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들장 , 아궁이, 텃밭, 창호지 문, 산야초, 시냇물 졸졸, 앵두'에 해당되는 글 23건

  1. 2014.03.23 아지랑이와 봄 종다리가 있는 들판. by 텃밭지기와 상담
  2. 2014.03.16 동갑내기 삼춘 당숙의 사랑과 염려의 편지. by 텃밭지기와 상담
  3. 2014.01.29 까치 까치 설날은 by 텃밭지기와 상담
  4. 2014.01.28 짜장밥. by 텃밭지기와 상담
  5. 2014.01.17 나의 귀향은. by 텃밭지기와 상담
  6. 2013.12.23 호박 시루떡. by 텃밭지기와 상담
  7. 2013.12.12 바구니 사랑. by 텃밭지기와 상담
  8. 2013.12.03 알 밤, 군 밤, 삶은 밤, 찹쌀 떡, 오징어 다리 덴뿌라, 붕어 풀 빵 by 텃밭지기와 상담
  9. 2013.10.29 한결이와 가을이, 그리고 김 대호, 오 상진 아나운서. by 텃밭지기와 상담
  10. 2013.09.21 은혜 갚은 학의 자손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11. 2013.09.18 이방 땅들에서의 민속 명절 한가위 추석 by 텃밭지기와 상담
  12. 2013.09.13 추석 명절이 돌아 오면, 꼭 먹어 주어야 하는 것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13. 2013.08.28 가을은 엄마 흉내 내기 철 by 텃밭지기와 상담
  14. 2013.08.20 대나무 숲 부엉이 스산히 울 던 밤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15. 2013.07.29 꼬꼬닭 키우기 by 텃밭지기와 상담
  16. 2013.07.20 가마솥과 황토 부뚜막 by 텃밭지기와 상담
  17. 2013.07.13 하얀 모시 by 텃밭지기와 상담
  18. 2013.04.29 구들장, 아궁이, 가마솥, 흰 꽃들이 부르는 소리 by 텃밭지기와 상담
  19. 2013.02.03 캘리포니아 겨울 배추 농사 성공...초록이 나물들 한 보따리...난데없는 고구마...박 유천의 '보고 싶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20. 2013.01.17 켈리도 추워요. by 텃밭지기와 상담
  21. 2013.01.02 구절초, 산국, 감국향에 취해 by 텃밭지기와 상담
  22. 2012.09.01 나물이 또 가마솥 아궁이를 만들어서 나를 슬프게 했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23. 2012.08.11 아궁이에 불을 때 구들장이 잘잘 끓을때....나 그 곳 호롱불 켜고 바느질하는 겨울밤에 있고 싶다.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삿짐을 다 보내고 나니, 당장 처음 이 곳 왔을 때, 한 달을 

카펫트 위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자던, 그 원점의 형태로 다시

돌아 와, 그렇게 바닥에서 자자니 온 몸이 다 고이고, 아파

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해운으로 짐이 도착 할래면 한 달 반이 시골이라 더 오래 꼬박

걸린다는데, 침대 없이 딱딱한 방에서 잘 걸 생각하니, 참 한심

하기 그지 없다. 



한국에 도착하면 요단을 쇼핑해야 하겠지만, 이젠 요단도 난 

딱딱해 잘 못 잘 것 같다. 침대가 있어야지 이젠 잠이 오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니. 천하에 조선 여인인 내가 다.


아침 일어 나면 머리가 쑥대밭이 되어, 봄 종다리가 거기 집을

지어도 되겠다 싶게 어지러져 있고, 얼굴은 그야말로 호박처럼

퉁퉁 부어, 내가 얼마나 밤새 잠을 설치며, 힘들게, 괴롭게 잠을

이루었는지를 이미 알수 있다.



오늘도 새벽 4시 일어나 커피 마시고, 이른 아침 밥 해 먹고,

샤워에 아마 다닥 다닥 붙은 이 가옥 구조에서, 이웃집들이

아마 돌기 직전의 시끄러움이리라 생각 하니, 고양이 발 걸음에

수도를 트는 것도 늘상 조심스럽고, 죄송하고, 미안한.



몇 일만 더 기다려라.


이젠 소음을 얼마든지 흩뿌려도, 마늘 냄새를 온 공기 속 그득

하니 요리를 해도, 전혀 정죄감 없는, 나는 자유스러운 땅 집에서

살게 된다.


이 지겨운 다닥 다닥 붙어 늘 소음도, 냄새도 조심스러운 이 지겨운

도심의 스트레스를, 난 만방에 한 주먹감으로 이젠 나의 삶 안에서

삼천리 밖으로 쳐 날려 불어 흐트려 버릴테다.


그것의 상상은 자유고, 가뿐이고, 날을것 같은 기분 좋음이다.



이젠 청국장도 마음대로 퍽팍 끓여 바글 바글 계속 조려 보고,

마늘은 이미 대학원 마친 뒤, 후론 엄청 먹으며, 나의 항암과

면역 기능을 증강 시킨지 이미 오래지만,복도로 삐져 나갈 그

썩는듯한 악취의 청국장은 차마 외국에서는 못 먹은.


영국 케임브리지 집이 땅 집일때, 청국장을 난 약 2년여를

줄창 자유하게 잘 끓여 먹으며, 너무 기쁘고, 자유 했던 좋고,

아름다운 한 기억이 있다.



이제 내 고향 옛 내 집에 돌아 가면 꼭 그렇게 먼저 할 것이다.

마당에 엄청난 양의 꽃들을 심고, 텃밭에 왼갖 푸성귀들을

잔뜩 심고, 청국장을 띄우고, 젓갈을 담고, 


그리고 제일 먼저는 난 지금 아부라기 볶음이 너무 자주 먹고

싶고, 먹고 싶고, 또 먹고 싶다.




시베리아에서 파송 교회가 있던 영국 런던을 나오면, 늘 사람들은 

나에게 산해 진미를 대접 했었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에서 문명으로 

나온 나의 가장 늘 먹고 싶었던 건, 그런 산해 진미가 결코 아니었다.


난 그때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과 버거킹의 워퍼와 피자 헛의

피자 한 판이 늘 제일 그리웠었다.




그래 그런 부자 부자 왕 부자들인 고루 거각 장로님들 집,

권사님들 집들을 조용히 늘 빠져 나와, 나는 혼자 KFC 와

버거킹의 워퍼를 조용히, 그렇게 늘 쇼핑 후 즐겼다.





이번은 부산 어묵으로 풋고추 꽈리 고추, 꿀, 마늘, 멸치 

넣어 반질 반질 볶아낸, 그런 남도의 아주 서민적이고, 

촌스런 그 아부라기 볶음을 어서 가 한국에서 해 먹어야겠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심리가 참 이상한 건, 외국에서는 이렇듯

우리 한국의 몇 특정 음식들을, 그렇게들 뼈가 사무치게 그리

다가도, 정작 한국에 가면 이런 것들 전혀 먹고 싶지도 않고,

절대 다시는 찿지도 않는다.


그리곤 울화통 터지게도 난데없이 미국 코쟁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먹던 그 햄버거가, 한국 한 복판에서 갑자기

늘 먹고 싶다는 , 그 울화통 터지게 하고, 사람 홧병 나게 

하는, 이 뒤틀린 심보들과 인간의 간사한 욕구여.



사람이 무엇이든 가질수 없고, 누릴수 없다는 사실 앞에,

그 욕구와 갈망들이 더 간절해지는 묘한 한 우리 심리인 

것이다.


늘 많은 고립된 장소들에서 우리들에겐 '금면' 이라고 불리던

라면을, 4개월-6개월 씩을 한국에 있는데, 단 한개도 안 먹는

나를 나는 심히 증오하고 저주 했었다.



이 땅에 가 있으면, 저 땅이 그립고, 저 땅에 가 있으면, 또 이

땅이 그리운 우리 심사와 그것은 매 한 가지다.


난 유럽이라는 대륙을 약 20년 후 떠나 북미로 옮겨짐을 당할때,

유럽 대륙에 대한 정을 떼려, 한 달을 노력하고 또 노력 했다.

그래서 북미에 와, 유럽을 그렇게 많이 전혀 그리워 하지 않을수

있었다.


이제 북미를 나는 철저히 내 마음 안에서 온전히 내려 놓으려

노력한다.



어제, 그제, 그 그제, 그리고 더 수 많은 날들을 많은 사람들이

나의 떠남을 아쉬워들 하며 가면서, 눈물들을 많이 흘리고들

집으로 돌아들 갔다.


그러나 나는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단 어느 누구 하나, 한 사람에게도.


이토록 나는 이제 정 떼기, 이별에 익숙해져 있고, 강해져 있고,

무덤덤해져 있는 것이다.


울어야 할 그 아무런 이유들도 거의 난 못 발견하게, 그들은 나를

정말 그 수 많은 상담 셋션들로 괴롭히고, 힘들게 할만큼 했고,

또 괴롭히고도 또 괴롭혀 댔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떠남이 너무 홀가분하고, 가뿐하고, 경쾌하고, 

자유롭다. 그 지겨운 문제들 투성이의, 잇슈들 투성이의 사람들 좀

당분간은 좀 안 봐도 되닌까.


그리고 자연과 벗하고, 산과 들과 꽃들과 맑은 공기들과 봄 아지랭이와

종다리들 소리를 44년만 다시 처음처럼 들을수 있는 들판에 서게 될

테닌까.


그래서 다시 이 아침, 내게 인생은 다시 아름답다.

 


양 희은의 '들 길 따라서' 가 내 마음에 있는 아침.


들 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 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내가 가기 전 우리 한국 산야의 창 꽃이 제발 지지 

않았으면 싶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제 한국으로 떠나기 꼭 10일 남았다.

많은 수 많은 감정들이 마음 안을 복잡히 오 가고,

오늘 친척 당숙에게서 최종의 편지를 받았다.


한국에 내가 살 내 어릴 적 할머니집 집 상황이며, 

형국이며등 아주 자세한 내용들을.

우리 당숙 내 삼춘은 내 동갑의 국민 학교 동창 삼춘이다.




어릴 적엔 많은 친척들과 별로 교통함이 없이 사시던 할머니

성격상, 너무 차이 나게 잘 사는 우리집 형편상, 더 가난 했던

우리 많은 친척들은 고작 설 명절이나, 그 밖의 집안 대소사

일들 이외엔,


늘 저 분들이 우리 아주 가까운 친척들이라는 사항들만 그냥

알고 지낸 것 같은데, 하긴 내가 그 때 우리 일가 친척들을 다

찿아 다니며 교제하고 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들이기도 했지만.




내 친척 삼춘 당숙은 하여튼 아주 조용하고 양순 하던, 얼굴이

그 형이 사관 학교를 갔을 정도로, 면모가 참 반듯한 잘 생긴

얼굴을 가지셨던 동갑내기 삼춘이셨다.


난 우리 부모가 너무 이른 나이 대학생때 결혼을 하시는 통에

너무 일찍 태어나 내 학렬이 아주 낮다.


다 중자 정도 쓰는데 나는 석자인 학렬이니, 동갑내기나 나이 

한참 더 어린 삼춘 당숙들이나 고모들이 내 주면엔 늘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그런 삼춘이 내 걱정을 많이 하시면서, 참으로 마음을 아파 

하시면서 쓰신 것 같은, 편지를 한참을 고심한 흔적이 번연히

보이는 그런 편지를 보내 오셨다.


내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살고, 또 나에 대한 모든 기억은

그 수 백석의 부잣집 외동 딸로 귀하게 금지 옥엽 자라던 그 모습

들만을 기억 하시고들 계실 것이니 이해 할 만하다.



아주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시골에서도 그런 모습으로, 나중

대 도시들을 나와서는 모든 길 가는 사람들이 다 한번쯤은

뒤돌아 보던 고루 거각 우리 집엔, 이 하나 뿐인 딸을 위해,


아버지는 하늘 끝에서 땅까지 짜개지 않는 외국산 통 유리로

이 딸의 방을 가장 크고, 예쁘게 지어, 아들들 셋은 몰라도,

딸만큼은 공주처럼 해서 키워야 한다는 그런 의식을 늘 

가지시고 나를 건사 하셨기, 



우리 일가 친척 모든 분들은 늘 엄마가 그렇게 갑자기 죽고

나서도, 늘 '법 없이도 사는 저 좋은 성품의 우리 아이를 

불쌍해서 어떡 하냐?'고, 


늘 내 셋 남동생들 보다는, 나를 그렇게 많이들 좋아 하시고, 

걱정들을 많이 하시면서, 눈물 바람들을 많이들 해 내셨다.  



그런 나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우리 일가 친척

몇 분들 중에, 우리 재 너머 같은 마을에 사시던 작은 집중에

하나인 우리 증조 할아버지의 형제이신 작은 집의 당숙 삼춘

이시다.




어릴 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의 조카이었지만, 그래도

이 동갑 내기 어린 시절 같은 국민 학교 친구란 사실은 늘 우리를

그 어느 누구 친척보다 더 끈끈히 우리를 이어 주는 그런 우정이

우리들 사이엔 늘 존재하기 더 사랑 스러운 그런 당숙 삼춘이다.



염려를 많이 하시며, 마음 아파해 오셔서, 내가 마사이 부족

소똥 집에서도 오랜 세월 살았고, 시베리아 눈 구덩이 속에서도

아주 잘 개척해 야무지고 당차게 잘 산 사람이라고, 염려를

제발 놓으시라고 답장을 써 보내 드렸다.




이제 다시 나의 그 평생을 한 다른 형태의 한 개척의 삶이

그렇게 내 눈 앞에 당장 놓인 것이다.


아자 아자 힘을 내서, 야무지고 당차게 잘 살아 내,

내 동갑 내기 우리 당숙, 우리 삼춘을 놀라키게 해 드려야지.




수 많은 대륙들과 나라들에 난 언제나 내가 먼저 들어 가

개척해, 수 많은 사람들을 나라들마다에서 들어 오게 하던,


그 수 많은 나라들의, 대륙들의 장소들에 새 길을 내어

닦아, 그 나머지 따라 들어 오는 이들이 들어 와 일 할수 

있게 장소들을 마련한, 그리고 그 길을 낸, 난 개척의

선구자요, 대가가 아니던가?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히 강하게 부어 놓으신 한 은사이고 

달란트 중 하나인, 이 개척이라는 가슴 뛰는 상황들이, 다시

내 삶 앞에 이렇게 다시 전개된 것이다.




많은 지난 세월 수 많은 민족들과 나라들이, 지인들이 나의

이 야무진 개척 정신을 통해, 그 속에서 우리 주님의 강함과

역량을 늘 여실히 엿보고, 그 내 삶 안에 계신 우리 주님을

잘 보고, 그 분께 영광과 찬송을 그렇게 늘 돌려 드렸듯이.





그렇게 난 아주 잘 살 것이고, 야무지고 당차게 주의 딸로서

그 분의 능력과 나의 삶에 대한 신뢰를 잘 이루어 드리는

그런 아름다운 삶을 또 다시 한번 개척해 낼 것이다.


삶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허리 부상으로 허리가 아파 잘 활동하지 못함도 있지만, 인터넷 

연결이 요즘 대학원으로부터 잘 원활치가 않아, 내가 절대 거르지 

않는 '아빠 어디가'도 지난 주일은 거른 불행한 나날들.


당근 내가 그토록 예뻐하는 우리 전 지현의 까불어 대는 발랄도,

예쁘고 귀여운 무뚝뚝이 '별 그대' 김 수현도 아직 못 본 밀린 주.



문화 생활의 차단은 잔인함이란걸, 이 학생 되면서부터 경제적 

어려움 때문, 음악회도, 발레도, 오페라도 다 끊은지 이미 오래.


이 가장 서민적인 우리 나라 드라마나 예능도 여의치가 않는 

이 괴상하고도 괴이한 상황들 속, 요즘 난 참 생각이 많아진다.



우리 나라에선 대통령이, 문화 공간들이 서민들에게 개방 되는

문화의 날, 북미 최고 흥행 한국 만화 영화 '넛 잡, 땅콩 도둑들'을  

시청하는 광경이 뉴스에 나오고,



미국 뉴스에서는, 풀뿌리 민초들의 의료 보험이 없어, 아픔 중 

그냥 그렇게 죽어 갈수 밖에 없는, 사회 안의 악순환의 부조리한 

현상들과 상황들을 뿌리 뽑겠다고 나서, 


그 조직과 제도의 온갖 갖은 옹고집들과 독선들의 핍박과 반대를 

무릅 쓰고 결국은, 오바마 의료 보험 제도를 만들어낸 이가, 최저 

임금 8불에서 10불로의 인상의 노조의 날 이야기가 방영 되고 있다.



이 생계와 문화 생활의 한 좋은 예시는,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고, 

사회 복지도 중요한 것이고, 정신 건강을 위한 건강한 지적인 문화

로부터의 탐구들도 우리 삶 안에서는, 


도외시 할 수 없음을 잘 보여 주는, 한 예이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두 뉴스를 시청하며, 많은 생각을 또 해 보는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서민들의 최저의 생계 유지와, 생각해야 사는

사람들의 지적 필요 충족은, 늘 한 같은 지평을 달려 주어야 하는,

우리 삶의 한 필요들임을 잘 보여 주는 한 좋은 예시들인 것.


늙어 간다는 걸, 노후라는걸 늘 남의 이야기 인줄만 멀리 생각하게,

늘 나는 평생을 대학 캠퍼스 근경들에서만 그렇게 나의 삶을 영위

하면서, 나는 영원히 그 젊은이들과 같이 평생 젊을줄 알았던 것.


그런데 세월은 그렇게 훅!들 흘러 가게들 되어 있고, 

우린 우리들의 삶들 속, 그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도전들을, 

그냥 그렇게 당장 지금들 받게 되어 있는 것들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집 뒤 고속 도로에서 무겁고 둔탁히 크게

두 차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크략숀이 수 분을 길게 울리며,

한 차의 주인이 아마 죽거나 의식을 잃었는가 보나 싶다.


독일에서 어릴적 공부할 때 시험이 대학에서 끝나고 숲 길을

걸어 오는데, 어느 장애인이 목을 매어 숨져 있고, 고양이가

그 옆 앉아 있었다.


와서 독일인 얘 옆 방 친구에게 이야기 했더니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헬기가 그 공원으로 날아 들어 그 죽은 장애인을 실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난 유리창으로 건너다 보며, 지켜 보면서,

많은 걸 생각 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도 단 5분이 지나지 않아, 수 많은 구급차들이

오는 싸이렌 소리가 온 동리를 지금 울려 대고들 있다.


사회 복지 시설의 원만한 운영들이, 그 나라 국민들에게 끼치는

그 복지라는 것에 대해, 나는 지금 도전 받고, 많은 걸 생각헤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인 모든 구비들을 떠나 가난이, 극빈이 채 

만나지지 못하는 내 나라, 내 조국으로 돌아 가면서, 


나는 이 미국의 영주권과 시민권 영구 포기 앞, 조금은 

망설였다는게 한 정직한 인간적인 표현이고,

나의 마음이였다.




한국은 내일이 구정이라고, 고속 도로 귀성객들의 줄줄이 사탕식의

차량 행렬들이 티비에 보여지고. 나는 홀로 또 이 해를 30년이 넘게

혼자 뒤에 남을 외로울 내 남동생을 생각하고, 


장가 가 처 자식 둔 둘째는, 처가 집으로만 평생을 귀성하는 

그 괘씸죄도, 괘씸 귀신 괘귀와 섭섭 귀신 섭귀가 함께 발동해 

내 마음에 떠 오르면서, 




내가 한국 시골에 가 살면 어디 한번 처가 내려 와 다녀 가면서, 

가난한 극빈자들이기 때문에, 형과 죽은 동생에게 무심했던 

그 행동을, 나에게도 거쳐 다녀 갈런지를 한번 보겠다는 아픔이,


가슴 안 설렁이고 다님을 내 마음 안 깊숙이서 발견 하고선, 

늘 놀라는게 명절을 즈음한 한 마음이다.



그러나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는게, 인간 심리의 다반사

인게 또한 한 자명한 사실.


나도 그들에게 이 신성한 부르심이라는 일 때문에, 참으로 섭섭

하게 하고, 무관심하게 평생을 산 것도 또한 한 사실임을 나는

자성하고 반성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 명절 설이나 추석은 늘 이렇듯, 가족간 얼키고 설키어져 있는

많은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나 우리들 마음속들을 휘젓고 다니는,

가족이라는, 가정이라는 단위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돌아 보게

되는, 우리 고유의 한 문화 속 풍경들이고, 심리들이다.




그건 고작 우리 민족들만의 정서는 결코 아니다.


서양도 크리스마스 성탄과 부활절등에 가족들의 Reunion이

거의 이루어지기, 가족들간 오고 가는 심리들을 다룬 영화들이

부지기수로 늘 많다.




그런걸 보고 있노라면, 우리 인간사는 동 서양 어디서나 인간들

사는 모양새는, 거의 다 비슷한 양상과 모양새를 이루는 걸 보구선,

나는 앉아 고개를 다시 새삼 끄덕이면서, 이 인생이라는 걸 다시 

배우는 것이다.


인간 관계, 가족, 가정의 깊고도 복잡 다단한 다이나믹은 공부를

해 보면 해 볼수록, 정말 살아 있는 한 다이나믹이라는 걸, 나는 

요즘 더 배운다.



아무리 서양식 교육 제도 하에서 평생을 공부하고 살았어도,

아직도 신정은 양 놈들 달력이고, 명절이고, 우리 구정이 더

우리 명절로, 설로 가슴 절절히, 구구히 다가 오는,


 구 시대의 산물들의 세대들이, 우리는 늘 나를 그 가장 필두로, 

이렇듯 늘 여전히 존재해 있는, 한 요상한 문화인 것이다.



영국에서 유학할 때, 런던 대학에 다니던 한국 학생들이,

"아이고 우리는 뭔 그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일본놈들

식민지가 되어서, 언어도 아무 도움이 안돼요!" 하면서,


"영국 식민지 나라들에서 온 나라 학생들은, 영어나 잘 배워

그 어려운 논문들 써 내는데도, 우리들처럼 발발히 기지는

않지! " 하고 망언 섞인 농찌거리들을 지네들끼리 주고 받는

걸 들으며, 쓴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우리 문화 그 자체는, 양놈들도,

일본 놈들도 절대로 그 가장 깊은 말초 신경들까지는 

절대 뽑아 낼수 없게 깊고도, 진한 우리 것으로 결국은 

남는 다는 것이다.





이제 다 무너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는 우리 가족이라는 불씨를

내가 한국에 돌아가 귀향하면, 다시 불어 그 불씨를 불꽃으로

살아 올려 낼수 있을까를, 


나는 이렇게 먼 곳에서 다시 한번 깊이 깊이 생각해 보면서, 

우리의 다복했던 유년 시절들을 이 구정 설 명절에 다시 한번 

떠 올려 보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현미와 현미 찹쌀, 잔치 국수, 라면등을 잔뜩 실고 찿아온 

매 번 내 식량 조달 친구에게 점심으로 짜장 밥 대접.

 


크리스마스 선물로 한국서 보내온 짜장을 투자해서, 돼지 

갈빗살 굵직 굵직 발라 놓은 고기 잔뜩 집어 넣고, 추억의 

짜장밥이 멋드러지개 그 자태를 드러내다. 

 




고기며, 해산물, 야채등의 재료들이 아주 풍성히도 고루 갖춰

있는 좋은 상황. 한국을 가면 정작 전혀 잘 먹지를 않는데,

짜장과 라면은 외국에서는 무지 자주 그리운 한 식품이다.

 




후식은?

조미 오징어.

 

기차 여행 중의 점심이 아니었건만!


그러나 친구와 나는 우리 다시 나중 한국에서 만나면 태백선

완행 열차를 타고, 삶은 계란과 이 오징어, 김밥을 먹으면서

예수원을 함께 가자고 약속하면서, 마냥들 행복해들 헸다.


듣기만 해도 정서가 풀리고, 행복하다고 좋다고 한다.

 

마틴 루터 킹 데이로 미국은 지금 줄줄이 3일 빨강 연휴.

 

떡 본 김에 고산지, 제산지 지낸다고, 짜장을 포스팅 하는 차에.


짜장의 유래나 삼선, 사천 짜장등에 대해 조사를 한번 해,

지식을 습득해 내 보는게 또 나 다운 일.


그러나 허리가 너무 아파 포스팅은 패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나의 귀향은 그냥 그저 깨끗한 귀향 그 자체다.


요즘 흔해 빠진 정신머리 사나운 많은 다른 단어들인 귀농, 

귀촌 그 밖에 그 어떤 무언가의 그 모든 것들을 다 함께 싸 안은.

그냥 단순한 귀향. 그 단어로 나는 나의 귀향을 그냥 그렇게

가장 단순히 이름 부르기로 했다.



그래 오늘, 처음 절기를 공부 했다.

봄은 언제 오며, 씨앗은 언제 흩뿌려 주어야 그 생명을 드러내며

일어 나는지, 농사를 다루어 가는데, 내가 알아야 하는 기구들은

과연 무엇인지 등을.



소의 쟁기가 밭을 갈아 엎던 시절도 이젠 아니고, 그렇다고

마지기들이 족히 넘을 기나긴 밭을 삽으로 파 헤치는 시대도

아닌, 그런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만은 나도 안다. 




40만원 가량 하는 혼다 소형 관리기라는 것으로 땅을 파고, 

이랑의 골과 둔덕을 만든다는 것도, 나는 오늘 공부로 처음 알고, 



티비에서 신기해 하며 구경 했던 벼를 베어, 1톤 자루에 담아 

거대히 끌고 가던 그 기계 이름이 콤바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장비를 끌고 나와 도와 주면, 우리 농부들은 

약 4-5 만원에 상당하는 수고비를 약 2 마지기당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오늘 공부 했다. 



지역마다 논의 1마지기 평수가 다르며, 우리 호남도 지역마다

또 다르며, 나는 200평을 우선 한 마지기로 외우고, 밭은 100평

으로, 


그리고 고흥으로 간 오마이 뉴스의 기자 기인 송 성영이 

기고한 글을 통해 한 마지기는 80 킬로 쌀 세 가마니 반을 주며,




우리 가난한 농민들의 한 마지기 논에서 나오는 소득은, 모든 

재료비등을 다 제외하고 나면, 21만원이 남는다는 슬픈 사실도

공부하고,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나의 귀향은 이제 무르 익어 가고, 현실을 더 조금씩

보아 가며, 그렇게 성숙해 가고, 영글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나의 공부와 현실을 알아감은 계속될 것이다.

앞으로 20-30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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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Create 방송중 요리 프로그램중에 '미국 안의 이탈리안'

이라는 방송에는, 둥둥한 이태리계 미국인 리디아라는 아주머니가

늘 파스타를 삶아, 거기에 치즈 범벅을 하는 요리를 시종일관 

보인다.







피자와 함께 뚱뚱이들 이탈리안들을 상징해 내 보일때 늘 보이는,

저 놈의 파스타와 치즈 범벅만의 번복을 보면서, 


길고 추운 겨울을 가진 우리 민족들이 가졌던 ,그 길고 추운 겨울의 

주전부리들을 한번 생각해 보다, 딱 걸린게 우리 나라 호박 시루떡

이다.


한국 어느 겨울이나 늦 가을 꼭 한번 시루에 쪄, 김 오르는 그 떡을

이웃들에게 돌리고, 함께 이야기들 하면서, 어느 날 함께 먹고 나눌 

요량이다.





호박 시루떡은 가마솥 위 큰 오지 시루를 얹고, 그 사이 틈새를 

빼깽이라는 시루떡 갠 반죽으로, 김이 새어 나가지 않게,

땜질을 할머니는 늘 하셨다.






그 떼어낸 빼깽이는, 우리 어린이들이 밥그릇에 담아, 

들고 다니면서, 노는 동안 먹었다.


맵쌀 가루를 촉촉히 물에 버무려, 주황 호박을 살팡 살팡 깍듯이

베어낸 조각들을 함께 섞어, 한 돌금 한 돌금씩 놓는다고, 우리 

할머니는 늘 표현 하셨다.



새하얀 목면 옥양목 면 천 사이로 김들이 무럭 무럭 오르고도

한참을, 시루떡은 그렇게 오래 오래 쪄 졌다.


팥을 삶아 고물로 올린 그 뜨거운 호박 시루떡은, 별 이렇다하게

맛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 민족은 늘 그런 걸 먹었던 것 같다.



서양 얘들이 우리 떡들을 먹어 보곤 무슨 맛인거냐?고 되묻는 

것처럼, 우리 시골 떡들은 지금처럼 그렇게 별 달지들도 않고,



서양 얘들의 한 정직한 표현들처럼, 그냥 그런 찐득 거리고,

고무처럼 늘어 나기만 하는, 거기 이렇다 할 별 맛은 없는, 

그런 음식들로 기억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전부리 마련들부터, 긴 겨울 

매 끼니의 묵나물들과 고지들도 겨울 영양 공급에는 정말 

신경을 써야 하는 겨울이여야 했을게다.





내가 이제 서서히 삶을 좀 알아 가는 시간대에 도달하긴 도달 

했나 보다. 


그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고, 보릿 고개를 넘으면서 흘렸을, 

우리 어머니들의 그 배 고픈 한숨들을 이렇듯 한번씩 생각해 

보는 날들이 있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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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구니에 대한 향수와 집착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그래 고향에 돌아 가면 바구니 만드는 법들을 장인들에게서 손수 

사사 받아 바구니 만드는 사람이 될까도 조금은 생각해 본다. 

요즘.


이 조랑 바구니에 대한 한 아름다운 추억은 늘, 대 바구니를

곱고 가는 새끼줄들로 꽁꽁 묶어 만들어, 바닷가 개에 간다고

하는 우리 남도의 말들이나, 밭에 들고 가던 그 작은 대나무 

조랑 망태기의 기억에서 유래되고 기인된 것.





아프리카의 선인장 잎을 훓은 실로 짠 탄탄한 볼가 바구니,

시베리아의 버드 나무 가지로 짠 진한 갈색의 아름답고 실한

짱짱한 바구니등의 추억도 거기에 첨가된다.













내 고향 학교 가던 개울가에는 늘 버드 나무 가지들이 실하게들

자라, 봄이 옴을 재일 먼저 알려 주는 전령사였다. 그 가지들을

한번 모아 바구니를 짜 모아볼 요량이다.


그 바구니 1일 교육 코스가 있어 보니, 영국이다. 제길헐.



시베리아서 그 버드 나무 가지 바구니를 시장서 사 늘 팔에 끼고

들고 다니며, 시장을 봐, 지금도 우리 젊은이들은 그 나의 모습을

기억들을 하곤 이야기들 하곤 한다.







이런 바구니들은 거의 예술성을 가진다.










그리고 아름다움 그 자체인 바구니들.









좋고, 귀하게, 알맞은 용도로 잘 활용된 바구니들.








그리고 바구니 만드는 재료들의 잘 활용된 몇 보기들과 풍경들.


난 이대로 가다가는 이 흥미 자체가, 나를 아무래도 바구니 짜는,

바구니 짓는 바구니쟁이로, 미래 어느날에 만들고야 말 것 같은,

강한 조짐과 예감이 강하게 보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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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인이 알 밤을 두 바구니 가득 사 들고 와 떨어 뜨려 놓고 갔다.


밤 삶아 먹기 날.



밤은 푹 삶아져야 속이 부들 부들 밤 고구마처럼 말랑 말랑 

고소하게 맛 있다고, 오래 오래 삶다, 결국 태워 먹어, 군밤의 

형색이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부터 배를 타고 실려온 이름하야, K-밤으로 이름을

붙이고, 한국 마켓에 떠억! 하니 앉아 있는, 한국 밤들이다.

배도 요즘은 중국 배를 물리치기 위해, 한국 장들에는

K-Pear 라고 그 이름을 달리한 우리 한국 배들이 대세다.


다 자기 자리 찿아 이윤들을 다 찿아 먹겠다고, 국제전의

마켓 전쟁들인 것이다. 





지금 세대들은 겨울밤의 낭만과 정서가 우리완 다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차갑고 쨍하게 싸늘한 저녘 찹쌀떡!을 구슬프게

외치며 지나 가던 사내들의 목소리들이 겨울밤의 정서들이다.





그리고 학교 근처 간식 분식집들의 오징어 다리 덴뿌라의 

추억들이.





그리고 팥 앙꼬 든, 바삭 바삭 붕어 풀 빵, 흰 종이 봉지에 

열 개씩 담아 사 와, 호호 불며, 베어 먹던, 눈 내리는 아주 

추운 겨울 날들의, 


아주 아주 어린 꼬맹이 시절의, 우리 도시 아이들의 추억

들이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그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여.


난데 없는 이방 나라에 나와 살면서, 우리 그 한 겨울의 정서

들을 돌아 보곤 이렇듯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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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도 여러 종류인 것 같다. 풍산개처럼 입이나 얼굴이 넓고

조금 더 뚱뚱하며, 맷집이 좋은 얘들.

그리고 이런 여기 얘처럼 날카롭게 생기고, 코 부분이 선 분홍 

밤색 기분이 나는 얘들.

 

나 어릴적 100% 순종 우리 진도 백구가 이 얘와 똑 같앴다.

그런데 요즘은 하도 섞인 얘들이 많아, 우리 진도 고유의 

그 단아한 풍채들을 찿아 보기 힘든듯.



'한결이'라는 이름은, 이미 오래 전 지어 놓고 준비해 놓았지만,

'가을이'라는 이름은, 오늘 예쁜 개 이름 리스트 목록을 찿아 

보구서, 오래 심사 숙고하다 결정한.

 

그 리스트중 '햇살이'도 이쁘고,

 

이 사진에 얘들 둘이 진짜 귀여운듯.

그러나 개 장사 사진에서 담아온 얘들이라, 만나기는 어려울듯.



이 꼬마의 엄마인거 같은데, 기럭지가 이렇게 쭉쭉 빵빵인게

진돗개 황구의 한 다른 점인가? 백구에 비교해 봐서?




수 천대 일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1등으로 당선 되어 올라 온,

아나운서 김 대호의 모습을 보면, 늘 우리 진도들의 충성과 

충직함이 보이는 신실한 한 청년의 모습이 늘 보기에 너무 좋다.

 


희망 일촌 프로젝트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시 비우더니, 다시

돌아 와 그 충직함으로, 다시 섬기네. 박 슬기랑 진행 할 때, 

참 보기 좋았는데, 



박 슬기는 이제 아예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줄행랑을 친거 같아 

보이고.


                             


어릴적, 가무잡잡한 피부 색깔에, 단발 머리로 지적인 지성미가

줄줄 흐르던 정 애리는, 지금도 신앙과 봉사의 생활의 섬김이나 

믿음이 변함 없이 훌륭하고, 좋은 귀감이 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같고.


참 저런 모든 귀한 사람들은 우리 주님의 상급을 많이 많이

받을거라는 생각이 늘 든다. 멀리서 이렇게 지켜만 봐도,

주님을 늘 영화롭게 하는 귀하고도, 선한 사람들. 



김 대호는 아마 신앙이 있는 청년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충직함과 성실함이 그냥 그의 존재에서 늘 줄줄 새어

나오는, 정말 믿음직스러운, 귀한 한 청년인 것 같다.



그런 수 천대 일의 경쟁의 두려움과 떨림 속 야단 방귀를 뀌면서

뽑아 놓고, 튀게 해 주지 못 하면, 괜시리 미안 했던지, 

아나운서 부서 상관이 춤 대회에도, 나가서 다른 이미지를 쇄신 

시키라 해 나가,


그 비위 못 타고 났을거 같은 사람이, 춤도 추는 오두 방정도 다

떨어 보고,



급기야는 음식이며 물건들, 질 때려 잡는 제로 맨에도, 

검은 장의사 양복 입고 뛰어 달려 보고 야단을 치고 하는 걸 

보면서, 


저렇게까지 야단 법썩을 떨며, 꼭 젊은 패기의 청년이 세상을 

살아야 하니? 하는 심한 비애감에 나를 젖게 했지만.



분위기 맞는 영화 호스팅 프로에도 지같이 비슷히, 

사슴 눈망울급 배 현진 아나운서급 만큼이나 비등히 예쁜, 

양 승은 아나운서랑 같이 진행 하는 걸 보며, 


그래도 영화가 젤 분위기랑은 맞네! 하며 멀리서 조용히 지켜 

보았다.



김 대호, 배 용준, 오 창석 셋을 보면, 인간이 참 이 세상 

만물 중 제일 잘 생기고, 예쁘다는 생각을 다 해 본다는.


이렇듯 50대 아줌마급들에게만 이쁨 받아서는 될 

문제가 아닌가비. 요즘 세대들은 아무래도.



김 대호 같은 인물도 살아 내기 위해 저리도 심히 

struggle을 해 대는 걸 보노라면.


그래도 그의 성품이나, 인격에서 흘러 나오는 그 신실함에 

대한 신뢰가, 이 사람을 종국에는 크게 키우리라 나는 믿는다.


정치 잘 하고 약은 이들보다, 세상은 우리 진도처럼, 이런 

충직한 이 들에게 더 목 말라 있고, 사모하고 결국은 더 향한다. 


그때 상당히 실력 있는 카이스트 출신 엘리트가 더 비 호감이었고,

우리 김 대호의 매력을 전 국민이 좇고 향했듯이 말이다.



아나운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바르고, 곧은 목 소리 내는 그룹에 한번 줄 섰다가,


같은 바른 정신으로 일관하는 김 제동과 같이, 어린이들 

'환상의 짝꿍'에나 같이 나오게 해, 늘 슬픈 사슴의 눈망울을 

하고, 거기 그렇게 서 있게 하는, 


구조(Structure)나 조직(System)의, 그 교묘하고 지능적인

보복들에, 나는 개인적으로 심히 분노하는 한 사람이다.



사 기업의 부패와 비리들 앞, 이런 바르고, 귀한 목소리

들을 낼수 있는, 오 상진 아나운서 같은 청년 리더들은, 

전적으로 우리 언론계에 필요하다.


우리 나라이기에만 가능한 이런 젊은 정신 제대로 박힌 청년

인재들이나 지도자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영민하고 지능적인 

수법들로 보복하고, 사멸 시켜 버리려는 계략들에 대해,



늘 외롭고, 지치고 힘든 싸움이겠지만, 절대 포기 하지 말라고,

나는 강한 응원의 마음을, 우리 오 상진 아나운서에게, 그리고

영원한 나의 한 영웅인 김 제동에게도 함께 담아 보낸다.



많은 국민들이 그 비리들을 지켜 보면서, 늘 그 청년들의 패기와

정의를 응원하고 있다고,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 부패에,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그 구조와 함께 썩고, 

문드러져 가는, 오 상진이 되지 않기를, 정말 응원하고 

기도 한다고, 전해 주고 싶은 것.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다는 소개를 그렇게도 진솔하고도 

당당히 하면서, 그 진솔한 웃음을 환히 웃던, 신뢰가 가는, 

한 성실한 청년 상이다. 김 대호는. 우리 진도들처럼.

 


우리 진도견들 홍보 대사 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하긴 아나운서들은 배우들과는 달리, 사내 바깥 일들을 

하면 안 되게 규정이 되어 있는지, 그런 사례 그러고 보니, 

단 한 건도 전혀 본 적이 없는 듯도 하다. 

 

유감 천만.

 


왜 우리 한결이와 가을이를 맞을 마음의 준비들을 하면서, 

난데없는 김 대호며, 오 상진, 배 현진, 양 승은 같은 아나운서

들을 떠 올렸고, 왜 이들이 연결 되었는지의, 그 이유들을 

혼자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그 들의 단정함, 단아함, 충직함, 성실함과 함께,

바른 이미지들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르면서, 우리 진도

들에 대한 이런 좋고, 귀한 아름다운 이미지처럼,


우리 나라 방송계나 언론계도, 그런 충직하고 바른 

이미지로, 국민들을 이제 좀 덜 실망 시켜 줄 수 있으면

하는, 선한 소망과 바램이 내 마음 안서 심히 요동을 친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몇 년 전 Family Therapy 가족 치료 상담 셋션에 약 8개월 

참여 하셔서, 가족의 회복을 완전히 맛 보신 한 참 훌륭했던, 

클라이언트 내담자 가족이 며칠 늦은 추석 음식 이바지를 

바리 바리 해 들고 찿아 오셨다.


해마다 추석 명절, 설 명절, 절대 빼 놓지 않고, 늘 이러신다.



이 분들은 어떻게 은혜 갚은 학의 자손들인가 뭔가 늘 

싶어지는 한 아름다운 가족.


이런 그 분들도, 위기의 벼랑 끝에 서신 적이 있으신, 

아프고, 시렸던 상황에서, 회복들로 나오신 분들이다.



손수 직접 녹두를 갈아서 만든 빈대떡 무지 많은 양.

냉동 시켜서라도, 밥 거르지 말고, 꼭 꼭 챙겨 드셔야 한댄다.




반들 반들 윤기가 돌게 반짝 반짝 잘 무친 맛깔스런 잡채 

큰 통으로 하나. 내가 이 세상서 가장 좋아 하는게 잡채인 걸,

우연히 어디선가 아셨다.



영광 굴비 셋트 한 짝.

"이 많은 음식들을 언제 다 먹나? " 했더니,

"맨날 내담자들 다 거둬서 멕이시잖아요?

그러니 금방 다 드실 거예요." 하신다.






기가 막히게 맛있게 담은 김치 몇 통등.

겨울 삼동 김장은 올핸 안 해도 될 듯 싶을 정도의 많은 양.




고기 한짝.

큰 일 났다. 

이후론 고기 파티 경사 나겠다.



나는 

"이를 다 어찌해야 하나?" 하고 망연자실 서 있고.



그들은 자기들 가족을 살려 내 준 은혜에 비함 

그 아무것도 아니란다.



은혜를 베풀면, 그 은혜를 아는 자들.


그런 고운 심성들에서, 크나큰 기쁨에서 나온 사랑의 표시

들이니, 감사히 맛있게 먹고, 더 열심히, 



그들의 어려웠던 옛 시절의 모습으로, 새로 찿아 오는 이들에게, 

이 은혜를 되돌려 주겠다고 다짐을 해 보는, 치유가 있는, 가슴 

뭉클한 한 아름다운 밤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몇 일은 이렇듯 오늘처럼 청량한 가을 날씨이다가도, 

어제나 그제 같은 경우들은 막 소나기가 쏟아질 듯 저기압에, 

어둡고 푹푹 찌는 이상한 철의 한 시간대를 지금 넘고 있다.



이런 날은 상담 위해 오는 클라이언트들을 그냥 차에 태우고,

자연 속 가서, 그냥 좀 앉아 마음을 풀어 보라는 권유를 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래도 오늘 있는 상담 셋션의 내담자가, 너무 나를 못 살게 

굴지 않는, 수월하고 마음 잘 맞는 이여서, 너무 부담 없고

짜증 밀려 오지 않는, 그런 요행의 한 날.



이렇듯 서양 나와 살면서, 어떤 해들은 이런 명절들이나 

생일등을 잘 챙기지만, 그도 저도 아닌 몇 해들은, 그냥 

모든게 다 귀찮아, 그냥 모든 걸 다 그렇게 내려 놔 버리고 

싶은, 




그야 말로 말 그대로, "그때 그때 달라요!!"가,

이 이방 땅들에서 맞는 민속 명절들의 한 풍경이다.

특히 나 같은 싱글들은 아마도 다 거기서 거기 그 모습

들일 듯.



미국 얘들은 이런 날 거의 초대할 필요들이 없는게, 우리 

이런 정서나 정취들을 잘 모른다. 그래도 혼자 있는 외로운 

우리 나라 얘들 몇은 초대해 한 끼라도 걷어 먹이는게 도리.


그래 몇이 늦은 오후 일들 후 올 거고.



송편이라도 한인 마켓에서 사 올까 하다가, 그냥 귀찮아 

다 그만 두었다. 아마 오늘 오후쯤은 그 누군가가 분명 

송편등을 잔뜩 챙겨 들고, 늘 누군가가 꼭들 자주들 방문

들을 해 오곤 하닌깐.



오늘도 분명 누군가가 절대 빈 손으로 그냥 오지 않고, 

꼭 음식들을 손에 가득들 들고 온다. 

한 해도 그리 거른 적이 없다 보니, 내 예감은 늘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는.






떡들은 늘 그렇게 날라져들 오고, 탕이나 묵 나물 무침,

전들, 갈비등은 늘 좀 만들어 밥을 먹게 해 놓는다.



맛있는 김치는 그동안 맛이 들라고 며칠 전 이미 담가 놓은.



우리집 온 손님 늘 배 고프지 않게 배불리 잘 먹여 

내 보내라는게 우리 할머니의 지엄하신 가르침.

그 손녀는 그 전통을 늘 이렇게 잘 잇는다.


                                        


거기다 오늘은 추석인줄 잊어 먹고 취소 못 시킨 상담 내담자

방문들까지 있다 보니, 더욱 더 기본적인 음식 종류라도 영낙

없이 준비 해야 할 판이 되고 말았다.


                       


미국 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나물들, 크리스마스때 한국에서 

선물로 보내준 묵나물들, 내가 텃밭에서 길러 정갈하고 고슬

하게 말려둔 나물들 다 모아 끄집어 내어 불리고, 무치고, 지글 

지글 볶고 야단들이다. 하루 종일 지금.





그러나 이런 곧감, 유과 강정들, 밤 송이등이 거기 있는, 

그런 정식 정취를 갗춘, 우리 전통 상 차림새의 우리 나라

에서 보내는 추석 명절들이 많이 그리운 건 또한 사실이다.




이네들 재료로는 같은 음식을 해도, 그 맛이 정작 나지를 않는다.

늘 1% 덜 떨어지는 그 어떤 부족한 맛.

이방 땅들에서 보내는 우리 추석 한가위의 짧음들이고, 

한계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작 그 맛이 아닌, 우리 땅, 내 온 곳이 그리운

그 짧음일지도 또한 모를 일.




그 누가 알겠는가? 

그 진정한 한 이유를.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추석 명절이 돌아 오면, 이방 땅 들에서도 챙기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그것은 육전과  실 고추와 통깨 뿌려 찐 말린 생선, 그리고 고소한 

햇 쌀밥이다.







티비나 많은 곳들에서 추석, 추석들 하며 노래들을 부르니, 오늘 

아침은 문득 소고기 육전을 해 먹어야 겠다는 강한 소망이 갑자기

생겨 나다.




가지와 토마토 풋고추를 듬뿍 넘어 가지 볶음을 하고, 호박잎을 싸

먹을 양념 막장을 맛갈 스럽게 비빈 후, 바야흐로 육전 만들기에

돌입.



또 육전에는 푸른 파 겉절이가 꼭 있어야 제격이다. 

그걸 말아 싸 먹어야, 비로소 제 맛이 나는.

밭에서 이번 양파, 파 많이 수확해 온거 실처럼 가늘게 썰어, 

참기름, 간장, 통깨 듬뿍 넣어 설설 무치고, 준비 이렇게 딱 완료.


왕비의 근사한 아침 식사를 그렇게 마쳤다.


이른 아침 꼭두 새벽부터 이게 웬 야단인가 싶은. 

그러나 먹고 싶은건 땅길 그 당시 즉시 먹어 주어야 정신 건강상 

좋은듯 싶다. 그건 순전히 나의 음식 철학일 뿐이지만서두.....


너비아니라고도 부르는 이 육전은 천상 우리 민족의 양반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의 한 명절이나 잔치 음식으로 우리 기억들에

남아 있고 박혀 있을 것이다. 



맛은 추억이고, 그리움이라는 표현이 정말 딱 제격이다.

혀 끝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나도 한국에 우리 남 동생 둘과 가까히 살아, 이 추석 명절 함께

차례를 지낼수 있는 삶의 기회와 은혜를, 우리 주님이 나의 삶 안

혹 준비 하시고 인도 하셨다면,


이런 모양새 제대로 갗춘 음식들 격식으로. 우리 남은 둘 남 동생

들을 그렇게 누나로써 축복해 줄 수 있었을 건데.


아스라한 지평선 너머 먼 이야기처럼, 나와 우리 남동생들과의 

재회의 기회는, 이토록 좀처럼 우리에게 찿아 와 주질 않는다.


난 나 혼자 먹자고 만드는 이런 명절 음식은, 그냥 데면 데면 별 

모양새 없이 후루룩 이렇듯 쉽게 만들어, 그냥 그렇게 몇 격식없이

그냥 그렇게 먹어 치우고, 때우는 그런 맛탱구리 없는 삶의 한 

모습이고 모양새다.







밭에서 추수된 풋 고추 푸짐 하겠다, 갈은 소고기 양념 달콤하게

진 간장 넘어 맛있게 양념해 반으로 가른 풋 고추에 넣고, 박아

지져 내고, 



애 호박 동글 동글 나박 나박 썰어 동그랑 애 호박전까지, 이거야

말로 밭 소산들 때문, 진수 성찬이 따로 없다.






버섯전도 함께 만드는 김에 만들어 엄청난 양들이 또 되게, 나는

음식하면 늘 손 큰 사람이다.


오늘 패밀리 테라피 받으러 오는 새 부부도 좀 먹이고, 싸 주고 

그러지 뭐.


이런 전들은 일 벌려 시작해 손 대기가 무서운 일이니, 이럴 때

남한테 얻어 먹는 맛 또한 소소할 것이다.


남의 반찬은 왜 그리도 늘 새롭고, 싱그럽고, 맛있잖아.

내 자신이 만들어 먹는 늘 같은 반찬들 보다도.







말린 생선들 실 고추, 통 깨 솔솔 뿌려 쪄 먹는 것까지도 며칠 내

해 먹을수 있겠지만, 제일 아쉽고 그리운게, 바로 우리 집 상 머슴

아저씨가, 논에서 낫으로 몇 낟가리만 베어 오셔서, 바로 햇 찧어

하는 새 햇 쌀밥은, 이런 이방 땅들에서는 구할 길이 기어히 없구나.


아!

그리운 옛날이여! 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가을은 엄마 흉내 내기 철이다.





갈무리들과 병 저림, 저장 음식 보관 하기 철.


9 개월이 눈 구덩이 속 박혀 살아야 하는, 시베리아 7년 살면서, 

이 못할  우라질 짓, 정말 많이도 구구 장장 오래도 하고 살았다.





그러나 엄마의 한복 입고 정갈히 옷 매무새 다져 담던, 그 갈무리

들과 겨울 저장은 늘 아름답고 성스러웠다.



      

 




생존이 아닌, 체크 천 사 오고, 마 실로 감는 저장 병들은 

우리 여성들에게는 이렇듯 낭만이고 로망인 것을.





밭에서 따 와 하루, 갈무리 하면서 또 하루, 그리고 이 효소를

드디어 담기까지, 그야말로 구구장장 세월이 좀 먹니? 하는 자세.





우리 할머니처럼 사람의 키를 훨 훨 넘던 부농의 큰 항아리 대독은

나는 싫어요.

그냥 작고 올망 졸망한 작은 장독들 항아리들 밖에는.




내 고향에 돌아 가면 이젠 고추장도, 된장도, 간장도 내가 직접

담그어서, 말간 햇빛에 바르고 바르어서, 그렇게 곱게 설설 익혀

네 철을 그렇게 거기 있게 할 것이다.




옛날 이방 땅 깊은 골들 살때는 다 내가 손수 담아 야무지게

먹고 살던 것들이다. 매칼진 우리 엄마의 눈썰미와 손 끝 감칠

맛을 그대로 이어 받고, 전수 받아.



문명에 나와 살며 어느덧 잊혀진 전설들.



이제 내 가서 있어야 할 곳, 거기 내 땅에 돌아 가면, 난 나의 집 

양념은 내가 손수 담아, 그렇게 정갈히 살 것이다.

 



우리 엄마의 고운 한복이. 무명천 생활 한복으로 바뀌어, 

거기를 난 그렇게 휘적이고 다닐 터이지만.







오늘  사립문을 열고 나오면서 살아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 했다는, 9개월을 눈구덩이 속에 박혀 살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한 시베리아의 무명의 시인의 시처럼, 인생은 그다지 

기쁘지도 또한 슬프지도 않는 것인 것을.


한탄할 그 무엇이 서러워서 우리는 이다지도 늘 방황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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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 류씨와 송 가의 집성촌이던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시골 마을은

어떤 조례들이 그 곳 형성되고, 그 어떤 힘들이 그 질서들과 되어져

감들을 이루어 가며 그렇게 흘러 갔을까?를 나는 종종 생각해 본다.



그 중 생각 나는 몇 간담 서늘해지는 체벌들과 외간 남자 숫컷들로

부터 우리 마을만의 여성들을 지키던 질서에 따르는 체벌등이 어떤

땐 문득 문득 그렇게 거기 떠 오르기도 한다.



그 무서운 한 예 하나로, '덕석말이'가 제일 먼저 무섭게 떠 오른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 깨볶쟁이들에게는 쉬쉬 하면서 행여 들을세라

재우거나 내쫓고 성인 어른들 끼리만 동각이나 그런 저 높은 고위

단위들에서 결정되고 이야기 되던 한 사항들이다.



강간이나 성적 비행등으로 공동체의 질서나 규율을 망가뜨린 

남녀에게 주어지던 체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국민 학교 2학년 때까지 버들 류씨 양반의 서슬이 시퍼렀던

갓 쓰고 흰 한산지 옷 풀 빳빳히 먹여 다듬이 방망이질 잘 해 

손질해 입혀 내 보낸 서슬퍼런 양반 할아버지 떼들은, 



긴 수염을 기르고 긴 곰방대 담뱃대를 입에 물거나, 뒷짐으로 

그 곰방대를 가로 질러 쥐고,서슬 퍼렇게 지어진 크나큰 기와집 

동각을 그렇게 거드름들을 피우시고 드나 드셨다.



우리 지금 신 세대 성경에서는 아마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

쯤 되시지 않으셨나들 싶은. 그 거드름들과 엄격하기 등등이.


부촌에, 양반촌에 그들은 늘 그렇게 엄격하고 무서웠다. 


마을에서 덕석 말이를 당하는 체벌의 밤들엔, 늘 온 동리가 

그야말로 쑥덕 쑥덕, 



이빨로 마른 모시 카락을 찢어 앙상한 허벅지 종아리들에 

밀어, 그 모시 실을 곱고 꼰꼰하게 말아 채 바구니에 설설 담던 

아낙네들의 등잔불 초꼬지 불 밑, 늘 조용 조용 소곤 거림들로 

그런 얘기들은 늘 은밀히 오고들 갔다.




천정을 닫는 덕석으로 말아 가득 채워 놓은 고구마 뒤주 근처

내일 학교 가야 하니 빨리 자라고 해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고

우리는 그런 야시꼬레한 마을 야화들을 늘 한 귀로 주어 흘려

들어 담았다.


뒷 마당 대나무 숲에선 부엉이들이 스산히 울어 쌌고, 궁시렁

시런 소쩍새들의 소리들이 그 을씨년 스러움을 더 했다. 



댓숲을 쓰는 찬 바람 소리는 그 불륜의 남녀들을 마음 안 그려 

보며, 놀라고 무서운, 세상을 배워 가는, 그런 어린 아이들이 

그 곳 그렇게 거기 누워 떨고들 있었다.



공동체에 몸 담고 오랜 시간을 살면서, 나는 그 우리 어린 시절 

마을 공동체들 안에서, 그 질서 유지를 위해 치러지던 댓가 지불

들과 율례나 조례들을, 더욱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제한된 공간들 안 남녀가 모이면 관심이 가는 건 인지 상정이고,

물 오른 육체들엔 흥건한 감정들도 거기 늘 함께 고였을 것인데도,

600명 식솔들 속 간혹 삐져 나오는, 이 풀어진 감정들을 그렇게 

다부지게 다 잡아 버린,



우리 그 양반 떼거리 할아비들의 서슬 퍼럼이, 과연 공동체 안에 

던지는 위계 질서를 향한, 그 권위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이렇게 자주 종종 되돌아 보고 생각헤 보는 것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궤변인 도올은 말한다.


과연 그럴까?




단정하고 단아 했던 고운 정서가 흐르던 우리 마을을 나는 

되 돌아 보면, 너무 하얗고도 하애서 눈이 부시던 그 한산지

고운 흰 옷들만큼이나, 


감정들이나 성의 욕구 다스림들도, 단아하고 깨끗했던 그 

양반 촌 우리 마을을 되돌아 보면서, 내가 고개를 늘 갸우뚱 

거려 생각해 보는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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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한 유명한 프로가 있는데, 추수 감사절 근경, 크나큰 누런 

황금빛 호박을 수 백덩이 심어 파는, 난쟁이 농장주 아저씨네 일가를 

보여 주는 다큐물이다.



그 아저씨가 어느 날 농장에 숫닭이 있어야 구색이 맞을것 같다고,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근처 농장에 가,  숫닭을 사 오고 닭장을 

짓고 하는 한 장면이 있어, 아주 재미있게 시청하면서, 혼자 아주 

많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밥상에 달걀 후라이라도 튀기거나 기름기 흐르는 한 가지

메뉴가 없으면, 절대 밥을 못 먹는 한 사람인지라, 나중 시골에 

가 살면, 내 후라이가 되어 밥상에 오를 알을 성실히 날마다 낳아

주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병아리들을 많이 부화 시켜, 마당을 점잖이

앞장 서며 거드름을 피울 암닭 10 마리 정도와, 숫닭 한 마리를

키우겠다는 야무지고 당찬 한 꿈이 나에겐 있다.



그래 어느날 저녘 아주 정성을 들여 꼬꼬닭에 대해 공부를 아주

진중히 많이 해 보았다. 나는 어느 영역이든 이렇듯 독학의 한 

명수다.



거의 많은 분야들을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해 많은 좋은 결과와

열매들을 삶 안 거두는 걸,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늘 목격 하고선

많이들 혀들을 내 둘러댔다.



"야 !! 굉장하다 !!" 하구선들.




무언가 하겠다고 하면, 나는 이렇듯 그 결과들을 확실히 잡아 

내는 한 사람이다 보니, 꼬꼬닭도 내 텃밭처럼, 많은 사람들을

또 놀라게 하고, 나는 또 이런 시건방을 자주 떨만큼, 아마 그 

가축들을 또 잘 길러 내고야 말 것이다.



머지 않아 또 '가금계의 제왕' 이라는 명칭이 내 삶을 장식할 날도,

별 멀지 않은것 같은 한 불길한 예감. 이러면서.




닭과 병아리에 대한 로망이 나는 한껏 있다.

그리고 닭의 분비물들이 텃밭 농사들에는 가장 좋다는 것도

이 미쿡 땅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또 잘 배웠다.





송아지도 한 마리, 꿀꿀이 돼지도 한 마리, 염소도 흑 백으로 

각각 한 마리, 오리도 한 쌍, 토끼 한 마리, 진도개 백구 한 마리, 

황구 한 마리, 카나리아 한 쌍, 연못과 물고기들.... 


물론 모든 가축을 아주 어린 베이비 때부터 기르기 시작할 것이다.

키우는 정을 기르도록.



정말 난 키울 가축이 지금 내 마음 안에 너무 많아 거의 과포화 수준.

아무래도 동물 농장 계획도 한번 해 봐야 하나! 싶을 정도로.



우선 숫 닭과 검은 병아리가 신기해 많이 공부해 보았다.






내 기억엔 줄창 늘 노랑 병아리들만 그림이나 티비등서 본 거 

같애서.

오골계 병아리가 아마 까만게 아닌가 싶은.

지금까지의 적은 양의 공부로는.

이 까망이 꼬꼬닭을 꼭 한번 키워서 잡아 먹어 봐야 되겠다.



그러나 그것도 잘 모를 일.

어릴적 오골계를 안 본 시절도, 검은 병아리도 언뜻 본 기억같은 

것들도 종종 나는 걸 보면.


아니면 말고.



나의 시골에 대한 기억들은 늘 이렇듯 많은 것들이 아직 희미들

하고 아리송들 하다.

하긴 43년 전에 이미 그 시골을 떠나 왔으니, 내가 12년 동안 

그 작은 두 뇌들에 담아 담은 기억들이 뭐 얼마나 많겠니?



골리앗 머리통도 아니고, 그야말로 새 머리보다 조금 더 컸을 

작은 머릿통 속의 골이 기억 하는 그 양이.


닭,

꼬꼬 닭을 키우자.


가금계의 제왕이 되는 그 날까지.

음 핫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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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반들 반들 잘 난 예쁜 가마솥들.





                          

                             귀엽고 예쁜 미니 가마솥들.







가마솥에 담긴 음식들이 아주 잘 어울리는.







부뚜막들이 예쁘고  멋진 가마솥들.








한국에 가면, 온돌방 구들장과 함께, 

제일 먼저 꼭 만들고 싶은 

가마솥과 황토 부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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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은 새하얀 색이다.

한산지.

새하얀 모시옷. 



여름날이다.

그 새하얀 한산지 모시를 생각하고 싶은 날이다.













가장 앙증스럽고 귀여운 이런 색들의 조합으로부터












모시에서 뽑아 낼수 있는 가장 고운 이런 색들로까지
















새하얀 색이 우리에게 줄수 있는 그 영감의 양은 무궁무진들 

하기도 하다.


새하얀 흰 색이 많이 그리운 한 여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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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 며칠 흙 집에 대해 정말 많이 많이 독학하다.

모든 것들이 다 자기 머리 누일 집들을 스스로 짓는다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다.

하기야 아프리카 마사이 어머니들이 나뭇가지들을 얼기 설기

요리 조리 교묘히 얽고 그 위 풀들이 들어 있을 소 똥을 잘 이겨

섞어 밟아 치대어 짓는 집들은 요즘 한국에 유행하는 둥근 황토

흙 집들보다 훨 컸다.



내가 무언가를 이 정도 사모하면 난 언젠간 그 일을 치루어

내고야 만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궁이, 구들, 흙 집....이 너무 마음과 가슴을 핡고 다녀서

내가 이길 것을 요즘 난 거의 짐작해 내고 있다.



고향 마을 어딘가에....아니 남향의 햇살이 따스히 들어 오는 곳,

소나무 노송 고목을 건너다 보는 경관에, 맞바람이 펑펑 훨훨

불어 오는 어느 여유로운 한 뙈기 밭에, 소나무 밭에 난 아마

그 자림새를 틀 거같다.



진돗개 백구 2 마리의 꿈과, 달걀을 굴려 내는 다섯 마리의 

씨 암닭들과, 노란 작은 병아리들이 줄들을 서서 달리고,

수술 달린 근사한 장 닭이 내 머릿전과 가슴을 스산히들 

지금 분주히 어지럽게들 맴돌고들 다닌지 여러 날이다.



콩기름 잘 먹인 장판지가 내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 내리고,

설설 끓는 구들이 나를 자꾸 눈을 감기며 잠겨 들게 한다.

뜨락에 핀 흰 봉숭화에 채송화, 접시꽃들이 한지 비단보다

더 곱고, 앵두에, 단감에, 석류에, 유자가 내 고향을 가져다

준다.













노랑 창포와 흰 꽃들과 새 색시의 한복같은 과꽃과 백일홍의 

정서 속 어느새 나는 내 고향 집에 짐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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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하기 싫고....비는 몇 일 뜸허니 안 오고 잠잠하고 허야

토욜 텃밭으로 종종.

올 캘리포니아 겨울 배추 농사 첫 시도는 대 성공.

그야말로 배추와 무우,갓이 아람들이들 크게들 커 자라 오르고들 있다.







초록이 나물들 한 바구니 수확,

소금물에 파랗게 데쳐 뭉치니 약 20죽,

냉동 시키고.



 구덕을 파니 난데없는 고구마가 버글 버글 나온다.

저녘 집에 돌아 와 고구마 튀김을 한 바구니해 

'보고 싶다' 의 박 유천의 미모를 감탄해 하며 신나게 영화 감상.

21회까지 완결해 다 봄.



자아알 한다.

시험이 낼 모랜데 하라는 시험 공부는 안 하고.....

난 공부 싫어 시험 싫어다.

난 텃밭 가꾸고 사는게 가장 좋은 한국 여인넨데...... 

제길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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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켈리도 지금은 추워요. 아주 추워 독감이 창궐해요.

밤에는 나도 종종 오한을 깊이 자주 느끼고, 집에선 플리스 성탄 잠옷

들을 켜켜히 껴 입고, 뜨거운 커피와 차를 자주 자주 홀짝 홀짝 금붕어

만큼씩이나 자꾸 마셔 댄답니다.




3개월만 처음으로 남동생과 연락이 되고.

3개월의 문명의 이기를 끊는 어려움의 고난이여.


감사와 기뻐함을 동생이 가르쳐 왔고 

요즘은 이 두 가질 많이 생각해요.

감사 한다는 것.

기뻐한다는 것.



기뻐하는 남동생을 발견하구선 제 어깨의 짐이 내려졌습니다.



공부?

우라질 공부는 지금도 여전히 어렵고....

선배 오빠한테 기집얘가 말 이쁘게 안 쓴다고 꾸중 들었음.

우라질!! 이라 욕하구선....


난 아산만 갯펄 근처 마을에 가 살 꿈들만으로 

늘 멍하니 앉아들 있고 그렇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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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안 영 내키지 않는 어떤 일을, 그런데 꼭 해야만 하는 그런 몇 일들을

하러 보러 나가다 눌러 앉아 그것들을 지금 회피하고 이렇게 하염없이

앉아만 있다.



나는 지금 이 아이만큼이나 이 실제적인 해 치워야만 하는 일들이

하기 싫고 식겁하고 식상하다는데에 그 큰 문제들이 있다.

왜 남들은 훨훨 털고 나가 잘들도 마음 편히 헐헐 잘들도 살더구만.

왜 넌 그 어려운 선택을 그렇게 잘 못하는 거니?


왜 그렇게 애를 쓰며 남는거도 없는 삶을 그렇게도 허덕이면서

살아야 했는지 알 길이 없다고 어느 산으로 들어 간 자연인이 쓴

말에 난 내 마음 안의 고개들을 끄덕이고 끄덕이고 또 끄덕였다.

뭘 그리 대단한 일들을 다 그리들 하겠다고들......


그 야단 법썩들을 떨며 살아온건지 나 원 참 !!

뭘 위해 헐훨 털고 일어 서지 못하는 삶인 것이냐?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나 늘어서 있고





                       산국과 감국의 향기가  산등성이들을 휘감는,

                       하얀 옥양목의 조선 베개를 그래서 그렇게 가득

                       채워 그 향으로 취해 잠들고들 싶다.



흙으로 이렇게 훨 더 작지만 비스무리하게 생긴 집을 꼭 내 손으로 

한번 짓고 말겠다. 어릴적엔 다 들 이런 집들을 짓고 살았고 내가 

일하던 마사이들은 다 이런 집들을 여자가 손수 짓는데 왜 오늘날 

우린 절대 이런 일들을 여자가 할수 없다고들 쉽게 생각하고 포기해 

버리는지들 잘 모르겠다.


나는 내 손으로 흙 집 한 채를 꼭 짓고야 말겠다. 

어느 날엔가는 꼭 한국에 돌아 가서.      

그리고 그 집에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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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이 근사한 가마솥 아궁이를 또 지네집에 만들어 또 나를 한국 

가고 싶어 눈물 짓게 만들었다. 나쁜 놈 !! 늘 뭘 너무 잘 만들어 

시골에서 예쁘게 만들어 가며 날 약 올리고 화 나게 만든다. 

손 재주는 왜 또 그렇게 천재적인지.....그 재능이 너무 부럽고

짜증이 팍팍 나는.


난 이렇게 우리 나라 시골에 살고 싶어 감질이 날 정도로 병이 날 

정도로 살고 있는데도 가지도 못하고 이런 낯선 이방 땅 이국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살고 있는데....


너무 부럽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 한동안 절대 걔네 방에 가 

포스트들을 읽지도 잘 않고 자제하며 힘들어 하며 견디었는데....

또 한국 가고 싶은 마음을 크게 한번 자극 시켰다.


거울도 이쁘게 만들고, 가마솥 아궁이도 너무 이쁘게 만들고,

전신주 와이어 감는 통으로 테이블도 너무 이쁘게 짠! 만들어내 

버리고, 난 지금 심통 팥쥐나 신데렐라 언니쯤 되는 왕 짜증에, 

급 짜증 중


이게 모두 다 나물이 때문이다.

나쁜 퇴촌 아저씨.

나물이 이름을 나쁜 퇴촌 아저씨로 바꾸어야 한다.

나를 향수병 나게 하는 나쁜 퇴촌 아저씨다.


저 둥근 검은 기왓장 옆 이젠 내가 그토록 씨앗을 찿으러 헤메던

그 곰취까지 심겠단다. 

아이고~ 나물아! 왜 그러니?

날 아주 잡아 잡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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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한국 시골에 가 살면서 이런 가마솥을  서 너채 부엌 안 가지고 싶다.

가장 큰 가마솥은 안방 구들로 들어 가고, 중간 크기는 건너방으로,

가장 소형 국거리 가마솥은 뒷방으로 들어 가게 하고 싶다.


   

                              이런 활활 타는 장작불을 위해



집 한켠 팬 장작을 바리 바리 모아 처마끝이 닿도록 모아 겨울이면

청동 화로에 담은 장작불 숱에 밤을 굽고, 둘러 앉아 한없는 상념에

젖고 싶다. 떠꺼머리같은 장작을 패 줄 종놈 삼돌이 같은 낭군이 아닌

머리가 비지 않는 생각할수 있는 똑똑한 지성이 번뜩이는 그런 

사내가 있으련 좋으련만....없으면 관두고 냅두라 그러고.


 

     둥근 장작은 모양새 쯤이나 비상으로 거기 또 그렇게 많이 모으고



여름 마당에는 이런 작은 양은 솥과 아궁이를 걸어 천렵을 해 온

미꾸라지, 붕어, 장어, 호박, 양파, 미나리, 쑥갓등을 넣어 매운탕을

끓이고



그리고 나 석유 부어 이런 호롱불을 밝히고 겨울녘 밤 음충스레

울어 대는 부엉이 울음 소리를 들으며 집 뒤 대나무의 스산한 바람 

소리를 창호지 문새로 떨려 들어 오게 들으면서, 






거기 앉아 그렇게 바느질을 하고 싶다. 탄탄한 광목 천 흰 봉숭화며

흰 금낭화의 예쁜 수도 놓고, 베갯잇도 이불 호청끝도 그 꽃들로

장식해 바삭 바삭 풀을 먹여 설설 끓는 구둘장 방에 호젓히 눕고프다.




캐나다 친구 와렌 녀석이 동편도 가장 끝 험악이 외떨어진 섬에서 

혼자 그렇게 쪼그랑 망태기로 늙어 가면서 오늘 이런 포스트를

보내 왔다. 


아 됐다고.....

알았다고. 

니나 잘 하라고.  


이런 Daydream들이 자주 늘 우리의 소명과 부르심이 된다는 

그런 저런 딴의 캐나다, 미국 코쟁이들의 하소연들이 박힌 

니가 원하는게 뭐니? 그럼 가서 그냥 그걸 해! 그러면 그게

너의 부르심이고 소명이야 하는 따위의....


나 이제 내 고국 내 땅으로 그렇게 돌아 가 이렇게 살고프다.



포스팅을 한 후 읽다 보니 어린 시절 할머니가 사시던 흰빛

회색빛 고운 기와집 크나큰 대청의 부잣집을 산 어린 소녀로의

나의 기억이 거기 다 고스란히 묻어 있네.  


기억이란 다 무엇일까? 그리고 내 땅, 내 문화란 어찌 이리도

큰 힘을 가지고 우릴 이 세상 어느 땅끝에서도 이토록 힘세게

잡아 당겨 가는 걸까?  오십 하고도 사세를 산 이 나이에도 

내 땅, 내 문화는 살아 있는 숨결이 되어 날 이렇게 불러 대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