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래도 널 사랑해'에 해당되는 글 50건

  1. 2014.03.26 Reflection. by 텃밭지기와 상담
  2. 2014.03.15 어느 한 제자의 결혼에 즈음하여. by 텃밭지기와 상담
  3. 2014.03.12 엄마의 상여가 지나던 길. by 텃밭지기와 상담
  4. 2014.03.06 Reversed Cultural Shock....갓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by 텃밭지기와 상담
  5. 2014.03.03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 by 텃밭지기와 상담
  6. 2014.02.24 이 대책 없는 7080 베이비 붐머 세대 by 텃밭지기와 상담
  7. 2014.02.22 안 현수가 빅토르 안이 되기까지.....있을 때 잘 할 일. by 텃밭지기와 상담
  8. 2013.11.28 추수 감사절 장 보러 가기, 그리고 게으름 피기 by 텃밭지기와 상담
  9. 2013.11.18 전인적 (Wholeness) 건강. by 텃밭지기와 상담
  10. 2013.11.12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Where I Am At?) 를 잘 돌아 보는 삶. by 텃밭지기와 상담
  11. 2013.10.11 인생 살이 by 텃밭지기와 상담
  12. 2013.10.08 모짜르트와 여러 시간을 by 텃밭지기와 상담
  13. 2013.10.05 중은 제 머리를 못 깍아도, 심리 상담사는 자신을 회복 시키는 법을 by 텃밭지기와 상담
  14. 2013.09.27 이런 저런 외양에 관한 이야기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15. 2013.09.24 내 뱃 속에 팔랑이는 수 많은 나비들. by 텃밭지기와 상담
  16. 2013.09.23 Celebration 세대. by 텃밭지기와 상담
  17. 2013.09.19 내가 벙! 찐, 어제서야 안, 추석은 바로 오늘이라는 사실 by 텃밭지기와 상담
  18. 2013.09.17 짐승도 죽을 때가 되면 제 땅, 제 장소를 찿아 되돌아 간다는데 by 텃밭지기와 상담
  19. 2013.09.16 건강 한번 다시 챙겨 보기 by 텃밭지기와 상담
  20. 2013.09.14 죽은 막둥이의 XXX 누나 by 텃밭지기와 상담
  21. 2013.09.13 영향과 변화.....그리고 나에게 있어 커피란 by 텃밭지기와 상담
  22. 2013.08.25 응급실에 갔는데 돈이 없을땐 이렇게..... by 텃밭지기와 상담
  23. 2013.08.22 토끼띠들이여! 다 내게로 오라!! by 텃밭지기와 상담
  24. 2013.08.22 엄마 난 그게 필요한게 아니었어요 by 텃밭지기와 상담
  25. 2013.08.20 가난=수치라는 거짓이 나에게 정착된 사건 by 텃밭지기와 상담
  26. 2013.08.19 까뮈의 이방인의 by 텃밭지기와 상담
  27. 2013.08.17 도통 되는게 하나도 없어요....낭만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낭만 by 텃밭지기와 상담
  28. 2013.08.15 에휴, 이 놈의 인기는....에공 저 놈의 착각은 !! by 텃밭지기와 상담
  29. 2013.08.14 호불호와 회색 Gray Zone by 텃밭지기와 상담
  30. 2013.08.09 웬 난데없는 늦잠? by 텃밭지기와 상담


고국 가는 비행기를 타러 나가기 전, 차분한 하루를 아주 잘 보내고

있다. 어제 저녘까지 그다지도 애를 먹이던 차 문제는 그냥 나에게

많은 도움을 이래 저래 준 한 사람에게 이양.


너무 좋아 춤을 출듯 웃음이 벙실 벙실 그 사람은 내 차를 몰고

사라지고, 나의 뒷 골 땡기던 혈압은 급기야는 내려 갔다.



그리고 오늘은 차분히, 조근 조근, 온 집을 광 마지막으로 내고,

향기 좋은 방향제 뿌려 집을 왼통 반짝 반짝 정리하고, 은행 가

쓸 마지막 경비들을 쓸어 담아 오고.



난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는가?

북미에서는 14년, 이 미국에서는 12년을 어언 살았다.


난 거의 지금 아무 감정이 없이 아주 무덤덤한 상태다.

난 이제 어떤 대륙을 떠나 어딘가로 옮긴다는 것에 대해, 

그 아무런 감정들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돌아 다니며 산 삶에 나는 지쳐 있는 것 같다.

이제 저녁 나를 공항으로 데려 갈 신혼 부부 제자를 기다리면서,


나는 아주 오랫만 4층까지 올라온 크나큰 고목 나무들이 장관으로

우거진 내 별장 같은 팬시하고 멋진 내 로프트에서 아주 정말 오랫만

그 싱그러운 봄의 초록 잎새들을 아주 오래 오래 지켜 보며, 마지막

으로 켈리의 봄을 만끽 했다.


왜 이 아름다움들이 지난 몇 달, 몇 년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을까? 도 나는 생각해 보았다.


생존의 험난한 싸움들의 연속이 그 이유들인 것 같다.



다시 돌아 오고 싶냐?고 많은 이들이 지나가듯 가볍게 자주들

묻는다. 난 반사적으로 고개를 늘 절레 절레 양 좌우로 심하게

흔들어 대는 날 아주 아프게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는 곳.

그만큼 살기가 팍팍하고 힘든 도전이었던 것이다.

생존의 도전은 이젠 아주 지겨워서.


그래 난 오늘 저녁 공항을 나가, 내일 새벽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홀가분하고, 날을것 같은 자유로움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나는 아주 이른 나이 일찌기 타계하신 한 수녀님을 자주 생각한다.

그 분은 어느 날 나에게 이야기 했다.


 아주 절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수녀복을 입고 가 앉아 있는데,

참 어색하고 안 어울리는 분위기 더라는, 한 들으며 마음 아팠던

코멘트였다. 그 당시엔.


그리고 그 분은 우리 주님을 뵈러, 아주 이른 나이에 그렇게 

병으로 타계 하시면서, 그 수도원을 영원히 떠나셨다.

영원히 돌아 오시지 못 할 아주 먼 길을 그렇게. 



나도 평생을 얘들을 가르치고, 상담들을 해 주고 하다 보니,

늘 결혼 초대가 잦다.


오래 나에게 상담을 받은, 아주 가슴과 마음이 따스히 살아 있는,

참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제자 하나가, 어느 겨울 철, 남자 친구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 소개 해, 많이 축복해 주고, 격려해 주었었다.


이번 5월 걔들이 결혼을 하는데, 나를 자신의 엄마처럼 여긴다는

그 제자는, 이 나의 이른 귀향으로 그 결혼식의 불참이 너무나도

지금 슬프고도 또 슬프다.


6월엔 평소 정말 친 자녀처럼 따르던 아이의 6월 대학원 석사

학위 졸업도 있어, 이대로 다 그 필요들을 만나 주려면, 난 영원히

내 고향에 돌아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혼식 참석은 특히 그 수녀의 고백처럼, 나도 참 애매 모호하고

맹숭 맹숭한 한 참석이다. 결혼 안 한 나이든 스승이, 어린 제자들

결혼식에 가 어울리기가, 영 늘 나는 별 마음 편하지가 않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나라의 그 특이한 내가 평생 가야 절대 잘 이해가

어려울, 노래방이라는 것의 존재나 그런 것과 나에겐 마찬 가지로,

이질감 크게 느껴지고, 생소한 그런 한 장들이다.


그 우리 나라의 뒤틀리고, 부풀려진 술 문화나, 나에겐 그런 영원히

나와는 화해 못 할, 몇 장들이 한국에는 상당히들 있다.



술에, 담배에, 계집질들에 그런 곳에 노출된 남성들이 나는 천길

만길 저 낭떠러지 밖의, 나의 생활권 안에 영원히 못 들어 올

그런 남성관들이듯, 


우리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나라의 많은 영역의 문화

들에 영원한 외계인이다. 별에서 온 그대가 바로 나.


내 후배들은 늘 웃으며들 그렇게 농지꺼리들을 해 댄다.

우리 언니의 남성은 이 땅엔 절대, 전혀 존재 하지 못 하고, 

저 하늘에만 영원히 계시고 존재 하실수 있는 그 어떤 분이

시라고.


술 냄새에 우수수, 담배 냄새에 우수수, 성 중독들에 우수수,

그렇게 나의 많은 남성들은, 추풍 낙엽식으로 우수수들 그 자격

들에서 미달로 떨어져, 이 세상, 이 땅에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상대들인 것이다.



거기에다 더 한 술 더 떠, 그 들은 지도력의 카리스마가 있어,

날 잘 리드해 주어야 하는, 영적 성숙이 절대 없으면 안되고,

그 영적 성숙은 절대 나보다 더 위여야 하고, 그 들은 온유하고

유해야 하는,

 

그런 별에서나 옴듯한 나를 비웃는 우리 후배들의 농지꺼리

들인 것이다.


그래 우쩌라고 나한테.

난 그런 별 기준도 못 가지냐?

그게 어느 위성 별 그대 수준이면, 그 별에 가서 만나면 되지 뭐.



그런데 그런 남성들이 세상엔 종종들 있다.


그래서 내가 늘 먼저 사랑에 빠지곤 했는데, 나중 정체를 드러내

보면, 그 사람들은 거의 다 카사 노바 아니면 바람둥이들.


여자들을 여기 저기서들 크게 조용히, 은밀하게 작살들을 내는

우라질 망한들이였다. 늘.


그래 더 이상은 기대도, 뭐도 없는.

내가 좋아 하면 다 위험 하더라는 자포 자기에 난 이르른 

한 이상한 별에서 온 그대인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나는 오늘 문득 엄마가 자연으로 가던

그 상여 밑 자욱히 피어 있던, 그 작은 푸른

3월의 봄 꽃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진다.

 

죄인이라 입어야 한다던 성긴 노란 삼베 상복에,

머리에는 굵은 새끼줄을 두르고, 오열로 걷던

우리 4 남매의 그 3월말의 봄 날들을 이렇게

문득 떠 올려 보는 것이다.

 

엄마가 가장 남기고 감이 서럽고, 시리던

우리 막둥이는 그 엄마를 따라서 그렇게 갔고,

우리 남은 3 남매는 이 삶의 마지막 장들을 혼란

스러워 하면서, 이토록 헤메고들 있다.

 


강산이 세 번을 변한다는 30년은 우리의 극빈을

바꿔내지 못 했고, 이 강산이 세 번 변하는 긴 시간

뒤에, 그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맨 몸으로

서로 마주 대하는 우리 3 남매는, 지금 삶에 대해

당황스러워들 하고들 있다.

 

그러나 그게 거의 모든 이들의 삶의 모습인 것을

또한 우리는 겸허히 그렇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조금 더 누린 자도, 더 가진 자도, 그 내면은 늘

그렇게 텅텅 비어 덜커덕 거렸음을, 우리는 우리의

가지고, 누렸던, 부한 조상들에게서 이전 적나라하니

보지 않았었니?

 


누나인 나는 이렇게 우리 두 남동생들을 위로

시키고 싶다.

 

괜찮다

너무나들 잘 했다

나는 너희 둘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 할 수 없는,

이 세상서 가장 소중한 나의 두 남 동생들이라고.

이 누나가 내 땅, 내 조국으로 이렇게 새삼스럽게 돌아 가는,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너희 둘 때문이라고.

 

이미 늦어 버린 우리 막둥이에게 못 베풀어 준 그 사랑을,

엄마가 일찍 가면서, 못 다 베풀어 주고 간 그 사랑을,

이젠 이 누나가 다 베풀어 주고 싶다


그렇게 날마다 이야기 해 주고 싶은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이번 꼭 10년만 한국을 간다.

11년 전 동생 죽어 한국 가고, 그 후 비자 받으러 1년 뒤 방문,

그리고 10년이 꼬박 그렇게 흘렀다.


처음 유럽에서 한국 방문시도 약 10년 만이었는데, 

반창고가 얼마인지 몰라, 간첩 소리 들을까 봐, 약국에서 

돈을 내며 참 불안 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의 인터넷이 한 달 얼마, 전기세가 보통 얼마, 

'돼지코'라고 하는 전기 플러그를 바꾸는 도구도 혼자 공부해

본다.


전기 기구는 그 아무 것도 안 가지고 가는 이유가 미국 110볼트

에서 220볼트 변압을 시키려면 도란스 변압기를 사야 하고등,

영국 살다 캐나다로 이사 했을 시 정말 복잡한 걸 배웠기,


랩톱을 제외한 전체 전기 기구는 안 가지고 가고,



내 나라 돌아 가는데 이리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복잡들

하다는게, 참 마음이 혼란스럽다.


31년만 가서 사는 삶은, Reversed Cultural Shock 이라고 

부르는 삶이 될 것이다.


내 조국, 내 고향에서 문화적인 충격을 계속해서 받고, 

느낀다는 한 슬픈 현상이다.



모든게 다 생소하고, 전기세, 인터넷 세에서 부터 서울에서

시골로의 대중 교통편등, 나는 홀로 독학을 계속 해 보면서,

정말 마음이 참으로들 복잡하다.


내 나라 내 땅에서 나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처럼, 그 아무 

것도 거의 모르는 바보 같은 존재로, 이렇게 돌아 가는 것이다.


많은 경우들에 울고 싶을 것만 같은 예감들이 들어 서들 오고.



아프리카나 시베리아, 유럽 각국들, 북미 각국들은 남의 나라니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이건 왼통 도시 내 나라, 내 땅인데,

나는 강산이 세 번을 바뀌고도, 변한 내 장소들에서, 이렇듯

모든게 다 모르는 것 투성이고,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게, 

한 솔직한 심정.


우라질.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어찌 하다 이런 삶을 살게 되었니?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어느 날 우리 사역자들이 만나 수다들을 떨고 노는데, 소위 말하는

어느 평 신도 자매가, 나에게 상담 받는 것 때문, 내 집에 와 있다,

우리들의 이 수다들을 다 조용히 듣더니 말했다.


"아! 이렇게들 다 들 보시네요. 그런 '아빠 어디 가'나 '별 그대' 같은

연속극이나 드라마들두요!!" 하곤 적잖이 놀라고, 충격을 먹은듯 해,

말해 주었다.


"우리 이슬만 먹고 사는 그런 사람들 아닌데요!!"

"난 우리 민율이 오래 못 보면 화가 나는 사람이예요" 했더니, 


아주 패역한, 한 타락한 하나님 일 하는 사람 보듯이, 나를 빤히 

쳐다 보며 웃는데, 이미 난 아주 판단 받는 한 사역자로, 거기 

전락하고, 추락해 있음을 난 귀신 같이 빨리 이미 알아 봤다.


그러든가 말든가.


우리가 한 인간임을 난 그렇게 잔인히 보복해 준 것.



문화, 엔터테인먼트의 부재의 배고픔은 우리 삶의 

한 큰 재미를 우리들 삶 가운데서 앗아가 버리는 그런 

고역이다.


요즘 내가 그토록 예뻐하는 '별 그대'의 우리 전 지현도, 

김 수현도, 거기에 한 술 더 떠, 우리 민율이도, 내가 좋아하고

예뻐하는 우리 조 승우가 '신의 선물'이라는 좋은 드라마를

가지고 나왔다는데, 나는 그 어느 것도 지금 못 보면서,

상당히들 내 내면서, 모든게 다 약 올라 있다. 



맨날 우리에게 예수 반쪽쯤은 되어 주어야, 만족 할까 말까하고

종용하고, 힘들게 하는, 이 세상 이들을 향해, 나는 그렇게 잔인히

그 들의 터무니 없는 인간 냄새 폴폴 나는 기대들을, 무자비하게

그렇게 깔아 뭉개준 것.


그러고 나니 십년 먹은 쳇증이 다 시원히 씻겨 내려 가는 듯

울화가 다 풀렸다.



영국 런던에서 몇 십년 전, 우리 런던을 대표하는 교회 목사들이며, 

사역자들이 어느 날 밤을 새워 '봉숭화 학당'을 깨득 거려 보면서, 

한 정신 차려 나온 목사가 말했다.


"이 모습 우리 교회 신도들이 보면 런던은 그야말로 난리가

나겠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난 속으로, 말 그대로

"엿 먹어라" 했다.


사역자라고 웃고 살면 안 되니?

봉숭아 학당 좀 보면서 웃으면 뭐 탈 난대니?


난 그 세상의 틀린 기대들이 우리들을 바리새인들로, 사두개인

들로 만들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이다.



정직하게, 진솔히, 맑게 그냥 살 일들이다.


성직자라며 거룩 거룩 간장병 옆 세지 마라고 세워 놓은 

흰 종이 말이 같은 높은 칼라를 뒤집어 쓰고, 야단 법석 주접을

떨어 쌓는 우리 중세 교회로부터의 성직자들에 대한 너무 빗나간

기대들과 요구들.


그리고 거기에 무서워 그렇게 따라 줘 가면, 진정한 거룩함과

성결됨으로, 우리 주님 안 경외 함(The Fear of God)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 보다는, 


사람들을 더 두려워(Fear of Man) 하는 그 외식들과 가식에

빠져, 앞으로도, 뒤로도 조금도 옴쌀 달싹을 않는, 독선과 고집

들에 박힌 융통성 없는 주의 사역자들, 성직자들을 계속해서

많이 창출해 내게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치 기준이나 세계관들이 진정한 진리에

입각한 바른 설정들로 다시 재 정리 되어 보는 한 작업은, 

조직이나 체제의 일이 아닌, 우리 개개인들의 정리 되어 져야 할 

한 작업들임을 나는 요즘 이렇게 한가로히 많은 시간을 내 보며,


우리 주님과 많은 시간들을 이야기 하고, 논의들을 하는, 조용한 

시간들을 많이들 내어 보며 그렇게 갖는다.   


이슬만 먹고 사는 이들도 절대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함께

살지만, 맑고, 깨끗하고, 정직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 보려고, 

그냥 노력하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예요. 우린. 




영어는 요셉을 'Man of Integrity, Joseph' 으로 부른다.

하나님의 동행함이 늘 나타나던, '정직함의 하나님의 사람, 요셉'

이라는 명칭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내가 더 노년이 가까워져 갈수록 되고 싶은, 

한 소망이 있다. 나의 맑도록 정직함으로, 그 분의 동행이 드러

나는 삶의 역사가 있는, 그런 장들이 내 앞날에 펼쳐져 있으면

하는 소망인 것이다.


사람을 두려워 하는 영성이 아닌, 하나님을 더욱 더 깊이 경외

하는 삶에 대한 갈망이고, 소원인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3-4달 분 밀린 기숙사비 담합을 미국 직원과 소통하고, 해결하고

돌아 오는데, 마음 안 드럽게도 많은 수 많은 감정들이 나를 심히

소란케 혼잡스럽게들 한다.


이 대책 없는 7080 베이비 붐머 세대의 참담함이고, 비참함이다.



"그래도 꾸준히, 조금씩, 정말 신실하게 갚으러들 계속 오시네요" 

하면서, 한 한국 직원이 머리를 90도로 조아려 예의를 표하면서, 


그 담당 직원에게, 나에 대한 많은 좋은 정보들을 부지런히 이야기 

해 줘, 이 난관을 겨우 넘어 서고, 집에 돌아 왔다.  


우라질 !!


"이 어린 얘들에게 지금 내가 이런 존경 받으면서 절 받아야 할 

나이인가?" 싶어, 삶이 심히 괘씸해진 시간들.



평생을 그렇게 자원 봉사자로 소 부려 먹듯 일을 시키고도, 

이런 책임 지지 않는 우리 일하는 기관을 보면서, 이곳 미국의

1.5세 청년은 처음,


"무슨 저런 책임 없는 나쁜 기관이 다 있어" 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나 같은 같은 일을 하러 떠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함을 흠뻑 맛 보고 거기에 적셔 지더니, 나중 나에게 마지막

만난 상담 셋션에서 고백하고 간 말이 더 나에겐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경험해 보니, 그게 더 나은 방법인 것 같애요.

믿음으로, 그 분을 신뢰 하면서 살아 보는 것이요.

인간들이나, 기관, 조직을 신뢰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믿고, 의지하며 사는 그 삶이요"



나는 그런데 요즘 그 분과 아주 사이가 좋지를 않기 때문에,

그 말에 막 반가워 하며, 바로 응수하고 반응하지 않고, 속으로,


"그게 과연 멋있는 삶인가 니가 한번 앞으로 직접 살아 봐라! 

날마다 돈 때문에, 재정 때문에, 피가 바싹 바싹 말라 가는,

이 우라질 놈의 부르심의 삶을.


난 지금 하나님도, 뭐도 다 귀찮고, 다 싫다" 하구선, 마음 속

저주들을 퍼 부어 대며, 먼 산 쳐다 보고 앉아, 뻥! 꽝! 하구선

반응해 줬다.


하나님께도 울화통이 쳐 밀고, 세상에게도, 교회들에게도 다

이젠 너무 지겹고, 힘들어서였다.




믿음은 낭만도, 아름다움도 그 아무 것도 결코 아닌,

처절한 현실이다.


이 대책 없는 7080 베이비 붐머 세대가, 하나님과 티격 태격

이렇듯 화해하지 못 하고, 씨름하다, 레슬링 하다, 이 얼어 죽을

놈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헤쳐 나가는, 


한 못난이 삼총사 인형 같은 표정들이 선연히 거기 담긴 

한 수채화 같은 존재들이다.


왕 밥맛.

왕 재수.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나는 어쩌다 이 안 현수 선수라는 이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의 

사정을 듣게 되었지만, 이 선수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늘 

짠하다.


그것은 이방 땅들에 나와 우리 나라를 뒤에 놔 두고 살아 본 이라면, 

누구나 느낄수 있는, 그 원초적인 그리움과 향수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오늘 러시아의 빙상 협회 회장이 하는 인터뷰의 내용이, 나의 귓전을 

하루 종일 쟁쟁 울리고 다닌다.


"한국은 좋은 선수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 줘야 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이 장난감이

너무 많으면, 가지고 놀다 금방 싫증을 내 버리는 것과도 같죠"



있을때 잘해 주라는 인간 관계를 다시 문득 떠 올리게 하는 멘트인 

것이다. 스포츠나 예술에는 이 복잡한 인간 관계들이 늘 더 얼키고 

설키는, 정말 단순하지 않는 한 영역들이다.


무대 종합 예술을 하는 무용수들, 랩퍼들, 음악인들, 연기자들을

사역에 들어 가, 날마다 수 십명씩 상담 하던, 하와이에서의 몇 년간의

경험 도중 난 그걸 알아 냈다.



사람은, 인간 관계는 있을 때 정말 잘 해 주어야 한다.


떠나고 나서, 금 메달을 하루에 두 개나 따서, 난데없는 한국인

얼굴 가진 이가, 우리 연아의 금 메달도 편파 반정으로 훔치듯 

가져간 러시아에, 


그 귀하다는 금 메달 세 개를 다 고스란히 가져다 바치니, 

우리들 마음 속에는 그야말로 만감들이 교차하고 다니는 것이다.



불쌍 하기도 하고, 혼란 스럽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었던들, 지 나라에 있지, 왜 저딴 나라로 

귀화를 해서는 !! 등 등,


"저 이가 완전히 늙어 저 빙상 경기를 못할 때는 한국으로 돌아 올까?

아니면 쓸쓸하고, 외로운, 우리 고려인 노인들처럼 저 차갑고, 엉망인

러시아라는 요상한 나라에서, 그렇게 쓸쓸히 그 최후를 마칠까?" 등의,

많은 질문들과 의문들이 내 마음을 혼잡하고, 혼란스럽게들 스치고 

지나들 간다.



그러나 안 현수, 빅토르 안은 말한다.

"나를 알아 주고, 경기 할수 있는 조건을 제공해 주는 나라에 있고

싶었다"고, "편파 싸움이 있었지만, 그게 직접적인 귀화의 이유는

아니었노라"고.


내가 우리 나라로,  이 미국의 영주권과 시민권을 베풀어 주면서,

이 나라를 위해 한 게 많으니, 많은 혜택들을 주겠다는, 이 미국 

이라는 나라를 마다하고,


우리 나라로 돌아 가는 건, 내 이 일 동안, 계속 나를 35년간 돌본 

건, 다름 아닌 우리 나라, 우리 땅 사람들이였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 관계들은 늘 이렇듯, 있을땐 귀한줄 모르고, 시달리게

하고, 냉대하다, 어느 날 문득 닭 쫓던 개 지붕 쳐다 보는 격의,

회한과 통탄을 금치 못 하는, 인간사의 비일 비재함들이, 늘 우리

곁에는 이렇듯 존재 하는 것이다.



안 현수는 자주 그런 생각들을 할 것이다.

"이제 보니?"

"있을 때 좀 잘 하지 그랬니?" 하는 마음 아프면서도, 시린 멘트들을

자주 마음 속들 날릴 것이라 난 생각 한다.


사람은, 인간 관계는 곁에 있을 때 잘 할 일이다.


가 버리고, 떠나 버리고, 상대편이 마음 안 독한 맘 한번 먹어 

버리고, 냉철 해지고, 싸늘하고, 차가워져 버리면 그땐 이미 

물 건너 간 관계들이고, 인간사인 것이다.



난 오늘도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섭하게, 소원하게 하고 

있는 이들이 없는가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게 된다.


그 이름도 해괴한 쌩둥이 러시안 빅토르 안으로, 개명도, 국적도

바꿔 버리고, 안 현수를 버려 버린, 그 한 한국 사람의 삶을 멀리서 

지켜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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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폭설에, 강풍에 영하 10도를 이미 오르 내려 서민들 살기 

참 버겁고, 힘들고, 어렵겠다 싶어 마음이 아픈데, 


추수 감사철인 오늘 이곳 켈리는 지금 하늘이 쨍! 갈라 지도록 

아름답게 맑고 청아한,


유리창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 보노라면, 초록 아람드리 창 밖 

나무를 내다 보노라면, 천상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구나! 싶은 

한 좋고, 아름다운 늦가을이고, 초 겨울이다. 


웬지 혼자 누리기 너무 미안한, 우리 나라 그 추울 걸 생각하면.





손님이 저녁 와, 추수 감사절 장을 보러 나가야 하는데, 만사가

다 귀찮은 그런 날이다. 그냥 누워만 있고 싶어지는 이상한 날.


그냥 장 보지 말고, 집에 있는 것들로 간소히 차려 먹을까도

생각해 보는, 유혹과의 몇 시간의 생각의 싸움 중이다.




이러다 저러다 보면, 거의 난 나중 오후쯤은, 장 보기를 거의 

포기하고, 집의 재료들로 요리들을 늘 시작하곤 한다.


늘 내 완벽 주의 병이 도져, 손님이 오면 그렇듯, 완벽히 준비

하고 셋팅해, 앗쌈하게 떡! 차려 벌려 놔야 근성이 풀리는, 

이 완벽병 퇴치를 위해서도, 


이 게으름을 용서해? 말아? 하는 갈등의 싸움 중 .





한국 가 살게 되면 폭염, 혹한, 폭설등을 맞을 때, 이 켈리의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이 가을, 겨울 날씨가 무지 자주 그리울 

것만 같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어젯밤 다시 많이 아팠고, 몸이 웬일인지 전부 무너져 가는 듯한 아픔,
가슴을 쥐어 짜 내는 듯한 내면의 고통 때문, 그 고통의 원인들을 하나님이 감싸 안으시길 기도하며, 동생들까지 같은 기도를 했다. 

깊은 기억 속 함께 아플 가족들의 옛 이야기들에 대한 무의식들 속의 
마음의 고통들이 다 되 살아 나와, 그렇듯 온 영까지도 다 쥐어 짜는듯한 고통으로 나타난듯 싶다. 

참 흔치 않는 희한하게 드문 한 아픈 경험이다.


이렇듯 내면의 모든 것들이 다 무너져 버리는 듯한 위기감과 
함께, 간혹 '뱃 속의 많은 나비들이 팔랑이고 다닌다' 는 한 
영어 표현처럼,

무언지 모를 스멀스멀한 두려움들이, 특히 미래에 대해서, 
가끔 밀려올 때가 있다. 


나는 우리의 인지(Cognitive) 영역의 다룸들을 간혹 상담
에서 도입해 가르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가끔의 두려움
들과 불안감 들은 하긴 사실은, 이상한 일 당하는 것은 절대
아닌, 

인간 이라면 어느 누구나 이렇듯 가끔씩은 가지는, 당연하고
필요한 한 긴장(Tension)들 일 것이다. 우리 삶 안 이런 잦지
않은 긴장들은, 건강한 것이라고 나는 북미의 심리 석학들
에게서 배우기도 했다.


하나님이 우리들 모두에게 주신 감정들은 좋고 나쁜 것으로
분류되지 않는, 다 필요한 중성의 성격들인 것이다.
이런 극하지 않는 두려움과 불안은 우리를 보호해 줄 수도
있고.

세상은 화나 분노를 웬통 부정적인 것으로 억측해 간주하는
경향이 있지만, 화나 분노는 우리를 보호하는 한 수단으로도
가끔은 쓰인다. 적당한 균형과 조화가 잘 요구되어 나타나면
그건 절대 부정의 감정이 아닌.


단지 몸이 설설 다 죽어 가는 듯한, 모든 세포들의 그 아픔은,
주지하고 건강을 좀 잘 챙길 일이다.
건강의 공격에 노출된 위기의 육체적 연령이라는 한 사실은,
조금은 자주 귀찮고 성가신 사실인건 또 사실이다.

어느 지점, 어느 장소에 가 시작할 일은 아닌, 이곳에서부터
삶의 패턴들을 잘 조절하고, 신경 쓰며, 챙겨야 할 일들.

산책하고,자연을 챙겨 먹고, 움직이고, 자주 활동하는 삶의
어떤 패턴들을 부지런히 활동 시킬 일이다.

이렇듯 주저 앉아, "어느 날, 어느 곳에 가면, 그 때 시작 
하지 뭐!" 하는 삶의 자세는 결코 건강치도, 또 정상도 아니다.


주위에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겪어 나가고 있는
그런 극단의 건강의 위협들이, 어느 누구에게 그 초청의 문을
방긋히 열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

그런 육의 연령들에 우리는 이미 도래해 있는 것이다.

마음을 평안히 가지고, 경쾌하고 즐거운 마음을 먹고, 산책
운동화를 꺼내어, 그 운동화 끈을 조이고, 가볍고 경쾌한 옷을
챙겨 입고, 이제 자연으로 나서자.

우울증의 한 치료와 회복을 돕는 방법으로, 나는 늘 클라이언트
들에게, 이 '활동하는 삶'을 자주 가르치지만, 정작 나는 이런 
암울해 지는 위기의 삶의 패턴들을 지금 이렇듯 맴돌고 있는 
것이다.

                           



'생각하는 지성보다, 활동하는 보통 사람이 되는 것'.
나의 지금 목표이다.

전인적(Wholeness)인 건강은, 우리의 영, 혼, 육이 관리되는 
건강한 사람이고, 그리고 그 들의 삶이다. 

잠시 이렇듯 생각하고 앉으면, 우리는 우리의 삶 안 많은 
건강한 해석들을 끌어 낼 수 있는 것을.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패배가 찾아왔을 때,

가장 논리적이고도 쉽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포기'다.

그것이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취하는 조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남는 이유다.

 

-나폴레온 힐

 

"포기하지마, 위대한 일에는 시간이 필요해."


                                                                Planet Dream 발췌.



무엇이 진정으로 위대한 일인지도, 

나는 요즘은 잘 모르겠다는게 한 솔직한 심정이다. 


평생을 모든 것들을 다 해 보고 돌아 와서의, 한 정직한 평은.


그러나 우리 삶 안의 끊임 없이 좀 더 보람이 있고, 잘 바르게 살고, 

꿈과 소망을 가지면서, 뭔가 새로운 영역들에의 선한 도전이 계속  

된다는 건, 


정신 건강 상에도 좋고, 건강 하다는 그런 정도만, 그냥  정직히 

그렇게 생각이 난다.


1200명의 사망자를 낸 이번 필리핀의 자연 재해에도, 나는 더

이상 몸을 움직여, 그런 장소를 향해 나아 가는 일등에는, 별

동기를 가지지 못하는, 무딤 속에 요즘은 살고 있는 것 같다.


지난번 하이티 자연 재해 때는 나도 그 현장에 가 섬기고,

봉사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수업 도중, 모든 걸 만사 

제끼고 떠나는, 다혈질의 몇 한국인들이, 


그땐 약간은 정선 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그런 단순한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와 요동이 아닌 방법으로는, 그 곳에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었다. 


많은 것들에 무디어져 간다는 것은 결코 건강한 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도 나는 지금 직감하고는 있다.


우리 상담에서는 내가 지금 무얼 느끼는지 아무 무덤덤하고

얼얼 하다(numb)는 표현을 쓰면, 그렇듯 감정이 얼얼해져 버린 

저 뒤 편의 크나큰 아픔들을 다루고 나선다.


우리 인간은 무언가가 너무 아파 견디기 힘들면, 생존(survival)

본능과 방어 기전(Defense Mechanism) 으로 감정을 얼려 더 이상

느끼지 못 하게 해 버릴 수(Frozen Emotion)도 있고, 


이렇게 numb 하게 해 버릴 수도 있게, 신비스럽게 창조된

창조물들이다.


나를 끊임 없이 보고 잘 관찰해, 건강함으로, 회복으로 

이끌어 내 감은, 아마도 우리에게 우리의 삶을 신뢰 하심

(Entrusted by God) 으로, 


우리 삶들에 귀한 소명(Destiny) 들을 주시고, 이 세상에 

보내신 우리 주님께 대한 마땅하고 당연한 한 도리이기도 

할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오른쪽 신장과 손목 건초염이, 며칠 전 고추장 돼지 불고기가 급 땡겨

갑자기 구워 먹고 자 그런지, 자주 자는 도중, 그 아픔이 심해 지는게

느껴져, 그제 어제 소염제 두 알씩을 복용해 보며, 차도를 보고 있는 

중이다.




선배 언니는 간이 안 좋다고 진단이 나와, 자기 몸 무지 챙기는

아주 약은 언니인지라, 죽어 가는 소리들로 미리 엄살을 부리는,

그 언니 특유의 사람 조종하는 버릇이 난무한 글들을, 계속 FB에

올리고 야단 법석들이다. 그야말로.



한국이고, 전 세계적으로 무대 공연 예술 팀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종횡 무진 뛰는 한 언니인데, 젊은 지도자 얘들 잘 모으는 것 보고,

함께 들어 가, 춤추고, 예술 하는 얘들 하루 몇 건씩 돌아 가며, 

상담하며 돌본 적이 있다.



아! 그때 그 언니의 신뢰 하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이고, 머리

잘 굴리는 약은 모습들을 너무 많이 보면서, 참 사역 잘한다고

여기 저기 명성 나고, 톱 라인 리더들에게 조직이나 기관 알려

주고 힘 실어 주니, 인정은 받지만, 


                                    


저런 삶의 자세들은 정말 아니다! 하는 술수들을 너무 많이 보며, 

참 갈등하고,회의 하면서,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지혜롭게 가장 

알맞은 때를 찿아, 조용히 빠져 나온 사역이였다.




평생을 팀 사역들을 하고 살면서, 배우는 한 가지는, 우리가 

어디 만큼에서, 어느 때에 가장 지혜롭게 여기 까지다! 하는 걸 

잘 알고, 





십자가 앞에 겸허히 내려 놓고, 올려 드리고를 잘 하느냐에 따라, 

나의 이름도, 명성도, 인격이나 성품도 버려 지지 않을수 있는, 

한 현명한 지혜라는 걸 너무 늘 뼈저리게 느끼고 산다.



공공으로 단체의 음식을 사면, 코스코의 대량 궤짝들을 많이 

떼어, 태반은 자신 가정의 냉동고 속으로 갈비도, 불고기도, 

그 어떤 부식도 다 남게 넣어 버리는 양심등을 지켜 보면서, 



나는 절대 저렇게 사는 지도자가 되지 말자고, 얼마나 수 백번 

다짐 들을 하곤 했던가. 



결혼 생활에도 이 언니는 철저히 이기적이었다. 미국에 오래 

나와 살면서도 마른 포, 짜장등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은 다 

서럽장 가득 가득들 채워 놓고 사다 넣어 놓고 먹으면서, 

자녀나 남편들에겐 주지 않더라.



그들은 언니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의 가치를 모르니, 그렇게 

어렵게, 비싸게 구입한 것들을 먹일 필요가 구태여 꼭 없다면서,



이걸 보면서, 그러나 그 언니는 너무 잘 산다. 어디에서나, 

찿을 것, 뺄 것, 자기 권리들은 너무 철저히 이기적으로 잘 

뽑아서 그렇게 잘 챙기고 잘 사닌까.    




그런데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사실은 알아 주지도, 느끼지도

못 하는 양심 따라 살아 보겠다고, 발버둥 쳐 보는 사역자들은 

이렇듯, 가난에, 궁핍에 시달리면서, 젊은 지도자 얘들 볼 낯이

없을 정도로 생활들이 이렇듯 늘 구차 하다.



그래서 난 요즘 늘 생각해 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도대체 바르고, 남 해치지 않고 선하게 사는 

진정한 지침이며, 어떻게 살아야, 늙어 말년의 모습이 저토록 

구차하고 어렵게 사는 모양새가, 모든 하나님 일 평생을 하는

지도자들의 말년이라면, 


난 무서워서 저 일 못 이어 받겠다! 하고 우리 젊은 지도자들이 

나의 삶에서 그걸 보면 이게 무슨 하나님의 일에 덕이 되고 

보탭이 되는 과연 귀감인가? 하는 갈등 들이다.



이 세상은 어차피 우리 마지막 다다를 본향에 이미 이른, 그런 

완벽은 그 어디에서도 창출해 낼 수 없는, 우리는 그 한 도상에

선 자 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삶의 모습을 우리 젊은 지도자들에게 늘 보인

다는 것이 가슴 끝이 늘 시리고 모질게도 아프다.



저런 이기적이고, 술수와 요령에 뛰어난 정치 잘 하는 이들은, 

자기 건강들 그렇게들 잘 챙기면서, 명성이나 이름 훨훨 공중에

날리고 다니면서, 바닥을 기지 않고 잘들 산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하지 말라등의 진부하고 고루한

진리들을 굳이 꼭 이런 상황에 끼워 맟추지 않더라도,

진정한 하나님 앞의 내 진솔한 마음은, 



나는 이런 가난과 빈곤이 이젠 아주 sick 이고 지겹다는게, 

한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약고 머리 굴리며 날라 먹는 언니는, 늘 그렇게 잘 살고,

멍!한 정직하게 진솔하게 세상을 한번 살아 보자고, 모든 걸 건 

이들은, 하나같이 다 들 나처럼 이렇게 갈등들인 삶을 사는 걸,


늘 우리 사역자들의 삶 안 그렇게 보면서 느끼는 한 사항인 

것이다.



살아 봐도 살아 봐도 생은 참 쉽지가 않다.

영원한 많은 숙제들이고, 갈등이며 번민들이다. 

바르게 진솔하게 살아 보기가.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감성이 이는 이런 시간에는 글을 쓰던지, 클라식을 듣던지,

뭔가 작품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하는 때이고 시간이다.


가을 날씨 탓인지, 철 탓인지, 수년 전 나의 삶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음을 내가 많이 아프게 해 떠나 보낸 한 사람이

자꾸 셍각의 언저리들을 맴돌고 다녀,


Rachmaninoff 의  Liebesleid & Liebesfreud 를 들어 보다, 

나의 감정과 정서의 양에 차 오지 않아, 결국은 나의 영원한 

고향 내 모짜르트에게로 들어 가, 냅다드리 6 시간을 그의 

음악들을 듣고 나니, 이제 됐다.



모짜르트 이외에는 그 어떤 예술인도 나의 가장 깊은 영역의

정서들을 전혀 닿아 들어 오지 못한다.




그렇게도 내 옆에 와 있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한 차고 냉철한 Displine의 방편으로, 나는 그 사람을 

아주 아프게 그렇게 오지 못하게 했고, 6개월을 수염도 깍지

않고, 



낙엽 구르는 노지 벤치에서 발견 되기도 하고, 그렇게 밖을

방황하면서 많이 아파 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많은 이들이 권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따로 없고, 길 거리의

철학자가 따로 없는 형상으로 방황하고 다니기를 수 개월이니,

옆에 있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조용하고, 조심스런 권유들을 그렇게 매정하게 

침묵으로 일관 해야 했던 나는 안 아팠겠니?


그러나 그 사람은 그 과정을 거쳤어야만 한다는 걸, 난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나도 내 자신이 그렇게도 차고 무서워 질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리고 많이 아팠었다.


그 나라의 근경 도시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 건너 오지 못 하고,

나를 무서워 하면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했던, 지형학적으로

라도 조금 더 가까히 있고 싶어, 근경 대 도시에서 전화를 하던

그 목소리 앞에 나도 내 내면이 그때 함께 무너져 가고 있었음을,


이 모짜르트 음악들은 그때의 나의 눈물들을, 나의 가슴과 마음

안에 일렁이고 다니던 많은 생각들을 함께 있어 주던 이 세상 

유일하던 대상들이었다.


나의 모짜르트는, 나의 모짜르트의 음악들은 나의 어린 시절 

부터의 그 모든 이야기들과 눈물들을, 사랑의 이야기들과 그

공인 이라는, 지도자라는 짐과 책임들 떼문에, 


그 수 많은 것들을 그렇게 댓가 지불들을 했어야 하는, 나의 

연약한 육들을 세심히들 아주 너무 잘 안다.



그래, 오늘 나는 그 들과 여섯 시간을 함께 하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고 눈물 지었다.


사랑의 슬픔이라는 그 단어 속에 담긴 진중한 깊이를 그 어느 

음악도 그 묵직함을, 그리고 그 깊이의 내면을 따라 와 잡아 

주질 못한다.

Rachmaninoff 도, Martini 의 Plasir D'amour 도 역시 마찬 가지. 

그래도 나에게 영원히, 유일히 남는 한 존재는, 늘 모짜르트라는게 

늘 큰 위안이 된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지난 이틀간 아주 이른 저녁 9시 경부터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

그냥 그 생체 리듬대로 나를 대접해 주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이른 시간 자고, 새벽 6시 30분 경 역시 일찍 깬다.


옛날 노인들이 이렇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 나더니, 나도 초로의

증후군이 이제 서서히 나타나는 건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몸이 필요로 하는 그 생체 리듬을, 나는 당분간 그냥 그렇게 대접헤

주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나의 삶의 패턴을 허용해 주는, 관용을 

베푼다.



아주 이젠 쌀쌀한 가을 날씨의 이른 아침 날씨이다.

차갑기 그지 없고 싸늘한 이런 날씨가 계속 될수록, 나의 한국

시골 생활은 더 구체화 되어 내 뇌리들에 선명히 떠 오르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 하기도 하다는 걸 내 자신을 통해 

확연히 보기도 한다. 그렇게도 내 조국 한국으로 돌아 가겠다고

지난 수 년간 정말 그렇게도 학수 고대들을 하며 기다렸는데,


막상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움, 걱정, 어둡고 추운 

잔인한 장면들이 너무 많이 연상됨은 참으로 신기하다. 

이 귀향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는 늘 이상적인 것들만을 

그리도 그리워 했나 보다. 


아궁이, 구들, 가마솥 밥등등...



그런데 지금은 여름 폭염, 겨울 혹한등의 실제적인 모습들이

너무 잔인히 늘 뇌리에 떠 올라 오면서, 나는 요즘 심한 많은

이름하기 어려운 마음 앓이들을 그렇게 혼자 앓고 있다.


얼마전 5년만 동사로 발견되어 고독사 판정으로 가름된 한

여성이 옷을 위 아래 9겹, 7겹씩 껴 입고, 그렇게 5년을 죽은 

시신으로 집안에 홀로 남겨져 있었는데도,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그 집에 파리 새끼 하나 안 왔다는 

이웃 주민의 방송에서의 증거는, 이곳 교민 사회들에도 적찮은 

충격을 주어, 



우리 상담에 온 많은 내담자들이 그걸 운운들 하면서 눈물

들을 흘리고 자기 연민(Self-Pity)들과 동정에 빠져 야단들인

걸 다루느라 난 곤혹을 치루어야 했다. 


물론 나도 그들을 그렇게 사역해 보내고 난 후, 혼자 사는 

자로서, 거기에 따르는 감정 프로세스를, 잘 건강히 치루어

내어야 했었다.



중은 제 머리를 못 깍아도, 나는 심리 상담사로서, 내 스스로를

이렇게 잘 프로세스해, 잘 회복 시켜 낸다. 

기특!!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아직 나이가 어려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이른 시기에,

엄마는 늘 말 하시곤 했다.


우리 딸의 남편 될 사람은 조 용필처럼 키가 작으면 절대 안 된다고.

키가 작은 남자는 속이 밴댕이 속처럼 좁대나 어쩠대나?


왜 하필 조 용필이며, 조 용필 같은 사람이 생각도 안 하는데,

이건 또 웬 김치국이었는지도, 나는 눈 알을 껌뻑 깜박 거리면서,

우리 엄마의 이런 발상을 정말 의아하고 신기해 했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보니 신기 하게도 내가 커서 그런지, 나를 좋아 

하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다 키가 작고 마른 사내들이더라는.


난 뭐 딱히 이렇다 하게, 키 작고 왜소한 남자들을 좋아 하거나

선호 하지는 않는거 같지만.



한 남성이 어떤 여성상을 선호하고 안 하고의 많은 경우의 기준은,

농경 사회에서는 통통한 여자가 인기이고, 이런 산업화의 발달 이후엔

크고 늘씬한 여자가 선호 되는등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오기 쉽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또 어떤 다른 공통점들을 찿아 

낼수 있는 게, 대개는 나의 단점을 보완해 주는 다른 형들을 대개는 

종족 보존의 보상 심리들로 무의식중 바라 보게 된다.


키가 작은 남자들은 크고 듬직하거나 통통한 큰 여자들을 대체적으로 

선호하고, 키가 기린처럼 훌쩍 큰 남자들은, 아주 작고 귀엽고 앙증맞은

손 안의 작은 토끼 인형 같은, 작고 귀여운 여자의 스타일 형들을 좋아 

한다.


                                  


심리학에서는 1부터 10까지의 점수에 남녀가 만남이 얼굴이나 

분위기, 외양이 8~10까지 정도로 많이 잘 닮으면 대체적으로 

별 이렇다 할 문제 없이들 잘 산다고 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닮은 사람들과는, 별 이질감 없이 잘 적응하고 잘 산다는 심리이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젊으신 나이에 타계한 이후에도, 다행히 가왕 

조 용필을 남편으로 안 맞아, 엄마에게 단 하나 효도 해 드린 결과가 

되었지만.


"엄마, 편히 잠 드세요

조용필이 아직 저를 전혀 찿아 오지 않았으니"


조 용필,

떡 줄 사람은 정작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갈때, 김칫국부터 

미리 너무 벌컥 벌컥 들이 키신 우리 엄마. 


행동 늘 조신하게 행하고 별 그렇게 험하게 늙어 가지도 않고, 

잘만 하고, 잘만 살더구만. 그 남자 ??!!

우리 엄만 왜 그렇게 조 용필 알러지 였는지, 나는 아직도 

그 영문을 잘 알 길이 없고. 


조 용필 오빠 광 팬들 클럽에라도 알려지는 날에는, 우리 엄마 대신 

내가 몰매 맞아 죽는거 아닌가?


난 절대 그 사람에 대해 그런 편견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누누히

강조함.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엄마의 별 그렇다할 근거 없는 편견

이었음을 주지 하시기 바람.



우리 인간이 정말 병적으로 이런 죄악의 지경까지의 인간 가치를

외양이나 자기 시대적인 기준의 착오 속들 잘못 휘두르고 시도한

역사적인 시도들과 추구들은 끝들이 없이 많다. 


나치나 북한은 장애인 말살 정책으로, 그 들 시대의 기준에 부합되는

이들을 잔인히 대우들을 한 대표적인 인권 말살의 나라들이다.

함남 정평에 있는 ‘난쟁이 수용소’ 는 키가 극단적으로 작은 이들을 

격리 수용해, 남자는 정관 수술을, 여자는 아이를 못 낳게 한다고 한다.


                                    


우생학 Eugenics 은,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의 형성을

낳아,『칼리카크 가족』(The Kallikak Family, 1912년)과 같은 

가계도 연구를 통해, 범죄, 사기, 매춘, 정신 박약 등의 형질이 한 

가족 내에서 계속 유전된다는 것을 주장하다,  


나중, 범죄, 매춘 등의 사회 문제는 가난, 문맹 등과 같은 불리한 

사회 여건의 결과이지, 유전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학계의 주장으로

바뀌게 된다.



나치의 홀로 코스트 대학살은, 인종 위생 운동(racial hygiene)으로

흑인, 유태인, 동부 유럽인들을 인종적으로 구분하고 열등시하는 

정치적 운동으로 급속히 변질되다,



1933년, 선천성 정신 질환, 정신 분열, 간질, 선천성 맹인, 

심한 알코올 중독, 헌팅턴씨병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도입된 

강제 불임법이 통과 되고,

 


1937년 모든 독일 유색 아동들을 대상으로 확대 되어 나치 말기 

까지, 약 350,000명이 생식 능력을 제거 당하는 비 인간적인

과정의 시행 착오를 거듭하다 결국 도태된다.



고대 그리스 시대, 플라톤(Plato)은 자신의 책 『국가』(Politeia, 

기원전 374년)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시켜야" 하며,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양육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내다 버려야 하며, 고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린 자와 천성적으로 부패한 자는 죽여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인 캄파넬라 또한 

태양의 도시』(City of Sun, 1623년)에서 "우월한 젊은이

만이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한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는 영국의 17세기 한 때 귀족

들이 이런 극단적으로, 비 정상적이게 작은 사람들을 장난과 

유희의 대상들로 무대에 올려 쇼를 열어, 구경하곤 하는 아주 

비 인간적인 풍속도의 괴물쇼를 만들어 내는 판국, 


결국은 그런 뒤틀리고 기형인 사람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스페인 

사람들이 아이들을 영국 런던의 빈민촌들에서 수 없이 유괴해다,



붕대등으로 나무 분재들처럼 동여 매고, 양육을 방해해, 밥을 굶기고 

하는 아주 잔인한 양육들로, 그 기형 양육 도중, 수 많은 어린이들이 

학살되어 생 매장 당한다. 


그 들이 늙으면 요즘 유기견들처럼 버리는 판국에 큰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었으니, 이것을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어린이 매매단'

이라 부른다. 


우리 인간이 그 죄악상의 취미나 기호들을 얼마나한 영역까지 

잘못 갈수 있는가의 한 부끄러운 실예의 경우가, 이런 콤프라치코스

(Comprachicos) 같은 경우라 할수 있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의 저서 '웃는 남자'(The Man Who Laughs 1869)의 

주인공은 실제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인물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려 졌다.

 



이밖에도 '배트맨'의 악당인 입이 찢어진 조커,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난쟁이 요정도 콤프라치코스를 모티브

로 했다는 분석이다.


우리가 이 인간의 외양에 관한 가치들을, 그 내면의 영들과 어떻게

진리에 입각한 바른 가치관들을 정립하고, 마음 안, 삶 안 간직하고

잘 살아야 하나를 혼자 한번 공부해 보다, 여기까지 한번 생각하고

정리해 보고 그만 그친다.


내일 너무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늘 정신 에너지들을 좀 아껴 놔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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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표현에 이런 표현이 있다.


"I have(get) butterflies in my stomach = I have butterflies"


무언가로 인해 가슴이 심히 두근 두근 거리고 불안할 때,

특히 상담을 하다 보면, 그룹 상담인 Process Group이나 

Support Group등을 할 때, 미국 얘들이 자주 써, 많이 접하는 

한 표현이다. 



이것은 마치 

"I have a frog in the throat"가 목이 쉬었을 때 쓰는 한 표현 

과도 같다. 



요즘 몇 주, 그런데 내 뱃 속에 그 많은 나비들이 팔랑 거리고

다녀, 홀로 조용히 눈을 지긋히 감고, 내 영혼을 달래며, 안정

시키다든지등의, 그 때 그때의 조치등을 열심히 하고 있다.


살아나 보려고.


생존 하려고.



그 불안의, 마음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대강은 안다.

그 누구에게도 이 짐을 같이 나눠 져 달라고 부탁 하기에는

어려운, 한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고, 힘듦이기 때문에, 


늘 더 많은 나비들이 팔랑 거리고 다니면서, 나의 속을 

울렁이게 할 정도로의 한 현깃증이다.




이래서 인생은 결국은 가장 힘든 가장 깊은 벼랑, 모서리는 

결국은 혼자 서게 되어 있는 것이고, 우리 감정의 가장 그 

깊은 골 들에는, 


결국에는 그 어느 누구도 함께 동행해 주지 못 하는, 그래서 

우리는 한 제한된 창조물 들인 것 같다.


거기는 참 외롭고 쓸쓸한 곳들이다.



나는 이 내 마음 안의, 그 수 없이 팔랑이는 그 나비들의 바쁜

날갯짓들을 잠 재우려, 하루에도 몇 번씩, 정말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최상의 방법이 무엇일까를, 늘 깊이 심사 숙고들을 

해 생각해 보곤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을 토해 많은 글들을 써 보기도 하고.


이래 저래 내 마음을 달랠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열심히 찿아

보고 간구하며, 그 날 그 날을 겨우 겨우 그렇게 지금 지나 가고

있다.




"이 또한 지나 가리라 !!" 하는, 우리 중독 상담 안들의 12개 

큰 표어 중 하나를, 자주 스스로에게 되뇌이면서, 이 마음 안의

나비들을 잠잠케 하려, 수 많은 노력들을, 하루에도 수 십번씩

자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가장 깊은, 가장 외로운 그 장소들은, 많은 경우들엔 

늘 울고 싶을 정도로 늘 혼자인 외롭고, 시린 곳들이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함께 따라 들어 와 주지 못하는 그 곳은,

나의 삶에 대한 나의 책임들이, 깊숙히 물어 지는 그런 곳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더 무겁고, 더 버거운, 

한숨이 있고, 눈물이 있는 그런 곳들이다.



그런 짐이 많은 나의 아픈 마음들에 나는 요즘 격려가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하지, 그것이 발전을 위한 것이나 그 무엇이 되더라도,

나를 깍아 내림이나, 저조함으로 애써 끌어 들이는, 그 어떤 시도

들도,


요즘은 용납이 전혀 안 될만큼, 나는 지금 힘들고, 고달픈 시점

에서 홀로 싸우고 있다. 이 시기에는 야단을 치는 그런 경책들

이나, 그런 것들이 지금 전혀 많이 필요치 않는 한 고달픈 시기

인 것이다.


그만큼 나는 지금 예민해져 있고, 약해져 있고, 상처 받기 쉽게

되어 있는, 나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 어떤 한 이가 내 글의 방에 들어 와, 쓸데없는 훈장 짓을 

해 대면서, 나에게 지금 필요치 않는, 자신의 만족을 끌어 낼 글을

끄적여 놔, 


얄짤머리 없이 박박 지워, 내 방에서 잔인하게 쫓아내, 나의 삶의

근경에서 그 존재의 아무런 의미를 부여치 않고, 몰아내 없애,

욕지거리를 바구니로 하고, 저주해 쫓아내 버렸다.



여기는 내 글방이고, 내 감정을 release 시키는 곳이고,

내 정서를 푸는 곳이지, 타인의 잔소리, 비판, 뭔가 지가 

더 아는 척, 열등 의식들에서 나온 자랑거리들 지금 처 

들을려고 연 방이 아니기 때문에.


"니나 잘 해 처 먹으세요" 하고, 저주와 욕지거리를 한 바가지 

씌워 쫓아내 버렸다. 그 사람은 쓸데없이 날 깰짝거려 건드렸다,

내 현금의 이 아픔과 화 풀이의 저주를 난데없이 혼자 다 뒤집어 

써 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 그렇게 악이 받쳐 있는 상태고, 심히 상처 받고 아픈 

그런 상태다.


지금 나 건드리는 사람들은, 이런 이유 없는 저주들과 무시들을

똥 물로 뒤집어 쓸 각오들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게, 나는

지금 내면이 몹시 몹시도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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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수 년 동안 정말 수족처럼, 그야말로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챙기던, 열 일곱살 아래 토끼 띠, 한 친구의 생일이, 

바로 내일 화요일이다.


나는 이른 나이 가정이 무너지면서, 또 서방 이방 땅들을 여기 저기

번갈아 돌며 사는 사이, 생일이나 명절등을 많이 깊이 내 마음이나, 

삶 안에 새기지 않는 형태로 살아 왔지만, 


이 한 또는 거의 두 Decade(s) 늦은 세대의 문화는 나 같지도 않고, 

또 그렇치 않은 가정 배경에서 자라, 이런 걔네들의 생일이랄지등의 

나와 많이 다른 문화가, 무척 마음에 신경 쓰이고, 거슬리고, 부담

스러운 건 또 한 지금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가 원치 않을 정도로의, 나의 생일이나 나의 모든 삶 

전반을 늘 그렇게 알뜰히 챙기고 돌보닌까, 어차피 난 10분의 일도

걔의 정성과 사랑의 양을 아예 이미 따라 갈수도, 잡을수도 없지만,


거기에 적어도 조금은 상응하는 정도로의 성의와 마음은, 흉내나 

시늉이라도 내어 대접해 주어야 하는, 곧 한 선한 부담감들인 

것이다.



그래서 선물과 식사라도 대접하려, 재정을 한 켠을 떼 내어 모아 

놓고, 정말 나한테 그렇게 하지 않은 가족들이었기, 나도 안 한

건지, 닭인지 달걀인지 그 앞과 뒤의 서열을 잘 알 길 없는 지금은 

형국이지만,


내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단 한번 해 보지 않은, 어떤 이상한 

모양새를 지금 내 삶 안 조심스레 시도해 보는, 이 어색함과 경직된

불편함이라니....


오늘은 그래 오후, 선물을 준비하고, 식당에 가 함께 밥을 먹고,

저녁 한 내담자의 상담 시간에 맟추어 돌아 올 것이다.



이렇듯 가정이 무너짐은, 인간 사회와 삶 안, 인간다운 경우와 

도리들을 다 하고 사는, 한 건강한 모습들에, 지극히 낙후하고

퇴화되어 있는 것들을, 


이렇듯 내 친구처럼 다시 살아 나게 하는, 선하고 건강한 촉매제

들이 되어, 우리들의 삶 가운데 다가와 들어 앉는, 곱고 귀한 지체

들이, 이 세상에는 있고, 또 존재들 한다.


이 나보다 열 일곱살이 어린 한 친구가, 나에게 인생을 다시 

선하고 아름답게, 가르치고 회복 시킨, 한 참 어이 없으면서도

귀하고 선한 한 영역들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평생을 배워야 하게,

하나님은 우리들을 그렇게 지으신 것 같다.


그리고 자라고, 성숙하고, 회복 되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다시 메뚜기 떼가 훓고 지나간, 그 잃어 버린 

영역들을 다시 메꾸고 보상 하시겠다는 요나서의 약속을,


그리고 잃어 버린 missing Puzzle 조각들을 창조해 내셔서,

전체적인 그림을 만들어 가시는, 창조적인 우리 인격적인

아버지를 다시 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 때문, 나의 육의 가족들은 이제 이렇게 모두 

잃었지만, 난데없는 이런 영의 가족들을 통해, 자라지 못하고,

거기 그렇게 정지해 버린, 이 어린 내면의 나를 자극 시키고,

흔들고, 채우고, 크게 하는, 


이런 사랑의 파수꾼들을, 그 분이 손수 이렇게 나의 삶 근경

으로 불러 오셔서, 이렇게 메꾸시고, 채워 가시는 선한 역사의 

그림을 그렇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참 그 지혜의 크기나 깊이, 높이, 넓이가 무궁 무진하고 

광대하신 한 좋으신 아버지시고, 목자이신 한 분,


그 분의 이름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삼 위이시면서

한 일체이신 그 분이시다.




감사 합니다, 주님.

당신은 선한 목자이시고, 

제게 부족함이 없으신 좋으신 아버지 이십니다.


할렐루야....!!


놀랠루야, 이번은 기면서도, 한 편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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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내가 지난 32년을 일하던 기관에서, 나를 참소하고 궤계해

나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이대 나온 못된 한 사악하고 드러운

한 지저분한 계집년 생각이 확! 나면서, 


온 내 아픈 감정이 확! 다 뒤집어 지면서, 마음이 많이 아림으로 

하루가 결국은 끝이 났지만,



웃지 못 할, 어처구니 없는, 우스운 일도, 또한 거기서 한 건이

일어 났다.



그것은 내가 한국 달력을 자세히 깊이 들여다 보지 않아서, 

추석을 하루 앞 당겨 잘 못 세어, 나에게 온 방문자들이 다

내가 자신들의 가족들과 추석 당일은 지내라고, 사려 깊게

이렇게 하루 앞 당겨, 


추석 음식 초대를 한 것으로, 모두들 잘 못 선한 오해들을 

하고 와, 우리가 결국은 나의 부주의로 박장 대소들을 한.



나는 우리 집 한 켠에 우두커니 세워 둔, 한국 달력들을 

잘 자세히, 또 유심히 자주 쳐다 보지를 않는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빨간 색이 칠해진 세 날을 그냥 어느 날

문득 흘낏 그렇게 쳐다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빨간 날 시작이 그냥 추석이라고 혼자 단정 짓고선, 

그 날에 맟추어 슴슴히 잘 익으라고 시장 봐 와 김치 담고, 어젠

그토록 다리와 허리가 휘도록 서 서,  추석 음식들을 상 다리가

부러지게들 준비들을 하고, 혼자 야단 법썩들을 떨어댄 것이다.


손님들 초대는 이미 오래 전 알려 일정들을 비우게 했고.



그래 어젠 참 마음이 실로, 참으로 허망했다. 

그 날이 추석이 아니고 내일이라는데.

난 벙! 그냥 그렇게 쪄서, 허실 웃음을 그냥 웃고만.


참, 우리 주님 곁에 갈 날이 이제 아마 얼마 남지 않지 않았나도

싶어진. 완벽 주의자인 내가 이런 웃지 못 할 실수를 다 하다니.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져도 유분수지. 


왜 한국 달력을 자세히 안 들여다 보냐고오...

그 깨알같은 글씨 추석이 오늘 날짜 바로 밑에 선명히 

박혀 있구만.



그래서 그 많은 음식이 별 빛나지 않았다.

추석 당일이 아닌 것을 안 그 순간부터.




그런데 또 하나 나를 상당히 혼란 시킨 건, 휘영청 밝은 

쟁반같이 둥근 달이였다. 내 방 사층에서 내 방문 앞 크나큰 

고목 나무들에 떡 걸려 나를 보고, 마치 실실 헤실 헤실 웃고 

있는 듯한.



"저게 그냥 누굴 약을 올리나, 뭐 하나!"

하구선 잡아 내려 쪽박이고, 쟁반이고 뭐고 그냥 박살을 

내 주고 싶었던,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이 떴던, 

우스운, 챙피스런 한 밤의 이야기였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한국은 오늘이 추석이로구나.

여기 시간으로는 내일이지만.

이런 우리 명절이 이젠 무엇을 나의 마음 속과 삶들에 

의미 하는지 조차도 이제는 아스라해져 가는 이 시간대들.



이곳 북미는 하도 총기 사건이 많다 보니, 이젠 이번 14명이

죽었다는 워싱턴 총기 사건들 같은 뉴스를 들어도, 그저 무덤덤

할 뿐이고,



산림 엄청 우거진 콜로라도 주 같은 곳들서 산불이 났대도,

이곳 서부에서 산 불이 점점 더 번지고 퍼져, 인명들과 가옥들을

위협한대도, 



우리는 그저, 

"그럐? 

또?" 

그 정도의 반응들 뿐이게, 무디고 이젠 많은 것들에 무덤덤해져 

간다. 



반응해야 할 것들에 반응하고,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 잃어져 가는

곳 들, 안타까워하고 뭔가를 느껴야 하는데, 그 인간적인 감성들이

그런 현장들서, 그렇게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 있어 우리 명절, 추석이나 설날은, 이제 그런, 나의 기억

들로 부터 그렇게 멀어져 가고, 잊혀져 가고, 건조해져 가고, 

메말라 가는, 그런 서정의 하나로 이제는 그치는 존재인 것 같다.



인간이 인간 다웁다는게 과연 무엇일까?

느끼고, 사랑하고, 사고하고, 거기에 따르는 행동들이 

활기 있게 나가게 되고, 그런게 삶일진대, 

이런 메마름과 건조함들은 과연 나의 삶에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무얼 어디에서부터 다시 잘 돌려 놓아야, 건강하고 생명력 있는 

다이나믹들이 다시 살아 나고, 우린 우리의 삶 가운데서 그걸 

느끼게 되고 하게 되는 것일까?



아련히 어렴풋히 떠 오르는 어떤 한 대답은, 결국은 이 세상을 

살아 가면서의, 인간 관계들이라는 것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온다. 


이렇듯 문명이 발달해 대 도시권들을 누비며, 돌며, 방황하고,

이런 대 기업 위주의 산업화가 너무 성행치 않던, 그 당시들의

공동체 중심으로 돌던 인간성이, 그 곳 요동 치던 그 현장들.



거기에서 우리의 명절은 숨들을 쉬고, 아름답게 활동할 수 

있었던, 그런 근거지들을 가졌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오늘 

문득 새삼스레 크게 들어 온다.



결국은 나라는 존재는 그 정서가 체워지고, 그 감흥이 있어야 

내 가슴이 다시 촉촉해지게 결국은 지음 받은 한 존재이다.



오늘 집에 앉아 카펫트를, 새로 사 온 복숭아 꽃 향기가 난다는 

세제로 박박 닦아 아름답고 맑게 청소해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내 고향이, 동리가, 사람들이 다 각박해지고, 나에게 정말 mean

하게들 굴고, 협잡과 낭설, 참소와 궤계의 그런 협곡에 혹 선대도,

그래서 더운 폭염의 여름이 더 힘들고, 추운 혹한이 더 춥고, 



외롭고, 더 소외되고, 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으로, 한 깊은 

나락으로 추락해 버린 그런 순간에 혹 서게 된대도, 너는 고향을 

돌아 가고 싶니? 하는 질문.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어 한참을, 정말 한참을 걸레를 손에 꼬옥

쥐고 쭈그려 앉아 생각에, 생각을, 또 생각을 입술을 잘근 잘근

씹어 대면서 심사 숙고하고 숙고한 것 같다.



그래도 가야 할 곳은 역시 내 고향인 것 같다는 귀결의 생각.



그래, 

가자.

그렇게 모퉁이에, 벼랑 끝에 서게 된대도 좋다면,

그건 내가 있어야 할 곳인 것이다.



가자.

내 고향으로.

내년 3월 말이면, 

꼭 44년 만의 귀향이 되는 것이다.  



짐승도 죽을 때가 되면 제 땅, 제 장소를 찿아 간다는데.

하물며 사람인 내가, 내 땅, 내 장소를 다시 찿는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긴.



나는 그래도 돌아 갈 내 고향이 있다는게, 복 받은 사람인 

것이다. 



그렇듯 많은 사람들이 돌아 갈래야 돌아 갈 수 있는 고향들 

조차도 없는, 이런 현금의 세대들의 양태들 안에서.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젊은 시절들엔 일 년 한달 정도는, 꼭 절식이나 다양한 다이어트

들로, 몸 속의 노폐물들이나 불순물등을 몸 밖으로 배출해 내는, 

그런 의식 같은 시간들이 꼭 삶 안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지 금식 하기가 무척 어려워지고, 너무 

바쁜 일정들과 스케쥴들 안, 식사를 허술히 거르고는 그런 막중한 

일들의 양들을 감당하지 못 할 만큼, 


나의 삶들에 책임들이 막중해진 시간대 들을 보내면서, 다이어트

등을 깡그리 그냥 멀리하고 그렇게 산 것 같다.




그런데 밤 자면서 몸이 너무 아프고 안 좋으며, 신장 부분이 너무 

아파 밤 잠을 깊게 이룰수가 없어진 어젯밤 내내, 채식 다이어트를

다시 생각하며 잠이 깨었다.




그래 오늘부터 채식 다이어트를 한번 시도해 보아야 되겠다.

3-4 킬로 정도만 좀 더 빼면, 내가 아주 빛났던 독일에서의 

대학생 시절 체중이 되는데도, 그게 왜 뭐 그리 어렵다고.



가만히 있는 동안, 그동안 혼자서 야금 야금 13 킬로 정도가 

감량이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하와이에서 가장

체중이 불어 났던 시절에 비하면 말이다.



나이 들어 늙어 가며 나타나는 현상인지, 무슨 알지 못 할 병이 

몸 안에 있어 그러는 것인지, 별 상쾌치는 않는 현상이긴 하다.



하와이에서 당뇨가 처음 발견 되었을 때, 야채 다이어트로, 

10 몇 킬로를 야채만 먹으며 빼고 나니, 선함이 술렁 술렁 

인상에서 배어 나고, 무대 공연 춤을 추고, 랩을 하던 우리 

캘리의 조르단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와! 너 어떻게 한 달여 새 몸 관리를 그렇게 잘해서 나타나니? 

기가 막히게 훌륭하다!!" 하구선 경탄에, 감탄을 금치 못 하던 

우리 조르단이 갑자기 문득 보고 싶네.



같은 켈리에 와 살고 있는데도 한번을 못 만나는 이 분주한 

삶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 녀석은 다시 마약에 빠져 살고 있지나 않는지.

생각하면 걱정이고, 염려인 한 젊은 녀석이다.




그래, 

다시 다이어트다.

몸을 좀 건강하게 다시 세워 보기 위해서.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언젠가는 종국에는 시작 했어야 하는 일이라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시작 하고야 말았다.



이 공간에서도 다는 시원히 말하고 이야기 해 내지 못했던 

많은 제약들을 다 내려 놓고, 속 시원히 모든 걸 다 밝혀 내

결국은 '죽은 막둥이의 XXX 누나'의 초본을 연 곳은, 다름 

아닌 네이버 공간이다.





그렇게 다 이야기 하며 열고 시작하며, 막힌 물꼬를 트고

나니 시원 하지만,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마음 한 켠 있는 건,

또한 사실이고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산 자와 죽은 자의 땅에 갈라 서게 된, 목소리 없는 

(voiceless) 자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그 자들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 알게 하는 건, 또한 필요하고도 긴한, 한 작업임을

느끼고, 또 여러 해 생각해 온 바다.




10년이라는 세월은, 어쩌면 내 감정의 진한 앙금들을 이젠 

상당히 차분히 가라 앉히는, 잔 재주들을 잘 부려 댔다.




이제 그 때가 찬 것 같고, 그래서 나는 아프면서도, 시원하고,

섭섭 하면서도, 해야 할 바를 한다는 그런 각오와 결의가, 결국은

내 마음 안에 진중히 자리하고, 자리 잡고 그렇게 앉은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젠  들어 오는 시간대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우리 막둥이, 내 사랑하는 그 얘가, 이 누나를 이 세상에 홀로

버려 두고, 내 곁을 떠나 죽은 자들의 땅으로 홀로 그렇게 떠나

간 지도, 이젠 10년 하고도 6개월이 그렇게 훌훌 지나갔다.




오늘 그 프롤로그와 영화처럼, 연속극처럼, 소설처럼의 한

가운데 토막을 들어 가면서, 에필로그로의 귀결의 아름다운

마침을 소원하고, 희망하고 있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도 모른다.

 

-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


 

이걸 보고 있는 우리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나의 사는 모양 중에 흔치 않는 한 일이다.

눈은 건조되고 아프며, 몸은 죽도록 피곤한데도, 잠을 이룰 수가

없는, 이상한 현상이, 오늘 이렇게 벌어 지고 있다.


잠을 잘 수가 없으니, 뭘 그럼 해야 하나? 싶어 이것 저것들을

시도해 보아도 너무 피곤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경황이 

없고, 경겁스럽다는 표현 밖에는.


어쩌면 커피를 오늘 너무 많이 마신겐가?

아마도 그런거 같다. 무의식중 생각 없이 수 없이 많은 커피 

잔들을 비운 기억이 선명하니.



정리되지 않은 교육안등으로, 수 많은 Assignment들을 늘

정신없이 퍼 부어 내 주면서, 대학원생들의 당황들해 하고,

허덕 거리는 모습에서, 병적인 쾌감을 느끼던, 한 싸이코 같은

여자 교수가 내 코스에 하나 있었다.


거의 정신병 수준이던. 


암 투병 했던 여자인데, 아마 히모 떼라피 받았을 시, 뇌를 

좀 손상 받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내가 증오하고 싫어 했던

한 미치괭이 여자 교수였다.


이 여자가 또 억지 떼거지로 시켜 우리 대학원생들 모두다

한 테스트를 억지로 받은 적이 있다. 그 검사에서 내가 커피를

너무 과다하게 많이 마신다는 결론이 나왔었다.


그 미국 여자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나의 헛점을 보이는 것 

자체도 너무 내 자존이 상해, 그 때는 애써 일부러 아닌척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난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닌게 아니라 너무 많은 양의 커피를 하루 종일 마시고

있다는 것을.


몸을 좀 챙기고 이젠 보살필 일이다.

이렇게 늘 혹사 할 게 아니라.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이다지도 내 몸 하나를 그냥 못 놔 둬,

이다지도 혹사이니.



나에게 있어 Coffee는 평생을 걸쳐 무슨 존재 이였는가를 

한번 조용히 돌아 본다.

Coffee 는 나에게 있어 평생을 함께 한 동행이자 동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온다.




독일의 취보 커피, 아프리카 케냐 커피부터 하와이 코나의 

그 자고하고 콧대 높은 블루 마운틴 커피까지, 커피는 이렇듯

평생을 걸쳐 나와의 깊은 동반이고, 가까운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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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응급실에 갔는데  돈이 없을땐 이렇게.....

 

사고나 응급 질환으로 급히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수중에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응급 의료비 대불제도"  이용하면 해결된다.

 

이는 촌각을 다투는 응급 환자가 당장 돈이 없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 국가가 응급 의료비를 대신 내 

주고 나중에 환자가 국가에 상환하는 제도이다.

 

국가가 먼저 내준 병원비는, 12개월 분할 상환 하면 된다.

 

대불제도는 전 국민이 누구나 법률이 정한 응급 상황에 

해당하면, 동네 병원 응급실부터 대학병원 급 의료기관 까지 

이용할 수 있다.

 

신청 방법도 간단하다.

응급실 창구 직원에게 환자의 신분을 알려주고 

"응급 의료비 대불제도를 이용하겠다"고 말하고 병원에 준비된 

응급 진료비 미납 확인서를 작성하면 된다.

 

만약 병원이 거부할 경우 건강 보험 심사 평가원 의료 급여 

관리부( 02- 705- 6119 )나 건강 세상 네트워크(02- 2269- 

1901~5 )로 연락해 도움을 청하면, 담당자가 병원에 진료를 

받아 들이도록 조치해 준다.

 

건강 보험 심사 평가원 김 운묵 상근 객원 연구 위원은,

"국가가 대납한 진료비 청구서는 퇴원 후 건강 보험 심사 평가원

에서 환자 본인의 주소지로 보낸다" "본인이 지급 능력이 없으면 

배우자, 부모, 자녀 등 상환 의무자에게 청구서를 발송한다 "고 

말했다.

 

진료비는 최장 12개월 분할 납부할 수 있다 .

 

환자 또는 대납 의무자가 비용을 상환 하지 않으면 심평원이 재산 

상황 등을 파악해 상환 소송을 제기한다.

 

누구나 동네 병원 응급실부터 대학 병원 급까지 이용 가능.

심평원은 지난해 총 6422건의 대불 신청을 받아 24 4천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아직 국민의 인지도는 낮다.

 

중앙 응급 의료 센터의 지난 해 조사 결과 이 제도를 아는 사람은 

9.8% 10명중 1명에도 못 미쳤다

 

이 정보를 널리 공유하십시다.

몰라서 못 쓰는 제도가 이렇듯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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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자기 암시란 참 무서운 것인 것 같다.


이런 걸 '징크스'라고 이름 하나 어쩌나, 난 그 우리말들도 다 그 

깊은 의미들을 해독 못 하는 판, 징크스랄지 이런 소속을 알기 

어려운, 


세상 안에 편만히 굴러 다니는 똘맹이 같은 단어들은 어느 곳, 

어느 시에 가장 적절히 맞게 잘 써야 하는 건지 잘 몰라, 

하여튼 그래 제껴 한 편에 몰아 부쳐 두고.



나에게는 이상한 나 혼자 조용히 만들어 놓은 괴상한 이런 

자기 암시들이 몇 가지 내 삶 안 있어 늘 거기 그렇게 굴러 

다니면서, 내 사고 형성에 어떤 영향들을 작게나 크게 미친다.


그 한 예는, 내가 살아 오면서 아주 성품이나 성격들이 나랑

잘 맞아 떨어지고, 좋은 인간 관계들을 훈훈히 유지해, 늘 내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좋고 돈독한 우정이나 인간 관계들을 

잘 유지한 이들은 거의가 다 토끼띠 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난 어느날부턴간, 내 삶 안에 12살 아래로든 위로든,

이 토끼띠들을 내 삶 안 쌍수로 환영하는, 이상하고 괴상한 

한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앉아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죽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

했던 우리 막둥이가, 나보다 다섯살 아래로 토끼띠 였으니,

살아 있었다면 우리 그 꼬맹이 막둥이가 이젠 다 50살이

됐겠네. 웃음이 다 나오네. 세월 참 빠르다.


그 얘 나이 12살 아래면 38살 짜리들이 토끼 띠고, 지금 62세

들이 토끼띠겠네.


나의 옛날 한 많이 사랑했던 나의 오른팔 같던 제자도 토끼띠고,

지금 내 삶을 바지런히 정말 토끼처럼 깡총 거리며 돌며 나를 늘

챙기고 돌보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지가 나를 천상 하늘같은

멘토로 늘 여기니, 나에게는 그 얘 말에 의하자먄 멘티인, 한 여자 

얘도 38살 토끼띠다.


나는 이 토끼띠들의 성품이나 기질들이 너무 나랑 100% 잘 맞아

떨어지는, 너무 참 좋고 사랑스런 그런 사람들이다. 다 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 고개가 다 갸우뚱 스러워질 정도로 

강하고, 확실하게.


이러면 우리 인간 관계 안 궁합이랄지 그 딴 내가 상당히 경멸하는

그런 사항들을 조용히 살짜기 인정하고 살게 되는 것인건가?


그런데 이 토끼띠들인, 이 모든 나의 한결같이 공통적으로 사랑했던

이들이, 개띠인 나에게 해 준 것은 아낌 없는 보살핌과 사랑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다 나를 무조건으로들 사랑하고, 아끼고, 애지 중지들 

하고, 평생을 내 삶 주위 근경들을 충실히, 성실히 돌면서 해를 

바라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기들을 해 준 공통점들이 거기 있네 

그려. 곰곰히 생각들을 정리해 보니.


난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인인지라, 이런 괴상한 띠나 혈액형, 

이 세상에 너무 아무런 근거들 없이 맹신되는 것들에 대한 한 

알러지인 내가, 


이 토끼띠들만은 정말 한 예외처럼 제껴 놓고, 그야말로 철썩같이 

늘 맹신하고 있는 우스운 모순의 나를 늘 발견하곤 혼자 웃는 것이다.

 

그래 예수 이름으로 그런 근거 없는 사고들을 대적하고 쫓아 몰아쳐

내도, 어느날엔가는 그 이상하고 괴상한 사고들을 다시 찿아 와 몰래

은근히 즐기고 쓰고 있는 것을 그렇게 보는 것이다.


하긴 난 예수 믿기 전엔 내 사전에 별 있지 않는 팔랑귀가 갑자기 

되어, 점쟁이한테 점 보러 가자는 한 우스운 친구의 유혹에 빠져, 

동자 점쟁이 집도 한번 같던 전력이 있는, 샤머니즘 문화의 뿌리 

안서 영향 받은 한 사람이기도 하니 뭐.


안에서 샌 쪽박이 밖에 간다고 안 새겠니? 하긴. 


그런데 난 이 이상하고 괴상한 토끼띠 맹신을 그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아, 아직도  쌈지 속에 조용히 은밀히 넣어 놓은 

나만의 한 천벌을 받을 부적같은 즐김이고 믿음이다. 

아직 까지, 오늘날 까지도.



예수의 보혈과 십자가가 아직 들어 오지 못한, 우리의 정령 숭배

사상과 미신이 득시글 거리던 한국 여인네의 문화의 한 뿌리에서,

자꾸 걸리적 거리고 켕기는,  그 매끄럽지 못한 한 사고의 언저리.


정리되고 다듬어져야 할, 그냥 인간이기에 자그만 악적인 작은

붉은 뿔을 가진 한 요정 새끼를 주머니 한 켠 넣어 놓고, 가끔 꺼내 

보고 귀여워 하는 듯한 그런 느낌?   


이 세상의 모든 토끼띠들이여!

다 나에게로 오라 !!

내가 너희들을 나의 삶 안 거기 거하고 나랑 함께 놀게 하리라 !! 


음 핫하하하하 !!


이건 무슨 완전 작은 사이비 교단 교주의 함성이네.

듣고 보니.


예수의 이름으로 확!!



이것은, 하나님이 반석 되시고 기초 되시지 않는 한 문화에서 

나온 자의 사고와 모든 행동 체계들이, 완전 성서화 되기 까지, 

얼마나한 오래고 긴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를 아주 잘 보여 주는 

한 비근한 예이다. 


Heathen 문화에서 나온 사고가, 성서적 사고 체계로 전환되는

성서적 세계관(Biblical Worldview) 전환 과정으로의 한 어려움.


인간의 정신 내면을 마주하고 사역하는 자들이, 진중히 잘 

생각하고 염두에 두어야 하는, 한 중요한 사안이고 안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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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도 이렇듯 추석이 다가 오는 조금은 더 선선하던 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할머니가 어떤 아주머니 두 세 분을 품앗이로 모시고, 들판 우리 

논에서 뭔가 일을 하고 계셨다.


우체부가 왔고 소포가 도착되어, 나는 그걸 들고 들판으로 

내달음질쳐 들고 가져 갔다.


소포에서는 초록빛 탁탁한 면 원피스에 붉고 흰 줄 무늬가 가슴팍

위 있는 정말 팬시하고 그 당시 참 보기 힘들던 진정으로 멋있는

옷이 한 벌 나왔다.



엄마가 도시에서 나에게 사 보낸 

그 당시로는 정말 비쌌을 최고급 옷이었다. 

추석 빔이었나 보다.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곳에 있던 모든 아낙네들은 부러움의 시선으로,

" 너는 너무 좋겠다. 그런 부모를 두어서, 

어쩌면 그런 복을 타고날 수 있니?" 등등 코멘트들이 

참으로 왁자지껄 소소했다.


그 옷이 내가 가장 깊이 기억하는, 19살에 나를 낳아, 거의 같이

자라다시피 한 우리 엄마가 나에게 대접해 준, 몇 기억하는 아주 

좋은 기억들이다.


국민 학교 들어 가기 전 7살 때의 섬섬 옥수 손으로 공그려 지은 

추석 때때옷 한복과, 그리고 이 옷, 그리고 국민학교 4학년 때

인가 예쁜 머리핀과 겨울 스웨터와 그런 것들 등등.  



할머니의 혹독한 시집 살이와 조종하는 나쁜 병적인 습관들

때문,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걸 전혀 표현 조차 못하게, 할머니는

엄마를 거머 잡고 후려 치듯, 평생을 조종하고, 무시하고, 후려

갈기듯 엄마의 영혼을 망가뜨리고, 찌그러뜨린 한 인격의 바닥의

삶을 사셨다.



내 기억의 렌즈 안에 또 하나 크게 자리하는 우리 엄마의 이 옷과

더불어 숨은 한 모습은, 여름 방학, 겨울 방학이면 내가 엄마 아빠

곁으로 가고, 우리 세 남동생들이 시골 할머니 집으로 내려 오는

그 바꿔치기의 의식이 예외없이 치뤄지던 어느 한 방학,


기차 자리에 앉아 시골로 할머니에 의해 데려져 내려 가는 나를, 

엄마가 기차 플랫폼 전봇대 뒤에 숨어 서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거기 울고 울고 서 계셨던 한 모습이다.


어린 나는 그 모습을 마치 못 본듯 하려고, 멀리 산을 건너다 

보았던 기억이 떠 오른다. 할머니가 미안해 하고 가슴 아파 할 

것 같애서였고, 엄마의 그 평소 목소리 없고, 조용하고, 무덤덤 

하던 많던 모습들에 대한 난데 없는 반응에 대한 당혹감이었나?


나는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명확히는 모르겠다

는게 한 솔직한 심정이다.  



나중 나는 성인이 되어 나의 어린 시절을 프로세스 하는 한 중독 

상담 학교 학생 시절, 문득 이 우리 엄마가 사 보내셨던 초록색 

추석빔을 떠 올리고선 발버둥을 치며 울면서 울면서 말했다.


'엄마, 엄마! 난 그 옷이 필요한게 아니었어요.

엄마, 난 엄마가 보고 싶었고, 엄마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소원이었어요. 그거 아세요? 엄마? 네?" 하구선.


얼마나 내가 어린 소녀로 돌아가 많이 슬피 꺼이 꺼이 목을 놓고 

40여년만 크게 울었는지, 그 주변에 둘러 앉아 있던, 10여명의

미국 얘들은 다 들 겁에 질려 바짝 긴장들을 하며, 눈물들을 

그 들도 하염없이 흘리며들 나를 지켜 보고 앉아 있었다.


그 옷은 그 주변 아낙네들 말대로, 그 시골 어느 읍내를 가도

모든 사람들이 다 뒤 돌아 보고 "아휴! 쟤는 어디서 저런 고급

스럽고 귀티 나는 예쁘고 멋진 옷을 구해 입고 있니?" 하면서들

다들 돌아 보고, 만져 보곤 하던 최 고급 정장 옷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옷을 입으면 입을수록 엄마가 더 보고 싶어졌다.

할머니가 안 본다면, 코를 그 옷 속에 박고, 그 옷에서 혹 엄마 

냄새가 나나 늘 맡아 보고 싶었을 정도로.



아이는 무슨 이유에서든 부모가 데리고 키워야 한다.

자신의 자녀들을 무슨 이유에서건 다른 이들에게 뺏겨서는

안 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말 못하는, 얽히고 설킨 패밀리 다이나믹을 해결할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로, 거기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가슴의 진통들을 

그렇게 겪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그렇게 평생을 간다.

40여 년이 지나도 한 시리고 아픈 한 추억으로, 상흔으로.

그리고 그걸 기억하면 지금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한 블랙 홀

수렁으로 거기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학예회 철 준비가 무르 익어 가고 있었다.


대도시에서 막 교육 대학을 마치고 부임한, 긴 머리를 가진 

젊은 여 교사는, '산들 바람 불고 달빛 찬란한 무릉도원 강 

가에~'의 노래를, 


아이들에게 멋드러지게 가르치며, 예술인의 끼로 모든 사람들을 

사로 잡던, 한 총각 선생님과 연얘를 시작하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도시에서 그렇게 갓 부임한 그 여 선생은 뭔가를 짱! 보여 주고 

싶었겠고, 그래서 우리들 상위권 1%에 드는 공부면 공부, 

춤이나 노래면 노래인 얘들 7-8명을 선별해, 



읍내 양장점에 가서 하늘색 다우다 천으로 발레복처럼 돌면 

뱅그르르 퍼지는, 짧은 후레야 간따구 원피스를 맟추어 입혔다.

그리고 하늘색 그 드레스에 흰 스타킹을 신으라고 했다.


그리고 학예회 날이 그렇게 연습과 아울러 다가 왔다.


많은 동리 들에서 수 백명의 학부모들, 아이들이 큰 강당을 

서서히 가득 메우기 시작하고, 나는 우리 할머니도 그 가운데 

옷 매무새 단정하고 예쁘기로 맵시하면 다 들 저리 가라 이신,

 

우리 할머니가 그 내가 참으로 좋아 하던 흰 한산지 모시 한복을 

단정히 위 아래로 입고 앉아 계신 걸, 무대 커튼 뒤로 확인 하구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구선 무대에 올라 음악에 맟추어 한 쪽 발로 펄쩍 뛰기도 하고,

손을 옆으로 비스듬히 벌려 기울이고 점프하고, 그리고 뒤로 

벵그르르 한 바퀴 돌기도 하는데, 청중들 가운데서 동요가 서서히 

일어 나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놀람과 당황, 경악 스러워 함, 킥킥 거리고 웃음등....

어느 누구도 우리의 춤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단 한 명도 없는 듯 해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영문을 모르고 무대를 벗어나, 

모든 공연이 다 끝나고 안으로 들어 왔다.


곧 이어 우리 담임 여 선생님이 따라 들어 오셨지만,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주 늘 약방에 감초처럼 모든 곳에 덤벼 드는 

한 중년 여자 선생님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 오시더니,

"얘, 너 이게 뭐니? "하면서 내 스타킹에서 빨간 헝겊 

조각을 잡아 뜯어 낸 건.


그건 우리 할머님이 내 흰 스타킹 밑을, 빨강 천으로 기워 붙여 

놓은 그 붉은 천이 떨어져 나와, 나풀 거리고, 펄럭 거려 내가 

뛰고 돌고 할 때마다, 그것이 펄럭 거림이, 


우리의 새로 맟춘 그 마냥 곱고 예쁘던 드레스도, 그 어느 것도 

다 망쳐 버린, 그 학교 강당이 온통 술렁이게 했던, 그 바로 원흉

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에게 온 강한 멧세지는 '수치' 바로 그 것이었다. 


낯이 뜨거워지고, 너무 숨이 막힐 정도로, 수치 스럽고, 창피함은, 

나의 43년을 나를 질기게 물고 나의 삶을 따라 다녔다.


그 기억만 하면 죽고 싶을 정도로의 큰 수치, 낭패, 그 모든 철저한 

준비들과 연습등을 다 나 하나로 인해 망쳐 버린 죄책감 등등.


할머니는 그 날 집에 학예회가 끝나고도 들어 오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주 늦은 밤 술을 잔뜩 드시고, 우시면서,우시면서 들어

오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버림 받은 한이 밀려 오면, 간혹 이렇게

동네 잔치집 등서 술을 드시면, 늘 나를 '내 딸 춘향이'라고 부르시

면서, 한복을 입으시고 춤을 뻘럭 뻘럭 추시기도 하시곤 해, 남들

앞에서 나를 늘 챙피하게 만드셨다.  


그 취한 할머니는 우시면서,

"아가! 내 딸 춘향아! 새 스타킹 사 신어라. 와!! " 하시면서 

종이 지폐 돈을 계속 나에게 내 미시면서 우셨다. 


나는 할머니가 이 사실을, 할머니 외로우실까 봐, 가슴을 여미는 

아픔으로, 할머니께 나를 떼어 놓고, 눈물의 세월을 보내셔야 했던, 

우리 아버지와 엄마에게는 절대로 이야기 못 한, 나처럼 한 치부로

가슴에 남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부잣집 이어도 아버지 대학부터 좋은 직장까지 모든 곳들에 

다 재정을 긁어 모아 가셔야 했고, 집 사고, 짓고 등에 할머니,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빚에 좇기며 돈을 벌고, 농사를 해마다

지어 갚고 하는 상황,


유일한 손녀 스타킹 하나를 제대로 못 사 신기고, 기워서 신기다

그런 수치스런 장면을 연출하고, 아이도 그걸 알고 들었을 때는

얼마나한 창피이고 수치였겠는가? 하는 마음에, 


엄마도, 아버지도 마음이 무너지리라는 걸, 할머니는 본인이 먼저, 

그리고 어린 손녀가 먼저 경험한 그 일을, 끝내 들려 주시지 못했

으리라고 생각 하는 것이다.


그리고 속 내막도 잘 모르는 모든 동네 사람들은 

"저런 부잣집에서 못된 자린고비 할머니 같으니라구,

그 아이들 스타킹 값이 얼마나 수 백냥을 한다고, 아이를 

저런 수치 속에 집어 넣고....." 

하구선 할머니를 공격하고 욕해 댔으리라 생각한다.



나중 내가 성장해 상담을 하면서, 프로세스 그룹등의 

그룹 상담에서, 나는 이 아픔을 깊이 깊이 프로세스 해야만 

했었다.


'가난은,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곧 수치다' 라는 틀린 멧세지를, 

나에게 이른 나이 안겨 준, 어둠의 권세가 어린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쳐 평생을 속일수 있는, 거짓과 속임의 덫에 

걸리게 하는 한 방법이고 작전인 것이다, 


그건 거의는 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아픔들이고 수치들인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정말 중요한 과목 소 논문 하나를 잘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은 바로 코 앞으로 다가 오는데, 어느 지점에서 콱! 막혀 

내용 전개도, 구성의 지혜도, 거기 그대로 지금 완전히 막혀 버려 

정지 되어 그쳐지고 거기 지금 그렇게 그냥 서 있다.


교회 가기 전, 다녀 와서 하루 종일을 머리털을 쥐어 뜯으며 지혜를

짜 내어 봐도, 연구 과정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고, 난 하루 종일

통곡하고 막 막 울고 싶은 하루이다.


날씨는 사람을 완전히 푹 익히게 덥고, 페이퍼 작성 구상은 중반

거기에서 그렇게 완전 정지로 막혀 버리고, 한 여자 얘는 나를 

미치게 하고 하루 종일을 돌아 다니고.



그래 좀 휴식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버럭 버럭 나고, 머리가

백짓장이 되어 버리게, 이 학문의 도전이 이렇게도 나를 좌절 시키는 

지를, 좀 진정하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몇 일전 뉴스를 보니 2050년에는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의 온도가

2도 더 상승하고, 이번 이 폭염에 많은 이들이 공격적 성향으로 

쉽게 변한다는 내용이 보도 되는 걸 보며 혼자 조용히 웃었는데, 

내가 지금 바로 그 케이스이다.


공격적이 되어 가고 울화통이 터지고.

정말 이 공부 더 이상 못 해 먹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쩔땐 이렇듯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지고.


그나마 남은 좋은 성품 마저도 깡그리 다 망가지고 없어져 

버리겠다는 위기감들을 이렇듯 직면 할 때면, 나는 곤혹 

스러워지고 당황스러워진다,




어릴적 읽은 까뮈의 '이방인'을 보면 그런 경악스런 코멘트가 

나오지 않니?


'햇빛이 너무 눈이 부셔 총을 쏘았다'는.


싸이코 패스

소시오 패스


우린 심리학에서 날마다 다루며 

어떻게 이런 이들을 잘 회복 시킬까를 연구하는 

사람들인데도, 나 하나 이렇게 어쩔땐 감당을 못한다.



진정하자.

논문이 중요한게 아니고,

페이퍼를 잘 작성해 교수에게 제출해, 

에이플을 받는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 하나 마음 잘 다스리는 법을 먼저 잘 배우고,

또 그렇게 사는 게 우선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에효!!

뭐 되는게 하나도 콧뺑이도 없는 날!!


밤 늦게 마신 강한 커피로 새벽 4시까지 눈 말똥 말똥!! 띵!!으로

잠 한숨 못 들고.



그건 너. 

커피 다 너 때문.



불금은 무슨 놈의 불금이고, 

낭만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낭만.



텃밭 푸성귀 채식 왕 식단이 

기름기 왕창 음식들로 갑자기 돌변하는 통, 


배탈에, 설사에. 

꼬로록, 주룩 주룩. 

야단 난리통.




이건 완전 어퍼컷, 뭔 컷 한 방에 다 날려, 

초 그로기 홍알 홍알 눈알이 도는 상태.



넌 왜 이렇게 늘 만화 같은 삶을 사는 거니?

이 주접아.



잠 못 자 헤메는 사이, 새벽 1시 또 배가 급 고파져 신 라면 

하나에

'예감' 이라는 괴상한 이름의 소형 감자칩 과자 한 봉지 뜯어 

바삭 바삭 냠냠 후루룩 할 때 이미 '예감' 했어야 할 일.


그 한 밤 끓여 먹고 바셔 먹는 괴물 생활 속.


어제 짜파게티 한 상자, 신 라면 한 상자, 과자, 과일, 쥬스 

바리 바리 나의 까마귀가 또 선물을 나의 생존 장소로 물어 

날랐거든.


나를 멘토라고 믿고 수 년을 쫄쫄 따르는 한 여자 얘가 

한 유명 교회 여자 전도사.


그녀가 목자 되어 기르는 한 어린 양이, 한 라면 회사 직원.


그래 약 2년째 이 어린 양의 상에서 떨어지는 라면 땅 

부스러기를 이렇게 꾸준히 주워 먹는


아! 이 은혜여.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라면은 사실은 김치 라면,

그 다음이 삼양 라면인데.


난 새우깡, 삼양 라면 탄생시 국딩, 중딩 세대.


신 라면은 너무 매워요. 나에겐.


귀신 잡는 해병이 이 세상 있다면

맵고 칼칼한 것들 잡는 한 남도 여인네가 

이방 땅 삶 30년에 요 모양 요 꼴이 되고 말았다. 


마치 내가 평생 절대 상종 않는, 

밍! 띵! 한 음식들 잡는 먹치 서울치들 입맛처럼.

김치 물에 씻어 먹는 초 순진 어린 초딩 입맛처럼.


"아!

자존심 제대로 픽! 상해" 다.


신 라면 매운 맛 하날 견뎌내지 못하고 이렇게

배탈에, 설사에 꼬로록, 좍좍 이라니.

  

그러나 찬 밥 더운 밥 가릴 새가 어디 있어?

늘 이렇게 얻어 먹는 주제에. 



또 오늘은 텃밭 행 가서 물 주려고 2주 내내 벼르고 벼렸는데,

새벽 4시 '꽃보다 할배', '나 혼자 산다' 다 억지로 봐 줘야 하는 

고통 속,


그렇게 겨우 잠 들었다, 아침 8시 일어 나니, 

벌써 켈리 하늘은 째쟁쨍 쨍쨍 불볕 더위!!


이쯤 되면 이젠 욕이 입에서 튀어져 나와야 할 판.


"우라질 세상 !!  

되는 게 도통 도동통 하나도 없어요!!" 다.


나를 좀 대접하고 위로해 줘야 할 너무 많은 괴로움들이 

요즘은 내 내면 산만 범람해, 오늘은 그 동안 눈 여겨 봐 두고,

돈이 생기기를 댕기리던, 


예쁜 여름 가방 둘을 내 자신에게 사 주어 위로하고 대접해 

주러 나가려던 참인데이렇게 찡! 더우면 어떡 하라구?


홍알 홍알!!

쩝!

쯥!!


완전 그로기.


"에효!!

세상 살기 참 힘 들죠!! 이잉? " 



한심이의

좌충 우돌 생존 필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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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공부를 늘 너무 열심히 하면, 이렇게 자주 코피가 

펑펑 터지는 줄 늘 착각해 온 것 같다.


몇 달 슬럼프에 빠져 줄창 놀다 늦춰진 공부의 속도를 따라 

잡으려니, 요즘 정말 공부 혀가 빠져 나오도록 열심히 하거든.


마치 헌 책방 주인이 아직 채 정리해 서고에 꽂지 못해, 옆에

장다리 높이까지 포개어 늘어 놓은 장서들 처럼, 나의 전공 

원서 책자 들을 차곡 차곡 포개어 세워 놓고선, 


나는 비장의 눈부릅 뜸으로 눈알을 부라리며 요즘 열공.



서로 받겠다고 줄에 줄을 서 다투는 내담자들의 밀림 속,

테라피스트의 "에휴! 이 놈의 인기는 정말 !! "하구선 

쓩쓩 씽 !! 찬 바람을 날리고 다니면서, 

다 찬 클리닉 셋션들 스케줄에,


"죄송 합니다.  일정들이 다 꽉꽉 차 있어서 다른 시간을 더 이상

빼 낼수가 없습니다" 등의 시건방들을 떨고 다니면서, 난 인기의

Ilusion과 



이 바쁜 일정 속, 방석만한 전공 서적들 공부와 좋은 Paper 들

작성해 교수님들 인정 받아 내는 학문의 고달픔 속, 너무 시달려,

이렇게 요즘 코피를 펑펑들 자주 쏟는줄 착각들을 하면서 

그렇게들 분주히들 산 것 같다.






그런데 오늘 그 비참하고 허무한 실제 상황 이유를 난 찿아 

내고 말았다.


그건 클라이언트들의 많은 셋션의 인기로 인한 너무 힘듦도,

학문의 고충도 전혀 아닌, 내가 가까운 고가 도로 소음 한 방울이

전혀 스며들어 오지 못하게 할 정도로, 


굳건히 잘 만들어진 미쿡의 2중 샷시 유리창들을 꼭꼭 닫아 걸고 

잠이 든 날들엔 ,콧 속이 너무 건조해지면서, 그렇게 아침부터 

하루 종일 코피가 종종 펑펑 터지고 쏟아진다는 것을.



아!

참으로 허망했다.





그 많고 좋은 고결한 이유들을 다 제끼고,

공기가 안 통해 흐른 코피였다니.


                                              


"에휴 !! 이 놈의 인기는, 또 실력은..." 에서

"에공 !! 저 놈의 착각은...." 으로 추락, 하락.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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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가 너무 분명한 사람들은, 회색 공간을 가운데 만들어 

사람들이 설 수 있는 완충 지대를 안 만들어 준다는 데에 

늘 그 큰 문제가 관계안 들 있다.


나는 그 큰 한 실 예로 White & Black 의 호불호가 아주 

선명하고 분명해 선지적인 은사의 기능이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분별과 통찰이 남보다 더 앞서 발달해,


전체 그룹을 낭떠러지에 떨어지게 하는 위기 상황들이나

그런 곳들, 지도자로서 문지기처럼 지키고 서서 공동체며 

그룹들 안에, 진리와 거짓, 속임들을 


독수리 같은 눈으로, 매의 무서움으로 지키고 보호 한다는 

평을 늘 우리 기관의 톱 라인 영적 지도자들에게 칭찬과 

은사의 한 확인으로 늘 듣는 한 사람이었다.


이 선지적 기능이 강한 사람들의 한 문제는, 늘 그들의

삶과 사역들 안에, "그럴수도 있지 뭐!"나 "다 그런거지 뭐!" 

하는 회색 Gray Zone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중간 지점에서 더 좀 생각해 보고, 

재고해 보면서 다른 지점으로 Spring Board 처럼 뛰어 

오를 수 있는, 


완충 지대 공급이나, 그 시간대를 기다려 주는 아량과 

관용의 결여가 대개는 그들의 성품이나 삶의 영위들 상,

그 한 심히 약한 아킬레스 건들이다.



그러나 사랑이 충만히 감싸지지 않는 한 진리는, 

많은 경우들엔 칼이 되고, 무기가 되어 사람을 찌를수 있고, 

아프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귀한 은사들로 많은 사람들을 많이 아프게 

찌르고 공격할 수도 있다. 

인간 관계들 안, 일 안들에서.


다 맞고 진리여도, 자기 의로 남을 판단함에는 분별도,

통찰도 전혀 아닌, 영적 권위( Spiritual Authority) 의 

남용과 악용의 조종(Control)의 영적 학대(Spiritual Abuse) 

로 쉬히 일할수 있는 것이다.


그 성숙은 대개는 나중 아주 나이가 먹었을 때에야 들어 

온다. 그 성숙의 늦은 시간이 잘 지나고 나면 엄청난 지혜도

나오고, 


많은 세상에 지친 이들이, 그 존재의 그늘 밑에 와서 쉬고 

안식할수 있는 여유와 아량, 관대함, 관용등의 성숙이

진정으로 그들 안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요즘 이 너무 칼같이 선을 그어 대는 호불호의 성품과

성격을 늘 조금은 더 여유롭게, 날 서지 않게 무디게 하려는 

노력을, 의식적으로 내 삶 안 많이들 하고 있다.


내가 좋고, 내가 편하고, 내가 마음이 당기는 사람만 선별해 

내 삶으로 들어 오게 추리기에는, 이 나의 일은, 그걸 허용을 

하지 않는, 한 특수 분야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싫어도 받아야 하고, 정 나미가 뚝뚝 삼천리 밖으로

나가 떨어져도, 다시 눈물을 꾹 머금고, 그들을 다시 싸 안아야 

하는 이 일이, 나는 수 없이 버겁고도 어쩔땐 불편하고, 마음이

인간으로서 때론 너무 아프다.


그러나 나는 내 마음에 맞고, 만나기 전 가슴이 콩콩 뛸 정도로

기다려지고, 그날 하루 태양이 더 밝은 것 같아 오는, 이 극단적인

호불호를, 그 좋은 사람들을 향한 그 가슴 설레는 기다림과 사랑, 

흥분등을,

 

이젠 보기 싫고, 지겹고, 하나님이 어딘가로 좀 데려가 버렸으면 

싶은 사람들에게로, 조금씩 떼어 나누어 주기로 마음을 아침마다 

새롭게 먹는다.


오늘 나에게 찿아 오는 클라이언트는 그런 흥분이 있게 하는 

좋고 설레는 사람이다.


그러나 너!!

Calm Down !!

천천히, 느리게, 차분히!!


그 한 부분들을 조금 더 똑똑 떼 모아, 

미운 놈에게 하나 더 줄 떡을 콩고물이랑 같이 

실하게 모아 준비하고 비축하라.


편견없이,

공평하게.


사랑은 그렇게 무조건으로 흘러 들고 스며 들어야, 

사람 들 가슴 안에서 심히 요동쳐지고 마침내는, 급기야는

일할수 있게 되어지는 한 Dynamic 이다. 



여기서 때 늦은 감 있는,

귀여운 이야기 하나.








거북이와 경주에서 진 토끼가 열 받아 

씩씩거리고 있는데  지나가던 달팽이가 한마디 했다 


"~ 느림보 거북이에게도 지냐

나하고도 시합 한번 할래??" 




이 말을 들은 토끼!!! 가 가뜩이나 

지금  열 받아 죽겠는데~~~ 


달팽이를 집어 들고 멀리로 그냥 발로 뻥! 차 

집어 던져 버렸다. 



저만치 아주 멀리 나가 떨어진 달팽이 

30년 걸려 겨우 토끼 곁으로 다시 와 하는 말. 



"방금 너 나 찼찌"




토끼 띠용 !!




우리 성품은 하루 아침에 그렇게 잘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 하와이 대학의 가장 톱 라인 리더들인 우리가 함께 모여 

앉아서들 하는 한 농담들이 있다.


"야! 

멀리도 말고 그냥 우리들만을 봐라.

어디 사람이 그렇게 쉽게 바뀌니?"

무고한 어린 학생들 너무 잡고 족 치지들마 !!" 하고선.


평생을 하나님 일 하는데 생명을 다 바친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요 모양 요 꼴 들인 것이다.



익지 않은 열매를 억지로 쥐어 잡고, 비틀어 따고, 끊어 버리면, 

그 열매는 아직 시고, 떫고, 쓰게 되어 있다.



그 분의 시간대 안, 곱고 선명하게 익어 ,

달고 시원한 쥬스가 나오기까지에는, 




해, 바람, 비등의

긴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



어느 날 부턴가 지도자의 책임의 삶이 주어지면서 부터, 

나는 새벽 일찍 잠을 깨는 습관이 생겨 났다.


학교를 인도 할 때는, 새벽 4시 정각이면, 알람이 전혀 없이도,

귀신같이 눈이 번쩍 자동으로 뜨여지고, 학교 인도가 쉬는

요즘같은 시기들에는, 아침 6시 반이면, 언제나 그냥 잠이 

깨며, 눈이 떠진다.


이것을 볼 때, 지도자의 의식 속, 무의식 속, 책임감이라는 

것이 얼머나 무서운 것인가를 우리는 간접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절대로 늦잠도 자지 않고, 낮잠은 더우기 절대 자지 못 한다.


내가 스트레스를 리더로서 너무 받아 긴장들 후, 낮잠을 혹 자는

불 상사가 일어 나면, 전체 팀들이 다 초 긴장하는 상황들로 돌입

하는 걸, 어느 날 잠결에 젊은 팀 원들의 소곤 거리는 소리들을 

듣고, 그렇게 알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런 내가 아침 10시 반까지 잠을 잤다.

나는 늦은 아침 부시시한 부엉이집 머리를 하고, 나무 늘보처럼 

늘어져 잘 수 있는 사람들이, 늘 마냥 신기하고 괴이해지는 그런 

사람인데,


그 이상한 일이 오늘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래 어제 뭘 잘 못 먹었나?

뭐 무슨 일이 나 모르는 새, 내 몸 안에 어떤 이상이 생긴건가? 

해 음식의 효능등의 건강 체크를 다 공부하고 생각해 본.



사람이 나이를 들어 간다는 건, 때론 이런 이상 반전이 가끔들 

나타들 나는거 같다.

전혀 젊을 적 안 먹던, 난데없는 찰떡이 불현듯 먹고 싶다든가

등의.


그런 난데없는 나타남들을 요즘 난 종종 나의 삶 안에서들 

경험하곤 화들짝 놀라곤 한다,


이렇듯 우리 몸 안에서는 수 많은 우리가 모르는 기적들이 

하루에도 수 십 건씩 그런 기전들이 복잡 미묘하게들 오고 

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새, 병 나고, 자연으로 치유되고, 등의 수 많은

기적의 산물들이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하루 하루 한 시간 한 시간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고, 신기하고, 기이한 것이다. 



어젯밤 자면서 뭔지 모를 굉장한 아픔이, 편치 못 함이, 몸 안

있는 걸 자면서 느끼고, 불편하고, 아프고, 편치 못했음을 

뚜렷히 기억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지 못 하고 알지 못 하는 그 깊은 영역들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이, 다 신기하고 감사하고 

기이한 일 들인 것이다.


이 세상에 보내셔서 자라게 하시고, 살고, 그리고 그렇게 

그 분께로 가는 과정들 안의, 우리가 모르는 그 영역들 

안에서, 정말 그야말로 은밀히 위대하게 날마다 신실히 

일하시는 주.



오늘은 커피 좀 이제 마시고, 시장 좀 랄프나 타겟 가서 봐 

와야 하나? 

아니면 며칠 더 기다렸다 주말에 장을 봐야 하나?


그래 이번 주말에는 마음 크게 먹고 쇼핑 데이로 잡아, 멀리

Walmart 에도 좀 가서 면 바지, 윗도리 상의, 신발들도 좀 

보고 할까나? 


4년전 하와이 떠난 이래로, Walmart 쇼핑한 지 참으로 오래

됐다.

Walmart 가볍게 입을수 있는 저렴한 옷들과 신발 들, 잠옷

등을 내가 참으로 좋아 하는데.


영국의  유태계 회사 Marks & Spencer의, 중저가 서민용 

카키색 면 바지들을 저렴하고 다양하게 사이즈등을 잘 구비해

파는 것처럼,


Warmart 도 카키색, 국방색등의 면 바지 들을, 멋진 주머니

들을 적당히 무리스럽지 않게 잘 들 겻들여 넣어, Riders 에서

잘 만들어 시판하고 있는데, 


탄탄하고 상당히 멋스러워서, 데님 자켓부터 케쥬얼한 체크 티, 

싱그런 흰 면 블라우스등들 까지도 무난히 소화 시키는 아주 잘 

만든 옷들이다.


독일 대학 캠퍼스 근경 하 운 엠(H & M) 이나 Gap 등을 30년 

전에 입을시, 대학 캠퍼스의 트렌드의 선두 주자들이 되던 그런 

멋스러움들이 시크하게 드러 나는 중 저가들.


캐나다에서는 Banana Republic 등의 학생 가방 등이 내 구미를

채워 만족 시켜 주었고, 자연이 산이며, 들판 등 캠핑 아웃 도어가

잘 발달된 나라인지라, 멋스런 옷들이 여기 저기 부지기수로 깔려

있는 나라가 캐나다이다.


영국의 버부와나 그런 특수 왁스 옷들처럼, Timberland 풍의

멋스럽기 그지 없는 와우!! 스러운 아웃 도어 용품 소품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이런 옷들 찿기가 참 쉽지가 않다.

기호에 딱 맞아 떨어지는 멋스런 풍들의 진중한 옷들이.

여러 나라들을 번갈아 살다 보면.


순간 잠깐 잘 못 되면 늙은 줌마, 아저씨들 뻘들이 줄줄 흘러 

나와 버리고들.



그래서 늘 나는 나의 독일 캠퍼스 근경의 그 멋진 진스나 

가죽 가방, 두꺼운 크나큰 외투등의 의상이 늘 그립고,

나의 한 돌아 가고픈 향수이다. 










Posted by 텃밭지기와 상담