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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4.03.22 남도가 낳은 인물!!??.....Well !!...제발 좀 이제 그만 ! by 텃밭지기와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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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4.02.26 주위가 건강하지 않으면, 그 곳을 떠나라.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고, 상하게 되면. by 텃밭지기와 상담
  11. 2014.02.17 나의 가장 슬픈 감정의 벼랑 협곡엔 그 어느 누구도 함께 따라 들어 오지 못한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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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4.01.18 나이가 들면 잊혀질 줄도 알아야. by 텃밭지기와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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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13.12.17 은 쟁반에 금 사과. 지혜로운 적절한 말들이 삶 안 있을 일이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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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산다는 것 : 2014.03.25 09:10



어제 일어난 두 세 사건을 나는 글로 적어 놓아야 할 필요성을

지금 마음 안 많이 느낀다.

 

주일 이른 아침이어서, 요즘 정말 꾸역 꾸역 많이도, 너무 많이도 

나오는 쓰레기들을, 카트에 가득 산더미처럼 싣고, 지하 주차장

쓰레기 대형 통으로 끌고 내려 가는데, 누가 자지러지게 크게

반가움으로 뒤에서 날 부른다.

 

우리는 늘 만나면 엄청난 재미난 일들을 만들어, 박물관, 자연 속,

공연들 속, 사건들 속, 늘 같이 많이 놀러 다니던 한 친구였다.

 

내가 한국, 그것도 고향으로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그 자리서

들은 친구의 충격은 그야말로 엄청 컸다.

 


내가 늘 대학원생들에게 안부를 물어도, 그 누구도 모르더니, 이미

1년전 이 대학원서 직원들 감원을 하는 때에, 그 처음 리스트에 올라

감원 대상으로 지금은, 

 

다른 신학 대학원들에서 파트 타임으로 그야말로, 마음 참으로 

착찹하고 버거울 지난 1년을 나와 다름 없이 보낸 하소연들, 푸념

들의 수다로 우린 한참을 그렇게 지하 주차장서, 

 

세상사 얼마나 허망하고, 그 앞 날들을 알수 없음들을 그곳서 그렇게

한탄하고 서 있었다. 필리핀에서 20년이 넘게 전문직 요원으로 잘

일하다, 

 

이 미국의 초청을 받아, 모든 걸 다 끌고 이곳에 온 한 친구인데, 

대학원의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직원 감축 케이스에 재수 없이

걸린 한 경우다.

 


상당히 저렇게 웃고 있지만, 내면에 스트레스 팍팍 받겠다 싶어,

내 텃밭 한번 분양 받아 이어서 지으면서,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를

좀 풀어 볼래? 했더니, 너무 좋아 춤을 출 지경이다.

 

그래 쓰레기 비우러 내려 갔다, 그 친구의 차를 타고, 쇠 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텃밭으로 가, 미나리, 치커리, 파등 초록 나물 해 먹을 거리

들을 둘 다 바구니 바구니 따 들쳐 메고 집에 돌아 왔다.

 

미국 메니저 할머니에게 나의 귀국을 알리고, 그렇게 그 친구는

내 텃밭을 이제 물려 받아, 웃음 꽃이 그야말로 벙실 벙실, 거의

그 깊은 기쁨으로 돌아 가실 지경이다.

 


텃밭 처음 2년은 누구나 이렇듯 좀 중독성이 있다.

 

누워도 밭만 눈에 떠 오르고, 난 대학원 노 석학 교수들이 앞에서

강의 할 때, 늘 우리 노석학 교수들의 머리칼들이, 내 초록이들로

보여, 슬며시 웃음 짓곤 했었다. 아주 중요한 강의들에, 공부는

안 하고선 그딴 생각들이나 하고 앉아 있곤 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친구가 그 판이 났다.

 

동양인이 되건 서양인이 되건, 땅이 주는 치유는 굉장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친구가 저녁을 먹이러 나에게 와 나가 저녁을 먹고,

집에 데리고 와, 볼트 수가 달라 한국에 가져 가지 못하는, 전체 전기 

기구와, 내가 이뻐서 꽁쳐 놓은, 아주 제일 예쁜 아이케아 가구들을

두 차로 실어 나르며, 다 지네 집으로 가져 가게 했다.

 

가장 친한 친구인지라, 마지막으로 작별을 하고 가는데, 나도 제일 

처음 경우로 눈물이 그야말로 펑펑펑 쏟아져, 우리 둘다 지하 주차장서

서로 배웅 하면서, 어엄청 울었다. 목이 메이도록.

 

세상엔 이런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내 일생에 세 명의 가장 신실 했던 친구 셋을 손에 꼽으라면, 

이 친구가 나중 그렇게 그 순위에 꼽히는, 나를 무지 무지 무지 

사랑해 주던 한 친구이다.

 

그런 친구와 정말 이젠 영원히 다시는 못 볼 한 이별을 한 것이다.

 


그리고 한 도깨비 할아버지가 차를 보러 왔다.

왜 그 할배가 도깨빈고니, 내가 분명 우리 옛날 조교에게 차를

내 놓았는데, 내 이 메일을 정말 어엉뚱한 다른 사람이 그렇게

받고 차를 보겠다고 온 것.

 

어느 강의에서 너무 교수를 괴롭혀 내가 진짜 미워 했던 그

나의 삶 안에 절대 들이지도, 이 메일을 내 메일함에 간직 하지도

전혀 않을 그 도깨비 할배가 난데없이 그렇게 차를 보러 온 것.

 

도깨비에 완전 홀린 기분의 그런 날.

어떻게 그런 불상사가 일어 났는지, 난 아직도 그 대답을 못

찿고, 오리 무중.

 


그리고 5월의 신부가 되는 제자가 예비 신랑과 내 공항 Ride를 

기꺼히 자청하고 나서, 그 들은 정말 행복해 한다.

 

오늘은 그 가장 마지막 찰나에 부랴 부랴 벼락치기로 팔아 대야 

하는 나의 차 문제로, 그야말로 하루 종일 이 메일을 붙잡고

소통과,

 

또 남은 잔여 물건들을 중고 가구 가게에서 가져 가게, 소통하는

그 수속들을, 아침 내내 뒷 골 땡겨 빠개져 나가는 듯한 고통 속들

해결하고 지금까지 이렇듯 앉아 있다.

 

나에게 두 번 다시 이런 이사를 하라면, 난 그 놈의 세상을 다시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한번 신중히 다시 생각해 볼것만

같은 그런 스트레스와 압력의 상황들이다.  

 


이런 얘들을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상쾌하고 젊게 삶을 보는 이 청년처럼.

 


"전 필요한 것은 모두 가졌어요.

제가 숨 쉴 공기와 그림 그릴 종이도 있어요.

 

더 행복한 것은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이며,

누굴 만날지도 모르고, 어딜 갈지도 모른다는 거죠.

어젯밤에는 배 밑에서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세계 최고의 배에서 여러분과 샴페인을 들고 있잖아요.

 

인생은 축복이니 낭비하지 말아요.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요.

순간을 소중히!"

 

- 영화 <타이타닉> 中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어렵고 지쳤다면

잠시 내려두고 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요?


                                                                                                        Planet Dream 발췌.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곳에서 나를 보내는 이들, 내 고향 남도에서 나를 맞는 

이들 다들 제각기들의 자신들의 모습들로 그야말로 야단

들이다. 지금은.


내 부모님 고향은 고흥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자라고,

이 삶의 기반을 가장 강하게 놓아준, 나의 제 2의 고향 

광주나 서울은 아프리카에서, 시베리아에서, 하와이 대학

에서 일 할때, 


그렇게 전 세계들을 누비고 다니면서, 그 이름을, 명성을

휘날릴때, 많은 이들이, '우리 남도가 낳은 인물'로 이름들을 

자신들이 혼자서 지어 놓고, 아주 즐거워들 하셨다. 

수 십년간을.



그런데 이번 그들에게 그 어떤 언질도 없이, 이렇게 조용히

철수하는 나에 대해, 그야말로 슬픔들이 가득들 하시다.


자신들에게 가장 먼저 연락해, 금의 환향 하길 원하셨는

가들 싶은 모양새.


한 아주 높으신 직위의 어르신으로부터, 조금은 의아하고

놀란, 장문의 편지를 비롯해, 수 많은 곳들서, 다양한 반응

들이 속속히들 지금 도착들을 하고 있다.



난 이제 그만.

영웅도 싫고, 인물도 싫고, 금의 환향 접대도 다 귀찮고, 

다 싫은 나다. 지금 당장은.


그래 이렇게 조용히, 내 44년전 부모님 고향 고흥 깊숙한 

곳으로 조용히 들어가 버리는 내가, 그 들은 지금 몹시도

섭섭하고, 화가 나서들 야단들이다.


뒤늦게서야 어디서들 알아들 내시고는.


난?

난 무 감각 !!


난 요즘 이런 저런 어려운 결정들과 뒷 수습들로, 날마다

혈압만이 고도로 올라, 뒷 목이 뻣뻣히 잡아 당기고, 아픈 속,

날마다 진통제 복용해 가며, 견디고 있는 중.


이곳에서도 배웅 환송 인사 하겠다고 날마다 연일 줄들을 

서는, 스케쥴 인사 치레 겉치레 챙기기만도, 난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 요즘, 세상 만사 다 귀찮이즘이다.



그런 와중 내가 지금 당신들의 그 사치스런 하소연들과 푸념들이 

지금 내게 들릴리 만무. 

우선 난 지금 내가 살아 나야 겠다는 생존 욕구 밖엔 안 남은 한 

사람이오.


봉사고, 섬김이고, 지랄이고, 다 뒷 전 나머지 일.

지금의 나에겐.


나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당신들 다 어디들 있었는데?

하는 아픈 질문들만이 마음을 오가고.


그리곤 numb.


세상사

참 엠병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는 요즘이다.



그 들의 불만들은 대략 이렇다.


하나님이 내 삶에 그렇게도 많은 것들을 평생을 투자 하셨는데,

왜 서울에서 클리닠을 열어 사람들을 회복 시키지 않느냐? 는 

것이고,


너무 복잡한 서울이 싫다면, 왜 광주에라도 조금 더 도심권에

자리를 잡고, 계속해서 우리 민족들에게도, 줄곧 연이어 봉사 

하지 않느냐? 는 것이다.



나?

난 내 고향에서 그래도 필요가 있어, 스스로들 찿아 오는

이들이 있으면, 그냥 거기서 보겠다고.


상담 안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 일 전체 다 끊어 버리겠다는 말이 아니고,


어디에 두셔도, 거기 그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꼭 있다면,

그 분이 보내실 거라고, 이야기 하고, 설득해 보내 드렸건만,


이해들을 하셨는지, 못 하셨는지들은, 그건 이젠 더 이상

내 책임이 아니다. 



그 들이 스스로 알아서, 스스로 해석들 하고, 

스스로들 결정들 할 일.


난 이젠 모르는 바요. 

모르쇠다.


당신들의 반응들에 대해서 난 엉뚱한 책임이라는 덤탱이들을

이젠 더 이상은 뒤집어들 쓰지 않겠소!! 인 것이다.


제길헐!! 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진통제 몇 일째 복용하며 싼 이삿짐의 길고도,

긴 고행.

 

내일 이른 아침 이삿짐이 한국으로 나갈수 있게

해운 회사에서 가지러 온다.

 

이곳 서부는 교민들이 많아, 이런 회사들 시스템들이

정말 잘 되어 있고, 가격도 다른 대륙들과 나라들의

이사 하던 기억을 떠 올려 볼 때, 너무 너무 너무 저렴하다.

 

내 완벽 주의 깔끔이 성격은 그야말로 반들 반들 예쁘고

모양새 있게 전체를 싸, 온 집에 정말 가지런히 잘 정리해

놓았다.

 

견적 내러 왔던 해운 회사 직원이 까암놀 했다.

 

포장을 하기 전 이렇게 차분하고, 정갈하게 이미 다

정리해, 한결 같은 봉투에 이렇게 잘 담아 놓은 집은

자기 일 하는 경험상 제일 처음이라고.

 


얼마전 뚱뚱이들은 우리 회사 상품 타켓 클라이언트

들이 아니고, 헐리웃 남자 배우들 같은 30대 청년들

이라고, 입 방정, 깨 방정 잘 못 놀렸다,

 

그야말로 미국 전역에서 쏟아진 비난의 면 티 셔츠 회사 

아베 크롬비에서 한 미국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거기는 아니나 다를까 알바생들도, 마이애미 비치에서

나들 놈직한, 훤칠한 그런 준수 꽃미남들만을 채용한다.


그 친구가 바로 딱 그렇게 생긴.

 

내가 이사 간다는 것 알고, 아베 크롬비 포장 튼튼한 봉투

들을, 한 100개는 가져 온 것. 

아베 크롬비 봉투만큼 튼실 하고, 검은 색상으로 팬시한게 

없다.

 

인쇄인지 뭔지가 어디 하자가 있어, 다 버리는 튼튼하고

멋진 종이백들을.

 

거기에 네모 반듯 다 정리해, 전체 살림을 다 그렇게

다 싸 포장해 놓고, 집안을 깔끔미가 자르르륵 흐르게

정리해 놓고,

 

견적 내는 이를 그렇게 기다렸더니, 놀란 그 직원이

한 말이다.

 

요놈의 죽일 놈의 영원히 회복 되지 않는 완벽 주의와

일 중독.

 

칭찬 받고, 깔끔 떤 건 좋았는데, 몸살 나, 온 삭신이

다 아파 돌아 가시는 줄 알았다.

 

그렇게 땀을 벌벌, 진통제 먹어 가며, 먹어 가며 싼

이삿짐.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 이전, 난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먹고 떠나라.

 

얼굴이 주먹만 해 지게 야위었다.

이 힘든, 땀 뻘뻘 흘려 가며, 혼자 싼 이삿짐의

중 노동 때문.

 

그야말로 살이 좍좍 빠질 정도로 힘들게 일한 것.

 

허기지고, 배고프고, 그 자리들에 그냥 그대로 의지

하나 줄 놓아 버리면, 퍽석! 주저 앉아 버릴 것만 같은

고통과 힘듦 속,

 

급기야는 다 그렇게 윤기가 자르륵, 잡지 모델

집 모양으로 나가도 손색 없을 만큼 그렇게 100%

내 마음에 맞아 떨어지게 다 포장 하고, 치우고,

청소 한 후,

 


고기를 좀 먹어 주어야 되겠다 싶어, 포테이토 웻지와

비프 스테이크 준비.

 

황후의 식사를 준비해 거나히 먹고 난 후, 온 건

내 사전에 결코 흔치 않는 낮잠.



  텃밭용 고급 가든 장화를 가지러 텃밭에 다녀 오다.

나 지난 4개월간 더 이상 텃밭지기의 자격에서 미달

내지는 상실.

 

밭에 가 보니 미나리가 정말 아름답게 한 마지기는

혼자 그렇게 부드럽고, 파랗게 잘 자라 올라 오고,

코스모스, 해바라기, 싱싱한 연 초록의 치커리가 무성.

 

텃밭을 계속 보고 있으면, 더 이상 못 떠날 것 같아,

물 먹은 하마처럼 물만 잔뜩 빵빵 부어 먹여 주고,

부리 나케 집으로 줄 행랑.   

 

그리고 그 거나한 성찬을 차려, 요리해 먹고,

골골 갤갤 난 전쟁터의 총 맞은 병사처럼 그렇게

낮잠이 들었다.

 

그렇게 남가주 나의 나성 근경 도시에서의 유명 명문

학교의 대학원 학위 취득과 사역을 위한 삶은 종결을

급기야는 맞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오로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당신의 꿈과 이상, 낭만이 있는 곳으로.


감사를 한껏 올려 드리면서.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내 조국, 내 고향으로 내가 언젠간 돌아 가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아는 친구는, 그러나 늘 그 가슴이 잘 따라 

주질 않는가 보다.


가기 전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가지고, 함께 하고 싶어, 자주 자주 

자주, 자꾸 찿아 오는 친구를 지켜 봄은, 그리 마음이 쉽지를 늘 않다.



점심 함께 먹고, 여느때처럼 다시 스타 벅스 가서 얼음 갈아 만든

맛있는 커피  함께 마시고, 조경이 아름답게 된 장소를 함께 걷고,

그래도 늘 아쉬움은 여전하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진다는 것이 이다지도 늘 가슴 저미는 아픔

이라면, 난 다시는 이런 친구들을 내 삶에 다시 만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의, 그런 감정들의 한 소모들이다.


심리학 박사들도 그 어찌 못 하는, 미국인이건, 한국인이건,

사랑보다 더 슬픈 정.


망할 감정.




택배 회사에서 빠른 회신의 연락이 왔고, 이제 이삿짐 포장이 

바야흐로, 이번 주 이루어지긴 이루어 질래나 보다.


가구를 가져 가는 걸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침대와 큰 IKEA

Arm Chair 하나, 두 개의 가장 기본적인 Coffee Table 정도는

우송이 그리 비싸지 않을것 같은 그런 예감이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견적을 내 주러, 이삿짐 센터의 직원들이

집을 방문 하고, 난 바로 가서 그 폐가 같은 방치된 집에서, 도배와

벽지를 깨끗히 아직 수리 못한 상황에서, 


방 바닥에 잘 일이 큰 일 처럼 늘 마음 안 버겁고, 부담스러웠는데, 

내 침대와 의자등이 간다면, 나중 한 달 뒤 오겠지만, 너무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내가 좋아하던 아이케아의 등나무 의자들을 다 팔아 버린 뒤,

이 정보를 알게 되어, 너무 유감. 

내담자들 오면, 상담실에서 쓰기는 그 아이케아 등나무 의자 

만큼 정갈 스럽고, 단아 한 건 또 다시 없는데.


유감 천만이다. 





그러나 내 것이 아닐 운명이었나 보지 뭐.

포기 할건 또 상황 재깍 빨리 봐서,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것도,

내 성격중 또 하나.


난 그렇게 내가 가장 사랑하던 나의 아이케아 가구들을 쉽게

미련을 버리고들, 포기해 버렸다.


연말에 우리 나라에 아이케아 매장이 들어 선다니, 그때 한번

아이케아 Trip을 한번 감행할 요량이다. 지금으로서는 당장

그런 꿈도 야무진 당찬 계획.




아!

어딘가를 대륙을 가로 질러 움직인 다는 것이 이토록 스트레스

팍팍 쌓이고, 특히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그 이별의 감정의

소모들이 너무 시리고 가슴 아프다.


젠장!

사랑에 빠지지 말자

하는 노 사연의 대학 시절 노래가 다 다시 생각 나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흔들리는 삶들.

산다는 것 : 2014.03.17 09:57



아침 또 침대가 크게 출렁일 정도로 큰 지진이 모든 사람들을 다

깨워 냈다. 이럴때면 나의 조국은 늘 나에게서 멀기만 하다.

미국 뉴스 밖에는 여진이며 그 정황을 들려 줄 그 아무런 대책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방송들에서는 야단들로 뉴스들을 보내고,

또 내 보내고들 야단들이다.


일어나 늘 우리 이방인들은 여권을 챙기고, 이곳 가주가 귀가

닳도록 여러 곳들서 교육 시키는 것들을 서서히 조목 조목 챙겨

한 켠에 두면서,


뉴스를 계속 지켜 보면서, 커피를 타고, 그리고 마시면서, 다음 

준비들로 분주 하는 중, 새하얗게 그렇게들 아침을 맞는다.



하와이며 가주등서, 늘 이렇듯 흔들리는 삶의 위협을 느끼며 사는 

삶이 어쩌냐고 묻는다면, 그건 당근 왕 짜증, 급 짜증!!


인간의 심리라는게 한번에 왁! 어떤 위협이나 공격을 받는 것보다도,

이렇게 늘 질금 질금, 길게 사람을 위협하고, 힘들고, 짜증 나게

하면서,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것에, 


우리는 훨 더 민감하고, 예민해져들 있으며, 더 큰 스트레스들에 

우리는 노출이 되어 있고, 그 압력들을 더 많이 받게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



그래서 스토커들이나, 질금 질금 따라 다니면서, 사람 조잘 재잘 

죽여 대는 사람들을, 사람들이 분이 쌓이고, 혈기가 쌓이면, 양같이

양순하던 사람들이, 


골프채로 머리통을 뻑! 소리가 나게, 깨어져 나갈 정도로 후려 갈겨 

버려, 크나큰 상해를 입히는 그런 경우들도 우리는 상담들을 하면서 

가끔들 본다.


불의 고리 미국 서부와 칠레, 대만등을 잇는 선에서 동시에 흔들린,

'지구야 너 왜 자꾸 이러니?' 하는, 빅뱅에 대한 도래를 한번쯤은

생각해 보고, 느끼게 하는, 아주 잦은 흔들림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아침 방송 뉴스 앵커들의 스튜디오들에서의 반응들이

사뭇 흥미롭다.


한 아프리칸 아메리칸 앵커의 빠르고도, 신속한 책상 밑으로 

새앙쥐처럼 잽싸게 뽀로롱 숨는 모습은, 생존에 늘 노출 되어

살아 나온 이들의, 생존 본능의 약삭 빠름과, 현실적인, 진솔한

심리들을 거기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네 명의 백인 앵커들이 나란히 앉아, 뉴스 진행을 

하던 한 방송국은, 마치 우리 나라 선비들이 절대 급해도, 달리지

않던 허세와 거드름처럼들, 무섭고 당황한 건 둘 다 똑 같이

역력한데,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 가지들을 않고, 서로들의 눈치를 보면서,

스튜디오 안의 모든 장비들과 기자재들이 심히 흔들리고, 출렁이는 

사실을, 두려움과 애써 아닌 것 같은 허세들과 거드름으로 그렇게 

때꾸고 앉아들 있다.



계급 사회 유럽 후손들의 가식들 보다는, 노예 되어 팔려 와 

그 생존을 이어 온,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이나 우리 평민들, 무수리

계급들이 생존에는 훨 더 진솔하고들, 현실적임을, 보여 주는 한

흥미로운 심리와 행동 반응의 한 지켜봄 이었다.  



이런 큰 일을 한번씩 겪을 때마다, 과학과 자연 현상, 그런 모든 것을

떠나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런 흘러감들에 대한 해석은 어떤

조화와 정도를 잘 맟추면서, 이런 상황들을 해석 해야만 하는지를

난 가끔 생각들을 해 본다.




폼페이 최후의 날의 역사적, 양식적 상황들, 소돔과 고모라의 윤리

상황들, 현금의 이 미국이라는 괴물의 성 소수자들을 대한 위헌등의 

그 어떤 단세포적 해석들이나 그런 것으로 반응하고, 대응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의 수준 다른 반응들을 제껴 한 편에 놓고

라도, 우리는 이 역사들 안에서의 일어 나는 현상들, 징조들에 대한

건강하고, 진리에 입각한 바른 해석들을, 


우리 주님 앞 앉으며, 듣고,묻는 그런 성찰의 기회들은, 믿는 이들 

각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부여된 한 숙제들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제 곧 나의 글방은 그 이름을 'Calilife' 에서 

'Calilife....그리고 귀향 그 이후' 로 그 이름표를 바꿔 달게 

될 것이다.


캘리에서의 삶을 마치고 귀향하고선 새롭게 그 곳 생활을 

더 얹어 적어갈 것이기 때문.



내가 왜 이 글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몇 년전 일이 아니었음

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이 왜 난 이리도 희미한 것일까?


아마도 책 출판을 자꾸 부추기던 몇 출판사들과 교회들의

성화의 독촉들에 못 이겨 아마 쓰기 시작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늘 방에 갖혀 공부 하면서,너무 외로웁고, 격리 되어서

누군가와, 어딘가와 소통하지 않으면, 말들을 토해 내지 않으면,

내가 미치든지, 돌든지 어느 둘 중 하나는 하겠다 싶은, 위기 의식

에서 였기도 했던 것 같다.


아니면 둘 다 가 더 맞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난 그 누군가에게로의 이 세상 이들에게 나의 삶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나의 생각들을 나누어 전해 주면서,

그 위로와 격려들을 마음 안 받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온다.


저마다의 삶이,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다 고유하다 보니,

성실한 몇 인들이 늘 그 글방을 찿아 들어 와, 내가 끄적 거려

놓은 나의 생각들과 삶의 이야기들을 신실히 읽고 나갔고,


난 그들의 참여들에서 인간 사는 온기를 그렇게 느끼면서,

외롭고도, 힘들게 공부해 이 학위들을 따 내고 마치기까지

견딜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방은 나에게 참 큰 한 위로 였고, 격려였고,

많은 기쁨이였고, 치유요, 회복이였다.


인간은 누군가와 소통 한다는 것에서 많은 위로와 격려들을 

그렇게 얻는 것인 것 같다.



나의 삶에는 나에게 모든 걸 가져다 퍼 붓는 말하는 사람들은

수 천, 수 만이다. 그러나 조용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이들은

거의 많지 않다. 


우리 심리 상담사들의 한 외로움이고, 고통이 바로 그것이다. 




늘 남을 평생을 전적으로 들어 주어야만 하는데, 나는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이 세상 그 어느 누구 하나도 결국은 없다는 

그 고적함과 외로움들.


그래서 나는 이 글방이 말 할수 없이 좋은게, 조용히 그렇게 

나의 생각들과 글들을 읽고, 듣고, 나가면서, 고개 끄덕이는 

이들이 그렇게 많이 산재하는 방이기 때문에, 난 언제나 큰 

안정을 여기서 얻는다.



내가 이 세상서 제일 싫어 하는 남성들이 말 많이 하는 남성이듯,

나는 그렇게 조용히 좀 들어 주는 사람들이 배고프고, 못마른 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아마 이 글방의 이야기들은 계속 되어질 것이고,

이제 시골 나의 삶에서의 많은 일어 날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나는 많이 기대하고 흥분한다.


그건 이 서구 사회에서의 생활관 영 딴판인 한 삶의 방식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삶의 장들에서의 많은 이야기들에 엄청난 꿈과 소망이

깃들어져 있는 한 사람이다. 지금.



그래서 인생은 또 다시 한번 더 아름다운 것이고.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중국의 위구르 족의 독립 요구를 위한 칼 부림과 테러 행위

들이 두 번째로 자행 되는 요즘, 이 민족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아,


중보해 줄 수도 없는 난, 요즘 우리 주변의 몇 나라들을 혼자

공부해 본다. 중앙 아시아 투르크계 민족인 위구르인들에 

대해서도.

 

독일에서 공부 할 때 많은 투르크족 계의 청년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가 늘 있었다.


이들은 정말 그 정신력들이 무지 강한 한 민족이다.


그 수 많은 나라들의 압박과 핍박 속에서도, 그 투쟁

정신으로 집시들처럼 온 땅에 편만히 퍼진 종족이다.


그리고 그 들은 자신들이 그렇게도 질기고 강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투르크계라면 늘 많은 실크 로드 비단길의 상인 자손들이 

그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대는, 마치 북 아프리카 사막의 

카멜 낙타를 타고, 상권을 휘어 잡던 한 종족인, 



손님들을 아주 잘 환대하는 전통을 가진, 베두인 족들과 

그 질김과 강함, 투쟁력들이 아주 유사하다.


투르크인들은 그렇게 터키에서 중국에 이르는 긴 길을

역사 안 거치며 산다. 내가 시베리아에서 섬긴 야쿠트 

소수 인종도 이들 투르크 족들의 후예들에 속한다.


지속적인 국가 체제나 정치적 실체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는 투르크계 종족은 하나도 없을 만큼, 그런 장구한 

역사와 국경들을 길고도 길게 넘나든 투르크 족이니만큼, 


그러다 보니, 상처가 엄청 많은 그런 민족이다.



터키와 우즈벡, 카쟉으로 그 인구수가 분류 되어지는 

투르크족은, 작게는 시베리아 야쿠트 족으로 분류 되기까지 

정말 방대한 영역에 걸쳐 펼쳐져 있는 한 인종의 집합군이다.


위구르족은 중국 신장 지역부터, 중앙 아시아 지역에 펼쳐

현금에는 퍼져 있는 한 민족이다.



독일에서 투르크계 한 청년의 그 아픔들을 고스란히 다 듣는

한 강의 셋션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강하게 여운으로, 내 귓전에

돌고 있으니. 


중앙 아시아인들처럼 가무 잡잡 작은 체구의 외양부터, 독일에서

내가 만난 청년처럼 흰 백인 피부에, 새까만 검은 머릿결을 가진

모습등, 그 역사의 긴 지형학적인 공간을 움직이며 산 것만큼,

외양도 아주 다양하다.




그 들의 생리는 거의 어쩌면 전 세계를 떠돌며, 그 힘을 전 세계에

널리 펼친 집시들과도 아주 흡사하다. 유목민들의 한 문화 유산

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집시들과는 다르게 아주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종족인 것 

같아 보이지만, 유목민 자손들은 그리 모질고, 악하지 않는게 늘 

종족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종교의 가르침들은, 그들의 타고난 천성들을 뛰어 넘어 

버리는 모순이 늘 거기들 남아 있는 것이다.



내가 살던 근경 호수 바이칼과 그 아래 이슬람 지국들인 알타이

에서 유래된 부족이지만, 나중 투르크 족에 함락 되어, 이 강하고

용맹하고, 도전적인 투르크 족 문화가 더 강해지게 그 들의 문화 

안 정착되는.


마니교에서 라마교로 전환되는 와중에도, 이들은 서쪽 투르크

족들과 같이 이슬람에 영입되지 않는 긴 역사를 보낸다.


겨울 수도와 여름 수도를 두고, 몽골의 징키스칸에게 소속 되는 

세월도 보내고, 나중 불교 국가로 그 위용을 떨치기도 한다.

후에 술탄에 의해 이슬람 국가로 개종 되고, 학문과 문학의 큰

꽃을 피우기도 하면서,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한 때는,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이라크의 바그다드, 인도의 델리, 시리아, 앙고라의 오스만 

투르크를 정복 하기도 한다.




그 역사의 장구한 세월만큼이나 근경 국가들과 문화나 종교,

역사도 너무 많이 섞여 있어, 진정한 위구르인들의 특성을

딱히 꼬집어 내기에는, 이다지도 복잡하고도 다단한, 

한 문화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이슬람 국가들의 모슬렘인들의 문화 특성

으로 나타나, 외부인들에게 보여 지는 그런 형국이다.


나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 어떤 나라나 민족들을 대해서도,

그 들의 문화와 그 들의 정체성들을 주 안에서 편견 없이 늘 보며, 

그 들을 잘 존중해 주고 싶은 마음이 늘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한 없이 멀어진 무슬림 문화는, 늘 나에겐 많이 공부하고,

그 들을 잘 이해 하려는 노력을 더 힘 써야 하는 한 멀고도,

버거운 한 족속들이다. 요즘은.




소련 근처에 잡혀 있던 많은 위성 국가들이 독립한 마당 들어간

소련에서, 수 많은 위성 작은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우린 만나면서,

우리 기관은, 그 들의 70년 공산 치하에서 형성된 그릇된 세계관

들과 가치관들을, 


그 나라들의 CEO 들을 먼저, 기독적 사고와 가치관들로 훈련 

시키는데 많은 처음의 일들, 몇 년을 그렇게 소비 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을 해 본다.



요즘은 일본에 대해서도 많이 홀로 열심히 공부해 본다.

책 서적, 매스 미디어, 모든 가능한 재료들을 다 동원해 

공부해 보는 과정.


요즘 생활이, 거의 백번 그물질 해 한 마리가 잡히면 아주 큰 

수확이라는 한 선배 언니의 말이 생각난다. 이 상황들이.

 

기약 없이 사람들을 기다려야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사람들을 마냥 왼 종일 나의 삶을 열어 놓고,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삶에 대한 지침과 많은 소란한 감정들이 복잡하게

내 내면을 달음박질들을 해 대면서, 나를 괴롭히고,

성가시게들 한다.

 

그러다 문득 난데없는 시간과 장소들에서 그 기별들을

전해 올라치면, 나는 또 다시 내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뜨거운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그런 지겨운 요즘을 

그렇게 그냥 살고 있다.

 

모든게 다 성가시고, 귀찮고, 모든게 다 시들하고,

모든 이들이 다 별로인 요즘 같은 마음이고, 감정들

이라면


나는 아예 이젠 세상을 마주 대하고 싶지 않는 그런 

구역질들이 내 마음 안서 자주 고여들 올라 온다.

 


나는 요즘 우리 주변서 심술 부리고, 어거지 잘 쓰는

일본 이라는 한 나라의, 그런 행위들이 나오기까지의,

그 들의 문화등을 지켜 보면서,

 

어디가 아프고 다친, 상한 아이들일까를 한번 유심히

지켜 보며, 고려해 보려는, 한 심리학적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고, 지켜 보고 있다.

 


NHK 국제 방송등을 보노라면 그 들이 열심히들

그 들의 문화의 한 대표적인 것들인, 회 치는 법,

칼이나 도시락 문화, 사꾸라 벛찌꽃들이 만발한

풍경의 관광 산업들과, 온천등을 세계로 소개 할 때,

 

우리 한국은 우리만의 요즘 기름 부으신 은사들인,

한류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예술들로 세계로

그 독창성과 고유성등을 서로들 다르게들 자랑해

내 보내고들 있다.

 


그 들의 한 문제는 개인들의 유일성을 집단이라는

무더기로 늘 묶고, 획일화 시켜 버리려는, 개인 주체성의 

말살의 괴변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나는 생각해 본다.

 

자기 자신의 귀함과 고유성을, 집단을 향해 일찌기 포기하고 

내려 놔 버린 이들은, 개인들 하나 하나로 보면, 건강한 정체성

들이 무지 결여 되어들 있다.

 

수치로 내면들이 얼룩져져들 있는 이 민족은,

그 들이 함께 뭉쳐 군중일 때만, 그 존재의 힘과

의미들을 그렇게 찿아 내는 한 민족인 것 같다.

 

혼자 튀면 많이 정죄 되는 이들은, 전체의 안녕들을

위해, 내 자신들 안의 꿈과 소망들을 그렇게 내리

누르면서, 목소리 없는 자들로,

 

거짓 쎈 척 하는 그 밖의 그림들 안에는, 내면이 무서워

떠는 자들로, 그렇게 그 들의 삶을 괴리로, 모순으로들

살아 나가는 것들 같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푸석하고, 건조해 질대로 건조해 지고,

남성들은 그런 외식에, 여성들은 닥수구레하니 고개 숙이고들

있지만, 내면엔 독함이 소용 돌이 치는, 그런 나라가 바로,

이 일본 인 것 같다.

 

지진과 해일, 방사능의 방류를 딛고, 그 상황을 다시 이번 악으로

버티면서, 그 들은 이번 엄청난 경상 수지 적자로, 그들의 경제를 

다시 끌어 올리고 있다.

 

아랍의 상권들의 모삭 같은 그런 상인들의 모사가 강하게

흐르는 장사치들 멘탈리티 문화가, 바로 이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무사들이며, 갱들 등의 겉의 용맹을 애써 위장해 보고 싶은 

이들은, 자기 최면들에 걸린 자들이다.

 

내면의 약함을 겉의 강한 척으로 애써 위장하고 덮어 보려는

오기들이고, 간교함들이다.

 

그 들은 장사치들에 더 가깝지, 결코 용맹이나 바름의 무사

들과는 아주 더 거리가 먼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믿으면서, 위안을 얻고자 하는, 한 내면이 많이 무너진,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진 한 민족.

 

속이 떨고 무서운만큼, 밖으론 더 강한 척 온갖 오기며

강짜들을 퍼 부어 대는, 역기능 문화 안의 한 어거지

나약한 강짜 부리는 소년의 모습들을 그 들은 하고,

 

그렇게 오늘도 역사 안, 그런 모습으로들 오만과 어거지

로들 서 있는 것이다.

 



 위구르며 유크레인, 일본, 중국, 북한, 네팔, 중동등 함께

기도 하면서, 주님이 열방을 지으실 때 가지신, 그 기본 

모토가 잘 정립 될수 있기를, 중보하는 마음이다.


위구르에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우리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끼치시는 평화가, 그 나라를 덮기를, 기도해 

보는 아침이다.


폭력과 섹스는 모든 이슬람 교리의 그 기저에 늘 크게 깔려

있다. 그 정사와 권세를 대해 서서도 우리는 기도하고, 중보

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견고히

하고, 굳건히 해 보면서.


열방들과 잃어 버린 영혼들을 향해, 민망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려 우신, 우리 주님의 그 열방을 향한 마음을, 

잊지 말고 잘  간직할 일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어디선가 미국의 마약하고 하는 문제아 투성이들인 아이들의

음악 소리 같은, 너무나도 시끄러운 음악들이 쿵쾅대고 울려대

나와 보니, 


남미 일용직 노동하는 청년들이 대학원 기숙사 나간 사람 방에서 

페인트며 수리들을 하고 있다.



독일에 살 때, 높은 학력과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일수록

비만율이 낮고, 저 임금, 낮은 계층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

들만이 지극한 비만이라는 통계를 듣고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나라들마다를 다녀 보니, 정말 그 30년 전의 통계가 

맞더니, 급기야는 이번 우리 한국의 조사 통계에서도, 시골의

저 소득층 아이들이, 도시의 고위층 자녀들보다, 훨 비만 하다는

슬픈 통계가 나왔다고 발표 하는 걸 보았다.



이 삶의 질과 수준이라는 것이 그 사람을 만들어 간다는 것이

참 마음이 아픈.


'무엇을 먹느냐가 바로 나'라는 표현등이 왜 자꾸 마음 편안하지

않고, 귀에 거슬려 오는지등을 나는 요즘 생각해 본다.


미국에도 배 고픈 아이들이 편모 슬하 등에서 이젠 부지기수라니.


이 놈의 사회 복지라고 하는 것이 인간사 안의 사고나 수준, 질등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나는 참 마음이 아프다. 



영국 런던의 파송 교회에서는 소풍을 가면, 식당등의 주방 보조나

접시 닦이등으로 오신 한국인들의 그 부당한 대우들이, 늘 하늘을 

찔러, 그들의 스트레스는 교회가 풀어 주어야 하는, 한 크나큰 산맥

들이었다.


이런 이들이 그 스트레스들을 교회 야유회나 그런데서 풀기

시작하면, 술만 안 먹은, 우리 나라 시골들 친목계 모임으로 

관광 가시는 노인네들 모습을 그대로 방불케 해, 우리들을 늘 

아연 실색케 헸다.


듣도 보도 못한 유행가들을 고성 방가로, 맨 정신으로도 그렇게들

불러 대고, 그 해괴한 뽕짝들의 난무 속들, 우린 그 빼앗긴 마이크

들을 다시 되 돌려 받을 길들이 없이, 그냥 멍!들 그렇게 때리고들

그렇게 경직 되어서들 쳐다 보고 서 있어야만 했었다.



나는 이 사회에 형성되는 층이나 계열 이라는 것이 참으로 마음

버겁고 불편한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 층들이 보여지기

시작하는 내 눈을, 나는 한땐 참으로 혐오하면서, 내 자신을 학대

하기 시작 하기도 했었다.


받지 못 하고, 누리지 못한 그 자들을 나의 이 상아탑과 지성들의

폭력들로, 이 너무나도 평범한 실 생활을 사는 일반인들을 가름질

해야 한다는 내 사고가, 너무 저주 스러웠었다.



부르조아지 지성 계급과 못 먹고 못 누리는 자들의 분리등에

대해, 나는 지금도 분개하는 한 사람이지만, 이 불편한 진실을,

현실을 어쩔수 없이, 늘 눈 앞에서 볼 때, 나는 한 없이 초라해

지고, 한 없이 죄스러워 지는 나를 부인 할 수 없다,


하물며 한 가족, 한 형제 피 붙이들 문화에서도, 그 삶의 질과

수준의 격차는 늘 존재해, 나의 가슴을 도려 내는 한 사실로

거기 그렇게 존재 했다.



계모의 학대에, 사랑 결핍에, 대인 공포증으로, 고등 학교 3학년

6 개월을 남겨 두고, 고등 학교를 자퇴한 후, 노동판, 공사판 

일용직 노동자로 근근히 하루 하루 끼니를 연명 해야 했던 죽은 

나의 막내 동생은, 


길가 시장 노천에서 사 입는 옷도 질이 달랐고, 부르는 노래도 

그 격과 질이 달랐고, 그 사고도 우리 부르조아지 지성층의 사고

들과 늘 너무나도 현격히 달라, 


나를 눈물 짓게 만들고, 당황하면서, 동시에 가슴이 도려내 지는 

아픔을 늘 난 거기 한 중앙서 느껴야만 했었다.



외국인들이 결코 침투해 들어 갈 수 없는, 영국의 그 방수천에

겉 도는 물방울 같은, 그 격리된 계급 사회를 난 많이 혐오 했었다.


비 인간적으로 보이고, 가식적이고, 거짓으로만 보이는 그 영국의 

고위층들, 고위 계급층의 본토 영국인들의 그 자고한 코를, 난 어느 

날 늘 박살 내 주고 싶은 반항과 분노를 느끼면서,


그들의 자고가 과연 불의이고, 부당함인가 등을, 늘 참 많이 생각

하고, 또 생각 해야만 했었다.



그런 사회가 싫어 반항한, 마르크스나 레닌이 내어 놓은, 그 자본

주의에 상응하는 이제 막 겨우 그 공산 주의를 벗어난 소련에도

가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기서 썩으면서도,이것에 대한 해답은 

전혀 거기 있지 못함을 보고선, 


나는 지금까지도 이런 빈곤과 평범한 서민들의 누리지 못함, 

가지지 못함, 그래서 빚어 지는 그들의 사고와 행동, 삶의 격의 

변화들에 대해,


속수 무책으로 이렇게 팔을 느려 뜨리고, 가슴만 아파해 봐야

아무런 도움도 그들에게 되어 주지 못하는, 한 나약한 지성으로

이렇듯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한 민족을 제자화 시키는 열방의 제자화 기치를 들고, 우리 기독인

들은 낮은 데로 임하는 그런 겸손과 섬김 보다는, 강함으로 가서

가르치고, 변화 시키는, 


독선의 세월로 많은 재정과 시간들을 허비하고 이제는 돌아 와 

거울 앞에 선 누나처럼 지금 그렇게 서들 있다.



십자가는 약함으로부터 시작 한다는 강의가 나를 양심의 가책으로

흔들었고, 그 약함에서 강함이 나온다는 진리를 우리 기독인들은

오랜 동안 잊고 있은지 오래, 참 너무나도 오래이다.


이제 한국이 사회 복지를 부르짖고, 인간의 마땅히 누리고, 가져야

할 권리들에 대해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는 지금, 나는 그래서 참으로

요즘들 늘 너무 생각이 많다.



그 복지들을 전 세계를 돌며 보고, 배우고, 누린 한 자로써,

나의 남은 생 안에 우리 하나님이 나의 삶을 통해 흘러 내리 

부으시려고 하는 영적인 선한 전수들(Spiritual Impartation)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들도 해 보고,


여기 이 미국에서 우리 청년 지도자들을 격려하고, 세웠던, 

그 같은 세대를 통해 흘러 들어 가는 격려와 위로가, 나를 통해,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들어 가야 한다는, 


이 곳 우리 젊은이들의 코멘트들에도 나는 마음 안 내 자신에 

대해 많이 비양 대는 꼬임이 존재하고 뒤틀림이 존재 함을 부인 

할 길이 없는 것이다.



민중 운동도, 해방 신학도, 촛불도, 그 어떤 것도 아닌, 순수한

십자가가 가르치는, 이 약함이라는 것의 진리에 대해, 나는 다시

견고히, 돈독히 배워야 할 필요가 너무 많다. 지금.


약함, 죽음, 고난, 질고, 소외, 배고프고 목마름등이, 어떻게

생명으로, 부활로 다시 살아 나는 가의 깊은 진리의 영역과

수준을, 



하나님은 어쩌면, 나에게 더 견고히 가르치시기 위해서 나를 

지금 다른 한 영역으로 다시금 인도 하시고 계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는 한 아침의 명상.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나 어릴 적 미국에서 와서 한국에서 일하던 내가 아는 한 미국인은

말했다. 한국인들은 섭귀와 괘귀가 잘 들린다고.


의사 소통에 익숙치 않는 우리는 섭섭해서 섭섭 귀신 섭귀, 

괘씸해서 괘씸 귀신 괘귀가 잘 들린다더니, 내가 요즘 그 짝이다.



오늘 진짜 그 꼴도 보기 싫어, 그 꼬락서니들 앞에서는 다른 행성으로

가 버리고 싶은, 몇 사람들을 학교에서 만나면서, 그 비 인간성들과

뻔뻔스러움들 앞에, 나는 혐오감을 심히 느끼고 있었다.


왜 이 세상은 이리도 약아 빠지고, 머리 굴리고, 지저분하게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은지, 난 그들을 향해 토할것 같은

역겨움들을 요즘 느낀다.


이렇게들 번들 거리며 웃고 내 앞에서 자빠져들 있어도,

언제 그랬냐는듯 안면 몰수 할수 있는 이들이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게, 나는 요즘 사람들 꼴들이 별로 보고 싶지 않는,

그런 이들이 내 생활 주변들 있는 걸 본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이용 당하면 이래서 무섭다.

더 이상 그 어떤 이들도 신뢰 하지를 못하겠는 아픔들인 것이다.


남에게 베풀고 산다고 살다가, 이렇듯 자주 마음이 상하고, 다친다.


이렇게 뭔가를 마음 안에서 자꾸 바랄래면, 남을 돕지도 마라.

조건 없이 주는 베품을 채 배우지 못 하면, 늘 이렇게 섭하고,

야속해지닌까.


마음이 영 편치 않는 몇 주이다.


사람들 다 보기 싫은.



사는 근경 사람들이 이토록 지긋 지긋해 질때는, 그 땅 거민들을

떠나야, 건강한 일이라는 걸 나는 안다.

나에게 전혀 건강하지 않는 주위 환경들이다. 지금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하루라도 빨리 더 건강한 곳으로 가자.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마음이 죽음 만큼이나 처참하고, 참담하게 가라 앉고, 머릿속은

걱정과 근심으로 나를 지끈 지끈 잡아 누르고.


온 몸의 피가 마르는 듯한, 이런 협박에 가까운 공식적인 편지들은,

나를 이렇듯 천길 만길 낭떠러지 나락들로 잡아 끌어 내리는 듯한

절망감과 절박함 속, 


피가 전체 다 머리 끝으로 쬬삣 몰려 쏠려 올라 오는 듯한, 그런 

충격과 압박들을, 나는 지난 4년 반 동안, 이 곳에 온 이래, 자주 

자주 경험하며 산다. 



내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어렵고도 큰 도전들 앞에, 나는 한 없이

늘 끝없이 그렇게 작아 지고야 만다. 거기에는 믿음도, 하나님도

늘 흰 백짓장처럼 비어 버린 그런 아찔한 절망감들.


그런 와중 나는 철 없는 고생 전혀 안해 본 한 손님을 웃으면서,

그야말로 아무런 그런 근심도, 도전도 없는 듯 오늘 맞아, 속으로는

그런 피눈물이 흐르는데, 겉으로는 전혀 아무렇치도 않은듯,


그 철 없고, 속알머리 없는 고생 안해 본 얘들을 손님으로 맞이해

겉으로 웃으면서, 속으로는 그렇게 피 눈물을 철철 흘리고 앉아

있었다.



나의 이 고난과 질고를 충분히 이해해 줄 그 어떤 나의 인생의

경륜과 경험에 걸 맞는 동년배 친구들은 지금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이런 젊은 지도자층들을 이렇듯 나는 아프면서도,

내색도 못 하는, 내색을 또 해 본들 그 무슨 소리인지 조차도 

모를 이런 개 망나니 철부지들 세대들 앞에 그렇게 앉아, 


무지 처참하고, 처절히도 아프고, 힘들고, 다 때려 치우고들 싶다.



난 누구이며, 난 지금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영혼 없는, 백짓장처럼 새하얘진 질문들만이, 머릿속을 어지러히

나풀 거리며 날고, 흩어지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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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기관이 워낙 안전이나 양식등이 잘 보장된 장소였던지라,

나는 세상에 나와, 늘 큰 도전들을 경험하고는, 늘 이렇듯 무서워들 

한다.


자라는 젊은 리더들을 잘 키워, 다음 세대가 흥하게 일어 나게 하고 

싶은 나의 소망은, 늘 많은 경우 마음들이 내면에서 조용히 많이 

아픈 경험들을 자주 한다.



마음과 가슴을 다 열어 어제도 수 천불에 달하는 서적들을 다 

주었더니, 그 10의 일에 해당하는 결과를 가져 와, 나를 내심 

엄청 놀라게 했다.


양심에 호소하는 온정들은 이미 받아 들여 지지 않고 있는지 

너무나도들 오래.

 


나는 그 아무 것도 기대도, 실망도, 느낌도, 감정도 가지지 않고,

무조건으로 서 본다는 것들의 깊은 실습들을, 한숨들을 들이 쉬고

내 쉬며들, 요즘 그렇게들 연습들을 해 보고 있다.


가장 신선 해야할 나이들 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타락하고, 가장

오염되어 있는, 이 인간사의 흐름을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나는 그런 세대를 이어 가는, 아름다운 진리의 전수들을 위해,

나의 삶을, 생을 다 바쳐 왔다고 늘 느끼며, 감수하며 살아 왔는데,

우린 과연 이 젊은이들에게 무얼 가르킨건지 등에 대해,


나는 방을 휘적 거리고, 누비고 다니면서, 한숨에, 아픔에, 미래에

그냥 그 분께 탄식과 아픔의 기도들을 올려 드렸을 뿐이다.



이젠 앞으로는 100%의 이런, 아니 어쩌면 이것은 비교도 

안될, 심하고도 아픈 통증등의 인간들 집단군들 사이에 나는 

박혀, 나의 삶을 그 곳서 아마 조용히 마감하게 될 것이다.


호흡을 깊이 들이 쉬고, 내 쉬고, 나는 "자! 이제 요잇똥!!" 이다.

"준비 됐나요? 준비 됐어요!!" 의 아픔의 한숨들을 지금 거 몰아

쉬면서, 그렇게 나의 앞날들과 미래들을 응시하면서 무서워

그렇게 파들 파들 떨고 있다.


인간에게 당하는 아픔이 가장 이 세상에선 시리고도, 아프고,

야멸 차다는 것 그대들은 아는가?



선한 일에는 낙심하고, 실망하고, 아파 하지 말고, 그래도 늘 

한결 같이, 꾸준하게, 용맹하게 해 가라.


그들의 반응들의 결과를 보고서 시작한 일들은 궁극엔 아닌 거닌까.

" It's All About Him !!" 인것을 절대 한순간도 망각 하지 말고, 부디

잊지 마라.


너가 다음 세대들에게 너의 삶으로, 진중하게, 조용히, 묵묵히

가르쳐 행해 낼 바로는 아무 것도, 그 어떤 결과도 바라지 않는,

그냥 무조건의 사랑의 한 결과들인 것이다.



그리고 너의 삶이 접어 졌을 때, 그들이 너의 그 속으로 아팠던

조용한 침묵의 아픔들과 댓가 지불등을 우리 하나님과 연결 시켜

어느 날 조용히, 반성해 보고, 


자신들의 삶의 사는 형태와 패턴들을 조용히 바꾸어 나갈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큰 한 보상이고, 아름다운 한 열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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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 살 때, 건물 칼 같은 고드름이 수 미터 위에서 떨어져

꽂히면, 차 위 판을 뚫어 버리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들었다.


하와이에 살 때는, 길 가던 관광객이, 머리 위 수 십 미터 야자수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에, 머리통을 맞아 즉사한 뉴스를 듣기도

하고.


자연의 힘 앞에 우리는 늘 이런 망연 자실함이나, 우리의 한계들을

늘 여실히 본다.



시베리아에서 자주 보던 폭설이, 우리의 영동과 강원 산간 지대를

지금 그렇게 덮고 있고, 산간에 갇힌 주민들과, 온상 재배지들의

지붕들이 참혹히 무너져 내린 사진들이 뉴스마다 나온다.


아프리카에 살 때는, 제발 바깥 세상 사람들이 물 좀 아껴 써서,

우리에게 그 많은 물들 좀 이 곳에 흘러 돌려 돌아 올수 있게

해 주었으면 늘 싶었다.


이래서 북미 인디언들은 자연의 힘 앞에 늘 경외심을 가지게,

'어머니인 자연(Mother Nature)' 등의 표현 단어들을 그렇게들

많이 쓰고, 가지고들 사는가 보다.



폭설에 갇힌 노인들이 안타깝고, 귀농이며, 귀촌으로 산골로,

시골로 들어 간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자연 재해의 한 희생물

들이 되는게, 나도 곧 시골로 가는 한 사람으로서, 남의 일 같지 

않게 실감 있게 다가들 온다.


우리 한국만의 일이 아니게, 이곳 켈리도, 요즘 계속 지진에

대비한 식량 저장들이며, 물, 비상 구호품 저장등 많은 교육을

다 돌며 정부 관리들이 하고, 이곳은 한번씩 흔들리는 지진이

심심치 않게 자주 들썩인다.


그런가 하면 이곳은 지금 가뭄이 너무 심해, 알래스카에서

사 오는 물 줄기를 빨아 먹고 사는 주로서, 정원, 텃밭등에 

수도물 급수등을 자제 시키면서, 늘 요즘 정부가 호소를 

하고들 한다.



우리는 이렇게 저렇게 살다 간다지만, 우리 후손들이 이

파괴된 생태계 안에서 살 일들을 생각해, 많은 일들을 

자제하고, 우리에게 부탁하고 맡기신 이 땅등을 잘 관리할

일이다.


Global Warming은 늘 Al Gore나 외치는 외면 받는 구호가

이제는 정말 아닌, 각 개인 하나 하나들이 다 책임감들을

가지고, 이 자연을 대해야 할 시기가 이미 이렇게 도래한 

것만 같다.


알래스카의 빙산들이 녹아 무너져 내리고, 많은 작은 섬들은

이젠 더 이상 주거지가 되지 못 하고, 많은 섬 주민들과 나라

들이 그 침수된 정든 땅들을 떠나 가고들 있다. 


자연은 이렇듯 돌고 돌아 결국은 나에게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곧 미치게 된다는 것을, 이번 폭설을 보면서 더

생각하게 된다.



수 많은 비닐 온상들, 소 떼들의 우사, 비닐 씌운 밭 두렁등

자연 생태계의 질서와 안정을 급히 끌어 당겨 오려는 이 수

많은 시도들 앞에,


우리 어린 시절 생산량 증대의 구호로, 인공 화학 비료를

내리 댑다 부어댄 우리 농경지들의 수 십년 후의 폐허들과

파괴들을 되돌아 볼 때, 


유기농 비료를 천천히 쓸어들 넣어, 산 땅을 만들어 내고, 

숨 쉬는 땅을 잘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약 10년이 걸리는 

작업이고, 


그 이후엔 땅은 스스로 비옥한 소산을 내어 놓음을 나는 

나의 이 작은 한 뙈기 텃밭에서 본다.


흑인 할아버지가 수 년을 트럭분으로 가져다 부은 말 똥과

닭 똥들은 이젠 수 백, 수 천 마리의 지렁이들을 생산해

내었고, 


나온 야채, 뿌리등의 소산물들을 그대로 버려 두어, 거름이 

되게 해 년마다 한 지금, 그 열매의 소산은 그야말로 엄청들 

나다.



너무 '빨리 빨리' 의 문화가 아닌, 자연은 시간을, 인내를

지긋히 필요로 한다. 땅을 잘 살리고, 자연이 정말 자연 

되게. 그 힘을 실어 주고, 잘 숨을 쉴수 있게 살려 주는 

것은, 


한 두 해 반짝불처럼 휘리릭 거둬 들이는 수확의 증대가 

아닌,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 하면서, 우리들에게 삶의 

이치를 지금 잘 가르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 덜 벌고, 덜 거두고라도, 우리 땅을, 자연을 서서히

긴 시간 안에서 다시 살려 내는 작업은, 이미 내가 아주 

어릴 적 독일에 갔을때, 그때 유럽은 이미 그 그린 운동을

시작들 하고 있었다.


유신 정권 시대의 화학 비료 투입들과, 오늘날의 온상, 

비닐 이랑, 우사의 엄청난 확산등은 가스를 배출해 내는

그 가장 핵심 요인들이다.


육고기를 조금 덜 먹고, 채소와 야채로 생활을 바꾸어

가는 일, 술 문화로 찌든 우리 국민들의 삶 패턴들을

바르게 계몽 시켜 교정하고 시정해 나가는 일, 



이혼이나 가정 파괴, 혼전 임심등을 혼수 밑천등으로 

조장 시키는 우리 문화들 안의 잘못된 시정 해야 될 많은 

요소들에 대해, 우리는 각인들이 이 책임감들을 다 분배해 

가지고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생각한다.  


자연 생태계에 대한 맡김을 받은 자들로서의 청지기적

사고 체계인 Paradigm들과 역기능적 문화 요소들 안의,

독수리처럼 경성하고, 깨어, 


우리가 어디로부터 그 진리들을 떠나 탈 이탈화 해 있는가를 

잘 주시하고, 생각 하면서 깨어 경성해 살아 간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다음 세대들에게 잘 가르쳐 주어야 하는 한 정신 

문화의 한 유산이라고 나는 본다.



항상 그 문화의 한 공간에 갇혀 살다 보면, 등잔밑이 어둡듯,

우리 문화의 역기능적 요소들이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냉철히 보면

보이는, 어그러지고, 트위스트된 요소들이 너무 분명 하게들

보이게들 되어 있다.


나는 우리 교회들이 너무 축복이며, 개인의 안녕과 수준과

질 향상등만을 비위 맟춰 주다, 세상을 향해 그 소금과 빛의

역할을 크게 상실한 몇 요소들이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본다.


술 문화, 가정의 이혼, 혼전 임신, 자연 생태계 파괴등의 한

큰 요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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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문득 '변호인' 영화 때문, 노변 그리워 하다, '타는 목마름'

으로를 쓴, 김 지하 시인의 근황이 궁금해져, 자료들을 좀 찿아 

보다,


여러 아티클들 안에 나타난, 73세가 된 그의 현금의 삶을, 

'변절'로 열거된 많은 부분들을 한번 찿아 읽어 보면서, 참 많은 

걸 혼자 생각해 본 기회였다.



김 지하가 '토지' 작가 박 경리의 사위라는 것도 처음으로 알았다.



그 중 나이 어리지만, 입 바르고, 대쪽 같은 소리 잘 찿아 하는 

한 입담인 진 중권의 한 묘사가 정말이지, 우리 이 베이비 붐머 

세대들 안에, 찬물을 끼얹어 주는 한 경종으로 내게 다가 왔다.


"왜 말년을 저렇게 추하게 보내야 하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한때 위대했던 시인을.....

감각이 뒤쳐져 더 이상 시인일 수 없는, 어느 노인의 과도한 욕심을 

탓해야 하나요?....


"김동길에 김지하.... 나이가 들면 잊혀질 줄도 알아야 하는데, 

노욕이라는 게 참 무서운 모양입니다. 한 개인이 아무리 용을 빼도, 

자기의 시대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때 이름을 남겼다면,

 

그건 자기가 잘 나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가 하는 말과 글이 마침 

시대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지요. 

그게 진정한 의미의 겸손입니다"



그리고 문화 평론가 이 택광은, '시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버린 

김 지하'로 그를 평하고 있었다.


"시인도 그냥 시인이 아니고, 민주화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김지하가, 그 나이 또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통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만감이 교차하게 만든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질문한다면, 그 대답은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얼마나 독수리같이들 날카롭고 분명한 생각들이고 사고들인가?


목포가 고향인 김 지하는 낙향을 했고, 아들을 대학을 못 보냈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고발하는 장 정일의 아티클부터, 전문대를 나와 

영국의 명문 미술대에서 공부 한다는, 


자신의 기고한 글들 속들에서 부터 벌써 여기 저기 아구가 잘 안 맞아

떨어지는 그의 과장과 인간 됨됨이의 짧음의 그를,


독방 7년 등으로 이렇듯 자꾸 거짓말과 뻥을 자꾸 너무 튀겨 대다

보면,  '신화 창조'의 위험성이 있다는, 우리 젊은 지성들의 예리한

눈빛들이, 


우리 오랜 세대들을 그렇게 날카롭고, 분명들 하게 진실로 거짓들을 

호위하고, 방어하며 지켜들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평생을 일한 한 기관의 총재가 거주하는 장소에서, 우리 평생을

그 기관의 사역에 종사하던 우리들은 생활 하면서, 그 톱 라인 리더

들이던 우리들이 모여 어느 날 이야기들을 한 적이 있다.


'그의 마지막 삶을 잘 정리하고 주님 곁에 가실수 있게, 옆에서 잘 

중보 하고, 잘 협력해 드리다가, 좋은 모습으로 마지막 생을 잘 

마치시고 가실수 있게 도와 드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한 중요한 

한 임무는 거기에 있는 것이라'고.



잘 마치는 지도자가 이 세상에는 7-8 % 밖에는 없다는, 세계적인

유명한 한 석학 지도자 강의 교수에게서 이 대학원서 배웠다.


많은 지도자들이 그 말년등을 여자들과의 패륜등으로 거의 모든

영적 지도자들도 다 무너지고, 그 옛날의 이름과 명성은 거기들

여실히 있었지만, 



가난과 빈곤, 잊혀짐, 무명, 보통 인간으로의 귀환 연습등은

늘 참으로 한 쉽지 않는 사실로, 한 현실의 꼭 날마다 배우며 

성숙해 가야 하는 한 요소들로 늘 대두되고, 이 연습 과정의

필요들이 노년에는 저마다 꼭 나타나게들 되기 때문이다.


'그냥 그의 시로만 그를 기억하자' 하구선,

난 시인 김 지하의 그 노년의, 말년의 황폐해진 모습을 거기

그렇게 내려 놓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 어느 망각의 방 안으로 뫼시고 가, 거기 그렇게 넣어 드려 

버렸다. 


그리구선 나는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 대신, 

'지금도 마로니에는' 노래를 흥얼 거리고, 부엌 한 가운데를 

다니는 나를 조금 후 발견 했다.




마로니에 (나무) 또는 너도 밤나무

학명 : Aesculus hippocastanum

영명 : Common Horse Chestnut



 

높이는 대개 30M 까지 자라고, 가로수, 공원수로 많이 심.

특히 공해에 강해 도심에 많이 심는데,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의

마로니에가 세계적으로 유명하.


마로니에라는 단어도 프랑스말.

 

꽃은 5-6월에 피고, 열매는 8-9월에 익는데, 씨는 작은 밤

모양이며 적갈색으로 광택이 . 독이 있어 식용 가능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옛 서울대 문리대 앞(관악으로 이사가기 전)의

마로니에가유명, 대학로가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름 붙여진 .


그 시간대를 산 한 사람의 코멘트가 곁들여진 이 노래에 얹혀진

그 배후의 이야기이다.



이 노래의 작사자 신 명순이 김지하의 1년 후배 또는 동기생

이었다는 사실을, 서울대 문리대의 그 좁은 바닥에 모를 리 없던 

시절이었다. 



당시 서울대 미학과는 정원이 5명은 되었는지 모르겠다. 

입학생 모두가 가족이었다. 서울대 입학 정원도 1000여 명 

남짓 했을까.



이 노래는 탱크가 대학에 진주해 있던 시절이었고, 
걸핏하면 

휴교령이 내려져 학교에서 기숙하던 가난한 학생들이 쫓겨나기 

일쑤였다.

 
쫓겨난 학생들은 학림 다방에서 음악을 듣곤 하던 쓸쓸한 날들에

학생들은 이 노래를 들었다.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 쫓겨난 학생들의 회상이다.

 
눈물속에 봄 비가 흘러 내리듯 - 봄비는 민주주의의 열망이라 

해도 좋다.

임자 잃은 술잔에 어리는그 얼굴 - 김지하뿐이겠는가 무수한 

젊은이들이 잡혀 갔다.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 신 명순이 사랑한 김지하뿐만 

아니라 청춘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이 굳이 

가을일까. 탱크가 진주한 대학 캠퍼스를...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 이 허밍은 말할 수 없었던 

시대의 시니피에가 아닐까.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 마로니에는 지금도 피고 있음

으로 더 아프다. 깨어진 민주주의의 꿈이...

이 노래의 시니피에를 왜 몰랐을까 당국에서는...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바람이 불고 낙엽이 지듯이 

덧없이 사라진 다정한 그 목소리



아 청춘도 사랑도 다 마셔 버렸네 

그 길에 마로니에 잎이 지던 날 

루루루루 루루루 루루루루 루루루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12월 20일 경부터 시작된 연말과 새해 인사 하러 집에 방문 하는

손님들을, 오늘까지 긴 시간 치러 내고, 오늘에야 이제 겨우 결말이 

맺어져 가는 것 같다.


어느 나라 어디에 살아도, 이 놈의 연말과 새해에 감사며, 

인사치레며 등으로, 수 없이 몰려 오는, 이 방문자들 손님 

치르기는 한 해의 한 큰 대소사에 속한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탈탈 비어내 식사 대접들 하고, 이제 먹는

창고가 그야말로 땅땅 다 비어 갈 때쯤, 그 끝이 난 것이다.



옛날 우리집 명절 즈음해, 수 없이 흰 도포 자락과 갓들을 쓰고,

끊임 없이 인사 하시러 드나 드시던, 그 어르신들 생각이 나는

요즈음이다.


우리 할머니는 늘 말씀 하셨다.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들끓을 때, 그 때가 바로 집이 흥하는

한 징조라고.


나도 그런 의미에서는 지금 흥하고 있는 한 시간대인가 보다.



우리 많은 젊은이들이, 내가 가는 고향, 시골의 귀향을 함께

흉내 내고들 싶어들 하고, 지금은 그런 상황들이다.


이래 저래 많은 젊은이들이 나처럼, 귀향하고, 귀농하고, 

귀촌하고, 귀국하는 사례들이 앞으로 많이 많이 나를 시작으로

늘어 날 것 같다.




이래서 한 모델, 귀감이 되고, 한 롤 모델로 영향력 있게 선다는

건, 참 가슴 떨리도록 놀랍고 무서운 일인 것 같다.


많은 책임이라는 단어를 깊이, 진중히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데 참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세상이, 우리가 그토록 

귀중하고, 소중할 것이라고 철썩같이들 믿는, 그런 것들이

많은 경우들에는,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단단하고, 경직

되어 있는 것들이 아닌,


언제든 내려 놓을수 있고, 포기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바뀔수 있는 유연성을 가진 요소들이라는게, 이 삶에

대해 다시 한번 모든 가치들을 재 검토해 볼 수 있게 나를 

만든다.




많은 이런 나의 삶의 향방과 선택을 따르고, 흉내 내고 싶어 

하는 이 많은 이들이 다, 최고 학부의 박사 과정들을 다 마친

전문인들이고, 엘리트 베테랑 지성인들이라는게 나를 다시

경성 시키는 것이다.



지식이고 뭐고, 다 누려 보고, 다 해 보니, 그거 별거 없더라는게

하나 같은 공통의 귀결들이고, 목소리들이고, 음성들인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무엇이 우선 되고, 어떤 가치관과 세계관들이

우리들의 사고들 안, 삶들 안, 차분히 잘 정착 되어져야 하는 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되는, 나의 삶의 한 새로운 경험의 한 철인 것이다.




집 앞 큰 이 도시 가장 중심부 한 중앙에 Utrh Coffee 분점이 유럽의

큰 성처럼 개점을 해, 점심 식사 후 거기 몰려 가, Breakfast Mug

가득 수프처럼 부어 주는 커피를 한 대접 마시며,


많은 담소들을 노천 카페에 앉아 그렇게 나누며 소일하고,

그 많은 손님들을 대접해 집들에 돌려 보내고 돌아서 와서는, 

묘한 멜랑콜릭한 분위기에 빠지다.




"정말 이제 가시는 것 같애요. 많은 이야기의 부분이 고향 시골

이신걸 보니!" 한다.


"몸만 여기에 지금 있지, 저의 전체의 마음은 이미 제 고향에 

가 지금 늘 배회하고 있는지 이미 아주 오래거든요" 하고 대답하는

날 보곤 나도 놀란.



영화 'Patch Adams'의 한 인용구가 생각나게 하는, 한 철인 것이다.

"All of life is a coming home"


우리가 궁국에 가야 할 우리들의 진정한 본향집은, 그 분과 함께 

하는 그 삶의 길이겠지만서두 말이다.




Patch Adams A Review

 

All of life is a coming home all the restless hearts of the world are trying to find a way home.  Here in the opening lines of the movie of his life, Patch Adams delivers not only his personal philosophy concerning the meaning of our days on earth, hinting toward his own healing and the lens through which he would one day view patients and wounded people around him, but also the very nature of the human heart.  As George MacDonald has said, This is and has been the Fathers work from the beginning to bring us into the home of His heart.  From what I have come to understand of the soul of man and the heart of God, it is this desire to come home, and what a man or woman does with this desire, that determines perhaps more than any other factor the journey his or her life will take.  In watching the film, I realize that this is a bias I have in dealing with a person or a family, that ever since we lost our place with God through the Fall, we have been looking for it again and trying to find our way back into the sacred circle.

Its instructive, too, that for Patch, his life had taken a turn into a dark wood, as he puts it, but that as frightening as it may have seemed and as devastating as it could have been, what he discovered in the psychiatric ward at the beginning of the movie was of immeasurable value for his life.  Something inside him did come home, in a sense.  Up to this point, he had run aground on the reefs of pain, isolation and despair.  He had entered into the clinic shipwrecked, purposeless and alone, but he left (through no direct help by the doctors, sadly) propelled with tidal force by a passion to serve others.  Whats astounding about the way the movie portrays this is that its right out of Jesus teachings of following Him, of letting the dead bury the dead, and of losing your life to keep it, of loving service.  Patch becomes, in the famous words of Henri Nouwen, a wounded healer, a quality necessary, I think, for anyone who wishes to extend healing to others.  Nouwen explains in his book by that title, Who can save a child from a burning house without taking the risk of being hurt by the flames?  Who can listen to a story of loneliness and despair without taking the risk of experiencing similar pains in his own heart and even losing his precious peace of mind?  It is here that Patch even receives a new name, biblically analogous to Paul the Apostle or Peter the Disciple or even John, the Son of Thunder.  In every case, with the new name comes calling and passion to serve.

The way in which Patch serves is also so much like Jesus, and so much like a true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Patch goes through the rigors of medical school studies so as to become a doctor, but he sees that in itself only a means to offer healing and improve the quality of life for patients.  He is not only uninterested in the reverence of the title and in professional distance and objectivity through labeling, but he sees it as damaging to the process of healing.  I love the scene when a doctor is coldly explaining to medical students surrounding a diabetic woman that her toe may have to be amputated and asks if anyone has any questions.  Patch interrupts the heartless critique with an innocent and warm question, What is her name?  He cared for her as a person, and honored her with the dignity of identity rather than reducing her to the level of a label or a disease.  His approach to the professional medical community is not openly hostile, but rather openly human, and he insists on remaining faithful to that vision.  His ruthless interest is always to serve others by engaging them to offer treatment.  Standing before the medical board toward the end of the film, they with the power to keep him from graduating, Patch explains that because of his desire to serve he has lost everything, but Ive also gained everything by sharing with the patients lives.   As God as my witness, no matter what your decision today, I will become the best damn doctor the world has ever seen.  Although he wanted to become a doctor with all his heart, Patch knew he already was one at core.  Thats the case for me as well I am called to serve, I am called to bind up the brokenhearted (Isaiah 61:1).  By walking in step with the Spirit of God as my Counselor, I hope to become trained in counseling so as to to share in the lives of people and offer them healing and restoration as a part of the process of becoming more alive… “that they may have life, and have it to the full (John 10:10).

                                               -Quotes from Brian Fidler-

                                             Licensed Professional Counselor


                                                              Chronicles of Restoration
               THE JOURNEY OF A HEART WALKING WITH GOD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그 쉬운 편도선 수술이 기구 불 청결로 감염이 되어, 패혈증이 되어

편도선 수술 한 달 후 돌아 가신 엄마는, 수술한 작은 개인 병원에서

대학 병원으로 옮겨져, 한속 추위가 들어, 두꺼운 이불 몇 채씩을

둘러 쓰고도 벌벌벌 떠시도록 추워 하셨다.



가난한 외숙모가 오셔서 병 수발을 들고, 그렇게 추워 부들 부들

떨고 일어나, 기력이 돌아 오면, 병원을 방문한 나에게 이야기

하시곤 했었다.


이번 이 치료가 끝나고 나가면, 무등산등에 부지런히 올라 다니며

등산도 하고, 운동을 해, 이 건강을 잘 회복해 낼 것이라고,



그러던 엄마는 며칠 후 패혈증 치료책의 새로운 시도로 병원측이 

선택한 페니실린 쇼크로 시신이 되어, 3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런 주검이 되어 집에 돌아 오셨다. 


열 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나를 첫 얘로 가지셨으니, 난 이미 

그때 20살이라는 청년의 나이였고,



이번 부상 당한 소식을 전해 들은 남동생이 그야말로 

노발 대발, 몸 관리 못하고, 왜 그렇게 남만 위해, 숫기 없이 

늘 그렇게 사느냐고,


혼자 사는 이들은 스스로 알아 몸 잘 챙겨야지, 그 무엇도 

없는 거라고, 많은 감정과 걱정이 섞인 긴 장문의 이 메일을 

보내 왔다.



그래도 나는 이 사고를 이번 겪으면서, 내가 그 수 많은 위험한 

나라들을 평생을 걸쳐 살았는데, 정말 그 어떤 가벼운 부상이나 

사고 한번 안 당하게, 


우리 주님이 평생을 나를 그렇게 단단히 보호를 해 오셨구나! 

하고, 새삼 늦은 깨달음과 감사를 올려 드린 그런 사건이었다. 



우리 막둥이의 그런 비극적인 죽음 이후 나는, 모든 사람은 

결국은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이 죽음이라는 괴물을, 다 준비들을

잘 하며 살아 드려야 한다는 결론과 배움에 이르게 되었다. 



그게 남의 일이면은 책임 없고, 경망스럽기 그지 없는, 죽음이

크리스챤으로서는 축제니, 기뻐 해야 하는니 하는 가당치도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의 경하고 천박스런 단어들을 아주 쉽게들 

그냥 어디선가 주워다들 늘 책임 없고, 값어치 없이들 흉내들을 

내 쌓는 작태들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들도 부려댄다.



"축제 같은 소리들 하시고들 자빠져들 있네.

니 가장 사랑하는 피붙이 자식 새끼가 한번 죽었다고 생각들

해 봐라. 그게 과연 그 믿음 좋다는 너에게도 과연 축제가 될 수 

있나를?"



"그리고 그게 너의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여 봐라.

그 죽음들이 축제가 되는지. 그리고 왜 눈믈을 흘리냐고?

좋은데 갔는데?  우라질. 한번 당해 봐?


왜 피 눈물이 나는지 니도 알게 될거닌깐. 이 수수깡 

대가리들아" 하고 나는 자주 욕설을 퍼 부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우리 많은 경박스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도, 이별도, 아프고 힘든 것인 것은, 믿음이 설령 있더라도,

그리고 그 믿음이 하늘을 찌르는 바리새인적 믿음이더라도,

아프고, 힘든 것은,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 것이지, 


그게 좋은 믿음의 표상은 절대 아니라는게, 나도 믿는 자이지만,

그 죽음 이라는 가장 깊은 심연의 협곡에 서 본자로서, 정직히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대해 훤히 이야기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 왜 우느냐구? 하나님이 있는데?


그냥 그건 아프닌까, 시리닌까, 하나님이고 나발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가 죽어 버렸으닌까.

그리고 다시는 절대 못 보닌까....



그리고 그 영원히 산다는 하늘은, 영생은, 아직 못 보았으닌까,

못 믿고, 뭔가 흐릿하고 정말 그러나? 싶은데, 내 사랑 이가

죽어 버린 건, 거기에 반해, 너무 자명하고도 분명한 한 사실이닌까.



전 세계가 지금 야단들인 눈 구덩이 그린란드가 더워 반팔을 

입고 다니고, 이집트와 중동에 폭설이 내리고, 이곳 가주도

너무 따뜻한 겨울 날씨에 사람들은 지금 다들 무서워 한다.


이거 뭔가 도래해 오는 무슨 전조가 아닌가 하는.

이곳의 대 지진에 대한 공포들은 어마 어마들 하다,


수 십 미터가 넘는 심해 대 갈치가 계속 떠 밀려 나타나고,

작년은 사상 유례 없는 수 많은 지진이 며칠에 한번 꼴로

이 땅을 흔들어 댔다는 보고가 뜬다.



얼마를 살다 갈찌라도, 우리는 늘 그 어떤 모습으로든 한번은 

이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 해야 할 것이고, 그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님 곁에 가게 될 것인가는, 우리는 사실 아무도 모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는 동안 우리 주님 안에서 바르게 잘 살아 드리고,

그리고 이 보좌의 권한인, 우리의 생명의 수의 문제는, 우리 

주님께 그 권한을 겸허히 돌려 드릴 일이라는 생각을, 오늘 

아침 동생 메일을 받고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그래, 나도 한국 시골 가 살며는 운동도, 산책도 열심히 하고,

농사 방법들을 찿아 내어, 열심히 농사도 짓고, 내담자들 혹

우리 주님이 보내 주시면, 열심히 상담도 하고, 그렇게 부지런히

살 생각이야! " 하구선 동생에게 편지를 쓰는데, 


그 우리 엄마가 며칠 후의 죽음을 모르고, 병원에서 나에게 하던, 

그 무등산 등정 운동 계획이, 나의 이 코멘트에서 문득 같이 떠 

오른 것이다.



내일 일을 모르는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사실은 

계획이며, 많은 생각들이며를 보장 받고 호언 장담할수 있겠는가?


데려 가시기까지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 해, 겸허히 잘 살아 드리면

그뿐이겠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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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 반란 사건들이며, 지리산 빨치산 사건들, 벌교를 근경으로 

좌파 빨갱이등의 언어들이 역사 안 나 돌때, 총살 당하고, 잡혀 

가고등의 이야기들의 그 주변들서 산 할머니는,


좌파, 빨치산, 빨갱이, 공산당등의 단어들을 언급하실랴 치면, 

늘 소곤 대듯 조용히 목소리들을 가장 저음으로 낯추어 발음해 

이야기 하시곤 했었다.


그러면 나는 늘 그런 단어나 사람들은 가장 심히 경계 해야 하고, 

대대손손 집안의 대들보를 뽑아 먹을수 있는, 위험하고도 지극히 

무서운 한 인간 집단군으로 무서워 해야 하고, 지극히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인 걸로 쉬쉬 거리고 무서워 하며, 


그 이야기들을 듣곤 그냥 내 가슴에 남겨 버리지, 그런 단어들을 

언급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우리 나라 최 남단 남도 반도 고흥에서 

그렇게 아주 어린 시절을 보내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그 할머니 시절 폐병 걸린 나의 친구의 언니나, 나중 

그 같은 증상으로 역시 아주 젊은 나이에 요절한 한 동리 친구를

대하시면서, 나에게 지지러지며 못 놀게 하시던 할머니의 그 

비 인도적인 처사들처럼, 


그렇게 나는 좌파를 운운하면 아직도 목소리를 낯추는 그런 

무의식들이 내 안에 어언 잠재해 있음을 내 자신의 삶 속에서들

자주 종종 보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또 사회 분위기가 꼭 그렇치 만도 않는 것 같다.


조금만 삐딱선 타 입 바른 소리 하면, 다 '종북'이라는 주홍 글씨

도장을 꽝 사람들의 삶 안에 박아 버리는, 참 우습고도 아이러니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기운을 나는 느끼고 보면서 웃는다.


종북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경히, 가볍게 가장 많이 남발되는 

시대도, 내 나이 55살 평생 또 처음이다.


이곳 교민 사회들에는 그런 이들 정말 많다.


조금만 여당 숭배하는 찬사와 아첨에서 벗어 나면 빨갱이라 이름해

버리는 무지하다 못 해 그냥 슬퍼지게 하는, 생각이, 사고가 거의 

머리끝 쪼뼛에서 돌다 그냥 멀리 외출 나가 버린 조류급 머리들.


그래 나는 많은 경우 나의 생각과 사고들의 말을 아끼고, 이곳 교민

아저씨, 아줌마들, 권사님들, 장로님들에게는 지극히 예의 깃든 아주

공손한 프로토콜들만으로 그 들을 대해 준다.



건드리면 그 무지들이 시한 폭탄들처럼 터질수 있는 무지의 최상의

극을 가는, 무지해서 무서운 사람층들이 이 세상엔 존재한다는 

그만한 상식쯤은 나도 알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벨이 틀리게 우리 한국의 상황들이 내 마음 안서 배배

뒤틀리게 무리스러워진다. 낮은데로 내려 가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겸허히 받는 삶의 자세 습관을 길들일 일이다.



거품처럼 소비나 생활 수준이 비 현실적인 형상 위에 자리한 한 나라.

외국에 오래 살다 보면 그게 간접적으로 눈에 선히 보인다.


부유한 1%의 공중 누각식 삶들의 형태가 존재 하는가 하면, 때로

찌들린 빈민가들의 다수의 빈민층들의 삶의 현장들이 나를 심히

경악케 하는. 



최저의 서민들까지도 기본적인 주거나 식생활등의 수준을 그렇게

동떨어지게 만들고, 처리하지 않는 소위 말하는 복지 국가들에 

살면서, 이미 눈에 익은 최소한의 인간 권리들을 너무 오래 잘 보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한국에서 살던 나이 25세보다, 5-6년이 더 많은 서방 

세계에서의 길고도 길었던 삶이 나를 그 중앙 갭 사이에 서서 

이런 광경들을 예리하게 눈에 박히고, 뜨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생각한다.

내가 과연 그 부조리들 속에 다시 돌아 가서 흥분하지 않고

평정된 마음으로 그렇게 고요히 살수 있을랑가 몰라? 하는

한 두려움과 뭔가 불길해지는 한 예감이다.


그건 마치 우리 할머니의 좌파 낱말 운운시 소곤 대던 그런 

요상스런 불안감 같은 그런 같은 기분이고 분위기다.



나는 이데올로기고 사상이고 나발이고 다 귀찮은 한 사람이다.


대학때 그때 판 치던 YWCA 여성 리더가 민중 운운하며 너무

과하게 개 거품을 입에 물고, 야단 법석을 치는데, 나는 상당히

마음이 버겁고, 부담 스럽고, 무리스러워 보여, 다시는 그 회관

근처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놈의 동독이나 소련 그런 사상의 가장 최 극단이고

괴수급 현장들에 가 살아 보니, 그 허망함의 현실이 마치 모래성

같더라는, 


그런 실한 정의나 현실도 나는 그 가장 중앙 현장서 일 때문 

거기 그렇게 살아 보았기, 그런 정체의 현실성들을 너무 적나라

하니 알아 너무 탈일 정도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참 많다.

이곳 잠시 지나가는 한 나그네처럼 4년 반을 산 이 가주 나성의

무지만큼들이나, 우리 나라에는 그런 무리들이 더 비일비재히

편만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지혜로 입 벌리고 말 나누고 해야 하는 우리 할머니의 소곤거림 

같은 그런 이상하고 괴상한 기류들을 잘 분별해 잘 살아야 할 것 

같다는 그 스멀 스멀 기어 드는 한 분위기들 때문이다,


잠언 25장 11-18의 '은 쟁반의 금 사과', '지혜롭고 적절한 말'을

생각해 보는 아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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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날이 다시 찿아 왔나? 싶어질 정도로, 따뜻한 이상 기온이

시작된 오늘.


요즘은 밤마다 너무 많은 꿈들에 지극히 시달린다.

그것은 거의 나의 앞날들에 대한 염려와 기우가 밑밭침된 그런 꿈들

인것 같다. 그래서 늘 별 상쾌치 않는 밤의 이야기들이다.


아버지가 마음을 평생 끓이고 끓이다 폐암으로 그렇게 비참히 

이 세상을 비껴져 나간 후, 나는 그에 대한 단 한번의 꿈도 아직

꿔 보질 않았다. 


어쩌면 꿈에서라도 다시 보기를 지극히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꿈에 조차도 초대 받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죽고 난 후 수 년이 흐른 어젯밤 내 평생 단 한번 

처음으로 그가 아주 잠깐 보였다.



감정은?

전혀 아무 것도!


반가움도, 노여움도, 서러움도, 아픔도, 그 어느 단 하나의 감정도

없이, 그저 잠깐 스쳐간 이로, 그렇게 꿈에 아주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거기 난 무덤덤하고 numb 했다.



사람은, 사랑은, 백번 잘하다 한번 아주 크게 잘 못 하면 늘 이런

판이고 형국이다. 용서 받지 못한 한 자. 그 이름이 우리집은 이

아버지라는 이름이다.


그의 선택에 따른 그 책임을 갚아 가는 한 자.

삶의 반 평생을 우리 자녀라는 자들에게 크게 그 죄값을 번 자.


버림의, 방임의, 자기 쾌락의 좇음을 선택한 자에게 가혹히 내려

지는, 그 즐겼을 단 꿀을 계속 빨고 비참할수 있도록 우리도 거기

그냥 그렇게 내 버려 두는 자.


우리집은 그 이름이 아버지라는 그 이름이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잠깐 잠깐 그리워지는 그 마음을 나는

오랜 동안 아주 경멸해 오고, 무시하고, 거기 그렇게 내 팽개쳐

버리고, 내 동댕이 쳐 버렸다. 


감정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감정.

그런 자를 향해! 서의 차고도 찬 냉멸이였다.


감정조차도, 무의식 속들의 어떤 느낌들조차도 조종해 버릴수

있을 정도의, 이 처절하게도 철저한 무관심은, 내가 그 가장 경멸

하는 자들에게 내려 주고, 선사해 주는, 가장 큰 한 체벌의 방법

이다.



내 사랑하는 막둥이 동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고서의 그를 향한

나의 감정은 더 혹한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더 꽁꽁 얼고 차가워졌다.

그리고 그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나의 얼굴을 더 이상 보지 못 했다.


그것은 내가 그에게 내린 가장 큰 벌이고, 망치 땅!땅!의 한 선고였다.



그래 우리 큰 대소가 모든 문중의 이들은, 이런 나의 먼 이국 땅

에서의 외면으로들 인해, 나의 그 피눈물을 이해하고들, 나를 

대신해 울어 주고, 그 장례식을 마친 후, 술을 몇 잔 거나히들

걸치고들, 나에게 이 메일들을 보내 왔다.


너의 그 아픔을, 너의 그 피눈물들을 우린 이해한다.

큰 딸로서, 이 세상에 버려진 세 남동생들을 향해, 평생을 흘린 

너의 그 피 눈물들을 우린 십분 이해 한다고. 



이해하긴 너희가 뭘 이해해?

나의 그 깊고도 시린 그 아픔과 피 눈물의 삶을.



나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가 우리를 그렇게 죄성을 운운할만큼 죄 짓게 버렸을 때,

우리도 그 죄의 값만큼으로 그를 차고 아프게 버린 한 이름이다.


나는 그를 그렇게 철저히 버렸다.

내 꿈 속에 조차도 들어 오지 못하게.



빈민가 쪽방에서 전깃줄로 목을 메어 자살한 30년간을 배고프고 

처절히 혼자 공사장 막노동판에 내 버려졌던 내 막둥이 동생의 

눈물과 아픔들을,


나는 그렇게 그에게 다 쏟아 부어 지워, 내 삶에서 무자비하게 

그렇게 영원히 추방해 쫓아 내어 버렸다. 꿈 속에라도 추방된 자.

나를 다시는 보러 오는 것을 허용 받지 못한 한 자로 그렇게 영원히.



손톱 강그러지게 피 땀 흘려 모은 모든 조상들의 재산들과 정신들을

다 말아 먹은 자. 


그리고 새 여인과 새 자식들로, 네 자식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배고픔, 가난으로 일관할 때, 그 같은 30년 기간 동안 그 들은 

수 십억 종합 병원 이사장의 부와 향락을 평생 즐기며 산 자들. 


이 세상에 인간의 언어들로는 다 설명할수 없는 그 부조리함들,

부 정당함들에 대한 그 댓가 지불을, 그는 죽어서도 그렇게 

그 관 속에서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버린 자식들에게 철저히 외면 받는, 꿈속 까지도 초대 받지 못한, 

한 철저히 버림 받은 한 자로.


사람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 자신도 그 피눈물 흘리게 되는 

날이 이렇게 있다는 것을 알고 갔는지? 말았는지?


나는 그것만이 종종 궁금할 뿐이다.



나에게 있어 나의 아버지라는 존재는 지금으로선 그것밖에 없는 

한 자이다.


이 세상 길바닥에 똘맹이처럼들, 부도난 수표들처럼 남발해 대는

'용서'라는 그 단어를, 나는 별로 지극히 남발해 별 쓰고 싶지 않는

한 대상, 그 이름이 나는 지금 나의 아버지라는 한 이름이다.




무섭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생각 나는

한 사람이지?  나는 !!  

그만큼 아팠거든. 우리 4 형제는 지난 35년을.



반대 정신(Opposite Spirit)?  용서?

그런 단어의 적용에 난 매우 더디고, 느린 한 사람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삶의 한 중앙을 걸어 가면서 살다 보면, 문득 어느 순간, 참 많은

이들은 참 다양한 장소들을, 경험들을 살며 지나 가는데, 나만 홀로

외로히 너무 격리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메임을 당해 살고 있는

듯한 답답함과 무료함을 종종 느끼기도 한다.


이번 젊은 얘들을 내면들을 검토하고 회복 시켜 내, 무더기로

전 열방 세계로 몰아 내 치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 심히 들어

오기도 하는 것 같다. 



젊은 시절 지겨울만큼 돌아 다녀야 하는 일을 가지면서는, 이런

조용하고 안정된 정착이 그리도 무지 그리워 나는 하늘을 향해

늘 호소 하곤 했는데도.


"나는 여자라"고.

"나도 어딘가에 제발 좀 정착해, 조용히, 차분히, 그렇게 

단정하게 고요히 앉아 나의 삶을 좀 살게 해 달라"고 하면서.


그런데 이렇듯 한 장소, 한 공간에 4년 3개월을 꼼짝 없이 묶여

학문하고, 클라이언트들 임상 보고 하는 사이, 내 숨을, 목을 조여

오는 답답함과 지겨움을, 나는 요즘 종종 느끼곤 하는 것이다,



이 쨍! 하니 춥고, 눈이 부시듯 쏟아지는 맑고 깨끗한 햇살이 

부서지는 이 켈리의 날씨 속에 앉아, 나는 지금 무엇을 더 이상

꿈꾸고 있는건지 나도 내 마음 속을 잘 모를 일이다.


더 이상 이젠 갈래야 갈수 있고, 또 가고 싶은 지역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배부르고 호사스런 누리지 못한 자들에게는 괘씸하게 들릴 이야기

인줄 알지만, 나로선 참으로 많은 생각이 내 내면을 오고 가는 한 

현실의 이야기이다.



도시로는 이 크리스마스 철 겨울 뉴욕이나 한번 다녀 왔으면 싶고, 

나라로는 뉴질랜드 정도 한번 다녀 왔으면 싶은, 북미주와 서방 세계 

삶의 정리 기간이고, 종결의 시간대이다.


시민권 받으러 뉴욕은 크리스마스 철 한번 들어 오고, 뉴질랜드는 

귀향해 너무 답답하다 싶을때, 스승님 박사님이나 한번 뵈러 다녀 

오면 되겠지.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런 삶?

산다는 것 : 2013.12.02 23:18



에효 !

피휴 !!


이런 삶도 다 있네요. 살다 보면.


어찌 합니까? 이런 경우들은.



이런 아저씨 다 한번 만나 보고 싶어 지는 건 

속물 근성?

아님 견물생심?


둘 다 ??!!


갑자기 헷갈려지기 시작한다는.



어허!

우리 최 영 장군이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셨거늘 !!


웬 갑자기 미혹 ??!!


니 정말 부자 알러지 맞아 ?


몰러, 갑자기 급 헷갈린다는.




[스크랩] '50억 노숙자' 또 수난..19억 든 지갑 잃어버려


부모님에게 수십억 원을 물려 받은 자산가지만 노숙생활을 전전해 '50억 원 노숙자'로 불리는 박모씨(53)가 또 다시 거액이 든 지갑을 잃어 버렸다.

3일 국토교통부 철도특별사법경찰대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달 말 서울 동대문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부천역으로 향하던 중 잠깐 자는 사이 19억 1200만 원이 든 지갑이 사라졌다고 부평센터에 신고했다.

지갑에는 1억 원짜리 수표 19장 등 19억 12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박씨의 주장을 반신반의 하던 철도사법경찰대 직원들은 "2년 전 언론에 나왔던 50억 원 노숙자가 바로 나"란 박씨의 말을 듣고 신원을 확인해 박씨와 동일인물임을 확인했다.

철도경찰대는 박씨 수표를 모두 정지시키고 분실, 소매치기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고 있다.

철도경찰대 관계자는 "아직 분실한 돈을 찾지 못했으며 (박씨가) 언론에 나가는 것을 꺼려 수사내용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2011년 8월 31일 오전 5시 30분 인천 중구에서 노숙을 하다 1000만 원 대 현금, 고급 금장시계 등이 들어 있는 가방을 잃어 버리기도 했다.

가방을 훔친 피의자가 가방에 든 거금을 보고 더 놀랐을 정도다. 박씨가 50억 원 대 자산가란 사실은 당시 범인을 잡은 경찰이 박씨의 돈의 출처를 의심하면서 알려졌다.

박씨는 젊은 시절 부모님이 물려주신 수십억 원의 재산을 모두 처분해 2010년 은행에 입금하고 매월 100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받으며 노숙생활에 나섰다.

미혼인 박씨는 호텔이나 모텔에서 잠을 자면 감옥 생활을 하는 것 같아 노숙을 하게됐다고 경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매일경제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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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우울증에서 완전히 회복 되어 이제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위해 새 출발 하는 내담자의 삶 안, 하나님의 행하심과 그 인도 

하심이, 요 며칠, 몇 주 정말 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면서

나를 감격케 한다.


이 내담자는 미국에서 고등 학교를 최 우수 우등으로 마치고,

동부의 유수한 명문 사학을 마친 후, 정말 미국의 내 놓으라

하는 말 그대로 '사' 자 달린, 모두가 우러러 보는 전문직을

가지고 지난 10년간 일했던 드문 인재이고 귀재 출신이다.



그런 그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이 클리닠을 찿은건 6개월

전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들을 단 한번 지각도, 빠짐도

없이, 성실히 임했다.


그리고는 그 극심했던 말기의 우울증 증세를 말끔히 극복

하고 이겨낸 후, 회복되어 이렇게 헌신의 멀고도 긴 여정을

이젠 떠난다. 이번 주일 저녁 비행기로.



어제는 그 마지막 Wrap Up 셋션을 오면서, 갖은 음식을

그야말로 산더미 같이 다양하게 쇼핑해 왔다. 감사의 선물

이란다. 


이 사람은 이렇게 감사의 선물로 수 많은 음식 종류들을 

날라 오고, 그 중 생선전이 있어, 셋션 끝나고 배가 고파

먹었는데, 속이 메슥 거려, 즉각 방사선 오염 생선인가?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방사능 오염 증상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아요!

아마 식중독 균이면 균이지! 하면서.



일본은 망언들에 어거지들에 점점 더 미쳐 가는 것 같고,

우리 나라 3면 바다와 태평양 모든 근경 바다가 이미 이 

못된 이웃 사촌들 덕분 다 방사능으로 오염 되었음의 보고

들이 여기 저기 남발들이다.


독일 연구 보고서, CNN 뉴스 자료 등등. 


체르노빌이 300-500년을 그 방사능이 간다고 하고,

더 심한 데는 만년을 가도 안 없어지고 남는다니, 참

큰일이다.



미국 중부 아틀란타에 사는 제자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근경 바다에서 잡힌 모든 참치들이 다 방사선 오염 경우로

판정난 이 사진을 보내 오면서, "절대 당분간 그 어느 생선도

드시지 마세요"하고 당부해 온지 얼마 안 되어서.


"먹으라고 사 오는 제자, 먹지 말라고 경고하는 제자.

그 어느 장단에 맟추어 나는 그럼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면서.


그래 지금 집엔 먹을 것이 너무 지천에 깔려 많아 올 겨울 

한 철은 거의 장을 안 봐도 그냥 그렇게 날 수 있을 것 같다. 


고기들이 이렇게 많고, 푸성귀 야채는 밭에서 지금 지천으로

들 나고 있으니, 가끔 건너 가 꺽어 오는 부지런만 부릴수 

있다면.


텃밭 지기가 올 한 해는 너무 게을러져, 한달 넘게 씩을 

그대로 묵혀 두는게 요즘은 예사다. 반성하고, 성찰하고, 

부지런히 좀 살 일이다.



감사와 온전한 하늘을 날듯한 기쁨, 가벼운 영, 환희가 그의

삶에 있고, 소망과 꿈과 비젼이 살아 움직임을 건너다 보고

있노라면 그냥 그의 존재 자체에서 온전히 느낀다.



그는 꿈쟁이이다.

그런데 그 잦은 꿈의, 비젼의 죽음은 그를 말 할수 없이 

위축 시켰고, 그 좌절이 누적된 삶은 그를 극하고 심한 

우울증으로 내 몰아 간 것이다.


이런 분노와 화가 눌려져 극심한 우울증으로 빠진 자들은

그 감정을 먼저 완전히 Release 시킬수 있게 계속 관리해

주어야 하고, 그 죽은 꿈들을 다시 날게 날개들을 다시 달아

주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거듭된 꿈의, 비젼의 죽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극심한 

우울증들에 빠지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두 생도 아닌, 이 한번 사는 삶, 생 안에 진정으로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지를 자주 물어, 그런 꿈쟁이들에게는 그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나도 어릴적 저런 늘 위대한 꿈들을 정말 많이 꾸던 한 꿈쟁이

였기 때문에, 그 꿈들을 이루려 나도 그 먼 길을 떠났었다.

그래 이런 꿈쟁이들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참 그야말로 만인의 만류와 그 훼방들을 다 뿌리 치고, 제끼고,

그렇게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택한 것이다. 그래 나는

나의 삶의 선택과 그 분의 신실하신 인도 하심을 돌아 보면

전혀, 나의 지나간 삶의 선택에 대해 후회가 없다.


재미 있고, 흥미진진하고, 정말 멋지게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제자들이나 이런 나의 클라이언트 들에게 이 길을 

그렇게도 깊이 사모하고 염원하는 이들에게는, 


이 순종과 헌신의 삶을 자신 있게 권할수 있는 권위가 나의 삶 

안 아주 오래 전부터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삶 안에 신실

하셨던 그 분을 뵈면서, 


많은 믿음의 이 뒤를 따르는 자들이 이렇게들 나의 삶 안에 

일하시고, 임재 하시고, 동행 하시는 우리 주님들을 그냥 

거기서 그렇게 뵙고서들, 


그렇게들 그런 한 단계 높은 부르심의 길들을 이렇듯 과감히들 

선택해 그 길들을 따르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 안에 그토록 신실하시게 약속을 지키시고,

지금까지 일해 오시고, 동행해 주신, 우리 주님께 대해, 깊고도

큰 감사가 늘 있다.



일설에 의하면, 그리고 영국에서 한번 그 강의를 아주 잘 들은 

적이 있다.


독수리는 나이가 40세 근경이 되거나, 중병이 들면 예전 날던 

고공 비상의 높이 보다 3-4배 더 높은 벼랑으로 날아 올라 

간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견디면서,

부리로 낡고 해진 오랜 깃털들을 하나 하나씩 차근 차근

전부 자신의 부리로 뽑아 낸다고 한다.


그 동안 부리도, 발톱도 각질이 다 부서지고 깨지고, 낡다,

한참 후 새 깃털이 나기 시작 하는데, 이 새 깃털은 그 어떤 

폭우도, 바람도 그 깃털을 뚫을수 없는, 윤기 있고, 힘 있는

깃털들로 소생되며,



이 깃털로 고공 비상을 할 때는, 그 전의 몇 배 높이로 높게

높게 비상할수 있는 힘을 주는 그 근원이 된다고 한다.


나는 이 사랑하는 나의 클라이언트의 나머지 40대가 이

독수리의 창성함으로 날고, 비상하는 삶이 되길 기원 하면서,

그를 위해 깊이 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의로 불러 내신 그 우리 주님을 신뢰하고,

기뻐 하고, 감사한다.


이전보다 훨 창대하고 풍성한 그의 삶이 되게 하실, 그 분을

그렇게 바라 보고, 찬양 하고 신뢰 하는 것이다.


꿈쟁이들은 높고, 멀리, 날아 올라 비상해, 높고, 넓게 볼수

있어야들 그 직성들이 풀린다. 그때야 그들은 그 꿈의 이룸

들을, 그 들의 삶들 안에서 보면서,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나는 나의 제자들과 클리아언트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아주 과감히, 그리고

확신 있게.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들을 하십시요.

인생은 두번 사는게 아닌, 단 한번 우리 주님 안 사는 겁니다"

라고


캘리포니아에는 일년 가야 서 너번 올까 말까한 비가 올해

이제 단 세번째로 어젯밤 촉촉히 적시고 내려, 대지가 그야말로

지금은 한껏 푸르고, 맑고, 아름답다.


이런 청아한 날부터, 폭풍우 내리는 그런 날들까지도, 

나의 사랑하고, 아끼고, 귀한 이 클라이언트가 잘 이겨 나가길

기도하는 마음이고, 그리고 오늘 그가 문득 아주 많이 보고 

싶어진다.


다시는 나의 클리닠에 이젠 안 올것이라 생각하니.


우린 이제 이곳에서는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다시 새롭게 만날.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한 아는 사람의 어머니가 미국 시민으로 사시면서, 사업이 실패하는

통, 많은 재정의 어려운 훈련 시간을 지난 10년 온 가족이 다 겪었다.


그리고 수 십년만 한국을 다녀 들어 오시다, 공항에서 그 사업이 망한

그 시기 남발해 놓은 수표들 때문, $18,000.-의 재정이 형사법으로

걸리면서, 공항에서 미국을 들어 오시다, 잡히셔서 경찰에 이번 주말 

수감 되어 계신다.


다른 주로 이송이 되어 부도 파산 신청을 새 주가 시작되면 하셔야 

한다고 하신다.



자녀분이 너무 공항에서 놀라고, 무서우면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이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어디에서부터 다시 다 이야기들을 시작해

설명하고, 도움을 받기 무서웠는지, 


공항에서 돌아 오며, 울면서, 그래도 심리 상담사인 내가 생각이 

난 건지 연락을 해 와, 어제 토요일 밤은 그야말로 이 문제로 정말 

분주 했다.



모든 상황을 다 모녀가 이성적으로는 채 분별하고 정선 할 여력은

없는게 당연한 상황이지만, 자꾸 모든 상황을 너무 다 감정적으로만 

받아 들이고 해석해, 나중 어쩔수 없이 이 '책임' 문제에 대해 살짝

언급해 주었더니, 영리한 사람이라 금방 알아 듣고,


"그 '책임'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습니다" 하고 알아 들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는, 많은 경우들에는 늘 그 책임이

자주 따른다. 상황이 어떠했든, 공 수표를 남발 했으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언젠가는 closure 시키는, 청산이 있어야 하는 건 너무 당연

지사 인데도, 


전혀 그런 영역은 보지 못 하는 그런 삶의 자세들이, 사실은 이런 

결과들의 삶의 형태를 결국은 초래 시킨 것 아니겠는가?



위로가 필요하고, 심리적인 영역을 더 돌보아 주어야 하는 시간대

라고 생각 했기, 이런 현실적인 문제나 사실 자체는 될 수 있으면,

지양 하면서 받아 주는 저녁 내내의 사역의 한 형태 였지만,


본인이 과거에 어지러 놓은 그 난장판 삶의 형태는 전혀 돌아봄의

성찰이 없이, 미국 경관들, 공항 관리들에게 도리어 야단을 치고,

조금도 자신의 삶의 과거 행적들에 대한 바른 양심이나 성찰의

행동들을 단 한 점 도 보이지를 않아, 


그 무겁고 버거울, 그 단어를 결국은 지나치듯 간접적으로 살짝 

언급해 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무겁고 아프고, 안쓰러워 밤엔 마음이 참 짠했다.



나는 이렇게 너무 감성으로만 모든걸 흐르게 살고, 이성의 부분

들이 크게 결여된 사고들은 참 늘 너무나 다루기가 힘들다.


왜 우리 한국의 문화는, 어머니들이나 많은 여성들에게, 이 이성

적인 사고의 역량을 너무 가르치지를 않고, 이렇듯 모든 걸 다 

감성으로만 해결 하려고 달려 드는, 


훈련 되지 않는 행동들을 자주 이렇듯, 그런게 쓰여지고, 통해지지 

않는 상황들에서도, 자꾸 극단적으로 그 영역들로만 치우쳐, 일을 

해결 하려 드는 지들, 



난 이런 사고나 행위의 기본들이 늘 서구 사회에서 돕기가

어렵고 힘들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추수 감사절이 다가 오니 각기 다른 초대들이, 우리 삶 안의

우선권(Priority) 에 대해 생각케 한다.


교회나 다른 단체들의 강의, 마음 많이 늘 써 챙겨 주는 지인의

추수 감사절 초대, 여행 동행 제안, 그 가장 나머지가 상담 요청.


이 네번째는 얄짤 없이 짜르기로 나는 나의 일 철학을 이미 

오래 전 잡아 실천해 보기로 노력 하는 중이라 짜르고.

휴일에는 일 안해요. 상담 사역.

교회나 단체들의 강의 초청들도 전부 그런 이야기들이고.




가서 하나님 이야기 하는 이 모든 나의 삶의 Routine은 이제

이렇듯 좀 식상 하지만, 그렇다고 추수 감사절에 여행이나

친구들이랑 가는 그런 너무 전적으로 세상으로 가는 일은 

그러나 또 내 마음에 꽉 차 만족으로 들어 오지는 절대 않는다.

 

결정은 그냥 그리워 초청하는 지인에게로 결정.



이제는 이런 나의 일에 관계되는 것들은 늘 좀 그만 하고 싶은

심정이 이런 최 우선권 선정들에 크게 늘 영향을 미치는 걸 본다.

평생을 하던 일들이 별 하기가 싫어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


오늘은 그와 비슷한 경우의 어떤 한 영역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대 도시도, 그 어디도 아닌, 내 고향으로 다시 돌아 

가는 걸, 이 긴 시간의 숙고 끝에 결국은 결정하게 된 걸까?

그 결정에의 최 우선을 난 어디에 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그것은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일상인으로 평범히 살아

보는 것인 것 같다. 일이 아닌, 내면의 성찰이고, 회복인 것

같다. 재정의 안정이나 그런 것들은 더 더욱 아닌 것 같은.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 시대 안에 일어 나는 사조나 풍조에 대해 참 지혜의 정선을

요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걸, 늘 일어 나는 새로운

Movement 들을 멀리서 지켜 보고 있노라면 느낀다.


나 한참 일 하던 시절에는 Vineyard Movement 가 일어나

그야말로 야단들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IHOP 이

일어나 한참을 많은 영향을 끼치다, 지금은 많은 면에서

정선되고 등으로 주춤 해졌다.


크고, 넓게는 1970년대부터 제자 훈련, Mentor, Leadership,

Healing 등의 큰 조류의 물결들을 타고, 교회도, 세상도 그

맥들을 타고 움직임을 보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이러한 새로운 풍조에 휩씁리는건 성숙하지

못한 증거라고 말한다며, 목사 아버지인 플로이드 맥클렁의

아버지는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 영적인 거인은 어느 날 암스테르담 어느 지도자

모임 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 나를 크게 공감 시켰다.


이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을 위해 일으키시는

많고 다양한 Movement들을 향해, 아버지 시대와는 다른

정의를 마음 안, 삶 안 가진다고.


그건, '이런 모든 Movement 들에는 진리의 한 부분이 

들어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 들인다' 는.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영적 거장 다우면서도, 참으로 

겸허한 한 지도자구나" 하는 생각이였다.



그래 그 후, 나도 그 사고를 내 마음과 삶 안 늘 겸허히 가진다.

나는 너무 늘 정교하고 치밀해, 틀린 교훈이나 사조에 쉬히

빠지지도 절대 못 하는, 


한 독수리 같은 눈을 가지고, 조금은 멀찌감치 늘 경계선들을 

두고, 그 일어 나는 새 풍조들과 사조들을 늘 지켜 보다, 개입 

하는 한 지도자이고 사람이기, 어쩔땐 그들도, 하나님도 참 

deal 하기 쉽지 않는 한 사람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그건 그냥 나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신, 내 모습 그대로의.



그러기 난 공동체들을 구렁텅이에 몰아 넣치 않는 지도자로서의

직관력들을 잘 길렀고, 그렇게 장님 되어 전체 공동체를 어딘가

너무 진리에서 먼 길로 인도해 가지는 않았던, 


그래서 나는 우리 총 리더들에게 그런 면에서 좌로나 우로 쉽게

치우치지 않는 중심 강한 지도자로 신뢰 받았고, 많은 일들에

그 신뢰로 강하게 전체 공동체들을 이끌수 있는 저력이 있었다.


그래서 대륙도 부여 받았고, 나라도, 민족도, 그 우리 기관을

대표해 일 할수 있게 늘 일임 받았던 것 같다.



그런 진리에 입각한 정선들에서 형성된 신뢰 속에서,

그러나 절대 너무 보수적이거나 폐쇄적이여서, 하나님께서

그 시대 안들에 일으키는 풍조나 사조들을 절대 또 놓치지는

않았다.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또 나 자신 개인을 위해서도.



그래서 한 리더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면서, 

"너는 공동체 전체 그룹을 전체 다 나락으로,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진리 그 자체로 Guard 하면서, 수 많은 사람

들이, 계곡으로, 벼랑으로 향해 떨어져 가는 것을 막는,


진리로, 문 앞에 앉아, 그 진리의 문지기처럼 전체 공동체를

지키고 사수하는 한 지도자"라는 기도를 그 많은 일들 중

어느날 기도 받고, 많은 격려가 되었다.



그게 그냥 나의 한 부분의 은사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떨땐 형사 같은 예리함과 직관력으로, 전체가 다

멍! 하니 벼랑을 향해 내달음질을 쳐 갈 때도, 나는 이거는

아니다 싶으면, 


온 몸으로 그 들을 막아들 내고, 정말 들을 소리, 못 들을

소리 다 들어도, 전체 물결을 거슬러 올라 가며 헤엄 치는, 

한 은어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지도자상과 역할은 늘 언제나 쉽고 부드럽지 

만은 절대 않았다. 수 많은 공격들과 참소들과 궤계들이,

"서로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 그냥 잠시 잠깐 조용히 두 

눈 감고, 모르는 척 해라" 등의, 식의,


마치 구렁이 담 너머 가듯 거짓과 속임들로, 진리를 슬쩍

제끼고, 그냥 전체 양 무리들을 그 거짓 세상으로 슬그머니

인도해, 그 숨긴 잇속들을 그냥 챙겨 잡수려는 많은 다른 

형태의 지도자들도 너무 많았고, 


그런 무리들 앞에서는, 나는 늘 죽일 년의 여성 지도자

이기도 했었다. 


그런 험난한 세월을, 진리를 사수하고 거쳐 나오기에는, 

결코 평탄코, 부드러운 삶의 전개만은 결코 아니었다는 걸 

나는 지금 돌아 보면 참으로 깊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일의 한 일익을 담당해 받은 한 기관이 지금은

많은 비난과 공격, 정선들을 지금 헤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난 그들에게서 뭐 완전히 완벽한 너무 큰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냥 기도하는 한 일익을 담당한 한 기관이 이런 저런 

이론도, 실수도 있을수 있다는 걸 그냥 그렇게 감안 하는 

것이다.



성서를, 진리를 너무 어느 한 편만 치우치게 강조해 

말들을 만들어 내다 보면 늘, 그런 무리스러움이 자초

되고, 유발됨을, 우리는 늘 교회 역사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 가 정선헤 보아도 알수 있음을 본다.


어제 내담자 상담 세션이 끝나고, 격려의 기도 시간이

좀 필요한 한 싯점일래나 싶어져, 이 도시 근경에 자리한

그 유명 하다는 기도 하는 집에 그 여 동생과 오빠를

데리고 잠시 나들이를 했다.


세상은, 남들은 이 불 타는 금요일이라는 불금에 우린

역시 성령 안에 불타는 금요일 밤이 될거 같다는 우스갯

소리들을 실실 거리며 지껄이며들 그 곳을 나도 처음 가

보았다.


스마트 폰을 잘 못 치니, 우리를 아침 브런치 먹는 미국

전통 식당으로 끌고 가 버려, 참 난감해 하고, 끽! 해 하며,

다시 도착한 그 곳에서는, 밤을 새워 그야말로 찬양팀들이

북한을 위해 찬양하는 서비스를 밤새 진행들을 하고 있었다.


이번 포르노를 보았다고 거짓 누명들을 씌우면서, 북한에서

성경을 가진 지하 교회 그리스도인들 중 수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해, 우리 한국인들은 사실 별로 깨어 경성해 있지 

않는데도,


정작 미국의 교회들은 요즘 북한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

하는 시간대이다.


기도 하는 시간은 예약이 필요하고, 어젯밤은 그런 사역을

하는 날이 아니라고 해서, 그냥 새벽 한 시경 그렇게 예배를

보다 돌아 왔다.



예언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Build Up (세우는) 역할을

한다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 한다.


나도 내 삶 안 주목할만한 이 시대 안들의 큰 영적인 거인들

에게서, 그런 나의 믿음을 격려하고 크게 세우는 (build up)

그런 격려의 기도들이, 


내 믿음의 삶의 향방들을 크게 굳건히 세우고, 위로 하고, 

앞으로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한 건강하고 실한 밑걸음들이 

된 적이 몇 번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참으로 좋은, 별 많지 않은, 우리 주님 안

에서의, 몇 선하고, 실한, 좋은 경험들이고, 기억들이다.


그렇게 우리의 불타는 금요일의 불금 밤은 허망히 지나 가고,

난 새벽 1시 집에 돌아 와, 영화 '러시안 소설' 보던 것을 마저

조금 보다, 배가 고파져, 계란 후라이 하나 해, 야금 야금 먹고,

그리고 자고 일어 나니, 아침 9시 늦잠이었다.  


젊은 청년들과 오랫만 신선하고, 재미 있고, 웃기던, 

밤 나들이 길의 힌 추억이 될 것 같은.

먼 미래에.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20 년 전 내가 산택하지 않았다면 실망했을 일들을 뒤 돌아 보고,

앞으로 그렇게 혹 오래 살게 하신다면, 20년 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후회할 몇 일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20년 전에는 정말 내가 원했던 일을 골라 선택해 그렇게 실행에

옮겼기 때문에, 내 지나간 삶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20년 내가 선택해 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 분명 후회할 

두 일은, 


1)뉴욕에서 상담실 사역을 10년간 하지 않은 것이 될 것이고,

2) 미국 시민권 획득 절차를 포기 한 것과, 그 시민권 자격으로,

유엔을 통해 북한과 중동에 10년간 나가지 않은 일들이 될 것

이다.




나는 하나는 죽고, 이제 둘 남은 내 남동생 둘과 더 

시간을 가지기를 원한다. 

이제는 그 많던 일들을 다 내려 놓고.



내 나라에서 내 가족과 지낸 시간이 내 생에, 밖에 다른 

나라 들에서, 내 일 때문 보낸 30년이 넘는 세월보다 훨 더 

짧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일 때문에, 내 가족들에게 너무 늘 소홀했다.




그렇게 무심히 다 보내 버리고, 이제 딱 겨우 둘이 살아

남아 있다. 내 가족은.


그래서 나는 일보다, 가족을 이번 남은 20년은 선택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이 아닌, 나의 삶을 누리며, 살아 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남만을 위해 평생을 살았으닌까.

이젠 내 삶도 살아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주님 안에서 기도하고, 내가 선택 했다면, 

결코 후회 하지 않기로도 같이, 함께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귀향해 고향으로 돌아감은 나에겐 다시 나의 삶을 한번

돌아 보고, 살아 보는 제 2의 시간이 될 것이다.


사실 나의 일은 나에게 있어, 이젠 그 많은 경륜의 시간이

지난 만큼 훨씬 더 안전하고, 내가 편히 갈 수 있는 한 길

이다.


물론 어려움이 없지 않아 있는 험한 길이긴 마찬가지

겠지만서두.


그래도 난 그 길의 살아 나가는 방법을 이젠 너무 잘 알고,

어떻게 그 난관들을 헤쳐 나가는지에 대한 많은 대답들이 

무수한 지혜들로 이젠 거기 자욱히 깔려들 있다.


그러나 내 귀향을 선택함은, 사실 참 험난하고, 가시밭길이

될 수 있는, 한 오랜 사고 끝의 어려운 한 결정 이었다.


그리고 그 삶에 대한 멋진 설계들을 나는 이제 서서히 한번 

시작해 본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북 유럽 스칸디나비아의 한 늦가을 풍경






                            그 분이 쓰시겠다고 하여라.

                          

                        그러면  빚으시고 ( Mold or Mould) , 

                                 깍으시고 (Carving) , 

                        정으로 다스리시게 ( Hued)  내어 드려라.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남자의 외양

산다는 것 : 2013.10.27 15:24




흑백 고전 영화 ( 2001년판 뮤지컬 영화 말고 )  ' 물랑루즈 ' 와  

1980년 작 영화  ' The Elephant Man ' ,




이 두 영화의 한 공통점은, 두 영화 다, 

남자 주인공들이 난쟁이, 뒤틀린 종양 형태의 두상등의,

세상이 흔히 생각하는 정상의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보이면서, 


사창가 여성들에 의해, 그 인간성 자체를 고귀히 여김을 받으면서, 

그 들의 사랑이 전개 되고, 그리고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의 존귀한

권리들을, 그들의 삶 안 되 찿으면서 살게 되는, 내용들의 이야기

들이다.



                                       



소위 세상이 세워 놓은 틀린 카테고리들 안에 들어 오지 않으면

그 사람들은 곧 주변인(Marginality) 으로 제외 시켜 버리는,

소위 군중 심리의 카테고리화의 한 횡포의 사례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종사 부문에서 정말 그 타고난 천부적인 

소질이 너무나 다분하고, 영어 표현으로 평해 줄 수 있다면,

그 영역에서는 그야말로 Outstanding 한, 천부적 재능을 가진

한 사람이 있어,


나는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이도 훨 더 어리디 어리겠지만, 그 영역

에서만큼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존경하고 honour 하는, 한 명석한

사람이 한 사람 있다.


그런데 언뜻 언뜻 나는 그 내면 깊이 눌려져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실하고, 확고한 자신감들이 결여 되어 있는 것을, 이 사람

에게서 종종 본다.





내 자신이 한 여성으로서, 한 남성을 볼 때는, 그 사람이 종사하는 

자신의 일이나, 삶의 방편 안에서, 그게 어느 분야가 되든, 확실한 

소신을 가지고, 


그 영역 안의, 그 전문 분야 종사자로서, 힘 있고, 중심 있는,

자신만의 확고한 목소리를 가질수 있으면, 그것은 여성들에겐 

참으로 멋지게 보인다.



그 들의 외양이나 그런 바깥 조건은, 전혀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만큼, 내면에 뭐가 내재 되어 있느냐의 역량이, 훨 더 매력의 한

포인트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이 늘 우리를 헐리우드식, 외양 지향적인 가치관

들을, 늘 어릴적부터 잘못 일찌기 우리들 사고 안 심겨 놓아, 많은 

경우들은, 우리들은 별 생각 없이 남들이 휙! 한마디씩 던지는 

외양에 대한 평들에 대해, 예민하고 민감들 한 것을 본다.



여자인 나는 이런 가치관으로 평생을 남자들을 보는데도, 

남자들은 여성들이 대개는 다 그렇게 외양을 중요시하게 

본다고 믿는거 들 같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선호도 이것과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고

보는게,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은 다 예쁜 여자만을 좋아하고 

선호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억측들 속에 살고, 생각하게 세상은 

말하고 그렇게 전체적인 풍조를 몰아 가 버린다.




나는 서양에 살면서 참 좋은 것을 배운 것 중 하나가, 남의 

외양에 대해 그렇게 큰 가치를 두게 평가 하거나, 그런 외양에

대한 평들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문화 자체가 이미 그렇게 견고히 형성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옷 싸이즈를 몇을 입느냐? 랄지등의 질문은, 여성의 나이를

단도 직입적으로 묻는 것 만큼이나 무례하고, 예의에 상당히

어긋난, 교양 없는 짓으로 치부된다.




나는 평생을 변함이 없는 한 가치가, 

외양이 형편 없고, 생각하는 사고의 형태나, 머릿 속이 든 사람을 

택하겠니?

아니면, 외양이 헐리웃 배우 스타일인데, 머릿속이 수수깡인

남자를 고르겠니? 한다면, 


당연히, 외양이 외계인, 몬스터여도,머릿 속이 찬 사람을 

고르겠다는 건, 

나의 20살 대학 신입생 이후, 여전히 변함이 없는 한 일관된 

가치관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대다수의 여자들은 남자들에 대해, 나와 

같은 가치관들을 가진다. 

그런데 이 세상 남자들은 그걸 잘들 모르고, 오해들을 해도 

상당히들 오해들을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자신의 생각의 벽들 속에 갇혀서, 당당히

용기 있음으로 나오지 못 하는 남성들에 대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많다. 



외양도 외계인에다, 머릿속도 수수깡인 경우들은 대개는 

많지 않다. 


세상이 쉽게 어느 영역에 열등 하다고 생각 없이 지적해 주면, 

우리 인간은 그 열등함을 채우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게 

되어 있게, 우리 심리들을 창조 하시고, 만드셨기 때문에,


외양이 남보다 뒤지는 사람이, 생각이 텅 비고, 속이 안 찬 

경우들을, 나는 거의 내 삶 안 보지 못했다. 


                                 

그러나 바깥 외양은 빛 좋은 개 살구처럼 말짱 한데도,

한 몇 시간 이야기 해 보면, 금방 그 사고의 영역들이

텅텅 그 바닥을 드러내는, 

닭 머리급 남자들은 나는 정말 많이 보았다. 


그 때 쯤이면, 그 들의 외양은 그 어떤 매력도 여자들에게 

발산해 내지 못 하는, 

그저 근육과 등신만 멀쩡한, 한 70 킬로 그람 짜리 단백질 

덩어리로 밖에는 비추이지 않는, 그런 상황들.


                                      


너무 말짱하고 속들 깊고, 사고의 영역들이 우수한 남자들이

세상에는 이런 거짓 속임들에 일찌기 속아, 그 기개들을 정작

펴지들을 못하고, 


늘 혼자 외롭게 그 사고의, 생각의 벽들 속에 영원히 그렇게들 

갇혀, 평생을 밖으로들 나오지를 못 하고,


그렇게 외롭게들 생을 마치는 경우들을 나는 많이 본다.



외양이 비스트나 몬스터, 외계인이여도, 내면에서부터 우러

나오는 자신이 있는 남자들은, 정말 멋있고 매력적이라는 걸,

나는 우리 그 많은 남성들에게 용기를 심어 전해 주고 싶다.


담대함을 가지고, 본인의 외양의 개성 있는 매력과 향기에

대해 자신감들을 가지는, 우리 많은 한국의 남성들이 그렇게

많이 자신 있게 일어 났으면들 싶다.


그리고 그 들의 삶들을 풍요롭게들 개척해 나갔으면 싶은

소원이, 나는 심리 상담사로서 가득하다.



그러는 여성들은?


적어도, 심리학을 전공한 내가 보는 여성들 대부분들은, 

본인의 현실들 보다는 대개는 더 공주병 들이다.



그러니 여성 걱정들은 나중에 하시고, 우선 남자들부터

먼저들, 그 스테레오 타입들의 사고들을 훌훌 깨치시고 

밖으로들 나오시길, 권하는 바이요 !!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조오지 왕자님의 공식 세례식 후 사진 이래요.

비단 드레스가 넘 귀여운.




지 할머니 결혼 하던 교회 장면도, 지 아비 태어 나던 사진도

눈에 선한데, 우린 이렇게 역사를 길게 지켜 보고 사네요.







이 가족은 많이 길게, 행복 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 세상서 괜히 준 것 없이, 가장 싫어하고, 알러지이고, 

미워하는, 지금 살아 있는, 그 늙은 불 여우 할머님 같은 사람이 

이 세상 에서 완전히 도태 되는 그 날까지요. 


못 생긴 것도 죄가 되나요? 하면, 나는 쌍수를 들고,

그래선 안 된다고 하는 사람 이건만, 


이 할미한테는 그게 죄가 돼요!!


그 정도로 내가 싫어 해요. 

준 것 없이 그냥.





엄마를 그렇게 비극적인 재난으로 잃고도, 잘 커 준 

두 왕자들을 난 많이 자랑 스럽게 여기고, 사랑 스럽게

생각 합니다.


 





참 잘 인내하고, 잘 살아준 지 증조 할머님, 할아버님 세대와,


불 여우의 출현으로 케세라 세라에, 초토화가 되어 버린 

가정 파탄의 내리막길로 치달음을 멀리서 늘 지켜 보아야 

했음은, 


이 세상 모두 이들에게, 참 유감인 한 영국 왕실의 역사의 

한 장면 이었습니다.





우리 조오지 왕자는 깨어지지 않은, 좋은 가정의 부모 세대를 

가지고, 길이, 내내 행복 했으면 합니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 청명하고 아름다운 한 계절, 가을의 한 중앙에, 나는 올해도

다가올 혹한의 추위를 또 어떻게 나야 하나?를 걱정하는 우리의

소시민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해 보면서, 


캘리포니아의 한 중앙 성처럼 잘 지어진 우람하고 아름다운 한 

로프트 방에 앉아, 맥 컴퓨터로 글을 쓰는 삶의 누를 그렇게 범

하는 모순의 삶을 살고 있다. 


왜 이다지도 우리의 삶들은 늘 이렇듯, 모순의 한 꼬임들이여야만

할까? 를 자조 하면서.



가난과 무지는 정말 원님도 못 막을까?

우리 할머니의 속담처럼?


이 거대한 미쿡은 지금, 디폴트며 모든 경제 용어들이 다 동원된

듯한, 경제 위기의 한 시간대를 지금 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이런 큰 들썩임들이 한바탕 불고, 헤집고 지나 가면, 그나마 

온정에 몇 남아 있던 개인 후원자들도, 추풍 낙엽들처럼들 

후두둑! 다 떨어져 나가고, 


온 라인 저금 통장의 Account들엔, 텅 빈 동공들처럼 큰 

블랙 홀들이 뻥뻥들 달마다 뚫려져 가는 현깃증들을, 우리는

소 시민들의 여파 맞이로 제일 먼저, 


IMF 때도, 또 지금도 여전히 그 큰 난데 없는 벼락들을 

쾅! 쾅!들 얻어 맞는 충격 속 들 서게 된다.


IMF의 여파로 나는 시베리아에서 하던 일을 더 이상 진전 

시키지 못하고, 속절 없이, 그냥 그렇게 돌아 와야만 했었다.

이 여파는 여성 지도자들에게 제일 먼저 늘 몰아 닥친다.

인원 삭감이나 인력 관리는 여성부터 먼저 삭감 시켰었다.



그 때는 지금과 아주 흡사하고 비슷하게, 이렇게 후원들이

먼저 끊어져 나가고, 나는 생활의 기본 영위 도전들을, 슬슬

내 몸으로, 직접 체감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믿음의 삶의 영위로 평생을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전혀

아닐만큼, 나는 오늘 하루를 넘기고, 그 다음 날의 만나는

내일 염려하는 형태의 삶을 지금껏 영위해 왔다.


당장 내일 하루를 기약할 수 없는, 이 소위 믿음의 삶의 영위

라고 칭해 지는, 세간에는 별 흔치 않는, 삶의 영위 방식은, 


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한 블랙홀처럼, 나에겐 아득히 

느껴지는, 끝이 없는 심한 현깃증들이 늘 거기 공존하는 

삶의 한 현장 들이기도 하다. 



거기엔 늘 믿음들이 부도 나고, 파산 되는 사고가 빈번히들

일어 나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이토록 가슴이 시리고 아픈 한 장소들이기도 하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모든 삶은 제각기들 그 사람 특유의 한 유일한,깊은 이야기들을 

가진다.


우리 나라 사회면 지면들을 종종 빼곡히 채웠던, 한 여성 노인의

삶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사회의 돌아 가는 구조에 대해, 다시 

한번 가던 발길을 세우고,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어떤 걸림과 켕김을 유발 시킨다.



나는 직업병이 도져, 이 할머니의 심리 안에 자리한 그 증후군들을

나의 학문적 전문 용어들로 과연 무어라 정의 할까?도,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 노인의 심리 분석을 시작해 보는 작업인 것이다.



우리들 모두의 삶은, 그게 노숙이 되든, 궁중 호화 판 생활이 되든,

다들 같은 양으로, 존엄과 유일성으로 존중 되어져야 한다고, 나는 

굳게 믿는 바이다. 



이 할머니의 삶은 비록 미국 양 녀석들 싸구려 패스트 푸드점을

드나 들며 살면서, 그 가게 이름이 별나게 붙여진 경우이지만, 


버버리 코트와 스카프 모조품을 고집하고, 외교부 산하 직원 

이었던 옛 기억을 고고히 간직하고 싶어 하는 한 여성의 바늘

만큼 가늘고도, 예리하고, 예민한 한 뾰족한 자존심이 거기 존재

하는 안쓰러움을 보여 준다.



노숙자 행려인으로서, 포도주의 기억과 낭만, 로망을 포도 쥬스로 

대신 하면서라도 간직하고 싶었던, 그녀 삶 안에서의 포도주 와인에 

대한, 그녀의 정서를 흠뻑 적시고, 그 내면의 어떤 필요들을 고스란히 

채워 줄수 있었던, 


포도주 와인에 대한 아마 한 좋은 추억이나, 기억이 분명 거기 있었

으리라, 나는 그렇게 추론해 보는 것이다. 



특이하고 별남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이 여성의 환타지 속에 살고

있는 한 또 다른 한 여인은, 비록 맥도날드를 들락 거리며, 씻고 

단장하고, 연명하고 살아도,


마지막 임종 병상에 간병인을 채용할 만큼의, 아직은 그 나락 저편

으로 떨어져 있는 실제 자기에 도달하지 못한 채, 그 환타지 속에서 

긴 시간 그렇게 그냥 머무르며 배회하다, 결국은 그 생의 마감을 맞은

지도 모른다.  



그 환타지 속의 자신에서 많은 사람들은, 현실로 다시는 내려 올 

용기들을 가지지 못 한다. 왜냐하면 거기는 늘 너무 아프고, 너무 

삭막하고, 너무 처절한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 할머니의 삶과 죽음에서, 그 주변에 흩어져 있는 배경의 

사람들, 그리고 그 임종을 지켰던 사람들이 나에게 많이 두드러져

부각 되어들 온다.



미국에 있는 늙은 명문대 출신의, 한 교회 듬직한 노년의 장로

쯤일지도 모르는 많이 배우고, 미국 생활에서 이제는 풍족히 

안정된 한 노년 신사의,


길거리 자존 높은 옛 기억 속에 갇혀 사는 여 동생을 생각하며, 

노심 초사 가슴 스러지고, 시릴, 혈족에 대한 연연함과 포기의 

심리의 그네질들과,



지형학적으로, 육체적으로는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대면하고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 버겁고, 그러나 내면은 아프고, 쓰라릴,

우리 사회의 최 극빈을 대하는 여 동생의 거절 속의 가슴 

아픔과, 


가장 인간적인, 받아 들여서 황당할, 소화 시키기 어려운 역량 

부족등을 고심할 그 존재를, 그리고 그 빈곤이라는 이름 옆에

존재하는, 기본은 누리고 사는 자들로서의, 그 임종과 죽음 뒤

흘렸을 회한과 가책의 눈물들을 그렇게 미리 건너다 보고, 

그려들 보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와 외국 문화원 직원들의 이 한 사람을 인간으로 

존중해 대접해 주고, 이야기 하고, 들어 준, 그 honour 들에 

대해 이 할머니는 마음을 열어 반응 하는 걸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이렇듯 지금

그 들의 삶들 안의 어떤 광야의 길이 될지 모르는, 고립 속을

헤메고들 있는 현금의 한 세태이다.



우리는 그 고립들을 저주라 쉽게 이름 할 자격들이 없는 개개인

들이다.



왜냐하면, 광야는 우리가 홀로 존재 하면서, 가장 중요한 한 

이를 깊이 만나는 장들이었다. 많은 믿음과 실존의 역사들의 

장들 안에서.




그럴때 우리의 고립들은 축복이 될수 있다는, Paradigm Shift,

우리들 사고 체계의 전환은, 우리들의 삶을 다시 한번 뒤집어 

새 각도를 보게 되는, 한 눈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랩]  '아끼던 머리도 싹둑’…맥도날드 할머니 투병 생활의 기억



지난 7 12일 사망한 ‘맥도날드 할머니’ 권하자씨(73). 권씨의 투병생활을 지켜본 이들은 그녀가 다른 행려병자들과는 어딘가 달랐다고 전한다. 복막암에 걸려 밥도 먹지 못하고, 죽조차 토해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얼굴만은 평온했다는 것이 지인들의 설명이다.

 

권씨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도 울거나 낙담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예전처럼 우아함을 지키려는 그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을 웃음짓게 했다. 당시 권씨를 문병했던 새문안교회 백충현 목사는 “실패를 하고 병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분노로 가득한 경우도 많은데, 그런 경우와는 또 달랐다”고 회상했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그녀 특유의 생활 = 젊은시절 외교부에 근무한 권씨는 비록 노숙생활을 했지만 품격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병원에서도 이런 모습은 이어졌다. 병문안을 찾아온 교회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용돈으로 쓰시라”며 돈을 건넸는데, 그는 “의료원의 간호가 만족스럽지 않다”며 일일 간병인을 고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또 그는 용돈으로 포도주스를 사다달라고 자주 부탁했다. 길거리 생활을 해 온 그에게 포도주스는 포도주를 대신하는 품격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도 죽음이 다가오자 조금씩 변해갔다. 가장 눈에 띤 것은 다리까지 내려왔던 길고 하얀 머리카락을 잘랐던 것이다. 권씨는 평소 ‘고상하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며 머리카락을 길게 길렀다. 하지만 병상에 눕자 긴 머리가 문제가 됐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꼭 긴 머리만을 아름답게 여기시지 않을 것”이라며 그녀를 설득했고, 권씨는 곰곰이 생각한 뒤 몇년간 지켜온 자신의 고집을 꺾었다.임종이 다가올수록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늘어갔다. 권씨는 병상에서 “오빠가 참 좋았는데, 지금 미국에 가 있다. 나도 미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가 말한 오빠는 셋째 오빠(83). 명문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 이민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돈을 보내주는 등 여동생을 도와줬으나 권씨가 연락처를 잃어버려 연락이 두절됐다.

 

권씨는 가끔 막내 여동생 이야기도 했다. 앞서 그의 여동생은 한 방송에서 “언니가 나타날까봐 겁이 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권씨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동생이 인천으로 시집갔다. 어렵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권씨와 함께 있었던 ‘또 다른 가족들’  

당초 권씨의 사망은 언론 등에 ‘외로운 죽음’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별세까지 그와 함께 한 이들은 “많은 이들이 함께 해 준 만큼, 그렇게 외롭게 가신 것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당초 권씨는 5월말 병환으로 길거리에 쓰러져 국립의료원으로 실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확인결과 캐나다 문화원에 근무하는 스테파니 세자리오(Stephanie Cesario·28·여)가 권씨의 병을 염려해 입원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권씨는 입원한 뒤 그녀에게 “그때 당신이 날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난 길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자리오는 2011년 권씨를 처음 만났으며, 올해 초부터 그녀를 매주 만나 말동무가 되고 식사를 접대했다. 세자리오는 “권씨를 처음 봤을때 밤늦게 항상 맥도날드에 있어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면서도 “하지만 우린 너무 서둘러 판단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