야 하는 경우 보다는,

대비해 주는 정신 세계를 더 신중히 고려 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아닌가 싶어, 그냥 그렇게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도 아마 나의 그런 주의 집중(Attention)

마음 안 원하셨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들긴 든다.

 

서방 세계에 나와 치유 받아 보라는 그런 권유 같은

기대들을.

 

내가 외국에 사니,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아이를

치유 했으면 하는 전화였다.

 

너무 꼭두 새벽 한 밤중 잠 결에 난데없이 받은 전화

이기도 했지만상황 그대로 정직히 이야기 했다.

 

우리 한국이 북미며, 유럽 의료 제도를 다 양 편에서

받아 들이고, 그 학문의 영역을 더 잘 발달 시켜,

한국 의료진들이 훨 낫다

 

이곳이나 영국은 사람 잡는 의료진들로 불릴 정도로,

엉망이고 진창이니, 잘 생각해 보고, 한국에서 그냥

치료를 받는게 더 낫지 않겠니? 하는 충고였다.

 

섭섭 했는지, 그 뒤 단 한번도 연락이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왜소증이라는 병명이 치료해야 하는 병인 것도

아니고, 어떻게 그 정체성을 바로 마음 안에 잘 잡고,

건강하게 살아 나가야 하는가를


더 잘 돌보고 가르쳐야 하는 경우인 것을, 나는 어쩌면 

너무나도 더 냉철히, 현실적으로 생각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들은 좀 치료 받아 보고 싶고, 혹시나 하고

많은 기대와 소원들을 품어 보는게, 그게 부모이고 가족

이겠지. 하긴. 지금 와 돌아 생각해 보면.

 


이번 이 의료진들의 의료 행위 중단 시위등의 보도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나는 개인적으로 든다.

 

무슨 이유들로 그런 파업들을 하고 야단들인지, 나는 그 내막을 

잘 모르고, 또 별로 알고 싶지도 않는 한 사람이다. 


티비를 보다 보니 뭐 영리 의료 반대등등 현수막에 적힌, 

내 이 31년 외국 삶에 그런 외래어 한 문자 사자 성어등이나 

그런건 난 이젠 빠른 해석이 한참 어렵기도 해, 영문을 더 

모르기도 하지만, 


정치인들이나 노조, 촛불등 우리 나라에 너무 깔린 그 시위

들에 나는 이젠 너무 피곤하고 지치기도 해, 그 해석을 구태여

일부러 찿아 보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나라 의료인들은, 전 세계 그 어느 나라 보다도 

그래도 아직은 대접 받고, 특수 계급인 의료진들로서, 무슨 

이유가 됐건 좀 더 양보하고


유럽처럼 되기 전에, 참된 의료인들의 바른 양식을, 마음 안들

좀 가질 일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의 의료진들은 아직은 잘 누리고, 잘 쓰는 

한국의 한 특수 계급들 아닌가?

 

못 누리고, 못 가진 힘든 사람들에 비하면.

 

의과 대학 다닐 때 더 길게 공부 했다고?

더 학비도 많이 줬다고?

잠 못 자고 허덕이며, 어렵게 고생하며 공부 했다고?

수술에, 응급실 인턴, 레지던트에의 그 불안과 두려움의

긴 세월을 너가 아느냐고?

 

그래 나도 다 해 보았는데,

그리고 우리 아버진 종합 병원 이사장이었는데,

그래도 우리 의료진들은 아직은 뭐니 뭐니 해도

우리 한국에선 특수 계급.

 

대접 받고, 인정 받고, 안정 되고, 누리고, 가지고 등.

 

조금 불편하고, 조금 짧아도, 그런 것쯤은 이 사회의

못 누리는 층들에게로 좀 돌리고, 양보 할수 있는,

가지고, 누리는 자로서의 양식과 양심들쯤은 좀

있어야 하는거 아니니?

 

의료진들은 배 부른 돼지들이 되는 것보다도,

섬기고, 양보하고, 나눌 줄 아는, 흘러 내 보내는 걸

먼저 배워야 하는 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해

보는 것이다.

 


하긴 우리 아버지와 새 엄마는 그런 도덕과 양식을

갗추지 못한, 의료인의 바르고, 귀한 정신을 채 갗추지

못하고, 종합 병원을 통해, 돈만 벌려다


날마다의 노조의 병원 앞 농성과 데모와, 할아버지가 평생을 

모은 전 재산 토지, 산등을 다 말아 잡수시고, 거지가 되어 

파산해 쫓겨 났었다.

 

의료인들은 적어도 양식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고,

또 본다. 


그래 세상에 덕을 베풀지 못 하고, 너무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데에만 급급해 미쳐 날뛰던, 우리 아버지와 새 엄마의 병원의

흥함을 위해, 


나는 단 한번도 내 입에 그 병원이 흥하라고,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 하는 누와 죄를 범하지 않았었다.


 적어도 의료인들은 귀한 한 영혼 영혼들의 생명을 다루는 

고귀하고도,신성한, 신뢰 받은, 한 성직과도 같은, 아름다워야 

하는 직업이라고 나는 믿고, 또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의료 정신과, 나이팅게일의 돌봄과

섬김의 정신이 참으로 아쉬운 한 시대이고, 시간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번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추락 하면서, 또 한번 다시 생각해

보는, 우리들의 한 자세에 대한, 켕김과 버거움이 존재하는

한 사항이 있다.

 

그건 우리 나라 사람이 타고 있느냐, 아니냐에만 늘 급급하는

우리 방송 매체들이나, 외교 계통 종사하는 자들의 태도들이다.

 

수 백 명, 수 천명 자연 재해가 난 곳들도, 늘 우리가 가장

급급해 하는 건, 거기 한국인들이 있는지 늘 그 조사이고

검토이다. 가장 먼저.

 


소련에서 일하던 한 사역자가, 지가 탈 비행기가 먼저 떠났는데

공중 분해 되고, 지는 뭐 하나님 앞 의롭고, 특별한 남겨 두심의

이유가 분명히 있고, 그 앞서간 비행기의 사람들은 다 아닌양,

 

참으로도 애매 모호하고, 이기적이고, 자신 위주로 써 보낸

지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고, 나는 가슴이 스러지는 절망감과

주의 사람들의 그 해괴한 믿음의 해석이며, 하나님 소개등에

분노 했고, 절망 했다.

 

한 마디로 전혀 양식이 안된 자들이 그런 일들을 하면서,

우리 하나님의 존재를 수치 스럽게 만드는, 가장 기본도

안된 인간 작자들인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사고로든, 자연 재해로든, 가장 우리가 먼저

취해야 할 것은, 내 국민을 찿는 그 사항이 아닌, 


그런 불의의 사고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생명과 삶에 대해, 

애석해 하고, 적어도 마음을 주고 해야 함이, 우리 인간의 가장 

기본 도리들일 것이다.

 


나는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우리 자라 나는 아이들이 저런

뉴스나 행정의 최우선권들을 두는 괴상한 가치관들을 평생

보고 자라면, 과연 우리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늘 내 마음 안에 있다.

 


이제 세상은 글로벌화 되어 있고, 우리는 그런 글로벌 대열에

같이 섞여 살려고 가장 많이 노력하는 한 나라가 아마 우리

나라일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인 잇속이나 그런 것만 글로벌화 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사고나 인명을 잃음등에서는 글로벌화된 인간적인

차원의 나눔들이 거기 전혀 존재하지 않는, 


기형의 글로벌화 의식을 우리는 지금 장애자들의 사고로 가지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나 잇속 이전들 전 먼저, 인종, 지역을 초월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안음의 기본 사고들부터 다시 한번 챙겨 볼 일들 아닌가?

 


내 가족이, 내 민족이 귀하면, 다른 나라 사람들, 같은 인간인

그 들도 저 편에 우리만큼 소중한 가족들이 있고, 같은 인간들인

것이다.

 

제발 이 이기적이고, 개인 주의적인 사고들에서, 온 세상 인간

영혼 하나 하나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고, 거두어 마음 안에

품는 그런 건강하고, 


성숙한 글로벌화된 우리 민족으로 좀 성장해 갔으면 싶은 기도가, 

내 마음 안에 요즘 아주 강하게 있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여러해 만 구글 지도로 내 옛 집을 찿아가 들러 본다.


약 10여년 전 내 옛집을 이렇듯 구글 지도로 들여다 보고는

크게 마당 앞으로 가로 질러 지어진 긴 축사로 인한 집안 경치의

망가짐에 가슴 앓이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이제는 포기 되고, 남에게 팔린 집,

비어라도 있어 이렇게 나에게 쓰임을 허락한 그 은혜로도 그냥

그렇게 감사한 상태.


북한에서 탈북한 한 남자가 아버지의 산소를 이렇듯 구글 지도로

보고, 그 앞으론지, 뒤론지, 옆으론지 큰 길이 나, 묘지가 파 헤쳐진

줄 알고, 기절 초풍을 했다는 아티클을 읽고선 마음 짠했었다.


그러나 이렇듯 먼 곳들로 내가 나고, 자란 땅을 떠나 와, 돌아 갈 길

없어진 이들은, 자주 이런 만남으로나마, 우리들 심사를 그렇게들

달래 보는 것이다.


우리 뒷 집이 어디로 소멸 된 것 같다.

구글 지도로는.


어찌된 영문인지 가 보면 알겠지만, 새로운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마을 앞으로 많이 많이들 연장 되어들 건축 되고, 가장 남단에 

위치 했던 나의 집이 상당히 이젠 안으로 들어 가 버린 세월의

흐름이고, 그 동네가 그만큼 부촌이라는 말이다.



돈 많이들 벌어서 새로들 다들 그렇게 더 나은 곳으로 건축들을

하고, 옥토며, 바다, 나무들을 잔뜩 심은 이 동네는 지금이야말로

진정으로 더 부자인 그런 동네가 된 것이다.


내 집, 내 건물이 아니였다면, 그런 수 많은 변화가 있는 동리로,

내 고향이라 할지라도 선뜻 들어 가기가 무서웠으리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와집으로 그대로 우리집은 남아 건재하고 있고, 

지붕도 안 바뀐 이 집에서 나는 그나마 안심을 하는 것이다.



인천 비행장에서 광주로든, 고흥으로든 그 때 결정해, 숙박할

하루 묵을 숙소들을 찿아 보았다. 인천 공항서 지방으로 내려

가는 그 동안 교통편들이 짧아, 


너무 늦은 시간 집 열쇠를 줄 이들, 맞아줄 친척들을 너무 

밤 늦게 괴롭히고 싶지 않아, 

하룻밤 묵고, 다음 날 아침을 숙소에서 먹은 후, 그들을 

이른 아침 찿아 보려 한다.


광주의 남도 호스텔과 고흥의 힐링 하우스는 유럽에서 자주 

쓰던 Youth Hostel 이나 B & B 기분이 많이 들어, 훨씬 거리감

이나 이질감이 덜하다.




지인들 집을 머물래면 얼마든지 가능 하겠으나, 하룻밤 경유로

모두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는, 여행객 체질의 나.


이런 독립적이고, 개인 주의적인 나의 사고의 변화나 행동을

호스팅 하는 친척 당숙분이나, 주위 분들, 동생들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너무 남들을 수다 스럽고, 번거롭게

하는게 제일 질색이다.


그냥 조용히 평생을 내가 다른 나라들에 가서도 그렇게 조용히

정착들을 한 후, 찿아 보고, 연락들을 했듯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정보를 너무나도들 충분히, 차분히 찿아 볼 수 있는 이 시대는

정말 너무나도 이런 여행객들에겐 편리한 한 세상이다.


2만원 가량을 지불하면, 조용하고, 차분하고, 한적한 이런 숙소

들이 아직도 철철 넘치는 내 조국, 내 땅은 참으로 좋고도 좋다는

생각을 해 본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문 근영의 그' 로 한국의 남성들이 한 동안 휘청 하더니, 

이번엔 더 큰 거센 폭풍인 '여왕의 남자'로 한국 많은 남성들이 

가슴 앓이들을 했는가 보다.


왜 우리 인간은 다가 가지 못 하는, 오르지 못 할 나무들은, 

더 그 쪽 잔디가 푸르게 보이고, 모든게 다 엄청으로 보이는 

것 일까?


김 연아는 늘 우리 한국 남성들에게 그렇게 서 있어 줘야 하는,

한 꿈 속의 여성이었는데, 한 빠른 녀석이 후르륵 채 가는 통,

많은 이들이 거기서 그냥 허망들 하다. 


삼가 조의를 표하면서.



늘 이렇게 공인들은 남의 눈에 필요 이상으로 크게 보이는 

수가 참 많다. 


여성 지도자들의 카리스마도 멋져 보이고, 추장도, 대륙의 

지도자들도 가까이 다가 와 친해 지려고 하는, 엄청난 권위

(Authority)들을 발산해 내는 리더들을 어린 남성들은 보면, 

많은 경우들에는 늘 그걸 매력으로 착각한다.


그래 쓸데 없는 감정들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아파 하는

남성들을 난 자주 보았다.



이러한 여왕을 모시는 남자의 죄로 집안이 들쑤셔지고,

그렇게 그 남자는 지금 사람 참 힘 팔리는 상황을 한참은

그렇게 견뎌 내야만 할 것 같다.


대학 캠퍼스 이제 막 벗어나 친구쯤 되는 것으로 난 자주 내 마음

안서 여겼던, 서른 초반 아나운서 김 대호의 엄마가 61년 생 소띠, 

우리 둘째 남 동생 동갑 밖에는 안 된다는 소리에 난 충격 먹었듯이, 


우리 인생은 어차피 조금은 엉뚱히 자기 자신들을 잊고, 혼돈 속에 

빠져들 사는 그런 모험들을 알게 모르게 즐기면서들 사는게, 

우리네들 삶의 한 자화상들 일게다.


그런 환상 속의 김 연아를 잃은 우리 한국의 많은 남성들을 나는

보면서 왜 웃음이 자꾸 터져 나왔는지 모른다.



같은 안암골의 동문이라니 더 더욱 정겨운 커플로 다가 오는.

얼굴도 딱 닮았고, 같은 얼음 위 노는 자들이니, 참으로 예쁜

조합인 것 같은데.


나이도 5살 차이에 연아가 많이 더 행복 해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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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땐 소 죽은 귀신처럼 묵묵히 일들을 한 대륙들을 관할하며 잘

치루어 낸 나니, 일을 할래면 무지 잘한다.


안 할래면 뒤집어 놓은 물건들이 한 해가, 몇 철이 지나도록 거기

가만 놔 두기도 하고, 할래면 어제, 그제처럼, 오전 한 때 실실 

거리고 다니면서, 날렵히 치워 버리면, 


집안이 반들 반들 윤기와 광택이 나고, 햇살 아래 양지녘 방안 

한 가운데 그렇게 앉아,

그윽히 뜨거운 커피와 다과를 먹을 정도로 운치 있고, 아름다웁게

치우고, 장식해 버리는게, 나의 이 무궁 무진한 한 은사이다.



그렇게 하루 전 폭탄 맞은 방으로 변신 시켜 놓았던 방은 다시

이제 운치 있고, 아름답고, 맑은 청아한 냄새가 쪼리 쫄쫄 흐르는

예쁜 방으로 다시 변해져, 요즘 나의 커피 양이 다시 늘고 있다.


홍수에, 진흙탕에 야단 법석 죽겠네, 살겠네, 아우성을 치던 

켈리 주민들도, 이젠 한가로히 봄을 맑은 수도물들로 씻어 내며

장식과 준비들을 하고 있고, 봄이 이르게 오는 한 해 라고 하는

그 말은, 이 이역만리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3-4주가 지나면 나는 이제 내 고향에 있으면서 그 늦은 봄을 

만끽 하면서, 미소 짓다, 눈물 짓다 많은 상념들에 젖고 빠질

것이다. 44년의 내 고향 땅에서 맞는 그 첫 봄을 그렇게 나는

회상하며, 그리며, 꿈 꾸며 그렇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곧 엄청 더워 지겠지.


한국의 여름 폭염과 겨울 혹한이 이토록 미리 지겨워 진다는 

것은 내가 이미 늙어 간다는 한 증거이리라.




가는 세월을 조용히, 겸허히 받아 들이는 삶의 자세도 또한,

우리는 겪어 가야 하는 한 과정 아니겠는가?  


한 주의 척 시작일 나는 삶을 조용히, 넉넉히 꿈틀 대며, 살아

나가는 한 방법을 지금 이렇게 미리 연습해 보고 있다.



이 천천히, 느리게 살아 가는 법을 나는 얼마나 오랫 동안 

동경하고, 사모하며 기다렸던가?


이제 그 좋은 시절이 나에게 도래해 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쉬는 법을 모르고, 분주히, 바쁘게 살아 온 삶.

평생을 난 그렇게 살았다.


이제 나의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천천히, 느리게.


조용히, 느리게, 천천히 사는 법.

잘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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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어 놓으신 대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놀러 다니지 

않으면 죄악이라는 하와이에 살면서, 미국 친구와 어느 날 

우린 이제 하와이언으로 사는 시작을 하자며, 


끄는 대형 아이스박스, 접는 캠핑 의자등등을 구입해 모은 

한 우스운 시절이 있었다.



그 중 내가 아주 즐겨 잘 쓴 것이 접는 캠핑 의자들이었다.

미국은 캠핑 장비들이 장난 아니게 저렴하고 싸다.


Walmart 에 가면 접는 캠핑 의자가 좋은 아주 아름답고,

탄탄한 의자가 30불이면 뒤집어 쓰며, 10불짜리도 질이

상당히 괜찮다. 



가장 편히, 쾌적히 그 어떤 비싼 의자들보다 잘 앉았던

기억들이 있어, 고향 마당에 2개 놓고, 핀 꽃들 감상하고,


저수지나 바다에 낚시 나가는 남 동생 데리고, 이 의자

가지고 나가려 저렴하고, 튼튼하고 편할 접는 캠핑 의자를

한번 찿아 본다. 


그 그림들에는 늘 꿈애도 그리운 내 남동생들이 늘 동반하고,

수반되는 그런 그림들이다.


이런 의자 끌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려면 구닥다리

작은 차라도, 차가 있어야 하는데 등등, 난 참 요즘 생각들이

많다.


그러나 어디로 옮기셔도 그 분은 나의 삶을 더 업 그레이드

시키셨지, 낮추지 않았다는 확신과 신뢰가, 나는 지금 너무

빵빵해, 나의 나머지 삶의 창대함을 가슴 뿌듯히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에서는 제자들 데리고 나가 점심 싸 가 먹으면서,

하염 없이 하루 종일 망망 대해를 바라 보고만 앉아 있어도,

무료한 줄 전혀 모르던 생활이었다.


이젠 고향 마을 뒤 바다에 가 그렇게 시간들을 종종 보내 

보려 한다. 이젠 태평양도 아닌, 지평이 한 없이 짧은, 작은

바다겠지만, 그래도, 내 땅, 내 고국 산천이고, 물이여서

좋을래라.



아웃 도어 아이템들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나는, 많은

캠핑 장비들이 많이 있지만, 이 폴딩 체어에 대한 미련이

좀 큰 듯 하다.


우리네들 삶은 늘 이렇듯 기억들에 의해, 추억들에 의해

다시 반복 되는 한 일상들이다,


가서 재미 있게 살아야 할텐데.


늘 처음 시작은 재미 있다, 나중엔 쉬히 무료해 지는게,

우리 역기능 가정 출신 아이들의 한 심리 생리들이다.


사람도, 인간 관계들도, 삶을 사는 장소들도, 길게, 신실히,

돈독히 영위 하기가 늘 쉽지 않는, 우리들의 치명적인 

한 약점들.


길게 인내심을 가지고, 위기들을 잘 넘는 방법을 가정이

잘 가르쳐 주지 못한 한 이유들에서다.



북한이 열리면 그 때나 상담 사역 때문 들어 가야 할 것이고,

이제 남은 나의 부르심과 소명은, 고향에 앉아, 회복이 필요한 

자들을 맞는 일일진대, 쉽게 싫증이 안 났으면 싶다.


그러나 나의 이 역마살 근성은 늘 나를 들썩이고, 어디론가 

또 떠나고, 시작하고 싶어 질게다.


세상은, 교회들은 이런 나를 '개척의 선구자' 니, '살아 있는

이 일 영역의 전설'이니, '동부 아프리카의 이 일의 양대 산맥'

이니, 


'개척해, 성장 시켜 놓고, 또 다른 부르심과 지역으로

떠나는, 사도 바울 같은 사도직 은사의 기능'이니 등의, 

늘 너무 실속 없이 아름답고도 휘황 찬란한 이름들로, 


내 삶들을 치장해 주고, 자신들이 편하고, 즐거울 영웅으로 

늘 나를 만들어 놓고 즐기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그 늘 불러 주는 호의의 내 삶에의 부여가, 나에겐 

그닥 늘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는게 한 솔직한 심정이다.


난 늘 '개 코다' 라는 이상한 비양거림과 우습게 여김이 

내 마음 안 자주 존재한다. 지금도.


'빛 좋은 개 살구'라는 아주 처절히 현실적인, 나 혼자만의

평들도 거기 그렇게 부유해, 두둥실 두리 둥실 떠 돌아 다니고.


니들이 뭘 알아.

내 삶을 !! 싶은 

마음 안들의 아픔과 호소들과 함께.



실속 있게, 야무지게 살자.

별 하찮은 세상 평들과 띄움들에 속지 말고.


어느 날 그 분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해 보는 날,

그 분이 손수 나에게 들려 주시는 그 평이, 느끼심이

결국엔 궁극의 나의 가치이고, 삶의 이유여야만 하는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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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켈리에 학문과 사역 때문 오기 전, 하와이에 10여년 살 때는

늘 한 밤중 그렇게 비가 주룩 주룩들 왔다.


하와이는 언제나, 늘 그렇게 꼭 한 밤중에 비가 흠뻑 내린 후들,

아침녘에는 언제 그랬냐는듯 말짱 개어, 시치미를 뚝 떼는 듯한

그런 표정들의 날씨였다.


어젯밤 비가 꼭 하와이처럼, 자는데 주룩 주룩 그어 대며, 밤새

오락 가락 내리는, 낙숫물 소리를 들을수 있어, 잠결에도 너무

상쾌하고, 그윽한 음이었다.



자연은 참으로 위대하고도, 그 힘이 무섭다.


이번 이 켈리의 폭풍과 비가 3-4일을 계속 된다는 소식이니,

지금 모든 이들은 홍수 준비들로 산 밑에서는 바쁘고,


어제 학교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집에 커피 마시러

들어 오다 올려다 보니, 이른 봄이라 옛 낙엽들이 길들에 수북히

쌓여 떨어져 있고, 새순들이 연 초록으로들 한껏 피어 싱그러운 

초 봄이다.



아이들은 하늘을 자주 본다고 하는데, 우리 어른들은 하늘을 잘

올려다 보지를 않는다고 한다.


어제 우연히 올려다 본 하늘이게, 뭐가 그리 늘 그리도 분주하고

바쁜지, 이젠 이런 마음 바쁜 삶을 청산하고, 자연으로 돌아 가,

좀 한적하고, 고요하게 살 일이다. 


이리도 아름다운 봄비가 소록히 와, 자연을 적시고, 창가엔 

싱그러운 물방울들이 영롱이고, 그 바쁘고도, 분주한 일상에서

이젠 벗어나 나는 자연을, 삶의 그냥 조용히 돌아감의 이치를

이젠 만끽하며 살아 보려 한다.



혹자들은 이건 너무 빠른 일을 접는 나이들이라 평하고,

혹자들은 내가 가는 그 곳도 필요들이 많은, 가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는 곳들이라고들 이야기들을 한다,


그러나 이젠 그렇게 남만 위해 사는 삶을 좀 접고, 내 자신을 

잘 좀 돌봐 보는 그런 다른 삶의 형태도 마지막으로 한번 나는

시도해 보려 한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 가 자리를 잡는 그 날은 우리 엄마가 수 십년 

전, 돌아 가신 바로 그 날이고, 자살한 우리 막둥이 남 동생이, 

그 엄마의 기일날 아마 나는 죽었으리라 추정해 보는 그런 

슬프고도, 아프고, 시린 날이다.


그런가 하면 내가 31년 빵빵히 찬 4월 1일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던 그런 날이기도 하다. 그날에 난 31년을 그렇게 이방 땅들서

꽉 찬 31년을 하나님과 열방을 섬기다 이제 내 고향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그래 마음 안 만감이 교차한다.



삶, 인생 !!

한 소설 같은 이야기들의 전개들이다.


오늘도 나는 내 고향에 돌아 가 산길을 산책할 일이나,

농작물을 돌아 보려 밭길과 논길을 걸어갈 나의 미래를 그려

보면서, 오늘도 이렇게 가슴 설레이는 콩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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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이 켈리는 무척이나도 가물어, 온 토지들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지금 주 정부에서는 날마다 뉴스에 야단들이다.


그런 와중 내일부터 이곳을 폭풍과 비가 지나 간다고, 집집마다

모래 주머니들을 차에 가득들 실어 나르는 뉴스를 지켜 보았다.


하늘이 벌써 칠흑같이 어두워지고, 집 앞 아람드리 나무들이

아주 굉장들 하게 바람이 서서히 지금 일고들 있다.


얼마전 쇼핑을 해 와, 요즘은 감자 볶음과 달걀 잔치로, 내 식이

섬유와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 중이다.



내 기숙사 옆 방이 찬양을 인도하는 어린 청년이 이사를 들어 

왔는가 보다 했는데, 그런 어린 학생이 아니고, 지긋한 한 중년

남성이 이사를 왔네. 복도를 오가다 몇 번 보니.


이런게 참 버겁다.

그리고 참 조심스러워진다.


남녀 칠세 부동석의 문화에서 자란 우리는, 이런 미국 문화들이

한 복도 안에, 이렇게 남녀 싱글들을 같이 잡아 넣어 놓으면,

여간 조심 스럽고, 불편해 지는게 아니다.


조심할거 늘 한번 더 해지게 되는게,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하나님 일하는 자들이 조신하고, 조심스러워야, 쓸데 없는 

불필요한 시험이나 유혹들을 이렇듯 평생 깨끗하게 살아 올수

있느니만큼, 여간 조심 스럽고, 불편한게 아니다.


고향 시골에 가 살면서의 나의 말년도 그래서 참으로 조심스럽고,

여간 신경이 쓰이고, 불편한게 아니다. 평생을 주님을 위해 깨끗히

삶을 잘 마쳤다는, 그 영예로운 이름을 지저분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나의 고등 학교때 우리 이태리 교장 수녀님은 우리에게 늘 이야기

하시곤 했었다.


"여인은 한방울의 이슬과도 같은 존재 입니다. 풀 위에 영롱히 

잘 맺혀 있으면 아름답게 빛나지만, 

진흙탕에 떨어져 버리면, 진흙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 

늘 성결되고, 고귀하게 잘 사십시요" 하고선.


그런 당부와 가르침을 따라, 나는 우리 주님으로부터 잘 보호 받고,

늘 성결되이, 아름답게 잘 지켜졌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주님의 신부로서, 그 분이 거룩하시고,

순결 하신 것처럼, 우리의 거룩함을 주님 안 잘 이루어 가는건,

하나님의 사람들의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성결됨과 거룩함으로 서는 것.

신부된 주의 교회들의 마땅한 도리들.


하나님,

저의 마음을 정케 하시고, 사람들이 보기 싫은 이런 아픔들과

지침들, 육에 속한 모든 것들을 정케 하사,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케 하시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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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유명한 강사가 와서 강의 하면서, 우리 강의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질문 했다.


"여러분, 이 세상의 거의 대다수의 남편들이, 집에 일찍 들어 가기를

원하지 않는, 한 이유가 있는데, 그게 뭔 줄 아세요?"


우린 남편이 되어 보지 못 한 이유들로, 또 사람은 다 다르리라는

생각들등으로, 눈만 멩! 하니 그 강사를 바라 보고, 거기 그냥 

그렇게들 앉아 있었다.


'마누라들의 잔소리들 때문'이 그 이유인 답이였다.



피곤하고, 지치게 코가 석자가 되도록 고생하고, 일하고 집에

돌아 와서들, 많은 남편들은 그 조용히 쉴 자리들이 늘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4 남매중 유일하게 결혼해, 아들 녀석들이 셋이나

거목처럼들 자란, 우리 둘째 동생의 삶을 지켜 보노라면,

정말 안쓰럽고, 불쌍 하다는 생각이 늘 든다.


우리 아버지의 할아버지 대부터의 그 많고, 흥하던 모든

재산들을 말아 드심과, 종합 병원 파산 이후의 빈곤 문제,

성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역기능적 콩가루집 가족 유산, 


아버지의 말년의 분노와 화, 세상 원망등으로 거의 붠가에 

사로잡힌 듯한, 영적으로 그 어떤 어두운 존재의 그림자가 

늘 그의 성품에서 느껴져 오던, 


비참하고, 처참 했던 우리 아버지의 인격의 짧음은, 우리 남은

형제들의 가정들에도 그대로 인식되어, 자녀들도, 아내도

동생이 화를 내거나 뭔가 짧으면, 


꼭 할아버지를 닮았다거나, 시 아버님을 그대로 쏙 빼 닮았다는 

공격과 가혹한 평들의 비난과 무시들이 나는 듣기 싫어, 그 이후론 

그 집에 더 이상 한번도 가지 않았다.



나도 존경하지 못 하고,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우리 아버지의

인품들이였지만, 한 다리 더 건너 뛴, 남이 공격하고, 비난하고,

우리 동생을 그런 아버지를 가졌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공경하지

못하는 그런 꼬락서니들은, 


난 누나로서, 올케로서, 고모로서 가만 지켜 보고 싶지 않는, 

마지막의 말미의 자존심이 아직은 살아, 거기 그렇게 존재 하는 

것이다.


나는 비난해도, 남이 하면 싫은 그런 묘하고, 이상한 한 심리.



우리 나라의 남편들이 쉴 자리가 없는 그 상황을, 나는 우리가

신경 써 돌봐 주어야 하는, 한 영역이라고 믿는다.


대형 백화점들에, 쇼핑 나온 아내들이 헤집고 다니는 동안,

쇼핑을 즐겨 하지 않고, 일상에 지친, 아기들 그 틈새 돌보는

남편들을 위해, 의자들과, 신문, 쉴 공간들을 한켠에 준비

했다는 어느 상술들을 보고 난 참 생각이 많았다.


남편들만을 위한 공간 배려의 정책적인 계획들이 어느날엔간

있어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곳에 가면 조용히 좀 신문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조용한 

낮은 음악도 흘러, 쪼아 대는 상사의 무시나 가혹함도, 따라

다니며 그 필요들을 만나 달라고, 잔소리 해 대는 아내들의

조름과 압박도, 


그 정체성 자체가 날로 희박해져 가는 무시하는 자식들 앞

에서의 그 비참함도, 한순간들 만큼은 좀 잊고, 그냥 

본인 자신일수 있는 그런 남편들을 위한 한 쉼터들.


오늘 문득 그 미국 강사의 강의 내용의 핵심과, 우리 남동생의

현실들을 생각 해 보면서, 도심에 이런 소외 당하고, 쉴 곳 없는

남편들의, 가장들의 마음이 조용히 쉴 수 있는, 한 언저리를 

누군가는 제공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온 것이다.


아내들은 아내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다들 지네들

나름대로들의 많은 고충들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이 힘없어져 가고, 지쳐들 가는, 


우리의 한국 가정들의 가장들의 심리적인 안정과 안녕 문제를 

어느 누군가는 강조해 줘, 이 사회를 재 정비하고, 재 정리해, 

힘을 다시 북돋워 주고, 살려내 주어야 할 것이다.



70년의 공산 주의 치하 동안 소련은 거의 모든 남성들이 그

건강한 정체성을 깡그리 상실한 나라들이였다.

그래 그런 나라들을 가면, 그야말로 남편들이, 남성들이 너무나도

내면이 무너질대로 무너져, 비참할대로 비참하다.


여성들은 으득으득 사납고, 지겨운 불독 개처럼들 늘 으르렁 대고,

남자들은 그야말로 피폐해 질대로 져, 가정과 사회들에서 늘 빌빌

거리고들 산다.


난 거기 7년을 살면서, "이건 아니다 정말!" 늘 싶었다.



그런 환경이 싫어, 남편들이 집에 들어 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단축 

시켜 보려 한다는, 그 미국 강사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말이 곧 아니게

우리 나라에도 곧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가정 안의 하나님께서 두신 성의 질서들과 공경들이 상호간 건강히

오가는, 그런 건강한 다이나믹들이 거기 충만히 거하는, 그런 우리 

한국 가정들을 그렇게 미리 내다 보며, 오늘 난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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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도, 외롭고, 아플 암 투병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친구 중 한 명이,

어제가 생일 이였다. 


늘 게으름 부리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편지 한번 써야지, 써야지, 

길을 가다 가도, 살다 가도 생각 하지만 정작 못 한. 

어제 생일 축하와 함께, 긴 긴 장문의 이 메일 편지를 보냈다.


"암을 바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 봐" 하는 마지막 당부가

왜 그리도 공허하고, 실속 없는 겉만 멋지고, 번드르르한 바리새인적

당부인지를, 나는 내 양심 가장 깊은 곳서 발견하곤, 가슴 아팠다.



이런 어려움을 당하면, 그 누구의 격려들도 늘 가식적이고, 본인이

안 겪는 자들과 직접 겪는 자의 갭과 괴리가 늘 거기 존재 한다는 걸

나는 누구 보다도 잘 안다.


모든 말, 모든 행동들 하나 하나가 섭하고, 내용물 없는 빈 껍데기

들로 울려 온다는 것도 나는 안다.


상대는 신경 써 하는 말들이지만, 정작 당한 본인에게는 때론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나는 동생의 죽음을 지나면서, 늘 실감

했었다.


말, 말, 말.

얼마나 한계가 있고, 제한이 가득 넘치는 우리의 소통의 도구들인가?



아니나 다를까 내 편지의 양만큼이나 길게, 써 온 친구의 편지들엔,

그냥 주위들에서는 생각 한다고 해 주는 배려들도, 다 섭하고, 짧고,

제한 되어 전달 되어진 수 많은 이야기들이 거기 가득 했다.


당하는 그 아이가 가장 외롭고, 두렵고, 고통스런 그런 몹쓸 병을

어쩌다 그리 싸 안게 된, 나의 어릴 적 죽마고우 친구지만, 늘 생각

하면, 나의 가슴도 짠하고, 안쓰럽고, 저미고, 아리다는게 한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암.

상담을 하다 보면, 남편에게 폭행 당하고, 마음 안으로 그런 고난들을

다 삭이는 성격의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걸 늘 본다.


우리 마음 안으로 삭혀 넣는 스트레스 해소법이나 내면을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나누지 않는 홀로 그 무겁고, 고단한 짐들을 다 지고

가는 이들의 고통이 과연 얼마나한 것인지를 여실히 잘 보여 주는

한 증거라 상담을 하면서 늘 생각하게 되는.


이 친구도 사람이 너무 좋아 늘 보증 서 주고 남 돕고 하다가 

수 없이도 늘 당하는 남편과, 태어 날시부터 심장이 약하게 

태어나 온 가족이 그 수술과 병 수발에 메달려야 했던, 


자녀의 그 성장 과정을 늘 노심 초사 안으로 다 삭이고, 내리 

누르면서 온 마음의 병이, 그렇게 육체로 전이된 거 아닌가 

나는 생각이 든다.



희귀암 수 개를 다 살아 남은 내 친구 하나는, 그토록 아프다는

항암 치료를 수 없이 받으면서, 침대 메트리스를 손톱으로 갈기

갈기 파 헤치고, 찢는 그런 고통을 감수 하면들, 그렇게 희귀암

수 개를 다 이겨 내고 살아 남았음을 어느 날 나에게 울면서

이야기 했다.


그런 가장 혹독한 외로움을 거치고, 지난 아이들은, 궁극엔 

이 세상 인간들에 전폭적으로 의지 하지 않는다. 그 가장 처절한 

외로움 속들 홀로 서 보며, 그 가장 고통의 중심에는 결국은 우리 

주님과 본인만이 홀로 서더라는 아픈 진리의 사실을 경험한 때문들

인것 같다.



이런 재난을 겪는 자들 앞에서는 많은 말들을 늘 조심하고, 삼가고,

그냥 곁에 조용히 있어 주면서, 기도해 주는게 상책인 것 같다.


많이 조용히 사랑해 주고, 조용히, 은근히 돌봄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만 잘 알게 해 주는게, 가장 좋은 도움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

보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아프리카에 살 때, 어떤 시건방 들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너무 서구화가 일찍된 한 젊은 커플이 이딴 짓거리

일삼는 걸 보고 나는 내심 조금 분노 했었다.


집안에 쓰던 모든 일용품들을 다 가격을 매어 전시하고, 시장에

내어 놓는, 서양에서는 흔히 'Garage Sale' 등으로 부르는,

이사 가는 이들이 모든 걸 다 긁어 내어, 작은 푼돈 양까지 다

매겨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파는 작업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 짓거리를 일삼으며 살고 있다.

집에 돌아 가야 할 비행기표 마련의 한 방편이다.


그래 미국 얘들, 한국 아줌마들 많이 집을 다녀 돌아 갔다.


한국 아줌마들은 할 일들이 없으니, 내 좋다는 Loft 아파트들

구경 하러들 삼삼 오오들 방문해, 매우 매우 사적인 질문들 

까지도, 어디까지가 경계선일줄도 모르고들, 묻고 캐 묻고, 

심문에, 염탐들에 오도 방정들을 다 떨어 대다, 


단 한 Item 도 안 사고, 그냥 늘 빈손으로들 그렇게들 도망치듯 

달아들 난다.그러나 서양 얘들은 정말 이런 삶의 기본 예의들은

정말 잘들 갗추어져 있다. 


다른 그 어떤 것들도 어느 하나 건드림 없이, 자기 필요한 용품

들만 그저 조용히 쉭! 조용히 구입해 그냥 그렇게 사라져 주는.



내 평생 장사라는 것은 단 한번도 해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책도 젊은 영적 지도자들에게 그저 무료로 다 나눠 주고 하는

통, 자기네들끼리 좋은 소문들과 평판들을 살포해 주었는지

이렇듯 사람들이 하루 종일 끊임 없이 찿아들 오네.


그러나 많은 경우들은 그 유명 하다는 그 소문난 사람, 구경하고

내 사 생활을 살며시 이 기회에 들여다 보는게 늘 그들의 한 꼼수들.



그냥 드러워도 내가 참고 말지 싶어 그냥 놔 두고, 예의를 다 해 

대접하고 그냥 지낸다. 한국의 그래도 지네들보다는 대 선배에

명성에, 이름에 그 유명 하다는 우리 주님 때문 얻은 그 것들에

우리 주님 이름에 먹칠 하면 안돼서, 그냥 모른척 하고 그렇게

눈 감아 주는 것.


평생을 사람들 사역하고, 심리학 전문 테라피스트이고, 심리

상담사인 내가. 그 수 만명의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 시킨 내가,

그 어린 사모들, 목사들, 전도사들이 뭘 생각하고들, 꼼수들을

부리는지 모를리 만무.



그러나 삶이란 만사가 다 알고, 눈치 채도, 우리 주님의 이름을

위해 많은 경우는 모르는 척도 해 주어야 하는게 다반사.

그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열지 않고, 이 어린 사역자들의

경함들을 그냥 눈 감아 주기로 작정 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역기능 가정 안에서 자란 많은 이들은 유감

스럽게도 굉장히들 약고 얍삭 빠르다. 머리 굴리고, 사람을

어떻게 이용할까에 대해서는 거의 백단 내지는 구십 구단의

약고, 


성품과 사람 됨됨이들이 전혀 아직 성장을 못 한, 거의 문제 

투성이의 인격들이 대다수인게 늘 심리 상담사로서,마음 아픈 

한 사실이다.



그래 나는 언젠가부터 이런 이들의 상투 끝에 올라 앉아, 그들의 

심리들을 다 내려다 보면서도, 그냥 바보인 척, 모르는 척, 내색

않고 그냥 참아 기다려 주는 삶을, 평생을 이 일 시작 하면서부터

지난 35년을 그렇게 살아 온 것 같다.


내가 그들을 향해 비난하고, 화 내고, 보복 할 수 없는 건,

그 들을 만드신 우리 주님도 길이 참아 기다리시는데, 내가 

뭐라고, 그 분 앞에서 그 나의 화를 돋구어야 할 이유도, 권리도 

사실은 전혀 없는 것.



우리 할아버지는 한의학을 일본에서 공부 하셔서 한의학

병원을 하셨고, 아버진 양의학 종합 병원들을 하셨으니, 

다 장사를 해 본 분들이네. 그러고 보니.


그러나 난 평생 이런 장사를 단 한번도 안 해 본 자라서,

고국에 돌아 가는 비행기 표 편도 마련의 재정도 없게

평생을 열방들에게 온전히 다 퍼 부은 자로서, 



이 마지막 작업의 비행기표 편도 마련비 $ 550.-을 위해 이런 

장사를 해 보면서, 많은 감정들이 내 내면에서 늘 꾸역 거리고들

올라 온다.


하나님을 행해, 힌국의 교회들을 향해, 세상을 향해.....

그리고도 많은 수 많은 마음에 떠 오르는 그 수 많은 것들을 

향해서.



그러나 온전히, 길게 잘 참을 일이다.


세상은, 삶은, 늘 너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흘러 가는 것이

아닌 것이닌까.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요즘은 이삿짐들을 정리해 남 줄 것들은 다 주고, 한국에 보낼 것들은

보내는 작업을 계속하는 와중, 대학원 인터넷 연결이 요 며칠 늘 큰

문제가 생겨 연결이 안되는 통, 하루중 서너번씩은 이 글방을 생각

하면서, 내 조국 , 내 고향의 사람들을 생각 하면서 지낸다.


사람이 서로간에 함께 아름답게 길들여진다는건, 참 숭고 하고도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생활을 계속 이야기 해 주는 글 같은 것들로,

서로 결속된 인간 관계들과 우정들은,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베풀어 

놓으신, 한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생각을 종종 함.


어제 저녘 어스름한 녘 기숙사 문 입구에 자동차며, 정리할 물건들

브로셔를 붙이면서, " 아! 이제 내가 이곳을 정말 떠나갈 날이 정말

얼마 멀지 않았구나!" 하는 실감을 처음으로 한번 하면서, 



요즘은 생각들이 참 너무 마음 속 많다. 


내 감정의 기류와 굴곡들을 혼자 스스로 달래면서, 내 자신을 스스로

상담사로서 치유하고, 회복 시키는 테크닠등을 다 잘 적용해 보면서,

그렇게 손수 나의 삶과 사역, 마음 안의 생각, 감정들을 잘 다스리며,

달래며, 얼레며, 격려하며, 그렇게 살아 나가고 있다.



어젠 너무나 한 아름다운 꿈을 또 꾸었다.


어떤 한 사람이 정말 푸른 아람들이 백향목 나무인지 뭔지 

그런 상록수 나무들을 집 앞 가득 빼곡히 한 나절 옮겨 심어, 

예쁘게 정렬들을 시키고, 


나를 위한 배려들과 사랑들을 한껏 정성을 다 해 부어 주는 그런 

꿈이고, 그 정성에 감격해 하는 사람들과 나의 장면등등이 출연 

소재였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고향집 뒤엔 측백 나무 수 십 그루가 

아름답고, 탐스럽게 늘 어릴적 우리집 전체를 내리 두르고, 

할머니와 나를 도둑과 그 모든 공격들로부터 늘 보호해 주었었다.


이렇게 집을 간간히 보여 주시고, 아름다운 준비등을 늘 우리 

주님은 나의 삶 안, 가는 곳마다 자주 보여 주셨다.

그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신 그 분이, 우리 주님이실 거라는

생각을, 그래서 또 해 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참 좋으신 나의 한 인격적인 동반자이시다.



한 패션 업계에서 디자이너인 제자 하나가 FB에 한 멧세지를

정성스러히, 고히 남겨 두었다.

"당신은 나의 영원한 한 동역자이십니다" 라는.


오래간만, 인터넷도, FB도 체크하고 검토해 본, 나의 가슴과 마음을

따뜻하고 늘 훈훈하게 해 주는, 이런 나이 많은 나의 오랜 제자들.

이런 이들이 늘 나의 삶 주변 존재해, 우리의 삶은 늘 이다지도

아름답고, 고귀하고, 소중한 것들인 것이다.



이 동네에서는 조선 무우를 살 길이 없는데도, 아주 오랫동안 무우

깍뚜기 김치가 너무 너무 먹고 싶었다. 며칠 전 한 제자의 어머니가

한국 장을 잔뜩 봐 보내 오셨다. 


그리고 거기 조선 무우가....



나의 아름다운 깍뚜기가 너무 아름답고, 맛있게 익어, 요즘은 

그 재미에 산다. 한국 가면 이젠 더 이사 이런 우리 음식 굶은 자의 

이런 조갈증은 더 이상 생기질 않겠지.


31년을 이렇게 우리 음식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굶주리고 나는

그동안 살아온 것이다. 이젠 우리 나라에 가서, 우리 것을 오래간만

보면서, 즐거워 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자.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아주 오래 전부터 참 입고 싶었던 한 옷 종류가, 늘 내 마음 안에 

거기 그렇게 자리 잡고 앉은지 오래. 


그러나 난 그 옷의 이름을 몰라, 어디서 주문 해야 하는지도, 

사야 하는지도 몰라, 한참을 망설이고, 주저하고, 그냥 마음 

안으로만 새긴 한 옷.


어제 긴 시간의 찿고 찿음을 통해, 이상하게도 우리 나라는 

그 옷을 Naglang 옷이라 부르고, 미국은 Baseball T-shirts 라 

이름 한다는 걸, 어제의 긴 리서치를 통해 알아 내었다.


난 아주 Detail 한 성격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 옷 스타일에,

그 매치된 색깔까지도 다, 이미 아주 오래전에 마음 안에 굳게

굳힌 완벽 주의자.



내가 찿는건 Navy & Gray 색상.


어린 시절 독일에서 대학 다닐땐, 독일말로 하 운 엠(H & M)이라

부르는 옷 회사와, Gap 옷을 우리 독일 대학생 얘들은 자주 사

입었다.


영국 런던 본드 스트리트엘 지금도 가면, 이 두 상표는 건재해,

아직도 젊은 얘들이 선호하는 한 상표이다.


대학생들 트렌드 유행 냄새를 잘 맡는 패션 회사들이, 대학 캠퍼스

근처로 어기적 거리고들 들어들 와서, 그 옷 가게들이 캠퍼스 근처

엄청 난무해 서 있기도 했지만, 


시대 조류를 앞서 가는 디자인들 때문에, 우린 그런 가게들을 자주 

기웃 거리기도 했던 것.


어린 시절 이렇게 Gap 에서 이 옷 디자인을 잠깐 어느 시간대 

보곤, 한국 티비에서 어린 얘들이 자주 입는 것만 보았지만, 

난 일들 때문 오지에 사는 동안, 이 옷을 입는 철을 놓쳤다.


우리 일을 하다 보면 늘 이렇다.


오지들에 가 살다 보면, 남들은 이미 철 지나고 지나, 공룡이 

돼 버린 것들을 나중 우린 만끽해 보고 있는, 울화통 터지게 하는

트렌드며 유행 등등등....


그래도 난 내 생전 이 베이스볼 티 셔츠 네이비 & 그레이를 

꼭 사서, 리바이스나 Raiders Lee 진스 청바지에 꼭 입어 봐야, 

내 삶의 영위의 울화통에 대한 직성이 절대 풀릴 것만 같다.


그래서 주문 계획.



이건 한 여성의 단순한 한 옷에 대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여기엔 많은 심리 저변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우리는 여러 저러 모로 우리 삶 안에 잃고, 누리지 못 하고,

가지지 못한 시간대나, 경험, 필요들에 대한, 놓치고 누리지 못한

많은 상실(Loss)들이 누구나 다 우리 삶 안들 있기들 마련이다.


우리 할머니는 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어떻게 사람이 다 누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누리고 사느냐?"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소망하지 말라는 그런 가르침이셨다.


특히 절약하고, 강그리며, 아껴 가며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해 

가르치실 때, 늘 그 말을 쓰셨던 걸 기억한다.


그러나 난 지금 나이 56세가 올해 6월 중순이면 돌아 오는 

이 나이에는, 그 말에 지금은 별로 많이 동의 하지 않는다.


너무 쓸데없이 내리 누르고, 참고, 견디고 하는 삶에 대해 

나는 별 그닥 큰 호감과 공감을 지금은 찬양하지 않는 현실 

주의자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나 같은 일을 하러 가겠다고, 열기에 들떠 게 거품들을

내 앞에서 자꾸 내 뿜는 젊은이들에게, 


"너가 행복할 일을 그냥 해라. 나중 누구 원망하고, 세상이며,

하나님이며, 다 너를 이용한 것만 같고, 다 쓰여 지고 버려진 것 

같고, 


마음 안에들 그런 쓴 뿌리(Root of Bitterness) 들이나, 원망, 

기쁘지 못함등이 고여 올라 올 양이면, 그런 선택은 아예 신중히 

하면서, 선택 안 하느니만 못한 , 


나이 들고 몬스터 괴물이 성품이고, 인간 됨됨이고 등에 나타 날수 

있으니, 조심 하라"고, 늘 가혹하고, 실랄하고, 혹독하게, 현실들을 

이야기 해 주면서, 


조언하고, 향방을 인도들을 해 주고, 그 들의 삶을 재 검토하고, 

평가해 헌신들을 하게 만든다.


감정이나 잠시 잠깐의 열정들, 흥미등에 빠져, 자신의 전 삶을

그렇듯 후회하고, 남이며, 하나님 원망하고, 쓴 뿌리에서 야기된

독소적인 사고들이나, 행동, 삶등을 나이 들어 늙어, 


주위에 풀어 놓기 시작하면, 그것처럼 고약하고, 곤혹스러운 

것들이, 하나님 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소리를 내가 나를 평생을 먹여 살린 유수한 큰 교단들이나,

교회 앞에서 하면, 나는 미친 여자가 되고, 지탄 받을 한 사역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현실적이고, 사실인 한 양상이다.


하나님과 사역자와의 진정한 헌신에의 동기나 약속, 확신등이

제대로 없이, 인간들이나, 기관, 조직등의 한 시대 안 조류들이나

운동(Movement), 사조등에 생각 없이 들떠 일어나, 


하나님과의 진정한 이해나 교통함이 없이, 그렇게 팔랑개비 같이 

촐삭 거림으로 일어 선다면, 많은 사역자들은 그렇게 십중 팔구는

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상담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지도할 때,

상상 속에서, 마음 속에서 많은 원망들과 증오등을 부모에게 

가진 자들이, 


그 들의 부모들을 용서하고, 멀리서 혼자서만 그런 작업을 거치면, 

꼭 언젠가는 가서, 직접 그 부모들을 한번씩은 만나 볼수 있도록 

적극 권장한다.


이렇듯 우리들 마음 안의 필요들을, 필요 이상으로 안으로 누르고,

참고, 견딘,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을 대해, 나는 요즘은 상담 가운데

에서도, 꼭 하고 싶은건, 남을 해 하고, 나쁜 일이 아닌 이상은, 


그 필요들을 한번 만나 주는 삶들도 살아 보라고 적극 권장한다.


나는 31년을 이방 땅들 오지들에 살면서, 잃고 상실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고도 많다.


어떨땐 그 많은 상실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나오도록 처절들

하고, 가슴이, 온 내 내면이 다 무너져 가는, 그런 양들의, 크기들의

상실들이다.


시간도, 경험도, 누림도, 인간으로써 가장 지극히 말초적으로,

근본적으로 누리고, 가져야 했던 수 많은 것들을, 나는 이 헌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모조리, 무수히 상실들을 한 것이다.


그래, 나는 요즘 그런 작은 나의 필요들을 만나 주는 삶의 형태들을

부지런히 연습해, 나를 많이 많이 대접해 주려고, 늘 얘들을 지극히

쓴다.


그건 내가 필요로 하는 가장 작은 소망들이고, 꿈들이고, 기쁨들이

되는, 나의 삶 안에 지극히 필요로 하는, 채워져야 하는 몇 필요들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도 인간이고, 인간들은 그 기본적인 필요들이 늘 공통으로

거기 존재들을 한다. 


그리고 우린 그게 만나 줄만한 필요 들이면, 우리들의 필요들을 

만나 주게 해 주는, 그런 자기 대접에 충실해야 한다는 걸, 나는 

지금 뼈저리게들 배우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사 준비로 폭탄 맞은 방.


떄 맟추어 사진도 안 올려져, 글도 못 올리고, 몇일째 밀리다

공중 분해 되어 어딘가들로 사라져 버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허리를 심히

다쳐, 거동이 아주 아주 불편하고 정말 아프다.


아!

정말 모든게 다 쉽지 않다.



밥보다 먼지를 더 폭풍 흡입해 많이 먹어 치워, 약까지 다 

먹었다. 목이 너무 아파서.


이 우라질 놈의 이사.

내 인생에 다시 두 번 할 일은 아닌 것으로 마음 결심.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그제 새벽 또 이 남가주가 지진으로 크게 한번 흔들렸고, 이른 아침

미국 뉴스에서 앵커들이 요란타. 근데 난 그 흔들리는 거도 모르고

그야말로 누가 떠메가도 모르게 그렇게 깊은 잠을 잔 것 같다.


나를 따르고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거 사는 란쵸 쿠카몽가

근경의 폰타나에서 일어난 지진이다.



20년전 이 남가주에서 엄청난 지진 피해로 70명이 죽고, 거의 

모든 건물들이 붕괴 되고, 파손된 같은 날이라, 사람들은 또

다시 한번 힉!들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13살 어린 중학생 소년이, 또 총기를 가지고 학교에서

난사해, 우리들의 장래들과 이 아이들을 이렇게 키워 놓은, 우리

현금의 세대들의 마음 안 각성들과 통탄들이, 또 연발 되는 그런

날이기도 했다. 



과연 우린 어떻게 살아야, 이 삶은 우리들에게서 좋은 영향들을

잘 받고, 다음 세대들이 건강하게 크고, 성장하는 그런 삶과 

세상이 되어질수 있는 것인가?를, 자못 많이 생각해 본 하루였다.


잦은 변화를 별로 마음 편해 하지 않고, 전통과 질이 아주 중요한

나의 성격은, 이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성격만큼이나, 우리의 

삶의 질과 격이 하락하는 것에 대한 통한이 더 남다르다. 늘.



2014년 올해 한 해 난 안식년을 가지기로 기도한 후 결정 했고,

바야흐로 지금은 이미 안식년에 도래해 있는 시기.


하나님은 땅도 휴지기를 가지게 하라 하실 정도로, 우리 삶에

있어서, 쉼은 꼭 필요한 한 사실.





그런데 늘 일하던 사람이, 그 일들을 다 내려 놓고, 전적으로

다 쉬기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다 일해본 사람들은 

너무나도들 잘 아는 사실이다.



"아!

내가 그 분주 속 이런 것들을 잃고 있었구나!" 하는 각성들이

하루에도 수 십번씩들 있지만, 사실 나는 하와이 사역을 내려

놓고, 이 학문의 길을 선택해 떠나 오면서부터, 절대 심하게

일을 하지 않은지, 올해로 꼭 4년 반이 이젠 된다.



내가 감당할수 있는 이상으로 너무 과 포화의 일의 양은, 나를 

화 나게 하고, 성품을 나빠지게 자꾸 하려는 경향이 있어, 얼른

그 바쁘고, 분주했던 삶을 나는 정리하고, 


그 다음부터는 절대로 일을 그렇게 너무 많이 하지 않는, 나의 

삶의 패턴을 의식적으로 지난 4년 반 동안 고수해 온 것.




그리고 나는 참으로 많이 회복되고, 진정으로 여러면에서 아주

건강했던, 나의 어릴 적 모습으로, 이제 많이 돌아 가고 있다.


올 한해 쉬면서의 나의 건강한 회복들이 사뭇 기대되고, 흥분 

되는, 그런 나의 삶 안의 한 좋고도, 아름다운 한 철인 것이다.




우리 삶 안에는 이렇게 가던 발길을 문득 멈추고, 쉬어야 할 

때가 꼭들 있다.



쉼.

참 좋은 단어.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득량만에 깃들다'라는 아주 낭만적이고, 서정적으로 들리는,

아름다운 제목의 인간 극장 첫 회를. 그 제목의 정감에 이끌려

보면서, 미소가, 웃음이 너무나도 고운, 아름다운 한 가족, 

특히 한 젊은 아름다운 부부를 보다.




한반도에서 가장 빨리 봄이 찿아 온다는, 내 고향 남도 고흥 

반도는, 따뜻한 남쪽, 인심 좋은 들녘, 풍성한 해산물의 황금 

어장들과, 황금빛 낙조를 자랑하는,  


'남녘의 진주' '남도의 보배' 라 불리는, 아름다운 남도 끝의 

한 보물섬 같은 반도 땅이다. 

남도 고흥을 거친 봄 바람이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 올라 가면서 

봄은 시작 된다고들 말한다.




문둥병 나병 환자, 한센인 시인, 한 하운의 '보리 피리' 시와 함께,

슬퍼서 더 아름다운 섬 소록도를 품고, 나로도에는 최 첨단 과학의

요새인 나로도 우주 정거장까지, 그 다양성은 아직도 조금은 조용히

숨어 수줍게 그 아름다움들을 서서히 기염을 나타내는 한 고을이다.


빛 고을 광주가 역사 안 그 기개를 강직히 지키면서, 우리 남도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면, 내 고향 고흥 반도는, 봄을 말아 올려, 한반도

전역에 이렇듯 흩뿌려 대는, 한 고운 일을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득량만에 깃들다' 인간 극장 한 부제를 대하는데, 

문득 이상하게도 나의 모든 핏줄이며, 혈연, 인간 관계를 잡아 

당기는 그 무엇이, 


이 '득량만' 이라는 단어와 함께, 소록히 담겨져, 내게로 달려 

다가 오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온다. 


그게 과연 뭘까? 싶어 내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다.




고흥만에서 건너다 보이는 여우라는 곳에는 고모 할머니가

아주 젊잖으시고, 호남이신 고모 할아버님과, 깍아 놓은 

밤처럼 예쁜 자녀분들을 낳고 거기 만, 바다 건너 살고 계셨다.


그리고 보성군 득량면 예당에는 우리 할아버지가 증조 할머니와

작은 새 할머니, 그리고 의붓 고모와 함께 사시고, 그 신식 공부를 

마치신 새 할머니는, 장흥에서 오신 아주 경우 바르고, 고아한 한

신 여성이셨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친정, 나의 외가는 순천군 승주로 다 그 고흥,

장흥, 순천등등의 바다를 안고, 그리움들을 거기 그렇게 설설히들

품고, 멀리 해안선으로 서로들을 바라들 보시면서, 그렇게 사시고들

계셨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이름 득량만은 나에게 아주 정겨운, 아스라한 추억 속의 

그 어떤 정감을 그렇게 소록히들 담고, 나의 심장을 벌렁 벌렁 뜀으로

이끈, 그런 단어가 어느 새 내 무의식 속에서 그렇게 되었나 보다.


특히 그 득량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광주 만큼이나 늘 새롭고,

다른 배경의 한 고장이였다. 그건 할아버지 댁을 늘 우등상을 타서

자랑하러, 내가 한약을 먹으러 가던 방학철들이였다.





할아버지는 내 우등 상장들을 늘 지긋히 웃으시면서, 자랑스러히 

들여다 보시고는, 아주 그윽히 사랑 하시는 눈으로 날 늘 건너다 

보셨다.


할아버지는 엄마의 온순하고 사랑스런 성품을 늘 너무 사랑 하셨다.

그리고 난 어릴 적엔 믿거나 말거나, 우리 엄마의 온순한 성품을

그대로 100% 닮은, 그런 조용한 한 아이였다.


                               


득량만, 득량, 고흥, 벌교, 여우,장흥, 순천 승주등을 좀 공부해 

보려 한다.


그 나의 핏줄과 심리 내면으로부터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이 달음질 치는 그 무언가의 끌어 당김들이, 그 공부 가운데서 

밝혀 지리라 생각 되기 때문이다. 



그래 그 첫 시작으로 한번, 그 황금 들판들이 내어 주던 우리의 

소산들과, 그 넉넉하고 여유롭던 크고 넓은 바다가 우리에게

늘 풍족히 내어 주던 자신들을, 한번 먼저 다시 한번 그려 본다.


기억의 습작으로.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미국 중동부의 한파의 영향으로 미국은 지금 모든 이들이 

이 지구 온난화를 위시한, 기상 변화들에 기들을 바짝 세우며들,

긴장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자연 재해들이 흔히 들어 닥칠때, 늘 음식 사재기며, 

그 추위를 견뎌 날수 있는,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등등은, 우리들 내면 조금씩의 두려움들로 스멀 스멀들 기어들 

들어 온다.



한국에 한파가 오는 모습들, 머플러로 뒤집어 감고, 털 후드로 

뒤집어 쓰고 등의 모습등은, 시베리아에서 살아본 나에게도 

어떨땐 두려움으로 내 마음 안 다가 온다.



시베리아와 이런 곳들의 한 차이는, 시베리아는 그 추위가 

오랜 역사를 가지기, 잘 준비들이 되어 있다는 것이지만, 이런 

세상들 안의 추위는, 다들 거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그런 

두려움의 형태이다.


시베리아는 주거 시설, 의상, 그 모든 것들이 다 잘 준비들이 

되어 있다. 도시 가스로 데펴지는 아파트들은 잘잘 끓게들 늘 

따뜻하고, 


시베리아 지역 옷들을 사서 입어야지, 아무리 발달된 좋은 

서방 국가들에서 옷을 사 가지고 들어 가도, 그 지역들만의

혹한의 추위를, 바깥 외부 나라들의 옷들로 견디어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 곳서 오래 살아본 이들은 다 안다.



내년 겨울 혹한을 한국서 날 오리털, 거위털등의 긴 코트나 

잠바를 오래 찿고 있다. 한국에 좋은 옷들이 많은 줄은 알지만,

미국과 달리, 터무니 없이들 비싸, 


그런 고가의 옷들을 사서 입기에는, 너무 아깝고 낭비들인 것 

같고, 싸이즈며 뭐며들 다 원활치가 않아서다.



사이즈며, 사는 방법들이며, 디자인들이며, 모든게 다 서양의

시스템들이 나에게는 아직 너무 순조롭고 간편 하기도 해서다.


아주 마음에 드는 오리털 잠바 하나를 지금 찿아 내어, 그걸

살것인지 말것인지를, 오래 오래 숙고해 보고 있다.


재정 사정이 원활한 자들에게는 이게 아무 것도 아닌 재정의

양이겠지만, 나한테는 조금 너무 무리 스럽고, 또 이 옷이나 

음식 싸기로는 유명한 이 미국 가격으로는, 


조금 무리스럽게 책정된 비싼 금액이라는 걸, 나는 국제 시장 

경제들을 다 훓어온 한 사람으로서, 지금 너무 귀신같이 잘 알고 

있어서 이토록 망서려지고, 그래 이토록 심사 숙고에 숙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목돈이 드는 구매는, 나는 절대로 섣불리 사지 않는 것이

나의 구매의 한 방법. 생각에 생각, 사려 깊은 고민에 고민을 늘 

아주 오래도록 하고, 


서로 비교를 잘 해 본 후에, 그 가격이나 쓰임이 가장 적절 하다고 

완전히 결정 내려진 다음에야, 꼭 사는 확실한 버릇이 나는 늘 있다.


그렇게 사니, 거의 모든 물품 구매 용품들은 10년, 20년, 30년들

씩을 고스란히 아주 잘 쓰고, 절대 낭비 하거나 쉬히 버리지 않게

된다.



한국은 생활 수준이 높아져 이런 고가의 거위털 잠바등을 

몇 개씩 구입해, 번갈아 가며 입는 사람들도 많다고 들었지만,

난 정말 돈 100불을 금쪽 같이 아껴 쓰는 이런 부자 나라 

선진국들에 살면서, 


그 들의 습관들대로, 이런 고가의 옷들은 딱 겨울이면 겨울 

한 철, 한 가지로 계속 위에 걸쳐 입고 나가는, 한 유니폼처럼 

쓰는, 이네들의 생활 습관들에 나도 함께 길들여져 있다.



이런 큰 목돈 드는 거위털 잠바등을 마련하면, 그리고 수 년을 

유행을 따르지 않고, 차분히 내 취향을 고수 하면서, 그대로

입는게 나의, 그리고 이곳 서양인들의 소비 방법들이다.


내 아일랜드 양모 모직 긴 외투와 이 거위털 코트는 앞으로 

수 년간을 전혀 주위를 의식 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검은 

좋은 모직 머플러나, 브라운등의 다른 소재들을 곁들여 가면서,


나는 매년 그 도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도, 겨울을 멋스럽게

살아 내는 방법들을 너무나 잘 안다. 



더운 하와이나 켈리도 살아 보았고, 뼛속까지 으슬거리게 추운

유럽과 시베리아의 겨울등을 잘 다 살아 보았기 때문이다.


오리나 거위를 산 채로 털을 벗겨 낸다는 뉴스 보도에, 될수 

있으면, 그런 옷을 입고 싶지 않아, 인조털들 옷들을 찿아 보느라,

시간이 엄청 걸렸다. 그러나 인조털 옷들은 전혀 선택이 거의 없고, 

제품들도 거의 나와 있지를 않다.



독일에서 어릴 적 공부 할 때, 아주 좋은 독일 오리털 큰 파커를 

하나 선물 받아,  20-30여년을 정말 잘 입었다. 독일 제품들은 

대개는 다 그렇게 오래 가게, 품질들이 기가 막히게 뛰어난다.


이런 아웃 도어 용품들이나 혹한을 이겨낼 겨울의 옷들은,

단연 캐나다와 독일이 뛰어 나게 잘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내일 정오까지 나는 이 거위털 코트를 구입 할 것인지 아닌지,

결국 최종 결정을 하고, 정말 이 옷이 나의 한국 생활에서의

혹한에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구입을 결국은 내일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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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들을 쓰는데, 창 밖 크나큰 4층 높이까지 자라 올라 온 고목

나무들에, 수 많은 아름다운 새들이 다 날라와, 카나리아처럼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들로 노래를 불러 준다.



시베리아에 살 때, 너무 적적해, 나는 지역 신문에서 찿은, 

시베리아 호랑이를 잡은 경력이 있다는, 사냥꾼 할아버지 집을 

물어 물어 그 눈 구덩이 속 찿아가, 카나리 한 마리를 새장째

사 들고 집에 돌아 왔었다.


그 시베리아 노년 사냥꾼 할마버지 집에는, 그야말로 그 많은

카나리아들이 수 백 마리들 천지 빠깔이었다. 



그 우리 집으로 입양 되어온 작은 노랑 카나리아 새 한마리는 

정말 노래를 너무나도 잘 불렀다. 


아니 처음 와서는 너무 어려서인지, 새 환경에 대한 충격에서

인지, 몇 달간 전혀 노래를 부르지 않고, 파닥 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목청을 풀어 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 하는데,

그건 그야말로 천상의 음이고, 천상의 한 노래들이었다.


얼마나 아름답고 청랑한 목소리들인지, 아침 침대에서 눈을 뜨기

전 , 그 새 노래 소리를 들으면, 하루가 왼종일 행복해 지는 그런

기분 이었다.



조와 해바라기 씨등의 음식을 먹고, 걔는 나랑 그렇게 아주 

오래 참 잘 살았었다.


내가 시베리아를 7년 사역 후 접고, 영국 본부로 돌아 오기까지.

그리고 그 새는 배우자를 그 입양 받은 집에서 마련해 주어,

새끼를 많이 깠다고 들었다.



아니다. 이건 내 기억이 틀린 것.

그 새는 내가 북극 최 첨단으로 여름 일을 가야 했을 때,

남의 집 한국인 집에 주었다. 


그 후 내가 가서 직접 그 낳은 새끼들을 그 집 방문해 보았었군.


인간의 기억은 이래서 참 위험하다. 어떨땐.

전혀 그게 아닌데, 철썩같이 그렇게 믿고, 알고, 그렇게 

그 사실이 아닌 사실 위에 그냥 살 수 있는.



새들이 이렇듯 나무에 와 지저귀기 시작하면, 늘 세상이 다

아름답고 선해 보인다.


나도 3월말 내 고향 고흥에 가 살면, 다시 카나리아를 한 쌍 사

길러 볼 요량이다. 그리고 새끼도 많이 쳐 늘려 가야지.



시베리아에서 호랑이 할아버지에게서 산 나의 카나리아는

노랑이였는데, 이젠 백 새와 홍조를 한번 섞여 키워 보아야겠다.

흰, 홍, 노랑이 다들 세 마리를.


난 이렇게 내 고향 귀향서 해야 할 일이 지금 너무 목록에 많아

고민이다.


그러나 그것은 소망과 꿈이 한데 서린, 아름답고도 행복한 많은

고민들인 것이다. 



하와이에 살 때는 이 카나리아들이 들판에 늘 자욱히 많았다.

괜히 억울하고 헐! 스럽던.


나는 집에서 그 한 마리를 그 정성을 다 해 키웠는데,

이것들은 들판에 이렇게 떼로 자욱이라니 싶어서.


내 고향 고흥에서 카나리아 노랫 소리를 들을 걸 생각하면 

벌써 기분이 다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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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로스엔젤레스 시내에서 크게 부상 당하다.


이빨 깨지고, 왼쪽 무뤂 깨지고, 9개월 걸려 거의 다 나아 놓은 

오른손 손목 다시 다치고.




완전한 패잔병의 모습으로 지금 휴식중.


앞니 끝 두 개가 안이 홀라당 부숴져 나갔다. 

치과 대학에서 치의학 전공한 내가, 지금 이 앞니의 끝 부분들이

길어 자라 나길, 그런 얼토 당토 않는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는.



어릴적 치과 대학 시절, 미국 교수에게서 잘 배운 이유로,

치아 관리를 아주 이른 나이 아주 잘 해, 이 하나만은 모든 

나라들의 치과 의사들이 스켈링 할라치면 , 


늘 너무 놀라고, 사진으로 모델처럼 좋은 이 관리 경우로, 

사진들을 찍어 놓고 야단들이던, 완벽하게 건강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움의 자랑이었는데, 



이렇게 불의의 사고로 이번, 내 생전 처음으로, 이런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한국에 돌아 가면 아무래도 치과 송진(Resin)으로 보정을 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치아 끝들이 두 개 동시에 깨져 나가면서, 

충치 생기기 쉬운 부드러운 치아 부분이 노출 되어 버려서.



Schade !!

독일말론 천만유감 !! 의 사고이고,

우리말론, 황당 무계의 사고였다.



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 사람이 이렇게 죽어 가는구나! 하는 

유체 이탈같은 슬로우 모션 같은 무의식 속으로 들어 가면서,



내 생애 처음, 사고로 나도 죽는다면 이런 것이 되겠구나! 

하는 걸 생각.





무심히 먼 산을 일부러 보면서 모른척 하고 지나던, 두 한국 

사람과, 괜찮느냐고, 혼미백산을 해 놀라 나에게로 달려 오던, 

두 남미인 여자들의 대비를, 나는 내 삶 안 또 다시 한번 경험 

했다.



내 나라 내 민족들이지만, 정말 인간적인 정나미라고는,

눈꼽만큼도 거기 전혀 존재하지 않는,

우리 한국인들의 몰인정하고, 야비한 멘탈리티들을 거기서 

또 한번 본 것이다.





돌아 오며 생각.


"년말 액땜 했다고 생각해라 !! "

우리 문화의 사고에서 나오는 한 표현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내 생각 속을 배회하고 다녔다.



새해에는 빠른 쾌유를 위해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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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동생에게서 장문의 긴 편지가 도착된 날.

손 편지가 없어진 요즙은 그거야 당연히 이 메일 편지이지만,

긴 장문의 편지였다.


엄마를 아주 어린 시절 여윈 내 남동생들에게는, 이렇듯 너무 

마음이 어렵고, 힘들고, 버거웁기 그지 없을 때는, 당연히 엄마가 

많이 그리울 것이고, 그 죽고 없는 엄마 자리는, 늘 누나가 대신

하는 그런 상황이다. 우리집은 늘.



세상을 떠 안기가 너무나도 크고 무거울 때, 내 남동생은 늘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사실은 동생 자신이 너무 힘들고,

버겁고, 아플 때인 것을, 이 부족하고 늘 모자라는 누나는 또 

너무나도 잘 안다.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늘 따뜻한 옷들을 사 보내곤 했던 나이기,

또 그 추울까 봐 걱정이 되어, 옷 사이즈들을 다시 검토하고, 

나는 옷들을 찿아 본다.



죽은 막내 동생과 이 큰 동생은 내 평생의 가슴의 못이었고, 십자가

였다. 가난과 어려움에 평생을 시달리는 두 동생으로서.


그렇게 평생을 가난에 시달리던 막내 동생은 결국은 자살이라는

것으로, 그 마지막을 결정한 후, 그렇게 떠났고, 한 동생은 그래도

이렇게 아직 살아 남아, 그 혹독한 가난을 견디며, 지나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어려움은 어려워 본 사람이 아는 것이라, 

이 두 동생은 나의 어려움과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함께 늘

느끼고 안다. 


이 연말 마지막 남은 몇 일 전, 나의 우리 가족을 위한 기도는,

평생을 가난과 어려움, 힘듦 속에서 산 우리 남동생들이 이젠 

좀, 



이 가난의 저주로부터 벗어 나게 하셔서, 가장 기본적인 

것일지라도 좀 누리고 살수 있는, 남은 생을 허락해 주시길 

부탁 드리는 기도였다.



나는 나의 하나님의, 이 가난의 질고를 혀용 하시지 못 하시고,

우리 가족 모두를 그 상황에서 구해 내시지 못 하시는 우리의 

하나님께 대해 많이 섭섭하고, 심히 유감이다.


연단?

훈련?

평생을 그렇게 사람이 처절 하도록 겪었는데도 무슨?


이 부분은 늘 우리 하나님은 , 우리 가족에 대해, 나의 사고 안,

무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영광도, 감사도 돌리기 너무 어려운

한 상황이고, 상태일 정도로.



그래서 나는 성 동일의, '가난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지겹고 

싫다'는 그 부르르르 떨던 마음을, 너무 십분 이해했다. 어느

방송을 지켜 보면서.


이 가난의 질고의 문제를, 나는 언젠간 다시 잘 정선해, 내 사고

안 다시 잘 정리해 접어 넣어야 하는 숙제로 지금 남아 있다.


그 폭풍의 한 소용돌이인, 한 폭풍의 눈의 한 기점을 지나는 

지금은, 그럴 경황과 여유도 아직은 없지만서두 말이다.



가난과 빈곤.


나의 삶 안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숙제로 남겨 놓으신, 한 

theme 이고 소재인 것이다.


가난한 자에게 있어, 가난이라는 것은, 세상 이들이 쉬히, 쉽게

정의들을 내리는, 그 어떤 낭만도 절대 될수 없으며, 그것은 그들 

모두들에게 있어, 한 처절한 현실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하늘 창공이 푸른 쪽빛 물을 거기 그렇게 갖다 찌끄러 부어 버린듯,

하늘은 청아하니 맑고 푸르고, 날씨는 적당히 쨍한 날이다.



남가주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날씨가 화씨 78도인데, 조금은

그것보다는 밑 도는 75도이다. 이런 쨍! 하니 적당히 시린 날은 과연

몇도인가 온도계를 한번 들여다 보니.



정말 그야말로 눈구덩이에 늘 9개월을 박혀 살던 시베리아는

집 안들에 온도계 하나 설치해 놓치 않는 이상한 시민 생각 안 하기

그지 없는 그런 나라를 나는 거기 7년을 살았다.


개인들이 온도계를 사서 창 밖 유리창에 부착해 놓고, 아침이면

일어나 시험 낙방, 합격 보러 가는 수험생들의 비슷한 두려움으로

오늘의 날씨를 점쳐 보면서 떨던 그 긴 지겨운 삶을 거기서 일 때문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이 천상 아래 낙원이라는 날씨의 남가주

집들에는 다 냉방, 난방 기계들 때문, 온도계가 거기 그렇게 늘

떠억! 받쳐 주고 있다.




이게 아마 삶의 한 단면도일 것이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더 없는 괴리들.

그래서 세상은 공평 하지도, 공정 하지도 전혀 않다.



오늘까지 모든 사무실들이 일을 하고, 내일부터 2주간의 성탄과 

새해 휴가들에 다들 들어 간다.


나도 내 내담자들 전부를 다 방학을 주어 내 삶 안에서 머얼리

아주 멀리 추방해 쫓아 내어 버렸다.

당분간 2주는 그 삶의 찌들리고 억울한 하소연들을 좀 안 들어도

되는 이 축복이고 감사여.



밀리고 밀린 영수증들과 집세등을 부분적으로나마 좀 예의로 

갚아 줘야. 직원들도 기관에 큰 소리들 치며, 이 휴가들을 좀

보낼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수표를 두 개 써 들고, 그런 가장 열악한 내 체납들을 지금 

갚으러 가러, 머리 감고, 드라이 하고, 꽃 단장 하고, 내 돈 받는

이들을 만나러 갈 요량이다.



이 지겨운 불 체납의 스트레스를 좀 줄이려, 요즘 나는 거의 모든

것들을 최대로 다 끊어 없애 버리고, 가장 비 문명의 아날로그식

삶으로 돌아 가, 문명과 끊어진 자연 그대로 돌아 가는 삶들을 

연습 하며 살고 있다.


내 삶 안 이제 이 고지서들은 가장 최소로 줄여 버릴 계획인

것이다. 그 스트레스로 부터만 벗어 나도 인생이 훨 가벼울 것 

같다는 예감이고 판단인데, 그 경우가 딱 들어 맞게 다 줄이고

나니, 그렇게 편할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자연인으로 돌아 가려 한다.

나의 남은 25년여의 삶은.

시골에서 그렇게 가장 자연 그 자체에 가까운 한 사람으로,

그렇게 살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12월이 그렇게 마무리 되고, 무르 익어 가고 있다.

우라질, 제길헐. 또 한 해가 이렇게 삭아 녹아 빠져 버렸다.



우리는 한탄할 그 무엇이 서러워 또 이렇게 눈물 짓는 것일까?

밀려 오고 밀려 오는 그 수 많은 회한들을 우리는 그래 또 이렇게 

노래한다.



덥지도 춥지도 않는 그 은혜는 늘 우리를 이렇듯 두르고, 그리고 배신

으로 등쳐 맞은 인간 군상들은 신뢰가 어렵다고들 그렇게들 아우성들

을 쳐 댄다. 


나는 그런 함성들의 소란함들을 클리닠에 앉아 들으면서, 냉기 어린

미소들로 비웃고 경멸들을 또 해 대고.

인생은 이래 저래 그렇게 흘러들 가고 있는 것이다.



아픔의 아우성들은 높아져 가고, 우리 모두는 서로 이렇듯 안녕하지

못할 때, 아프다가 시리다가 얼렸다, 녹았다 하는 이 놈의 가슴들은

이젠 그냥 무덤덤에 그 아픔도, 시림도 더 이상은 느끼지를 못 하는 

그냥  Numb 그 자체들이고.


세상은 그래 머리 풀어 헤친 망나니처럼 어지럽다.

그래도 무대에서 극들은 여전히 돌며 상영 되고들 있다는 비애를

우리는 애써 외면들을 해 대면서.


그렇게 우리는 그냥 저냥 그렇게들 살고 있는 것이다. 



한탄할 그 무엇이 서러워서

뒤도, 앞도 아닌 그냥 지금 이 순간들만을 우리는 응시하고 싶은

것인가?


대자보에도 안녕이, 그러나 난 다른데로 나의 시간들을 애써 잡아

끌어 놀려 보면서 그 글들을 더 이상 전혀 찿아 읽지를 않는다.


그 핵심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그 가슴이 다른 이들에게 그토록 

전해 졌을 그게 무엇인가도, 난 별 궁금 하지가 않게, 그 질문들도,

대답들도, 


어쩌면 이 삶들에서 간접적으로 늘 대하고, 보고 있기 때문일랑가도 

모르겄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안녕이 요즘 판 치고 있는 세상. 그대 정말 

안녕들 하십니까들?



난 별로 그렇게 잘 안녕하지 못합니다. 지금.

세상의 불 안녕, 비 안녕들을 너무 뒤집어들 쓰다 보니.

그 우라질 일이 나의 직업이다 보니.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성도의 교통함의 교제와 성찬등을 뜻하는 그리스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우리 믿음의 권속들인 그리스도의 지체들의 

영원한 한 결속들이다.


어제는 난데없는 사랑하는 제자들, 친구들이 선약도 없이들 많이도

나를 방문들을 해 와, 기쁨과 즐거움의 함성이 쇄도한 날이었다.


보너스를 받았다고 몽땅 싸 들고 헌금 해 주러 온 자들.


바쁜 주중 일 때문 잘 못 와 본 친구들이, 그냥 저냥 무작정 많이 

보고 싶어 무작위로 달려온 경우들 등등.



덕분 냉동고의 고기들이 식사 대접 때문 텅텅 다 비워지고,

그동안 무더기로 선물로 쌓였던 그 많고도 풍성했던 내 과일 창고가

금새 다 비워 치워지고,


텃밭 채취 푸른 푸성귀들이 반찬들로 급히 나가 지고, 차에, 커피에

김을 풀풀 쏟아 내는 연이은 밥솥의 새 밥 짓기등으로, 그야말로

눈코 뜰새가 없이 바빴던 주일 오후와 저녁, 밤이었다.


사람이 어딘가에서 많은 열매들을 맺어 내고, 떠나 가야 할 때가 

되면 늘 이런 현상들이 빈번해 지는 것 같다.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슬픈 두 이야기도 그냥 그렇게 우수로 얻어

들으며, 가슴이 미어질듯 아팠던 밤이기도 했다.


정말 신실했던 브라질서 30년이 넘게 일을 한 내가 정말 사랑하고

예뻐하는 부부 하나가, 남편을 생계 유지 때문 일 년을 다른 나라에

일을 보내고, 아이들 교육이며들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 아내가

이 곳에 일 년을 떨어져 있는 사이,


16세 어린 남미 자매 하나가 이 남편을 유혹해 성 폭행으로 그 나라

에서 쫓겨 나고, 교단, 교회, 후원회등서 모든 직위가 박탈되고, 학비

를 낼수 조차 없던 아이 둘은 미국 군인으로 입대해, 나중 학교 학비나

벌어 보려고 보냈다는, 그 아내의 가슴이, 삶이 무너졌을 한 이야기며,



내가 그토록 신뢰하던 젊은 지도자 목사의 내연녀와 자식 이야기는

그 태어난 아들이 벌써 3년이 지났고, 그 꽃뱀 같은 여자는 아이들

아버지들의 성이 세 명 다의 자녀들이 다 다른 성을 가졌다는등,


참 해괴 망칙들 하고, 소돔과 고모라가 따로 딱히 정해져 있는게

아니구나! 하는 하나님 경외함을 배우지 못한 주의 종들의 그 시리고

아픈 죄악된 속성들과, 미혹과 유혹들 앞, 성 문제로 늘 이렇듯 힘 

없이 무너지는 실상들을 들으면서,



참 왜 우리 여성 사역자들은 그렇게 성 문제들로 무너지는 경우들이

거의 없는데, 왜 남성 사역자들은 이렇게 거의 다 무너지고, 넘어지는

영역들은 천편 일률적으로 이런 성의 문란과 도덕성의 결여, 하나님

경외의 부재 현상등으로 이렇듯 나타나는지 등을, 


이제 크는 젊은 리더들에게 그 양식과 도덕등을 잘 가르치지 못한 

우리 믿음의 세계들 안의 한 약점과 검은 구멍을 깊이 생각하다 잠이 

든 밤이었다.



왁자지껄 그런 교제와 수다들 속, 늘 새로운 지도자들이 이렇듯

함께 알고, 만나 가고, 그래서 참 우리 믿음의 권속들의 그 부요함을

다시 한번 다들 느끼고 보면서 행복한 하루였다.


이 도시의 주요 맥의 지도자들은 거기 그렇게 거의 다 모이고 , 만나고

하는 장소들이 거의 된다. 이런 코이노니아들을 경험하다 보면.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더니, 이 믿음의 권속들의 그

부요함 속에는 이런 풍파의 이야기들도 거기 그렇게 늘 상존 하는 

것이다.


이런 저런 모양새로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우리 주님을 많이 생각

해 보면서, "주님, 죄송 합니다. 이렇듯 우리 믿음의 권속들 중 

엉덩이에 뿔난 못 된 송아지들이 많이 날뛰는 세대여서요. 

 

다 우리들 모두들의 불찰입니다" 하구선 말씀을 고개를 숙이고

드리구선 잠이 들었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난데 없는 한파가 켈리에 몰아 닥쳐, 비상 사태가 뉴스 도중 

발효되고 야단이더니, 어제부터 오늘 정말 쨍! 하게 칼 얼음

소리가 나도록 맑으면서도 춥다. 


내일은 여기에 비가 와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다음 주 목요일 이후에나 본연의 온도를 되찿는다 한다.

연약한 미국의 평생 편하게만 산 노인네들은, 날씨가 갑자기

이렇게 너무 추워 지거나 더워져 버리면, 많이 사망들을 한다.


별탈 없이 모두들 이 추위를 견뎌 내고들 살아 나야 할건데.



집에 뜨거운 수프를 자주 끓이고, 따끈한 새 밥을 식사 끼니

마다 앉혀 내고,

유리창을 못 여는 집에는 향초를 피워 음식 냄새들을 태워 

잡아 본다.


이게 얼마만한 후의 겨울 집안 단도리를 해 보는 작업인가?

난 겨울이 무척 좋아 이렇게 신이 나지만, 이곳 본토백이들은

죽을 맛들일 것이다.



덕분 글을 쓰지 못한다.


대학원 인터넷 연결을 유리창을 열지 않으면 집 안에선 잡아

낼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무슨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

일인가들 의아해들 하겠지만, 우린 한국보다 훨 더 이렇게

미개인으로, 야만으로, 원시로들 이렇게 살고 있다.


이것이 미쿡의 생활하는 이들의 한 현실이다.


마침 텃밭을 다녀 와 싱싱한 야채들을 한껏 수확해 와,

이 햇빛 적고, 유럽의 우중충 청회색 겨울나기 같은 날들을

비타민들을 그렇게 넉넉히들 섭취하고 있어 나는 마냥 신이

난다.



그리고 나의 앞으로의 20여년 겨울 나기들을 미리 내다 

보면서, 수 많은 말로 다 표현키 어려운 수 많은 감정들이,

겨울 철새 남으로 날아 내려 가며 내는 괴성들처럼, 


내 내면서들 그렇게들 꺄우둑 거린다.

참 겨울이다. 그리고 참 나는 좋다. 이 느끼는 많은 기분들이.


오늘 오는 내담자가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 주님의 평생의

일을 위해 곧 떠나는데, 잘 무장 시키고 굳건케 해 내 보내야 할 

것이다.


가족 치료 받았던 내담자 가족인데, 오누이가 함께 다른 장소들을

위해 떠난다. 자랑스럽고 참 아름다운 가족의 한 헌신의 장면이다.


나는 이제 내 하와이 짐을 맡겨 놓은 창고비를 지불하러 수표를

쓰러 가야 하고, 나보다 훨 나이가 많은 제자 하나가 중남미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오늘 헌금을 $500.- 보내 왔다.


이런 밀린 세금들에 집세 내라고.


내가 도와도 뭐 할건데 이게 다 도대체 뭔 삶인지 참 난감하고

망연자실 하다는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주는게 편하지, 받지

못 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내 말년까지 이렇게 겸허히 훈련을 시키시겠다는 

데에는, 난 감정을 이젠 많이 얼려 버리고, 잘 느끼지 않으려는 

나를 자주 종종 본다.


어떻게 나의 나머지 삶을 인도해 가시나를 나는 이렇듯 싸늘한

눈으로 그를 건너다 보며 그냥 그렇게들 요즘은 지켜 보고 있다

는게, 더 바른 표현일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서구 사회에 살다 보노라면, 이 'Healing'이라는 단어는,

뉴 에이지 신도들이나, 요가며 별 잡기스런 영역들에서 너무

야시꼬레하게들 트위스트 시켜서들 남용들을 하는 바람에, 

난 이 단어를 별로 좋아 하지 않는 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좀 알러지다. 이런 단어들에서 풍겨져들 나오는

그 뉘앙스들에.



치유라는 단어에다 특히 이런 푸른 자연 사진까지 깃들이면,

그건 서구 사회에선 많은 경우 영낙 없는 뉴 에이지 파들이

늘 하는 한 짓거리들이 딱! 그냥 그렇게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대학원 석사며, 박사 학위까지들을 

거쳐 가장 과학적이고, 건강하게 검증 되어 진행하는 나의

임상 심리나 상담 사역 영역 안에서, 


너무 그 길가 똘맹이들 처럼 흔하게 굴러 다니면서,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니도 나도, 모두가 다 분연히들 일어나 치유니 

뭐니들 하면서 난리 법썩들을 부려 대던, 


몇 년전 이 그 치유 광풍 열병들을 지극히 경멸하는 한 사람일게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 심리 상담 영역들에 그 흔해 빠진 치유 사역

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못 하게 내 내담자들에게도 될수 

있으면 자주 견제 시킨다.


나는 어쩌면 ' 회복 사역' 이라는 단어에서 더 건강함을

느낀다는게 한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뺏겨 버린 또 다른 

한 영역의 이야기들이다. 치유는 우리 진리 안에서 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세상적이고, 진리 자체에서 삐딱하게 틀린 길들로 

흘러 버린 그런 사람들 파들이 너무 빈번히 건강 하게들 

세상에 제시를 못 하는 꼬락서니들에, 


그런 영역은 아예 가까히도 잘 안 가려 하고, 피하고, 회피하며, 

멀리해 버리는 한 용어이고, 영역들로, 거기 그렇게 세상에 같혀들 

버리게, 


방임하고, 방치해 버리는 한 역기능적 패턴으로 그렇게 사장 되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대해 이렇게 잃어 버린 것들이 너무

많고, 비일비재하다.



그 비근한 한 예로, 서구 사회에서는 게이나 레스비언등의 

성 소수자들이 그 들의 한 상징으로 쓰는게 무지개이다.


그들 퍼레이드나 데모등에서 트랜스 젠더나 게이들 그룹들이

옷들을 벗어 제끼고, 사회에 반항하고, 덤벼 드는 모습들의

모든 장면들에는,


늘 이 무지개 깃발들이 서구 사회들에는 넘치고 쳐지게 많이 

걸려들 있고, 늘 남발들 되어 거기 그렇게 물결들 친다.


그런 익!한 장면들을 서구 사회에서 수 십년간 봐 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무지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나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 혼자 산다' 프로가 무지개를 그 상징으로

이름하니, 나는 참 심기가 불편했고, 그게 늘 참 마음에 거슬린다.



그러나 진리 안의 무지개는 사실 노아의 방주 사건 이래,

하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멸하시지 않겠다는

한 선하고, 아름다운 약속의 한 상징으로 두신 표징이었다. 

본래는.


그런데 이런 좋고, 아름다운 개념들을 이렇듯 현금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쉽게 그 영역들을 내어 줘 버리고,

빼앗겨 버리고, 잃어들 버리는 것이다. 


 

나이 50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주위 사람들이 나를 '철의 여인'

이라 부를 정도로 건강하고, 강하고, 그야말로 강단 짱! 이었다.


그런데 이곳 켈리에 온 이후 늘 새까맣게 고가의 학비와 기숙사비

등으로 속을 태우며, 피를 말리는 동안, 건강이 극도로 쇄약해

지고 만 것 같다. 


하긴 몸도 이젠 정말 쓸만큼 썼고, 평생을 고생 시킬만큼 충분히 

시킨 내 나이 이젠 벌써 55세니, 하긴 이해가 되긴 하지만서두.


그렇게 몸을 평생을 혹사 시키고, 방치, 방임 해 오는 동안 이곳에

온 근 5년여 동안 그야말로 온 몸이 다 돌아 가며, 안 아픈 곳들이

없이 다 조금씩 아파 가는 것 같다.


가는 세월 막을 수 없고, 그 세월 속 지치고 헐거워진 온 몸 구석

구석들의 낡음과 삭음을 막을 길들이 이젠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 난 그 돌아 가며 아픈 모든 구석 구석들을 그냥 망연 자실

바라 보며, 넔을 놓고, 그 발병과 치유들을 그냥 그렇게들 시간

들 안 그렇게 대책 없이들 속수 무책으로 바라 보고만들 그렇게 

있다.



몇 일 전엔 아마 내가 신장을 떼어 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극도의 불안감과 고통에 몇 일을 시달렸다. 그 아프기가 거의

쌀쌀 신장 자체를 삭아 내린듯 아프고, 


염증이 어디에선가 생기는지 속이 메슥 거리고, 온 몸들이 

살갗을 만지기만 해도 시리고 아스락하게 아프게 온 몸들이 

다 아팠다.


당뇨로 인한 신장 이상에는 고혈압을 조절해 주어야 한다는

정보에, 그 동안 몇 년 동안 방치해 두던 고혈압 약과 고 

콜레스테롤 약을 몇 일 복용 했더니, 


어젯밤엔 무슨 풍선 같은 것이 부욱! 하고 위로나 어딘가로 

솓구치는 것 같은 이상한 증상이 일더니, 끊어질듯이 아프던 

왼편 옆구리 허리에서 그런 뭔가가 움직여 나가더니,



오늘 아침 그렇게 서서히 치유가 된 듯 훨 덜 아프고, 

그 잘라져 나갈듯 아팠던 왼편 허리가 그렇게 나아 가고 있음을

자가 진단해 보며, 


나는 우리 몸의 그 생태와 자연 치유의 기적의 힘들을 그냥 마냥 

그렇게 신기해 하며 지금 조용히 침묵하며 지켜 보고 있는 중이다.



기도?

기도는 정직히 많이 하지 못했다.

너무 아프고 죽겠을 때 한 두번이나 했었나?


하여튼 몸이, 육체가 직접 물리적으로 이렇게 너무 아파 

죽겠을 때에는, 난 기도도 잘 못한다.



아니 기도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너무 심히 아프고, 어찌할 

바를 그냥 모르면서 쩔쩔 멘다는게 한 솔직한 표현들일 것이다.

그냥 그 아픔을 고통 스럽게 안고, 그렇게 심히 아파 하면서, 

고통과 그냥 그렇게 심히 씨름할 뿐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도 어쩌면 이런 한 가지 일게다.


우리가 알지 못 하는 사이, 모든 우리 몸들의 주기들이 어느 날

작동 하는 걸 서서히 멎어 갈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다른 세상

으로의, 우리 주님과의 평생 동행의 삶으로, 거기 그렇게 떠나게

될 것이고.


그래 저래 나이 들어 가며 지나 가는 세월과, 이젠 간다면 가야

하는, 우리 생명의 한계들에 대해, 나는 요즘 그래 참 생각들이 

많다.



막둥이 동생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 나는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는, 한 정확 하고도 확실한 개념이 나의 사고 속에 아주 

확고하고 확실해졌다.


누구나 언젠가는 맞아야할게 죽음 일진대, 생을 마감하는

시간대로 더 가까와져 가는 우리 연령들이 죽음에 대해,

생을 마감하는 그 어느 순간들에 대해, 잘 마음의 준비들을

하고, 그걸 맞음은, 


남은 이들에게도 너무 연연해 하지 않고, 좋은 마침과 종결의 

사례들을 아름답게 보여 주는, 한 삶의 지혜들로 남게 될 것이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들이 이렇듯 이젠 낡고, 약해지고,

그리고, 다시 시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치유 되고, 재생 되는

이런 신비한 기능들을 우리 몸 안들 두시고, 우리를 창조 

하시고, 빚으신 그 분은 참 위대 하시고, 


우리도 신묘막측 하게, 그 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지만, 

그 분 자체도 따라서 참으로 신묘막측하신, 한 아름다운 분이

시라는 생각이 오늘 아침 이렇게 문득 들어 온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아프리카에서 일 할때 한 선배 언니가 그 곳을 방문 했었다.
지역에서 특산품을 사면 늘 그렇듯, 깍고, 깍고, 또 깍아, 
그렇게 친구들 방문을 미국을 했는데, 뉴욕 사는 친구가 
그걸 휙! 보더니,

"이걸 돈 주고 사 왔니?" 하시더란다.

그러면서 선배 언니는 뒤로 한껏 허리를 제끼고, 
자지러지게 깔깔 웃으시면서 거의 죽어 나가게 웃어 댔다.

아프리카에서 아무리 제일 좋아 봐야, 미국 뉴욕에서는
비둘기 발목에나 묶어 줄 그런 수준 밖에는 안된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오늘 북미 원주민 인디언들이 1 미터가 넘는 큰 보석 돌 들을
바위에서 깨 내 톱으로 자르고, 손질해 큰 백 팍에 넣어 어디론가
배로 실어 가는 장면을 지켜 보며, 정말 신기해 했다.

아주 어두운 코발트 빛 보석 돌이다.
 



나의 한 친구가  한국의 한 오성 장군의 딸이었다.

이대를 졸업하고, 외국에 나와 아주 오래 일하다, 어느 한국

기업 총수의 며느리가 되어 시집을 갔다.


총수집처럼 보석을 다이아로 한 박스를 통째 맟추어 주더란다.

근데 내 친구가 약간 약은 여우이다.




그래서 그 보석 상자를 슥! 밀어 시부모님께 돌려 드리면서,

"저희가 일 다 끝나고 돌아 올때까지 부모님이 간직해 주세요"

하구선 돌려 드렸댄다.


그러니 그 총수집서 그야말로 일등 며느리감으로 영원히 

전설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한 믿음 좋은 며느리의 한 전설로 그렇게.

지금도 하나님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나는 걔처럼 그렇게 총수 며느리도, 마누라도 별반 훙미가

없는 부자 알러지인지라, 그런 보석들을 평생 많이 보질 

못 했다.


그러나 이 세상 거의 모든 여자들은 아름답고 이쁜 보석이나 

장신구들에는 흥미를 가지고 보게 되는 그런 정도까지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나 싶은게, 나를 보면.


디자인이 정말 세련 되거나 작가의 작품이다 싶게 아름답게

만들어진, 혹 간혹의 장신구들엔,  나도, "아! 참 아름답다" 

하구선, 유심히 들여다 보는 걸 보노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 Navy Blue 인지라 그런지, 

나는 보석도 사파이어등이 맑은 백금에 셋팅 된거나, 

맑고 흰 진주나 새하얀 빛의  보석등이 가장 참 좋은 것 같다. 


파티 정장 드레스를 입는게 일년 가야 고작 많아야 서너번인

나는, 보석들을 함께 입을 일도, 따라서  별반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있어 아름다운 보석은 영원한 

한 로망인 것 같다.


그 많지 않는 파티 드레스들에 맟추어 내가 모든 보석들을 다 

단정히들 준비해 맟추어 놓고, 늘 외출을 나갈 때 맟추어 입고

나가는 걸 보면.



이제 그 검은 정장 드레스며 긴 드레스들을 일년 중 한번

보석에 맟추어 입는 한 철인 성탄철이 다가 오고 있다.


이 모든 파티들에는 여자들의 가슴 설레임들이 거기 함께

있고, 그리고 거기에는 그런 단정하고 고아하고, 품위 있는 

보석들이 늘 함께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 인생은 늘 아름답기 마련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오늘 이렇듯 근사한 Thanksgiving Meal을 방문자들과 잘 먹고,

많은 감사들을 서로 나누며, 서로에게 선물해 온 엄청난 양의

음식들과 간식들이 집엔 그득 가득이다.


이 먹을 것이 넘치는 미국은, 이 철부터 성탄철까지 자못 신경을

써, 비만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오늘 이렇게 추수 감사절이 이렇게 지나고 나면 내일은 바로 

Black Friday 이다. 상가들이 폭풍 세일로 흑자를 내는 기간들인 

것이다.



나도 겨울 쟈켓을 하나 봐 둔게 있어, 내일은 타겟에 나가 보려 

한다. 월 마트등 수 많은 곳들에서 총기 사건들이 나는 등, 

내가 11년 미국 살면서 단 한번도 이 날은 밖에 나가 쇼핑을 하지 

않는, 내가 가장 제일 지겨워 하고, 싫어 하는 와글쩍 버글쩍 날.



그러나 이상하게 올해는 한번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여러 날 전부터

이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게들 앞 텐트를 치고 자고 하는

주접들까지는, 우리는 전혀 평생 살아야 생각 못 해 보는, 해괴하고

기괴한 행동들.



싸면 뭐가 얼마나 싸고, 또 그렇게 목숨들을 걸고 싸우고,

동물적인 본능들을 보이면서 사, 그걸 또 무얼 어떻게 그렇게들

잘 쓰겠다고, 그리 생명들을 걸고들 야단들인지, 나는 당최 이 

나라 것들을 도시 이해할 수가 없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일은 좀 느즈막히 한번 나가, 내가 그동안 봐 둔 겨울 

자켓을, 좀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물품으로 세워져 있는지, 넌지시

한번 지켜 볼 요량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 시편 79:25,26



근 일주일채 밤이면 너무 몸이 아파 3시 반경 계속 깨이다,

오늘은 급기야는 새벽 1시 잠이 깨어, 일어나 있다.

당뇨 때문 신장이 아픈건지, 무지 무지한 통증이 신장과

췌장 사이를 번갈아 가며 아프고, 속이 메슥 거린다.


우리의 육을 탄 도전들, 삶 안의 현실 속들의 도전들.

우리는 이래 저래 마음들이 쉴 날들이 거의 없게, 모든

면들에서 철저히들 늘 크나큰 도전들 속 이렇듯,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들려 오는 거의 모든 소식들은 살아 남으려 애쓰는 자들의

잘 포장들 된 도전들 앞의 애쓰는 소식들 뿐이다.


진통제를 며칠 먹어 보다, 이제 4알 남은 항생제를 한 알 

어젠 투여한 후, 결국은 고혈압 약을 아침에,고 콜레스테롤을 

치료하는 약을 저녘에 한 알 먹은 후, 잠들어 보려 시도해 

보았으나, 다시 이렇게 더 이른 시간에 잠이 깨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마음이 참 버겁다.



특이종 암 투병 종류를 두 세개를 거쳐낸 후배가 꿈에 나타나

험한 모습으로 쓰러지는 꿈을 꾸다 놀라 이렇듯 일어 났고,


걔네 이모인 선배 언니는 지금 사역상 뭔가 어려운 것들이

아주 많은지, 다른 선한 핑계들을 앞세우고선 영국 런던에

건너 가 아들 집을 구하는데 FB에 자주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려, 


어제는 웹을 다 뒤져, 내가 오래 시간들 영국에 머물 때면

사용하던 괜찮은 숙소들의 정보 제공을 도와 보고.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 시편 79:25,26


이 시편 말씀이 이 밤 섬광처럼 내 머리에 와 내려 와 앉는다.


                                       


오늘이나 내일 데려 가시겠다고 하셔도, 쉽게 순수히 따라

나설수 있게, 나는 나의 삶을 그렇게 준비되게 과연 살고 있는

것인가?


삶 주변을 그렇게 잘 좀 정리하며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는 한 밤이다.


두 명의 지금 8차 방사선 치료를 죽음과 부활 사이를 오가면서

받고 있는 암 투병중인 두 친구가 요즘은 늘 마음에 많이 켕기고,

그 방사선 치료 후 오늘 수술에 들어 가는 같은 직종의 일을 하는

한 동료가 내 기도 중 이 밤 있다.


이렇듯 수 많은 도전들의 연속인 우리 삶들 안, 

나의 믿음은 과연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집을 잃고 쫓겨나 주님을 찬양한다는 표현을 매 줄 글 줄마다

너무 심하게 쓰는 선배 언니의 긴 근황 소개 글 들에서, 나는 심한

마음의 염증과 역겨움을 느꼈다.


왜 아프면 아프고, 화나면 화난다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과 행위들 속 그렇게 

길들어들 왔을까?


아프고, 화나고, 수 많은 그런 찬양의 반대 되는 심정들이 마음 안

오고 가는데, 왜 우리는 그런 가식들로 우리 하나님은 치장해

주어야만, 그 분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그런 억지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과연 기인된 행동들이고 내면 마음 관리 들인가?


이런 육체의 쇠잔함의 현실들 앞, 나는 마음이 이렇듯 참 드럽고 

꿀꿀한데도.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목요일은 미국의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함께 큰 명절인 추수 

감사절이다. 티비에서는 요즘 연일 추수 감사절 요리 프로그램

들이 볼이 난다.


황금색과 갈색으로 아름답게들 집들을 장식하고, 터어키와

고구마, 호박, 크란베리 소스, 호박 파이등이 난리들이다

만드느라고.



'나 혼자 산다'의 전 현무 생일만큼이나, 이런 명절들의 싱글

들은 별 볼일들이 진짜로는 없는데도, 남들은 우리가 엄청 

바빠 수 많은 곳들로 초대 받아 분주 하리라 늘 여긴다.


결국 갈수 있는 최후의 한 결정은, 한 군데 밖에는 우리 삶

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 몸뚱아리가 하나 밖에는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쉬히 잊는 것이다.


약 5 군데서 그나마 강의 초청이며, 가족 모임에 초대 해 준

곳들, 상당히 고심하며, 어떻게 이 초청들을 마음들 상하지

않게 거절들을 할수 있나를 고심 하던 중,



결국은 가장 지금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 그 마음의

위로나 격려, 상담이 필요해 오고 싶다는, 한 지인의 경우를

그냥 집에서 받아, 우리 집에서 식사 하며 보내기로, 최후 

졀정을 결국은 했다.


사람 이렇듯 가장 어려울때 내 치는 법이 아니라는 양심의

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가장 깊이 호소들을 하고 있기 때문

이다. 





거의 모든 걸 나는 아무 것도 장을 보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지금 음식들이 너무 집에 충분하다. 


아마 이런 마음이 너무 상심한 자들을 먹이고, 위로 시키고, 

세우는 격려로 이 추수 감사절을 보내라고, 그렇듯 갑자기 

수 많은 음식들을 쏟아 붓듯 보내 오셨는가 보다.



올해의 감사는 수 많은 이 클리닠을 통해 회복 되어 나간

젊은이들이 수 없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들을 갔다는

것이고, 


나의 이 미국 사역과 이 장소들을 이젠 옮기셔서 다른 

장소에 나를 심기 원하시는 주님의 인도 하심이 익히

보이기 시작 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것은 감사이고, 동시에 두려움을 조금은 수반하는 새 

시작들이기도 하다.



내년 봄 부터는 그 모든 것이 다 우리 한국을 중심으로

벌어질 것이다. 기대와 감사와 기쁨이 함께 어우러지는

그런 기다림이고 기대이다. 



이곳 켈리에도 이젠 완연한 늦 가을에서 초 겨울로의 

차고 싸늘한 공기가 길에는 늘 부서져 흐른다. 


오늘 학교 도서관에 나가 몇 그동안 밀린 전공 서적들을

읽으면서, 미국 친구가 클리닠에서 빠져 나와, 점심도 함께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식사한 후, 메이시 백회점에서 매년 

주최하는 추수 감사절 퍼레이드들을 티비서 함께 지켜 보고,

이들의 명절들도 우리 명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친구 집에서의 부모님의 초대가 제일 거절 하기 마음 

아팠다. 그 쪽에서의 기대들을 알기에, 여기 까지가 나의 

서야 할 경계선임을 정확히 알기에의 거절이었다.


세계적 석학으로 이름난 한 노 교수님을 캠퍼스 교정에서 

잠깐 만나 뵙게 되어, 커피도 사 주셔서 마시고, 조금 이야기 

하다, 도서관으로 돌아 가, 마저 책들을 다 읽어 훓어 보고

왔다.


요즘 임상에서 몇 깊은 질문들이 있어, 교수님과 친구와의 

만남은 큰 도움이 되었다. 




올 한 해는 그야말로 이 클리닠의 열매들이 그득한 해였다.

그것들이 우리 주님께 올려 드리는 추수 감사절의 나의

추수 감사들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